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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8 주일말씀/ 히11:13-16
본향을 사모하라
말씀 : 정삼지 담임목사
지혜로운 사람은 세 가지를 생각한다고 합니다. 첫째로 내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라는 질문은 철학적 질문으로 아직도 답을 못 찾고 있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남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지나가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관심은 자신에 대해서 깨닫는 것입니다. 이번에 올림픽에서 깜짝 놀랄 일도 있고 아쉬운 일도 있습니다.
쇼트트렉 여자 선수 중에서 금메달을 틀림없이 딸 것이라고 기대한 종목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잔뜩 기대하고 출발했는데, 몇 바퀴 안돌고 그만 미끄러져 버렸어요. 뉴스에 나오는 것을 보니까, 칼날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시작을 잘했지만, 끝까지 마치지 못했어요. 이것이 인생일 수 있습니다. 마지막을 잘 마무리하고 결승점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독일의 그 유명한 자동차 경주 선수가 있었습니다. 늘 경주하면서 라이벌이 있었는데, 그와 겨루는 자기 인생의 마지막 경기였습니다. 이것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하는 것이니 그에게는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우승을 하면 상금도 많이 받고, 명예롭게 우승자로 남는 것입니다. 그런데 늘 자신과 경쟁을 하는 선수가 있습니다. 함께 경주를 하며 마지막 경기에 최선을 다하여 피니쉬 라인에 도달할 무렵이었습니다. 그 목표를 향해 힘차게 질주해 오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갑자기 엔진이 꺼져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다들 기대를 잔뜩하고 있었느데, 큰 충격이었습니다. 자신은 마지막 피날레를 멋있게 장식하고 또 승리자로 남고 싶었는데, 그만 엔진이 꺼져버리는 바람에 그 꿈과 희망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망연자실 했겠지요.
이 순간을 놓치지 않는 기자들이 그의 곁에 와서 물었습니다. “얼마나 섭섭합니까? 마지막을 잘 마무리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렇게 무산이 되어 참 안타깝네요. 어떤 심정이십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이 유능한 카 레이서는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지는 것도 인생입니다” 이 한마디를 하고 떠났습니다. 질 줄 아는 사람, 내 인생에 내가 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 실패는 실패자가 아닙니다. 자신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내 자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누구인가? 지금 살기도 바쁜데 무슨 한가하게 나를 생각하고 있나 하겠지만, 지혜는 생각하는 데서도 나옵니다. 내가 내 인생에서 잘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으며,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한창 전성기 때, 카 레이서로 이름을 세계적으로 떨친 사람이 멋있게 박수받고 은퇴하려고 했지만, 엔진이 꺼져버리니 그것으로 끝나버렸습니다. 그래서 졌습니다. 그러나 지는 것도 인생입니다. 질 줄도 알아야 합니다. 지는 것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배우지 못하면 인생의 많은 아픔을 겪게 됩니다.
두 번째는 자기가 어디에 와 있는 것을 아는 것이 지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40년을 애굽의 호화로운 궁궐에서 그 다음 왕위를 이을 수도 있는 왕자로서의 대단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살인자가 되어 광야에 가서 양떼를 치면서, 꿈도 야망도 다 잃어버리고,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모세야, 모세야”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40년을 광야에서 살다가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2).
내 날을 어떻게 살아왔고, 나는 지금 어느 시점에 와 있고,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되는가를 계산할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쇼트트렉의 500m 1000m, 1500m는 잠시 잠깐 휙 돌더라구요. 도는가 했더니 끝나버려요.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도 이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주 앞에는 천년이 어제 밤 같다고 합니다. 그냥 한 말이 아닙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이 말씀을 했지만, 그는 애굽에서 호화로운 삶을 살았고, 광야에서 초라한 삶도 살아보았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광야에서 의미있는 삶을 살면서, 천년이 주 앞에서는 한 순간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주 앞에서 날을 계수하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종착점을 아는 것이 지혜라고 했습니다. 경기로 말하자면, 피니쉬 라인입니다. 인생의 피니쉬 라인을 알아야 합니다. 이번 올림픽에서 두 컷의 사진을 준비했습니다. 500m 여자 대표선수가 피니쉬 라인 통과를 분명히 했어요. 우리는 그가 실력이 월등하기 때문에 금메달을 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간발의 차이로 은메달을 땄어요. 아쉬움 속에 그래도 은메달이라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어요. 심판관이 비디오 판독을 하더니, 그만 실격을 선언하는 것이었습니다.
통과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심판의 선언이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판정을 받을 때 의미있는 기록이 되고 메달을 따는 것입니다. 심판의 판정 전까지 은메달을 땄다고 그래도 좋아했어요. 그런데 심판이 인정이 안 된다고 선언을 합니다. 비록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실격이에요. 메달은커녕 순위에 들지도 못해요. 그래서 인터뷰를 할 때 눈물을 흘리더라구요. 안타까운 실격 판정입니다. 울 일이 있을 때, 울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안 울려고 애를 쓰는 것보다 내 인생에 눈물이 있다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가 정상에도 서야하겠지만, 내려올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젊었을 때는 오직 정상을 바라보며 올라가지요. 그런데 내려올 때가 있습니다. 내려오는 것을 배우니까 인생에 여유가 있습니다. 내려오는 것을 인정할 때 하나님은 또 반드시 올려주십니다. 어저께 그 선수(최민정)가 경기를 해서 1500m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1등을 했는데, 2등하고 한참 차이가 나는 1등이었어요. 1등이 확정되는 순간, 얼마나 기뻐하는지요. 활짝 웃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지 않습니까? 울 줄도 알고 웃을 줄도 아는 두 가지를 다 경험했어요. 내 인생에 눈물 흘릴 때가 있는가 하면, 웃을 때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때에 대해서 말합니다. 웃을 때와 울 때, 심을 때와 거둘 때가 있는 것을 아는 것이 인생의 지혜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신앙생활을 하는데 중요한 몇 가지를 가르쳐 줍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히11:13). 이 사람들은 신앙의 영웅들입니다. 하나님이 자랑할 만한 신앙의 승리자들입니다.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자랑스럽게 내려오는 선수들처럼, 히11장의 인물들은 그렇게 승리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다 죽었는데, 이 사람들이 어떻게 살다 갔느냐는, 신앙의 정체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았다는 것을 증언했다고 합니다. 이 땅에서의 삶을 알고 증언한 것입니다.
이 땅에서 본토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낯 설은 타 문화인으로 살았습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는 유행가의 가사처럼, 잠시 있다 가는 과객임을 알았습니다. 나그네의 중요한 점은 잠시 왔다가 가야 하기 때문에 3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가볍게, 둘째는 즐겁게, 셋째는 사이좋게입니다. 여행가서 어리석은 사람은 싸우는 사람입니다. 여행 왔는데 인상쓰고 싸우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태도입니다. 돈 내서 티켓 끊고 스케줄 잡아서 돌아올 날 정해놓고 곧 돌아올 텐데, 심통 부리고 성질내고 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신앙이 쟁쟁했던 믿음의 조상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자신을 나그네라고 말합니다. 잠깐 왔다가 가는 인생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전에는 여관이었지만, 지금은 호텔이 많습니다. 호텔이 아무리 좋아도 다 비우고 떠나야 합니다. 날짜가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는 날짜를 알 수는 없지만, 언젠가 떠나야 하는 날은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평생을 살았지만, 잠깐 머무는 나그네의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가볍게 즐겁게 사이좋게 살다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행할 때는 마음 맞는 사람과 하라고 합니다. 어렵게 시간 내고 어렵게 돈 준비해서 어렵게 여행을 갔는데, 마음이 안 맞고 즐거움을 잃어버리면 되겠습니까? 그래서 여행은 가볍게 하는 것입니다. 초보 여행자들은 뭘 많이 넣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김치도 넣고 고추장도 넣고 해서 짐이 많습니다. 김치 없으면 못살고 고추장 없으면 밥을 못 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 가서는 그 음식을 먹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 문화를 즐겨보고 여행해 보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초보는 뭘 많이 넣지만, 진짜 여행객은 단출하게 꼭 필요한 것만 넣어 가볍게 하고 갑니다. 그래서 요새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미니멀 라이프라고 해서 단순화, 축소, 가볍게가 말하자면 트렌드입니다. 요즈음 젊은 사람들에게 이 말이 맞을는지는 모르나, 살아보니까 꼭 필요한 것만 챙기는 것도 지혜더라구요. 멀리 나그네로서 다녀올 때 꼭 필요한 것을 넣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미니멀 리스트가 유행합니다. 적게 먹고 적게 쓰고 가볍게 살자는 것입니다. 일본에서 책을 내서 베스트셀러가 되어, 집안도 다 정리합니다. 전에는 공간 중심에 정리를 차곡차곡 해서 뭘 넣으려고 애를 썼다면, 이제는 하나하나씩 추려서 버리는 삶에 많은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적게 먹으니까 편하고 적게 쓰니까 지출이 줄고 가볍게 인생을 사니까 여유가 생깁니다. 공간중심에서 시간중심으로 이동한 것입니다. 채우는 인생에서 함께하는 인생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사람이 집착을 하게 되면 여유가 없습니다. 이번 명절에도 고생 많이 하셨지요. 음식을 먹기까지 얼마나 힘듭니까? 명절에 많은 음식을 해야 하는데, 감사할 줄도 모르고, 모였다 하면 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나그네 인생을 살아갈 때, 진짜 나그네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야 합니다. 가득 채우는 것이 행복인 줄 알았는데, 비우니까 오히려 행복하더라는 것입니다. 많이 채워야 행복해 질 줄 알았는데, 채울수록 복잡해지고 인생의 짐만 가득히 쌓여갑니다. 그러므로 최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우니까 채워지고 여유가 생깁니다. 사도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교회를 세울 때 주축을 이루었던 사람들이 권한을 가지고 싸우는 것을 보면서, 사실 자신을 추스르기도 어려운 감옥에서 이런 말씀을 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합니다. 비우고 내려놓으면 기쁨이 찾아옵니다. 질 줄 알면 기쁨이 찾아옵니다. 세상에서는 지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내가 승리자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내가 다 내려놓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충만한 자신, 언제라도 당당한 자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정치인으로서 유명한 처칠 수상은 항상 유머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각박한 정치인의 삶에서 그런 유머를 가지고 살았던 것은 참 놀랍기도 하고, 그래서 또 유명하기도 합니다. 이분이 아침에 늦잠을 자주 잤습니다. 그래서 회의에 자주 늦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당신같은 늦잠꾸러기가 어떻게 정치를 하겠느냐”고 조롱합니다. 그런데 처칠은 아무렇지도 않게 응수합니다. “여러분도 나처럼 예쁜 마누라를 데리고 산다면, 아침에 결코 일찍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처칠의 아내가 늙은 것을 다 아는데, 자칫 기분 나쁠 수 있는 상황에서 아주 재치있는 유머로 분위기를 바꾸는 여유가 돋보입니다.
자신을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신앙인으로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면 엉뚱한 곳에 집착하게 됩니다. 만왕의 왕,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왕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입니다. 기쁨과 기도와 감사입니다. 아버지가 대단한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 자식은 걱정이 없이 든든합니다. 내가 내 인생을 책임지고 내가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고 하니까 복잡한 것입니다. 늘 긴장해야 하고 채워야 하는 등 거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비록 우리가 나그네 이지만,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자 같지만, 모든 것을 가진 자요, 세상에서는 초라한 자 같지만 승리자로 살아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히11:14-15). 우리가 나그네이지만 본향을 향해 가는 나그네입니다. 나그네는 돌아가야 할 곳이 있습니다. 여행자로서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안심이 되고 당당합니까? 비록 지금은 여행 중이라 힘들고 어렵지만, 이제 곧 나는 내 편안한 집에 돌아간다는 희망이 어려움을 견디게 해줍니다. 여행도 3주가 넘어가면 서로 싸운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행사에서는 스케줄을 3주 안에 맞춘다고 합니다. 그 이상 지나면 서로 싸우게 되어 그 책임을 여행사에서 지기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우리가 만일 오늘 세상을 떠난다면 지금 옆에 있는 분에게 어떻게 대하시겠어요?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자신들은 본향을 찾는 자임을 나타냈습니다. 세상의 고향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그들이 나온 바 그 본향을 떠나왔기 때문에, 돌아갈 본향을 찾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찾는 하나님의 백성이 신앙인들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이중 국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 국적과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국적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항상 찬송 부르다가
날이 저물어 오라 하시면
영광중에 나아가리
열린 천국 문 내가 들어가
세상 짐을 내려놓고
빛난 면류관 받아쓰고서
주와 함께 다스리리
우리가 잠시 이 세상에 내가 살면서, 날이 저물어 오라 하시면 어디고 가겠습니다. 때가 되어 주께서 오라 하시면 영광 중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상상을 하면 이런 것일 겁니다. 출국 수속을 다 밟고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하는지 갈 곳이 없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들어서면 아파트가 대단합니다.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거기에 또 십자가는 얼마나 많은지요. 내려올수록 빨간 십자가가 사방에 보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믿음의 선진들은 갈 곳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야 할 본향을 있어 그 본향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나그네로 살아가지만 돌아갈 본향이 있고, 그 본향을 찾은 사람들입니다.
평생을 의사로 살던 장로님이 은퇴 후에도 무의촌에 살면서,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환자들을 돌보아 주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나이가 92세였는데, 이 분의 특징은 말을 잘 안하는 과묵한 성격이었습니다. 친구들이 와서 오늘은 몇 마디 했는가를 물어보는 것이 질문입니다. 이 분은 한 순간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습니다. 진료실이나 집안이나 응접실에서도 늘 책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책이 다 없어지고 책상위에 성경책 한 권만 놓여져 있었습니다. 당연히 궁금해서 “그 많던 책이 어디로 갔습니까?”질문했습니다. “내 나이 80이 넘으니 이제 어떤 책도 필요가 없네요. 이제 내가 읽어야 할 책은 오직 성경책 한 권이면 족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언제라도 주님이 부르시면 본향을 향해 가도록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치열하고 살아야 하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정글 같은 삶을 살지만, 그러나 이 세상을 떠나서 본향에 갈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집에 가는데 뭐가 아쉽습니까? 장례식 때만 눈물도 근심도 걱정도 없는 하늘나라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살 때 우리는 본향 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고향에 갔다 오는 분들은 고향을 찾아 갈 때 빈손 들고 가지 않습니다. 부모님과 친지들 만날 때 기뻐할 선물 하나라도 잘 준비해서 찾아갑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갈 때 어떻게 갈 것입니까? 그 준비는 이렇습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11:16). 본향을 사모하니까,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심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합니다.
명절 때 뉴스 영상을 보면 부모님들이 자식들과 손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는 사람보다는 맞이하는 부모님들이 더 설렙니다. 그렇듯이 하나님도 이 세상에서 수고하고 오는 저들을 향해서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한 성, 눈물도 걱정도 근심도 없는 성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여기서 사모한다는 말은 ‘갈망한다. 열렬히 갈망한다’는 뜻입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는데,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를 위해 준비하시고 얼마나 보시기에 좋으시겠습니까? 최고로 준비해놓으시고 기다리십니다. 자식을 위해서 또 손주들 줄려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얼마나 좋은 것을 준비해 놓으십니까? 정성과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십니다. 마찬가지로 본향을 가는 하나님의 백성들도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나는 무엇을 준비해서 가겠습니까?
부흥사 목사님이 추운 겨울에 시골 교회 부흥회를 갔습니다. 시골에 숙소도 변변치 않았을 때였습니다. 나이 드신 할머니 집사님이 부흥사 목사님을 섬기셨습니다. 목사님 감기 드시지 않게 따뜻한 것을 잘 준비해 드렸습니다. 심지어 콜라도 끓여서 섬기셨습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이 시간이 나면 성경을 읽는데, 사람 이름만 읽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왜 성경을 다 읽지 않고 사람 이름만 읽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모르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내 나이에 성경을 다 읽어서 무엇합니까? 사람 이름을 부지런히 읽어서 천국에서 이 분들을 만날 때 통성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군지도 모르고 인사를 어설프게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더랍니다. 참 지혜로운 분입니다.
성경의 2만 5천명의 인물이 나오는데, 그래도 한번쯤은 읽고 누군지는 알고 가야지 모른다면 민망할 것 아니냐는 노집사님의 믿음입니다. 이분은 천국을 사모하며 준비하는 분입니다. 젊은 분들에게 천국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와 닿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러나 천국 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준비된 자들에게 하나님은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한 성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김수현 집사님이라고 하는 분이 세브란스 병원에 가서 앞으로 얼마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자기 인생에 이런 날이 올 줄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하나님 앞에서 정리를 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는 준엄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자신의 날짜는 정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데, 그 일이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마침 교회에서 남태평양에 교회를 짓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날씨가 덥기 때문에 대나무로 교회를 지으면 비용이 많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김집사님은 하나님 앞에 설 때 그래도 교회 하나는 짓고 서야 하지 않을까 하여, 치료비하고 남은 돈을 하나님께 바쳐서 교회를 지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교회와 목사님은 기쁨으로 남태평양에 교회 하나를 짓고, 그 교회 이름을 김수현교회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이제 마음에 안심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이제 곧 하나님 앞에 가지만, 가기 전에 외 딴 섬에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 하나를 짓고 간다는 마음에 기쁨이 생겼다고 합니다.
며칠간 명절과 동계올림픽이 겹쳐서 바쁘게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복잡한 삶에서 그렇게 힘들게 모든 것을 바쳐서 준비하고 가꾼 모든 것들을 놓고 떠날 날이 있는 나그네들입니다.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가야할 곳, 본향이 분명히 있는 나그네들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수고하고 애쓴 내가 오기를 얼마나 기다리고 계시겠습니까? 그러나 빈 손들고 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부흥사 목사님들이 꼭 했던 예화 중의 하나가 있습니다. 그 때는 천국과 지옥 이야기를 참 많이 했던 때였습니다. 전라북도 어느 시골 동네에 아주 인색한 어느 장로님이 있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아주 초라한 사람이 도와달라고 왔는데, 주는 것이 그렇게 아까운 거예요. 줄래도 줄 것이 없어요. 그래서 자기 쓰다 쓰다 다 낡아빠진 개털 모자를 발견하고 이거라도 도움이 되면 쓰라고 주었습니다. 그날 밤 꿈에 예수님이 개털 모자를 쓰고 나타나셨습니다. “아니 예수님, 어떻게 개털 모자를 쓰고 계십니까?” “네가 평생에 나에게 선물해 준 것이 이것밖에 없지 않느냐?” 그 장로님은 그날 밤 꿈을 꾸고, 크게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후하게 남에게 주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나 쓸 것도 부족한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을까요? 그러나 비우고 단순화 시키고 정리하고 나면 쓸 공간들이 생기고 나눠줄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본향을 사모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들입니다. 오늘인지 내일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고 본향으로 가는 것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예수 믿고 주님의 의로운 옷을 덧입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지만, 성도로서 기억해야 할 몇 가지가 있습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내게 주신 메시지
1. 인생은 나그네의 삶이다.
2. 그리스도인은 본향가는 삶을 사는 삶이다.
3. 본향을 사모하라.
4. 하나님 아버지 앞에 설 것이다.
5.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6. 욕심 보다 도와주며 살자.
7.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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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주여~~~
모세의 고백처럼 우리가 살 날을 계수하게
하시고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시며
장차 들어갈 본향을 더욱 사모하되 아버지 앞에
섰을때 부끄럽지 않도록 천국 들어갈 준비하는
마음을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