노부부
심삼일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덜컥 대장암에 걸리고 말았다.
젊었던 시절에 술 담배를 즐기다 보니 위십이지장궤양을 얻어 가끔 구토와 함께 토혈도 했다.
한 열흘 설사와 함께 하혈이 있어 치질인 줄 알고 항문외과에 들렀는데, 검사 결과 의외로 대장암 3기라는 판정을 받았고, 급기야 주거지인 시흥시의 종합병원에서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잘 되었지만, 1주일쯤 지나서부터 인천의 모 대학병원에 가서 항암치료를 받아야 했다.
항암치료는 수술 후에도 대장에 남아있을 암세포가 간이나 폐 등 다른 장기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항암제를 정맥주사로 혈관에 주입하는 것이다.
한번 주사 맞는 시간이 연속 50시간이므로 2박 3일간 입원해야 하고, 별 이상 증상이 없으면 퇴원 2주일 후에 다시 입원해서 2차 치료를 받는다.
이렇게 모두 열두 번(24주, 6개월)의 치료를 받은 후 전이가 없으면 완치 판정을 받게 된다.
대학병원 항암센터 동 6인실에 입원했는데, 내 침상 좌우와 통로 건너편 세 개의 침상에도 환자가 입원해 있었다.
커튼으로만 가려져 구분된 침상이라서 어디서든 작은 소리로 말을 해도 다 들린다.
입원 첫날 밤에 우측 침상과 건너편 두 군데서 들려오는 신음 때문에 한숨도 못 자고 날밤을 새웠다.
다음 날 낮에 보니 우측 침상에는 팔순의 노인이 입원해 있는데, 부인인 할머니도 함께 기거하며 병구완을 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기골이 장대하고 얼굴도 훤해서 얼핏 보면 전혀 환자 같지 않고 무슨 고위층의 현역으로 보일 정도다.
할머니는 아주 왜소한 체격이지만 곱게 늙은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휴게실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다 보니 두 분의 과거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고향이 전주이며 할머니가 한 살 많은데, 할아버지가 스무 살 때 연애 결혼했고 지금 81세와 82세라고 한다.
전주 시내 시장에서 젊은 부부가 이것저것 다 파는 소위 만물상회를 해서 상당한 돈을 벌었고, 어쩌다 큰돈을 날려보기도 했단다.
지금은 2남 3녀의 자식들도 다 잘살고 있어서, 손주들 재롱이나 보며 여생을 즐기려고 했는데 이리됐다며 몹시 아쉬워했다.
췌장암 수술을 했고 지금 다섯 번째 항암치료를 받는 중이라고 한다. (췌장암은 생존율이 매우 낮음)
나는 결혼 45년인데, 노부부가 저렇게 60년이 넘도록 다정히 해로하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아서 매우 안타까웠다.
둘째 날 밤에는 몹시 아파하더니 어찌 된 일인지 다음 날 정신과 의사가 와서 여기가 어디냐?, 우리나라 대통령이 누구냐는 등 정신이상 감정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통증에 시달리다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것 같아 걱정되었다.
나는 먼저 퇴원했고, 가끔 그 할아버지가 어찌 됐을지 몹시 궁금했다.
그리고 2주일 후에 2차 항암치료를 받으러 입원해서 다른 입원실(5인실)에 배치되었다.
전체 50시간 주사 중에 처음 두 시간은 항암제, 다음 두 시간은 해독제를 주입하고 이상이 없으면 본격적으로 46시간 연속 항암제 주사를 맞게 된다.
연속 주사를 두 시간 정도 맞다가 갑갑하여 주사액 달린 폴대를 밀고 휴게실로 향했다. 간호사 몇 명은 얼굴이 익어서 눈인사하고 지나쳤다.
그런데, 저만치 멀리 휴게실 입구에 나란히 걸어 나오는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바로 그 할아버지 노부부다.
‘아, 별일은 없었구나. 다행이다.’ 싶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코로나 19 마스크를 벗고,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군요.” 하고 인사를 했더니, 노부부는 금세 나를 알아보고
“아, 또 오셨네.” 하며 무척 반갑게 맞이했다.
할아버지 병환이 차도가 있어서 두 분이 더 오래 다정한 모습을 보였으면 참 좋겠다 싶었다.
나는 주사 맞는 게 점점 힘들어져 내내 침상에 누워있다가 이틀 후에 퇴원했다.
그 뒤에도 2주일마다 3차와 4차 항암치료를 받았는데, 노부부는 눈에 띄지 않았다.
나하고 입원 날짜가 달라서 함께 입원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노부부의 안부가 궁금하긴 했지만, 이름을 알지 못해서 간호사에게 물어볼 수가 없었다.
다시 2주 후에 다섯 번째로 입원을 했는데, 마침 노부부와 얘기할 때 함께 있었던 요양보호사를 만나서 두 분의 안부를 물어봤다.
“저기요, 두어 달 전에 15호실에 입원했던 노부부 기억하시죠? 할아버지가 팔순 넘으셨고, 췌장암이었는데.”
그러자 요양보호사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기억이 나는지,
“아, 그분이요? 음...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요. 편하게 가셨습니다.”
라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러셨군요. 그래도 곱게 가셨군요.”
나는 달리 뭐라고 할 말을 잊었다.
두 분 노부부 인생의 마지막 장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싶으면서 혼자 남은 할머니의 앞날이 걱정되었다.
산다는 게 뭔지.
첫댓글 아, 그런 일이 있으시군요. 지금 계속 치료 받고 계시는 중인가요? 꼭 완치하시고 건강하세요.
네, 그렇습니다.
다음주 월요일에 6차 항암 입원치료 갑니다.
격려 감사합니다.
힘드시겠네요.
항암 주사를 한 번에 50시간이나 맞는군요. 쾌차 바랍니다.
네, 그렇습니다. 항암 주사를 맞고 나면 1주일 정도는 차가운 걸 못 만집니다. 아주 쩌릿쩌릿 하거든요.
저는 특히 혈관이 약해서 간호사들이 주사바늘 꽂을 때 아주 고생합니다.
목 밑 쇄골 옆에 '케미 포트'라는 주사 주입구를 언젠가는 박아넣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ㅠㅠ
젊은 시절의 술, 담배.. 술을 너무 즐기다보니 한번씩 이런 내용에 뜨끔뜨끔 합니다..
어서 완쾌하셔서 좋은 글 많이 공유 부탁드립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십시오!
네, 역시 젊은 시절의 기호가 노년의 건강을 좌우하는 것 같습니다.
하루에 한 시간 정도의 걷기 운동, 쉽지는 않지만 꼭 지켜야 할 필수 코스라 생각됩니다.
거뜬히 이겨내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계속 뵙기를 기원합니다. 굳건한 심기가 체력을 일깨워 주기도 하지요. 심기일전 의지 부탁드려요.^^
네, 늑대님 격려 감사합니다.
굳은 심기로 체력 보강하면서 버티겠습니다.
빠른 쾌유를 빕니다.
네, 노수현님 격려 감사합니다.
꿋꿋이 버티며 견뎌내도록 하겠습니다.
투병 중에도 계속 글을 쓰시고 있다니, 그 의지와 에너지가 대단하십니다. 저도 요즘 구십대 중반의 노부모님 병원 치료와 아내의 암 투병에 마음이 편치 않은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루 빨리 완치 판정 받으시고 계속 활동 이어가시길 빕니다.
네, 화원님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
저런! 노부모님과 부인의 병구완을 함께 하시는군요.
아픈 사람보다 간병하는 분의 노고가 더할텐데 애 많이 쓰십니다.
그럴수록 건강에 더욱 유의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