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빛은 뚜렷한 관련 없어…올빼미형·유전 위험군에서 낮빛 효과 더 두드러져
낮 시간에도 실내에만 머무는 생활은 밝은 빛 노출을 줄일 수 있다. 중국 광저우의대 연구에서 5000룩스 이상 낮빛을 하루 42분 미만 쬐는 생활이 치매 위험을 가늠하는 강한 예측 신호로 나타났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요즘 어머니가 낮에도 방에만 계세요." 자식들이 부모 걱정을 털어놓을 때 자주 나오는 말이다. 집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시대를 맞아 노년층의 낮 시간 야외 활동은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낮에 5,000룩스 이상 밝은 빛을 하루 42분도 쬐지 못하는 생활이 치매 위험을 가늠하는 강한 신호일 수 있다는 연구가 나왔다.
중국 광저우의과대학교 펑훙량 교수 연구팀이 영국 성인 8만 7,577명의 낮과 밤 빛 노출량을 손목 착용 기기로 측정한 뒤, 병원 기록과 사망 등록 자료를 연계해 평균 8.1년간 추적한 결과다. 정신의학 국제학술지 《일반 정신의학(General Psychiatry)》에 6월 24일 게재됐다. 이 기간 중 741명이 치매 진단을 받았다.
연구팀은 영국 바이오뱅크(UK Biobank)를 활용했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 지역 성인 약 50만 명을 모집해 유전·환경·생활습관 정보를 축적한 대규모 연구 자원으로, 전 세계 연구자가 심사를 거쳐 활용할 수 있다.
이번 연구의 강점은 설문이 아닌 기기 실측 결과라는 점이다. 참가자 전원의 빛 노출을 같은 방식으로 손목 기기에 담아냈다. 그 데이터가 제시한 수치는 뚜렷했다.
흐린 날 야외 밝기가 기준선
낮 시간 평균 빛의 밝기가 1,000룩스를 넘으면 치매 위험이 16% 낮아졌다. 1,000룩스는 흐린 날 야외의 밝기다. 일반 가정 거실은 100~200룩스, 사무실도 300~500룩스에 불과하다. 일반 실내 조명만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밝기라는 뜻이다.
예측력 비교에서도 눈에 띄는 결과가 나왔다. 연구팀이 '5,000룩스 이상의 밝은 낮빛을 하루 42분 미만 쬐는 것'을 음주·비만·초미세먼지·외상성 뇌손상·청력 손실 등 기존 치매 관련 요인과 예측력을 비교했더니, 낮빛 부족이 이들보다 강한 예측 신호로 나타났다. 음주, 비만, 대기오염, 청력 손실 등은 기존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거론돼 온 치매 관련 요인이다. 적어도 이 예측 모델에서는 낮의 밝은 빛 부족이 이들보다 강한 신호로 잡힌 셈이다.
흥미롭게도 야간 빛 노출은 치매 위험과 뚜렷한 연관성이 없었다. 밤 빛이 아니라 낮 빛이 핵심이다.
왜 낮 빛이 뇌를 보호할까
낮의 밝은 빛은 눈의 광수용체를 자극해 뇌의 생체시계를 규칙적으로 맞춰준다. 생체시계가 안정되면 수면과 각성 리듬이 정돈되고, 이는 뇌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연구팀은 일주기 활동 리듬과 일부 뇌 구조 변화가 낮빛 노출과 치매 위험 사이의 관련성을 최대 33%까지 설명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는 추가 검증이 필요한 예비적 결과다.
유전 위험 높아도 낮빛 효과는 더 컸다
낮 빛의 보호 효과는 치매 위험이 높은 사람일수록 더 두드러졌다. 알츠하이머와 가장 관련 깊은 유전자(APOE ε4)를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발병 위험이 3~4배 높다. 이들이 낮 빛을 충분히 쬐었을 때 치매 위험이 유의미하게 낮아졌다. 유전적으로 치매 위험이 높은 사람에게도 낮빛 노출이 중요한 생활 신호일 수 있다는 뜻이다.
저녁이 되어야 활기가 살아나는 올빼미형(저녁형 인간)에서도 효과가 컸다. 올빼미형은 생체시계가 사회 시간과 어긋나 낮 빛을 받을 기회 자체가 적다. 야간 빛이 많은 환경에 사는 사람, 올빼미형, APOE ε4 유전자 보유자 등 고위험군에서 낮 빛의 보호 효과는 최대 41%까지 나타났다.
오늘 몇 룩스 쬐었나
기준은 두 가지로 나눠 봐야 한다. 낮 시간 평균 빛 노출이 1,000룩스를 넘은 사람은 치매 위험이 16% 낮았다. 5,000룩스 이상의 더 밝은 낮빛을 하루 42분 이상 쬔 사람은 약 17% 낮은 위험과 관련됐다. 맑은 날 야외는 수만 룩스에 달하니 햇빛 아래 짧은 산책만으로도 두 기준을 쉽게 넘는다.
문제는 실내 생활에 익숙해진 중장년층과 노년층이다. 사무실 직장인, 집에서만 지내는 노인, 올빼미형 생활 패턴을 가진 사람이라면 낮 시간 밝은 빛, 가능하면 야외 산책을 의식적으로 챙기는 습관이 필요하다. 폭염이나 강한 자외선이 걱정된다면 그늘진 야외나 창가도 대안이 될 수 있다.
관찰 연구인 만큼 낮빛이 치매를 직접 막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펑훙량 교수는 "낮 빛 노출이 치매 위험의 새로운 지표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시작할 수 있는 생활 습관이라는 점도 장점이다. 오늘 점심시간 10분이라도 밖으로 나가는 습관이 뇌 건강을 위한 가장 쉬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최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