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에 담은 문학의 온기
영남수필 제58집을 펴내며
한 해의 시간이 또 한 권의 책으로 태어났다. 계절이 바뀌는 동안 저마다의 자리에서 길어 올린 문장들이 모여 『영남수필』 제58집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다. 한 편의 수필이 완성되기까지 작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자신과 마주했을까. 오래 묵혀 둔 기억을 꺼내고, 일상의 작은 풍경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며 때로는 아픈 마음을 문장으로 다독였을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책장을 넘기는 마음이 예사롭지 않다.
수필은 삶에서 가장 가까운 문학이다.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한 편의 글이 태어나고, 평범한 하루에도 깊은 사유가 깃든다. 누군가는 오래된 기억에서 그리움을 건져 올리고, 누군가는 자연의 작은 움직임에서 생명의 이치를 발견한다.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고, 같은 계절을 지나면서도 마음에 남기는 빛깔이 다르다. 그 다름이 모여 한 권의 문학지를 풍성하게 만든다.
편집 과정은 또 하나의 문학 공부였다. 원고를 살피며 문장 사이에 머무는 작가의 숨결을 느꼈다. 때로는 한 문장 앞에서 오래 생각했고, 짧은 표현 하나가 마음을 붙잡기도 했다. 문장을 다듬는 일은 단순히 글의 모양을 고치는 작업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작가의 마음을 독자에게 온전히 전하는 과정이었다. 좋은 문장은 화려한 수식보다 진실한 마음에서 나온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한 권의 책이 완성되기까지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 많다. 원고를 보내 준 회원들의 정성과 편집을 위해 마음을 모은 이들의 수고가 책의 곳곳에 스며 있다. 문학은 혼자 쓰지만 함께 완성된다는 말이 실감 난다. 서로 다른 삶의 이야기가 문학이라는 이름 아래 만나 하나의 결을 이루는 일은 참으로 뜻깊다.
『영남수필』 제58집이라는 숫자에는 단순한 발간의 횟수를 넘어 문학을 향한 꾸준한 열정과 발자취가 담겨 있다. 해마다 문학지를 펴내는 일은 시간을 기록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나온 삶의 무게가 사유의 깊이가 되고, 오래 견뎌 낸 시간이 문학의 향기로 남는다. 그 길 위에 함께 서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이제 책은 우리의 손을 떠나 독자에게로 향한다. 어느 날 누군가 펼쳐 든 한 페이지가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지친 마음을 다독이는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잠시 걸음을 늦추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 그것이 수필이 지닌 오래된 힘일 것이다.
가을이 깊어지면 나무는 한 해 동안 길러 온 잎을 내려놓는다. 그러나 그 잎들은 흙으로 돌아가 다음 계절의 생명을 준비한다. 문학도 그러하리라. 우리가 남긴 문장들은 책 속에 머무는 듯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새로운 생각과 감동으로 다시 피어날 것이다.
『영남수필』 제58집을 세상에 내놓으며 함께해 준 회원 여러분과 편집에 힘을 보태 주신 모든 분께 깊은 감사를 전한다. 앞으로도 우리의 문학이 서로를 격려하고 삶의 온기를 나누는 아름다운 자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한 권의 책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문학의 시작이다. 우리가 함께 써 내려갈 다음 페이지에도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진실한 문장이 오래도록 머물기를 바란다.
2026년 가을
박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