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삼라만상 하나로 통합된 진동공간입니다.
물질계 안에 수많은 의식의 수준이 존재하는 것과 같이 물리적인 상태 너머에도 수많은 의식의 수준이 존재합니다.
당신은 염소와 말이 서로 다른 인식과
의식의 수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비물리적인 모든 것도 다양한 의식 수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물리적인 상태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다른 의식의 수준들을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
또는 더 낫거나 그 보다 못하다는 것으로 나눕니다.
그러나 비물질계는 그런 방식으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비물질계에서 우리의 경험은 모든 생명과 하나됨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결합 속에서는 ‘열등하다’ 또는 ‘우월하다’와 같은 수준은 경험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존재전체(All-that-is)의 서로 다른 고유한 표현방식을 인정할 뿐입니다.
인간은 위계체계, 또는 소위 우열순서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닙니다.
물론 위계체계를 따진다고 해서 당신이 잘못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물리적 관점에서 당신의 세계를 바라볼 때는 위계체계가 논리적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당신의 물리적 감각은 나무가 당신보다 ‘덜 지능적’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따진다면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그러나 모든 생명에 대해 우리가 이제껏 가져왔고,
앞으로도 가지게 될 좀 더 광대한 관점에서 본다면,? 그 말은 진실이 아닙니다.
우리의 관점에선 더 많다는 것이 더 나은 것도 아닙니다.
이제껏 많은 이들이 비물리계에 대해 묘사해왔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그려내는 그림과는 다를 수도 있지만? 대부분 용어에서만 차이가 납니다.
우주는 광대하고 복잡한 장소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수많은 차원과 수많은 세상, 수많은 현실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비물리계를 묘사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입니다.
우선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려봅시다.
첫째, 우주에는 ‘물리계’, ‘감정계(아스트랄계)’, ‘정신계(인과관계)’, ‘영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주요한 세 가지 비물리적 차원 안에는 많은 수준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다 합해서 일곱 개의 수준이 있는데,
각 수준은 또 다시 일곱 개의 하부 수준으로 나눠집니다.
편의상 지금 우리는 세 개의 비물리적 차원인
아스트랄계, 정신계, 영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영계를 좀 더 나누면 ‘상위 정신계’, ‘그리스도계’, ‘부처계’로 나눠집니다.
이러한 비물리적 차원의 외부와 내부에 소위 ‘다차원적 현실’들이 존재합니다.
당신은 자신의 의식 수준에서 이러한 다양한 수준들의 영역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영역들은 비밀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모두 각 수준에 있어왔으며,
명상 중에 다차원적 현실들 속에도 들어갔거나 잠깐이나마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옴니(Omni)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의식’과 ‘붓다 의식’ 사이에 의식의 다리를 짓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의식은 모든 생명과 하나됨을 받아들이는 것을 표현하고,
감정적으로도 하나됨을 허용하는 것입니다.
붓다 의식은 모든 것이 신의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모든 생명과 하나됨을 마음속에서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됨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쉽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명상을 통해
이런 수준들을 경험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에너지를 전달합니다.
그리스도를 경험할 때 당신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을 나의 형제 자매로 받아들입니다.
그들을 사랑하는 것은 내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내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가 모두 같은 창조물이며, 하나임을 압니다."
붓다를 경험할 때 당신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존재전체가 내 안에 살아있다는 것을 압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의식과 붓다 의식의 본질적인 차이점입니다.
어느 의식이 다른 의식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초점을 어디에 집중하는가가 다를 뿐입니다.
이는 당신이 물리적 현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집중하고 있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우리는 이 다리를 짓고 우리 안에 있는 생각과 개념들을 전달합니다.
현재 인류는 비록 제한된 시간 동안(종종 몇 분 동안)이나마
이러한 존재 상태를 경험할 수 있는 단계에 와 있습니다.
당신이 지금 자신의 진동수를 바꿔? 이곳에 집중하고 있는 우리의 진동수와 맞춤으로써
에너지 측면에서 이 수준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우리가 집중하는 생각들을 당신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류는 앞으로 계속해서 성장하고,
분리보다는 통합의 방향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당신이 추구하는 것을 당신에게 줌으로써 그러한 변화에 반응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가르침의 형태로 당신에게 가져다줍니다.
우주는 진동의 공간입니다.
당신이 집중하는 대상을 바꾸면 당신의 진동수도 달라집니다.
따라서 이제껏 하던 일에서 시선을 떼고 뭔가 새로운 것으로 관심을 돌릴 때
당신은 그 새로운 것과 정렬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당신은 우리와 같은 비물리적인 존재를 초대해서
비록 작은 공간이나마 당신이 집중하는 영역으로 들어가게 합니다.
우리가 가진 지식을 당신과 공유할 수 있도록 말이죠.
이 영역에서 우리는 개인으로 활동하지 않고
그룹의 일원 또는 ‘합의된 현실(consensus reality)’로서 활동하게 됩니다.
우리는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지닌 모든 생각, 아이디어, 염원, 경험을 알고 있습니다.
이 말이 당신에겐 이상하게 들릴 수도, 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사생활 침해와 같은 말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사생활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생활은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존재하는 곳에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감출 것도 없고, 감추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일종의 ‘에티켓’이 있는데,
다른 이의 경험을 온전히 공유하기 위해 허락을 구합니다.
우리가 허락을 구할 땐, 거부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우리 중 어떤 존재는 좀 더 고독한 경험을 창조하기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343명의 다차원적 존재로 구성된 그룹 의식이지만
마치 하나의 존재인 것처럼 당신에게 나타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당신이 당신과 비물리적 세계를 나누고 있는 베일을 꿰뚫어 볼 수 있다면,
긴 하얀 가운을 입고 있고, 가슴과 이마부분에서 강렬한 빛이 나오는
약 3미터 키의 잘생긴 존재를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존재로, 하나의 통일된 목소리로, 하나의 통합된 의식으로 당신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옴니란 이름을 사용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우리를 어떤 대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생명과 하나됨을 경험하고,
모든 것은 신의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의 마음과 하나이기 때문에
당신이 우리의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또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과 의사소통할 뿐 아니라 당신의 발 밑에 있는 먼지이며,
당신의 머리카락 사이로 부는 바람이며, 어린아이가 짓는 미소이며,
오래 된 떡갈나무에서 느껴지는 웅장함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바로 옴니입니다.
- Om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