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의 아들은 그 친족과 혼인하고, 국왕의 아들은 여러 대신과 혼인한다.
여러 대신 이하의 관직은 세습하고, 그 직전(職田)과 봉호(封戶)는 정해진 제도가 있었는데, 세대가 오래 되매, 서로 겸병하여 증거할 수 없게 되었다.
형벌은 태(笞) 장(杖)은 없고, 가산을 적몰하기도 하고, 유배하기도 하며, 중한 것은 죽인다.
전부(田賦)는, 토지 생산량의 3분의 1만 취할 뿐, 다른 요역(徭役)은 없다. 대개 공역(工役)이 있으면 모두 사람을 모집해서 썼음
무기(武器)는 창과 칼 쓰기를 좋아한다. 쇠를 불리어 칼날을 만드는데 정교함이 비할 데 없다. 활은 길이가 6~7척이 되는데, 나무의 결이 곧은 것을 취하며, 대[竹]로써 그 안팎에 대고 아교로 붙였다.
매년 1월 1일ㆍ3월 3일ㆍ5월 5일ㆍ6월 15일ㆍ7월 7일ㆍ7월 15일ㆍ8월 1일ㆍ9월 9일ㆍ10월 해(亥)일로써 명일(名日)을 삼는데, 명일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향당(鄕黨)과 친족끼리 모여 잔치하고 술 마시는 것으로 낙을 삼으며, 물품을 서로 선사하기도 한다.
음식할 때엔 칠기(漆器)를 사용하며, 높은 어른에게는 토기(土器)를 사용한다. 한 번 사용하면 즉시 버린다. 젓가락만 있고 숟가락은 없다.
남자는 머리털을 짤막하게 자르고 묶으며, 사람마다 단검(短劍)을 차고 다닌다. 부인은 눈썹을 뽑고 이마에 눈썹을 그렸으며, 등에 머리털을 드리우고 다리로써 이어, 그 길이가 땅까지 닿았다. 남녀가 얼굴을 꾸미는 자는 모두 그 이빨을 검게 물들였다.
서로 만나면 주저앉아서 예(禮)를 하고, 만약 길에서 존장을 만나게 되면 신과 갓[笠]을 벗고 지나간다.
집들은 나무 판자로 지붕을 덮었는데, 다만 천황과 국왕이 사는 곳과 사원(寺院)에는 기와를 사용하였다.
사람마다 차 마시기를 좋아하므로, 길가에 다점(茶店)을 두어 차를 팔게 되었으니, 길가는 사람이 돈 1문(文)을 주고 차 한 주발을 마신다. 사람 사는 곳마다 천 명, 백 명이 모이게 되면, 시장을 열고 가게를 둔다. 부자들은 의지할 데 없는 여자들을 데려다가 옷과 밥을 주고 얼굴을 꾸며서, 경성(傾城)이라 칭하고, 지나가는 손님을 끌어들여서 유숙시키고, 주식을 먹여 그 대가를 받는다. 그러므로 길가는 사람은 양식을 준비하지 않는다.
남녀를 논할 것 없이 모두 그 국자(國字: 일본문자 가다가나) 국자는 가다가나라고 부르는데 대개 47자임 를 익히며 오직 승려만이 경서를 읽고 한자를 안다.
남녀의 의복은 모두 아롱진 무늬로 물들이며, 푸른 바탕에 흰 무늬로 한다. 남자의 상의는 무릎까지 내려오고, 하의는 길어서 땅에 끌린다. 갓은 없고 혹 오모(烏帽) 대나무로 만들었는데 이마는 펀펀하고 앞뒤는 뾰족하여 겨우 상투를 가릴 만함 를 쓰는데, 천황ㆍ국왕 및 그 친족들이 쓰는 것은 입오모(立烏帽) 바르고 이마는 둥글고 뾰족함. 높이는 반 자쯤 되는데 생초[綃]로 만듦 라 부른다. 삿갓[笠]은 부들과 대[竹] 또는 창목(椙木)으로 만든다. 남녀가 출행할 때 쓴다.
출전: 해동제국기 일본 풍속[國俗]
메이지유신 이전이라 오랭캐 풍속이 많이 남아 있네요. 동양에서도 일본은 특이한 형태의 제도도 많네요. 아무래도 섬이다보니 해양국가와 대륙문화를 양쪽에서 받아들인 흔적으로 보입니다.
남녀가 얼굴을 꾸미는 자는 모두 그 이빨을 검게 물들였다...흑치...볼만하겠습니다...^^
덕분에 일본의 역사공부 잘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