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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사람, 탕자
눅 15:11-32
(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내용, 예수님께서 해주신 천국비유에 등장하는
둘째 아들, 탕자가 있습니다.
그는 일하기 싫어하면서도 돈을 좋아하며, 세상 쾌락에만 찌들어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아버지께로부터 받아낸 돈이 떨어지자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간 행동을 했기에
일반적으로 훌륭한 성품을 가졌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따라서 뭇사람들은 탕자와 비슷한 모습을 가진 이들을 보며
문제가 많은 사람, 한심한 사람으로만 생각하여
‘쯧쯧... 나는 달라.’하는 마음이 되기 쉽습니다.
따라서 문제가 많아 보이는 주변 사람들을 대할 때에
‘절대로 구원에 이르지 못할 자, 확정된 지옥백성’처럼 여기고,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사랑하시지 않을 거라고 잘못 생각하면서
이기적, 배타적으로 변해가거나 영적으로 교만해집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사실 탕자는 상당히 멋진 사람입니다.
돈과 쾌락에 눈이 멀어 잘못을 저지르긴 했지만
나중에라도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여 인정하고,
결국엔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자신의 어리석음이 옳다고 여기며,
죄와 관련 있는 모습, 죄의 종이 된 모습을 유지하면서
고집스럽게 아버지께로 돌아가지 않는 사람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입니다.
반면 탕자의 형인 첫째 아들은
그동안 아버지를 도와 열심히 일해 온 자신을 의롭게 여기며,
동생이 돌아왔어도 기뻐하지 않고, 비난만 하면서 동생을 사랑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에게는 염소의 새끼도 주지 않았으면서
저 한심한 동생에게는 살찐 송아지를 잡아 저런 대접을 해준다며
공개적으로 원망도 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이 첫째 아들과 비슷한 마음이 있습니다.
자신이 연약했던 시절은 잊은 채
지금 연약함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지도 않고 쉽게 비난하며,
스스로를 거룩하게 여기는 교만에 사로잡혀 스스로 심판자가 되려는 자들,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닮아보려는 의지조차 없는 자들이 참 많습니다.
평소에는 이런 모습이 아니라 해도
어떤 일 앞에서는 갑자기 돌변하여 거침없이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면서 당을 짓고,
그렇게 서로를 혐오하면서 다 같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정확히 마귀의 궤계에 미혹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아무런 공로 없이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전적인 은혜로
거저용서 받은 죄인에 불과한데도 말입니다.
또한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의 종들을 쉽게 판단하는 모습으로
“이 목사의 설교는 이게 문제야. 저 목사는 저 부분이 문제야.”하면서
자칭 설교평론가들,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는 교만의 왕이 되어 가는 자들도 많습니다.
잠 8:13
(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어려서부터 자타가 공인하는 모범적인 훌륭한 모습으로 살아왔어도,
과거에는 죄 가운데 뒹굴었지만 회개하여 정신을 차리고
지금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해도
그 사람이 여전히 하나님의 마음을 닮지 않았다면,
하나님과 합해진 마음이 되려는 의지가 없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탕자보다 못한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마귀로부터 온 교만이 결국 그를 삼키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딤전 2:4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어디에 가장 큰 관심을 두고 계신지를 우리가 생각해보면
이 부분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실하고, 모범적이며, 매사에 열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으로
누구에게나 인정을 받으며 세상에서 출세하는 것,
한 마디로 기복주의에 빠진 기독교인들이 추구하는 ‘파워 크리스천’이 되는 것,
건강하고 돈도 많아서 편안하게 잘 먹고, 잘 사는 것 등에는
관심을 두고 계시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꼭 필요한 양식을 공급해주시고,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이미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다 아시기에
채워주시면서 보살펴주시는 자비로우신 분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가장 큰 관심이 우리의 육신에 있지 않고,
우리의 영혼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눅 12:29-31
(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31)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의 영혼구원에 가장 큰 관심을 두고 계시며,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끼시지 않습니다.
건강, 가정의 화목, 물질, 출세 등 모든 이들이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라 해도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구원의 길에 방해가 된다면 모두 치워주시고,
또한 우리에게 영적인 성장을 주게 될 일들,
구원으로 인도되는 일들은 풍성하게 더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우리의 인생 안에 있는 모든 일들,
즉 육신적으로 좋은 일이든지, 힘든 일이든지
그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라는 사실을 이제는 잘 알게 되었기에
“범사에 감사하라” 명하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으며,
또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이 삶이 구원 받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없이 확실하다는 뜻입니다.
이 사실에 동의를 할 수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다. 나는 하나님과 관계없는 자다.’
라는 주장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다.’ 혹은
‘다른 사람보다 나를 덜 사랑하신다.’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철저히 육신적인 시각을 가진 채
남들의 환경과 나의 처지를 비교하면서 불만을 품기 때문에,
또한 하나님의 가장 큰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에 관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기에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 인생 안에 그렇게 많고, 자꾸만 원망과 불평의 마음이 생기며,
세상을 향한 탐심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고,
결국 오늘 비유에 등장하는 첫째 아들의 마음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요이 1:3
(3)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하나님은 의심의 여지없이, 분명히 저와 여러분들을 뜨겁게 사랑하시며,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일에 가장 큰 열심을 품고 계신 고마운 분이십니다.
사람이 장담을 쉽게 하면 안 된다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일말의 고민 없이 장담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독생자,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보내주신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관해 어떤 의심도 품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정확히 깨닫게 됩니다.
이 사실을 마음 중심의 기본적이고도 확고한 진리로 품는다면
우리는 탕자가 왜 멋진 사람인지에 관해 이해할 수 있고,
혹 자신이 지금 불평과 원망의 마음을 품은 채 하나님의 마음과 다른 마음을 가진
첫째 아들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을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딤후 2:15
(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지금까지 설명 드린
‘우리의 구원에 가장 큰 관심을 두고 계신 하나님의 마음’에 관해 이해하고 나서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묵상해보면
‘아버지께로 다시 돌아온 탕자는 확실히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사람‘이며,
첫째 아들과 같은 마음은 ‘아버지의 마음을 닮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교만한 마음‘
이라는 사실이 확실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내 마음은, 내 신앙생활은 어떠한가?’에 대해서도 점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관심인 영혼구원,
그 관심에 부응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자가 바로
진정한 의미로서의 훌륭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해두신 마지막 그 날이
점점 다가오는 게 확연하게 보이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도
정신을 못 차리고 세상 쾌락에만 찌들어 향락을 즐기거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성실함에 열심을 다 하지 않고,
매일 ‘오늘 즐기는 일’에만 시간을 다 쓰는 게으른 모습,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실까?’에 대해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모습으로
타국으로 떠난 탕자와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살아가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오늘 주신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방법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 지나버리기 전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여 돌이킨다면
비유에 등장하는 아버지가 멀리 보이는 탕자에게 달려가서 안아 준 것처럼
용서해주시며, 따뜻하게 안아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품을 경험할 수 있고,
이어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와 보호 안에서
천국으로 향하는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더불어 비유에 등장하는 첫째 아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날이 갈수록 심판자의 자리에 높이 앉으려는 교만한 자가 되어가며,
‘거저용서 받은 죄인’,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께 속한 자’라는
자신의 위치와 처지를 깨닫지 못한 채 하나님의 마음 닮기를 싫어하면서
계속하여 비난과 판단과 불평과 원망과 혐오에 잠식되어가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도 오늘 주신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며
하나님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어떻게 다른지를 살피고,
자신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방법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회개하여 돌이킨 후 이제는 하나님과 한 팀으로서
하나님 나라 확장에 전심을 다하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된다면
그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최고로 성공한 인생’을 완성하게 될 것입니다.
고전 3:9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오늘 주신 설교는 둘째 아들의 회심과 첫째 아들의 교만,
그리고 우리 각자에게 적용하는 방법에 집중된 내용입니다.
두 아들에 대한 더 세밀한 설명을 원하시는 분은 2015년에 주셨던 말씀,
[아버지와 두 아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읽어보시면 됩니다.
https://cafe.daum.net/holysp1/O9UC/311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진리의성령교회 가족 여러분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는 것’과 ‘인정하는 것’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인지만 하는 사람은 탕자가 머물렀던 돼지우리,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다가
영원한 둘째 사망에 이르게 될 것이지만
인정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회개할 수 있고,
자신의 잘못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할 수 있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까지 맺는 모습’으로 변화되고,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탕자처럼 돼지우리까진 가지 않았다 하더라도
자신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스스로를 의롭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남들을 비난하는 자들을 두고 ‘교만한 자’라고 합니다.
비유에 등장하는 ‘겉으로 보이는 행위에만 집중하여 열심히 살아온
첫째 아들’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탕자의 비유를 묵상할 때
둘째 아들에게만 감정이입을 하고 자신에게 적용하여
'내가 지난 날 큰 죄들을 범했어도, 그래도 사랑해주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하며
한없는 사랑과 은혜에만 집중하면서 안심하며 즐거워하고,
또한 쉽게 용서받았기에 또 쉽게 죄를 범하는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의롭게 생각하는 첫째 아들의 모습,
아버지를 공경함이 아닌 보상심리와 공로의식의 불순한 의도를 갖고
아버지 앞에서 외적인 행위로만 순종하던 그의 모습,
아버지의 사랑 가득한 마음을 닮아가려는 의지 없이
그저 죄를 범한 동생이 아버지께 받은 사랑이 못마땅한
시기와 질투의 모습이 마음 깊은 곳에 있는데도
그 부분은 간과한 채 그 모습 그대로 ‘변화와 성장 없이’ 하나님 앞에 선다면
우리는 마지막 날에 크게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주신 말씀 중
탕자와 더불어 첫째 아들, 이 두 명의 모습을 모두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점검해봄으로서
오늘날의 나는 탕자의 모습인지,
탕자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돼지우리에 만족하며
하나님께로 돌아갈 생각조차 없는 모습인지,
순서만 다를 뿐 첫째 아들도 아버지께 잘못을 용서받았고, 큰 은혜 또한 받고 있으면서
자신은 동생과 다르게 의롭다며 스스로 교만에 빠진 채
심판자의 자리에 스스로 올라가 비난만 하고 있는 모습인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점점 닮아가고 있는 모습이 맞는지,
모두가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맞는지 등을 살피면서
일상 속에 즐비한 마귀가 놓은 함정에 각별히 주의하십시다.
저와 여러분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잘못이 없는 사람, 죄를 범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했으며,
때때로 넘어져 크고 작은 죄를 범하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 ‘나는 하나님 앞의 죄인이다.’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또한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만든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평생 곁에 둬도 좋은 사람입니다.
큰 죄를 범한 뒤에도 거짓말을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그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여 죄의 대가를 치른 이후의 다윗이
크게 변화되어 이제는 겸손한 모습으로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살았던 것처럼
우리 주변에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간 둘째 아들과 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로 멋진 사람이며, 구원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바로 그 멋진 사람 중 한 명이 되어야 합니다.
눅 15:3-10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8)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9)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피조물로서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드리는 자,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에 혹 죄를 범했을지라도
즉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존함으로 회개하여 돌이키는 자,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에 하나님의 마음과 합해져서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시는 것보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했을 때 더욱 기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그 마음을 닮아
하나님과 한마음이 되어 함께 기뻐하는 모습으로
우리 인생의 초점을 오로지 ‘하나님의 기쁨’과 ‘영혼구원’에만 집중하여
아름다운 열매들을 많이 맺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십시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저와 여러분들이 마음에 깊이 새기고 즉시 각자 자신의 삶에 적용함으로서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탕자의 모습이 오늘날 나의 모습은 아닌지를 살피고,
아버지께로 다시 돌아간 탕자는 사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린 멋진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음으로서
우리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에 집중하기를 결단하고,
혹 첫째 아들처럼 자신의 모습은 살피지 못한 채
비난과 판단과 질투와 교만에 사로잡혀
모두가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는 전혀 다른 마음을 품음으로서
하나님을 슬프시게 해드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모습을 고집스럽게 유지하고 있는 모습,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갈 의지조차 없는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은 아닌지 등에 관해 점검해봄으로서
각자 자신이 나아가고 있는 그 길이 구원의 길이 맞는지를 살피고,
오늘부터 마지막 그 날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동역자로서 남은 시간을 보내기를
굳게 다짐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애 3:40
(40)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예수님의 사랑안에서 진리의성령교회 윤경훈 목사 올림
진리의성령교회 2026.08.02. 주일설교
감사와 다짐의 노래
331장 나 주를 멀리 떠났다
1.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이제 옵니다 나 죄의 길에 시달려 주여 옵니다
2. 그 귀한 세월 보내고 이제 옵니다 나 뉘우치는 눈물로 주여 옵니다
3. 나 죄에 매여 고달파 이제 옵니다 주 크신 사랑 받고자 주여 옵니다
4. 이 병든 맘을 고치려 이제 옵니다 큰 힘과 소망 바라고 주여 옵니다
5. 나 바랄 것이 무언가 우리 주 예수 날 위해 돌아가심만 믿고 옵니다
[후렴]
나 이제 왔으니 내 집을 찾아 주여 나를 받으사 맞아주소서

첫댓글 저는 늘 저희 목사님 (남침례 영어권)의 설교에 안타까움이 있습니다..참고로 이 교회로 이사 온 지 벌써 6년이 됩니다. 남편은 말씀이 좋다고 하지만, 유명한 조엘 오스틴 목사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은 듣기 힘들어 가고 주님은 오신다고 말씀은 하시지만 단 한번도 죄와 회개, 천국, 지옥에 대한 설교가 없습니다...ㅠㅠ 너무 허탈하여 답답함과 실망감을 토해내면 남편은 제가 목사님을 함부로 판단 한다고 합니다..저는 제 의견을 말했을 뿐인데요...첫째 아들처럼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심판을 하고 있지 않은지 염려됩니다....
해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각자가 매일 성경말씀을 펴서 예수님의 말씀(예수님의 설교)을 깊이 묵상하면 됩니다.
진리의 말씀을 그렇게 매일 공급 받는다면
담임목사에게서 따로 공급받지 못한다 해도
진리의 성령님께서 생명의 말씀으로 바른 길을 제시해주실 것이며,
우리는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서 안전하게 구원의 길을 걸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개인의 신앙생활에 이어
교회에서도 설교를 통해 찔림과 소망을 얻고,
진실한 회개와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며 바르게 성장하면 참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면
가장 중요한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 더욱 더 집중하는 것이 옳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