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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좋은 숲길, 영춘기맥 고원이다
시를 잉태한 언어는
피었다 지는 꽃들의 뜻을
든든한 대지처럼
제 품에 그대로 안을 수 있을까
――― 김춘수, 「나목(裸木)과 시」에서
▶ 산행일시 : 2015년 6월 6일(토), 맑음
▶ 산행인원 : 17명(버들, 자연, 모닥불, 은하수, 장미, 악수, 대간거사, 한계령, 상고대, 사계,
도솔, 신가이버, 해마, 도~자, 제임스, 우각, 즈믄)
▶ 산행시간 : 9시간
▶ 산행거리 : 도상 14.5㎞
▶ 교 통 편 : 25인승 버스 대절
▶ 구간별 시간
06 : 35 - 동서울터미널 출발
08 : 43 - 인제군 상남면 상남3리 방아다리마을 방아교, 산행시작
11 : 00 - 710m봉
11 : 20 - 700m봉
11 : 58 ~ 12 : 26 - 724m봉, 점심
12 : 39 - 첫 번째 임도
13 : 05 - 두 번째 임도
13 : 29 - 904m봉
13 : 52 - 세 번째 임도
14 : 12 - 954m봉
14 : 28 - 영춘기맥 진입, 1,064m봉
15 : 12 - 1,096m봉, 영춘기맥 벗어나 서진
16 : 34 - 926m봉
17 : 32 - 도로, 경수천(鏡水川)
17 : 43 - 홍천군 내촌면 광암리 새득마을 근처, 산행종료
1. 세 번째 임도 내리기 전인 904m봉에서, 뒷줄 왼쪽부터 대간거사, 즈믄, 한계령, 우각(牛角),
모닥불, 해마, 도~자, 제임스, 도솔, 신가이버, 상고대, 사계, 앞줄 왼쪽부터 은하수, 버들, 자연,
장미
▶ 700m봉
우리 오지산행 버스의 전속기사인 두메 님이 목 디스크 물리치료를 위해 오늘은 나오지 못하고
동료 기사님이 대신 나왔다. 두메 님이 달래 두메(오지의 다른 말이다) 님이던가. 한 독도하는
두메 님이고 보면 들머리와 날머리의 정교한 안내로 우리는 실은 그의 손바닥 안에서 놀다오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오늘은 그렇지 못하다.
내가 (버스 앞좌석에 앉은 탓으로) 내비게이션을 감독할 겸 길라잡이로 나선다. 차 안에서 기분
좋게 졸며 가기는 글렀다. 동서울터미널을 출발하자마자 우회전하고 조금 가다 유턴하여 강변
북로를 타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노련한 기사라도 종종 잠실대교 북단 자양로 램프에서 빙
빙 돌다 그만 잠실 쪽으로 빠져버리고 만다.
덕소 삼패삼거리에서 한계령 님을 태우고 서울춘천고속도로에 진입한다. 고속도로가 이른
아침부터 빡빡하다. 이에 대해 일행 누군가 진단한다. 오늘 현충일만큼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을 기리기 위해 일반 사기업은 물론 황금동 룸싸롱 미쓰 김도 휴업하니 아무래도 여느 휴일보
다 더 붐빌 것이라고. 만원인 화양강휴게소에 들리고 그 아래 철정사거리에서 우회전하고부터
산간고개 넘고 넘는다.
우리 차는 451번 지방도로 인제 상남3리 방아다리마을 방아교 앞에서 멈춘다. 방아교 건너고
산자락에 묵은 임도가 보인다. 어제 혹은 간밤에 비가 왔었다. 풀숲이 함빡 젖었다. 내 부지런
떨어 앞장서서 빗물 털다가 뒤따라오는 날랜 제임스 님과 상고대 님에게 얼른 양보한다. 길섶
붓꽃과 풀숲 찔레꽃이 비에 씻겨 해끔하다. 이곳 찔레꽃은 장미만 하게 크다.
하늘 가린 숲속. 대기는 삽상하고 풀숲 털어 맞는 빗물은 시원하고 풀향은 싱그럽다. 한동안 나
지막한 봉우리 오르내리다가 잣나무숲 가파른 사면을 대차게 오른다. 멧돼지들이 온 사면을 갈
아엎어 놓아 부실한 흙에 자꾸 뒤로 밀리고 낙엽 더미와 흙 두둑이 발에 걸리니 오르기가 퍽 사
납다. 아무렴 입산주 탁주는 땀을 흘린 끝이라야 맛이 더욱 좋다. 냉탁주로 목 추긴다.
710m봉 넘고 양쪽 사면의 풀숲이 고와도 보여 옷 다 젖는다 상관 않고 그리로 누벼 간다. 더덕
의 발청향(發淸香)에 떼로 홀렸다. 우르르 내리다 보니 오른쪽 능선이 더 높다. 저기구나 하고
서둘러 가서 내리는데 인적이 너무 소연한 것이 어째 수상하다. 더 높은 능선이 또 오른쪽에
보이고 연호 맞받는다. 이번에는 길게 트래버스 한다. 이런 데에서는 고소원(固所願)인 트래버
스다.
떼알바의 흔한 속성. 저마다 영진지도(축척 5만분의 1을 200% 확대 복사하였다) 들고 나침반을
목에 걸었지만 그저 맨 선두를 쫓아가기 일쑤이고 맨 선두는 뒤에서 줄줄이 따라오니 그 길이
맞는 줄 알고 계속 간다. 식생상태 점검을 위장하여 주등로의 일행에 합류한다. 풀숲은 송홧가
루가 쌓여 있어 온통 누런데 거길 헤쳐 오는 우리 몰골이 상고대 님 말로는 (사자가 있다면 그에
게는) 송화다식이 아닐까 한다.
2. 동홍천 가는 길의 전망, 춘천고속도로에서
3. 금계국(金鷄菊, Coreopsis drummondii), 국화과의 한해살이풀 또는 두해살이풀,
북아메리카가 원산, 골든 웨이브
4. 찔레꽃(Rosa multiflora), 장미과의 낙엽 활엽 관목
5. 찔레꽃, 꽃의 크기가 장미만하다
6. 찔레꽃
7. 붓꽃(Iris sanguinea), 붓꽃과의 여러해살이풀
8. 방아교 건너 산행 시작은 묵밭인 사면을 오른다
9. 산행시작도 정답게
10. 천남성(天南星, Arisaema amurense var. serratum), 천남성과의 여러해살이풀, 독초다
11. 등로는 잣나무숲 가파른 사면으로 이어진다. 잣나무숲 아래 풀숲을 누비는 이는 대간거사 님
12. 잣나무숲 가파른 등로
13. 멀리 하늘금은 회령봉 연릉의 한강기맥
14. 천남성, 풀잎에 누런 송홧가루가 떨어져 있다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산행로(1)
▶ 영춘기맥 진입, 1,064m봉, 1,096m봉
700m봉 넘고 아까 해찰부린 시간을 만회하고자 줄달음한다. 길 좋다. 지도에는 외길일 듯해도
실지에서는 헷갈린다. 봉우리마다 꼬박 직등하여 나침반 들여다보고 일행 간 이격거리를 연호
로 가늠한다. 긴 오르막 끝이 724m봉이다. 나무그늘 아래 널찍한 초원 골라 점심자리 편다.
일행 17명이 각자 도시락을 싸왔으니 진수성찬이 아닐 수 없다. 체중을 줄이려고 산에 간다는
말에 부쩍 의심이 들 수밖에.
깊은 절개지 가장자리로 내려 임도다. 임도 건너 울창한 낙엽송 숲에 든다. 가지치기 한 낙엽송
숲이라 잔가지가 바닥에 널려 있어 발을 또박또박 치켜들어야 한다. 두 번째 임도. 산죽 숲을
두 피치 오른다. 내 키 훌쩍 넘는 산죽 숲을 양팔 벌려 뚫는다. 그러나 잠깐이다. 오지 맛 뵈기하
고 끝난다. 904m봉. 산바람이 시원하여 오래 쉰다. 은하수 님이 만들어 온 오지산행 플래카드
를 펼쳐 기념사진 찍는다. 드디어 세련된 산악회 같다.
904m봉 내려 세 번째 임도 가는 길. 마주보는 건너편 영춘기맥 주릉이 주눅 들게 높다란 장벽
이다. 지레 비명 지른다. 절개지 뚝 떨어져 내린 임도는 고속도로라도 내려는지 큰 공사 중이다.
의외로 뚜렷한 등로가 벌목한 사면 가장자리로 났다.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다.
기어서 갈지(之)자 연속해서 그린다. 오르다 팍팍하면 고개 들어 이 근방 맹주인 가마봉의 너른
품 바라본다.
954m봉 오르고 가파름은 한결 수그러든다. 발걸음에 여유가 생겨 좌우사면 기웃거리며 간다.
등로 주변 곳곳의 구덩이는 6.25 전사자 유해지 발굴지 일 것. 오늘 현충일 호국의 길을 가는구
나 하니 가쁜 숨이 도리어 죄송스럽다. 그 옆 활짝 핀 고광나무 하얀 꽃이 조화다. 숲속 웅성거
리는 소리가 들려 주릉이고 선두가 쉬고 있는 줄 안다. 군계(홍천군, 인제군)이자 영춘기맥 주릉
인 1,064m봉이다. 키 작은 산죽 숲에 둘러 앉아 후미 오도록 술추렴한다.
이제 전도에 그다지 심한 오르내리막은 없다. 암릉 돌아 넘고 울퉁불퉁한 돌길 잠깐 지나고 기
화이초 수놓은 초원을 간다. 해발 1,000m가 넘는 산상정원이다. 내 그간 암봉에 올라 일망무제
의 산 첩첩한 조망만을 가경으로 여겼지만 녹림 속 완보하며 전후좌우 둘러보는 이 경치가 그
윗길인 줄 비로소 알겠다. 여기를 걸음으로써 오늘 산행은 그 몫을 다한다고 해도 무방하리라.
그래서일 게다. 대간거사 님을 비롯한 선두 몇몇은 1,096m봉을 지나쳤다(우리는 이런 때 대소
를 금치 못한다). 우리는 1,096m봉에서 서진해야 한다. 그들은 산죽 숲을 길게 돌아왔다. 1,096
m봉 바로 아래에 높다란 군사용(?) 안테나 시설이 들어섰고 이곳까지 대로가 뚫렸다. 모처럼 조
망이 트인다. 오른쪽 골 건너 영춘기맥 장릉의 준봉인 가마봉, 소뿔산, 작은가마봉이 차례로 도
열하였다.
15. 벌목사면 위 능선을 가면서 남쪽 조망, 멀리 하늘금은 한강기맥
16. 벌목사면 위 능선을 가면서 남쪽 조망
17. 고비(Osmunda japonica), 고빗과의 여러해살이풀, 구척(狗脊)
18. 904m봉 내리는 중
19. 가마봉(可馬峰, 1,191.5m), 영춘기맥 마루금에서 오른쪽으로 약간 벗어났다
20. 세 번째 임도로 내리는 길, 건너편 사면이 주눅 들게 가파르다
21. 가마봉
22. 영춘기맥 진입
23. 영춘기맥의 1064m봉에 올라서 휴식 중, 상고대 님
24. 영춘기맥의 1064m봉에 올라서 휴식 중, 지도 공부하는 이는 제임스 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연속한 알바는 제임스 님이 주범은 아닐지라도 공범 또는 방조범은 된다
25. 영춘기맥 숲속 길
26. 은하수 님, 영춘기맥 숲속 길에서
27. 영춘기맥 숲속 길
▶ 926m봉, 새득마을 근처
도로는 왼쪽 사면으로 돌아가고 우리는 능선에 든다. 산상정원의 연장이다. 넙데데한 북사면을
내려 곰취 가지러간다. 연하고 호박잎만 한 크기의 곰취가 관중과 섞여 있다. 이로써 산행 후
홍천에서 맛볼 신삼합은 완비되었다. 신삼합(新三合)이란 미식가이기도 한 더산 님의 작명인데
전통의 삼합이 홍어와 묵은 김치, 삶은 돼지고기인 데 착안하여 생더덕주와 곰취, 삼겹살을 말
한다.
헬기장인 926m봉이 내리막 대세에 휩쓸려 발걸음을 잠시 주춤케 하는 형세다. 바위 날등을
대뜸 지나고 낙엽 푹신푹신한 등로다. 연속해서 (평장된) 무덤이 나와 마을이 가까웠음을 짐작
한다. 낙엽 소복한 갈림길에서다. 새끼 고라니 한 마리가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있다. 우리의
기척을 일부러 모르는 채 하는 것 같다. 어쩌면 어미가 가까운 데서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를 일.
우리 교대로 들여다보고만 물러난다.
가늘어진 능선 왼쪽 아래는 가리장골, 오른쪽 아래는 경수천 새득. 오른쪽 생사면을 내린다.
산자락 물참대 헤치고 비포장도로에 내려선다. 영진지도에는 ‘통행금지’라고 표시했다. 왜 그런
가 했더니 우리 기사님이 전하는 말로 도로 입구에서 군사 훈련장이라 막는다고 하며 지금은
도로공사 중인 차량들이 들락날락하여 일시 출입을 허락하였다고 한다. 오늘 하이파이브는
16번이나 하여 손바닥이 화끈하다. 그렇지만 아직 서산에 해가 많이 남아 산행하다말고 내려온
것 같다.
(여담) 산행 후유증은 그 이튿날 나타나기 마련이다. 산행 중에 잡목 숲을 헤치다보면 나뭇잎이
나 잔가지가 목덜미를 통하여 옷 안으로 들어오는 수가 잦다. 대개는 산행 중에 의식하지 못하
고 다니다가 산행을 마치고 나서 허리띠 근처에 몰려 있는 나뭇잎이나 잔 나뭇가지를 털어내게
되는데 풀독이 있어 옮았는지 그 나뭇잎에 쐐기가 붙어 있어 쏘였는지 한 밤 자고나면 등짝과
허리 주위가 가렵고 오돌토돌하게 부어오른다.
피부질환 치료제를 바르고 며칠이 지나면 낫곤 한다. 주말쯤이면 낫고 그래서 산에 가고 이런
증세가 1주일을 주기로 반복된다. 어제는 자고 나니 미간 약간 오른쪽이 벌레에 물렸는지 가렵
고 눈두덩이 부어올랐다(아, 성한 날이 없다!). 작은 눈이 더 작아졌다. 어제 산행 중에 대간거사
님이 “나는 왜 작은 더덕만 보일까?” 하자 이를 들은 상고대 님이 “그건 눈이 작기 때문이다”고
한 말이 생각나서 혼자 웃었다.
28. 영춘기맥 1,096m봉 오름 길
29. 삿갓나물(Paris verticillata),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애순은 식용하나 뿌리에는 독이 있다
30. 영춘기맥 벗어나 1,096m봉 내리는 중, 오른쪽 산릉은 영춘기맥
31. 가운데가 소뿔산(1,108m), 오늘 처음 나온 우각 님은 저 소뿔산의 이름에서 따왔다
32. 1,096m봉 아래 안테나 시설물 옆에서 가마봉을 배경으로 한 기념사진
33. 오른쪽이 가마봉
34. 하산 길, 산상정원을 지난다
35. 고광나무(Philadelphus schrenkii), 범의귓과의 낙엽 활엽 관목
36. 등로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 새끼 고라니
37. 물참대(Deutzia glabrata), 범의귓과의 낙엽 관목
38. 개회나무(Syringa reticulata var. mandshurica), 물푸레나뭇과의 낙엽 소교목, 개구름나무
39. 공사 중인 군사 훈련장 도로로 내려 새득 마을 근처로 가는 중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산행로(2)
첫댓글 월요일날 산행기를 올리시다니 부지런도 하십니다.
산행기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그날의 장원더덕을 캐신 악수님~♡
악수님의 눈은 크신지 전 잘 모르겠네요~ㅎ.ㅎ
산행 중 더덕의 발청향은 어떤 향수와도 비교할 수 없이 매혹(?)적인것 같습니다.
아주 디테일한 산행기 항상 감사드립니다~^^
정말 감미롭게 글을 잘씁니다 ,,, 오늘이야 말로 진정한 오지부대가 됐군요 깃발이 생겼으니 ,,,깃발은 절대로 적에게 뺏기면 안됍니다 ,,깃발이 없으면 집으로 돌아갈수가없읍니다
혹시
알러지가 아닐런지요? 세월은 거짓말을 못하고...면역력이 떨어져서 나타날 수도 있어요.
걱정입니다.아프시지 않아야 할텐데요.
무거운 카메라까지 메시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멋진 감동적 산행기 감사드리며..
아니 현수막까지 만들고,,,이거 참 좋은 건지 아닌지 하여간 더운날 고생들 많으셨습니다...비가 안와서 너무 가물어요
요즈음이 산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봄,가을, 겨울 다 좋지만
전 지금 실록이 우거진 숲이 좋습니다
거기에 좋은 님들과 함께하니 더 좋구요
수고하셨습니다.
지리산도 기대 됩니다
이런 멋진 산행을 놓쳐 넘 아쉽습니다. 풍광도 꽃들도 오지팀원들도 너무 아름답네요. 산행기를 보니 송화가루 날리는 숲길이 눈에 훤 합니다.
자연님이 즈믄님 목을 조르고 있군요. 자주 출석 안한 응징...
@즈믄(박중현) 부럽당.
@무불(43지현수) 몸 잘추스리고, 금주+금연+금욕 하고 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