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의 친구
마11:11-19
2024년4월20일(토)
기동찬
11.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12.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13.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14.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15.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16.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18.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19.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하나님 감사합니다.
“죄인의 친구”가 되어 주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19.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주님, 주님은 세상에 오신 이유를 밝히셨습니다.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5:32).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해서 오신 주님은 저들과 친구관계를 만들었습니다.
주님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해서 먼저 좋은 관계를 형성하시고 싶어 하신 줄 압니다. 좋은 관계라면, 친구관계 보다 더 좋은 관계가 어디 있겠사옵니까, 좋은 관계를 위해서 주님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19절)가 되신 줄 압니다. “세리와 죄인의 친구”(19절)가 되기 위하여 주님은 저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셨습니다.
이 모습을 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19절)이라고 비난 했습니다. 회개할 일이 많은 친구들과 만나다 보면, 비난 받을 일이 있을 줄 압니다. 하지만 이 분들은 예수님뿐만 아니라 세례 요한에 대해서도 비난했습니다.
저들의 비난에 의하면 요한은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18절)라고 비난 했습니다. 사실, 저들의 비난대로 요한은 귀신 들린 것도 아니고, 안 먹은 것도 아닙니다. 당시 요한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19절)되어, 저들과 함께 잡수시는 예수님에 대해서는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19절)이라고 비난하고, 세례 요한에 대해서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18절) 않음으로 “귀신이 들렸다”(18절)고 비난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도, 요한에 대해서도 비난하는 이들은 마치 ‘비난’ 전문가인 것 같습니다.
참으로 거만한 자들입니다. 주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마5:3)가 복이 있고, “애통하는 자”(마5:4)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도, 이들의 심령은 가난하지도 않고 애통해 하지도 않습니다. 이들의 마음은 이웃을 무시하고 교만하고 아주 거만한 것만 같습니다.
“심판은 거만한 자를 위하여 예비 된 것이요 채찍은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니라.”(잠19:29)고 말씀해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요한이 안 먹으면 안 먹는다고 비난하고, 예수님이 잡수시면 잡수신다고 비난하는 자들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고, 죄인을 사랑하지 못하고 비난하는 어리석은 자를 위해서는 채찍이 준비 되고 있을 뿐임을 선포합니다.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의 친구”(19절)가 되셔서 저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심에는 이유가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죄인을 불러 회개”(눅 5:32) 시키기 위함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친구의 잘 못을 가장 편하게 잘 말해 줄 수 있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 관계 형성이 잘되어 있는 친한 친구인 줄 압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가장 부담 없이 편하게 수용할 수 있는 말 중에 하나 또한 친한 친구가 해 주는 말인 줄 압니다.
진정한 친구는 친구에 대하여 비난하지 않습니다. 비난 대신에 그 친구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충언을 합니다. “친구의 통책은 충성에서 말미암은 것”(잠27:6)이라고 했습니다. 친구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이 마음이 주님의 심정인 줄 압니다.
유대인들이 소외시키고, 무시한 “세리와 죄인”(19절)들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어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 귀하신 친구 내게 계시니 나 주안에 늘 기쁘다 그 피가 내 죄 씻으셨으니 나 주안에 늘 기쁘다 나 주안에 늘 기쁘다 나 주안에 늘 기쁘다 주 나와 동행 하시니 나 주안에 늘 기쁘다.
주 내짐 대신 지시었으니 나 주안에 늘 기쁘다 그 생명 버려 나를 구하니 나 주안에 늘 기쁘다 나 주안에 늘 기쁘다 나 주안에 늘 기쁘다 주 나와 동행 하시니 나 주안에 늘 기쁘다.
주 은총 매일 내게 더 하니 나 주안에 늘 기쁘다 그 악한 죄악에서 지키니 나 주안에 늘 기쁘다 나 주안에 늘 기쁘다 나 주안에 늘 기쁘다 주 나와 동행 하시니 나 주안에 늘 기쁘다.
12.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15장).
“세리와 죄인의 친구”(19절)가 되어 주신 주님,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친구들을 위하여 십자가를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진실하신 친구 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16.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17.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요15장).
이 하루도 주님의 손에 올려 드리며
제 삶의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Declaration
죄인을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저들과 먼저 친구가 되어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I praise the Lord who first became friends with sinners in order to save th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