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연히 움베르토 에코의 서재를 보여주는 동영상을 시청했다. 긴 복도의 벽에도 책이 천장까지 가득했고, 그런 복도를 돌고 돌아 들어간 서재 안에도 사방이 책으로 쌓여 있었다. 가히 압도적인 서재이고, 내가 진정으로 가지고 싶은 서재였다. 나의 책장에도 수천 권의 책들이 꽂혀 있다. 다양한 주제와 많은 저자들의 책이다. 밥을 굶어가며 책을 구입 했고, 주머니에 돈이 생길 때마다 책을 제일 먼저 책을 구매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재산 1호도 책이고, 유일한 취미활동도 책이다. 신간을 구입해서 펼쳐 볼 때가 제일 황홀하고 즐겁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책들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생산되는 것일까? 수많이 많은 작가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렇게 많은 책들(글들)을 집필할 수 있었을까? 이런 집필 과정을 6일간의 천지 창조로 비유한다면 첫 날에 만들어지고 나와야 하는 책은 무엇일까? 그것은 당연히 글쓰기에 대한 책일 것이다. 글쓰기가 무엇이고, 어떻게 그런 글을 쓸 수 있는지를 알아야 다양한 책을 집필 할 수 있다. 이런 비유로 보면 글쓰기에 대한 책은 모든 책의 어머니이다. 오늘 그 어머니와 같은 책을 소개하고 싶다. 김기현 작가의 ‘글쓰는 그리스도인’이다.
2.
이 책은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그리스도인이 ‘왜’ 글을 써야 하는지, 2부는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를 다룬다. 재미 있고 탁월한 것은 1부에서 저자는 ‘왜’의 문제를 관계로 풀어낸다. 하나님 나라 복음 DNA NETWORK의 김형국 목사도 하나님 나라 복음의 삶을 동일하게 네 개의 관계로 설명한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관계, 둘째는 자신과의 관계, 셋째는 이웃과의 관계, 넷째는 세상과의 관계이다. 그러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자서전과 기도문으로, 내 자신과의 관계에서는 일기와 서평으로, 이웃과의 관계에서는 편지로, 마지막 세상과의 관계에서는 칼럼으로 글쓰기를 하라고 권한다.
이어지는 2부에서는 글쓰기의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것도 간략하게 요약이 가능한데, 첫째는 생각하고 질문하면서 닥치는대로 독서하라는 것이다(닥독). 둘째는 읽은 것들을 그냥 흘려 보내지 말고 닥치는대로 메모하라는 것이다(닥메).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게 되며, 이것들이 쌓이면 어느 날 글을 쓰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그때 세 번째로 필요한 것이 논리적이며 매끄러운 개요를 작성하는 것이고, 넷째는 닥치는대로 문장을 그냥 써보는 것이다(닥문). 마지막 다섯째는 퇴고라는 메이크업으로 마무리를 짓는 것이다. 이것도 왕도는 없다. 닥치는대로 덜어내는 것이다(닥퇴).
3.
이렇게 해서 글쓰기학교 마지막 과제인 ‘글쓰는 그리스도인’을 다 읽었다. 그런데 문뜩 동일한 제목의 책이 생각이 나서 책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찾다가 책장 구석에 꽂혀 있는 2010년 초판본(3쇄) 책을 발견했다. 책을 열어보니 이곳 저곳에 분명 읽은 흔적이 남아 있다. 그때는 김기현이라는 작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냥 글쓰기에 대한 관심으로 기독서점에서 책을 찾다가 발견하곤 구입하여 읽은 것이다. 그러고 보면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은 최근에 생긴 것이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글이라는 것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처럼 지도해 주는 이가 없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교회와 선교단체 사역에 헌신하여 바쁘게 달려왔지만, 뒤를 돌아보면 후회와 허무함이 찾아온다. 진짜 남아 있는 것이라곤 사진과 말씀묵상, 성경연구를 통해 기록해 놓은 글 외에는 별로 없다. 많은 경험과 사건과 사고들이 있었지만, 그것도 시간이 흐르면 희미해진다. 사진과 글이라는 재생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의식의 세계로 다시 소환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어느 때부터 간절히 글을 쓰고 싶다는 소망, 열정이 다시 생기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거나 주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더 나아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4.
그럼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 그런 고민과 질문에 답을 이 책이 해 준다. 개인적으론 2부를 먼저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이 책을 손에 잡아서 읽을 정도면 이미 글쓰기에 대한 동기부여와 열정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사람은 먼저 2부를 읽어서 글쓰기의 전체 과정을 머리 속에 집어넣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2부의 내용이 살갑게 다가오고 것은 저자 자신의 고민과 노하우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전수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분명 천재 작가는 아니다. 그러기에 친근감이 느껴진다. 천재는 타고난 것이기에 따라할 수 없다. 좌절감만 갖게 한다. 하지만 다양한 시행착오를 통해서 정상에 도달한 사람은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저자가 그렇다. 특히 자신의 경험을 아낌없이 전수해 주려고 하니 더욱 고맙다.
그렇게 2부를 통해저 전체 설계도(청사진)을 그려 놓은 다음에 어떤 건물을 지을 것인지를 결정하면 된다. 건물마다 용도와 목적이 있는 것처럼, 각자 서 있는 상황 속에서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를 선택하면 된다.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치유의 여정을 걷고 싶다면 일기를 쓰라. 가족이나 이웃, 공동체와 소통을 하고 싶다면 편지를 쓰라. 세상을 향해서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칼럼을 쓰라. 지적인 탐구와 기독교 세계관을 형성하고 싶다면 서평을 쓰라. 그 외에도 다양한 글쓰기가 작가를 기다리고 있다. 이 문은 언제나 열려 있고, 누구든지 들어갈 수 있다. 저자는 그 과정을 아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5.
글쓰기학교를 마무리 하면서 이 책을 읽으니 지난 1년 동안 사부를 통해서 그리고 여러 읽은 책들을 통해서 배운 내용들이 주마등(走馬燈)처럼 지나간다. 초판본에 없는 워크북 내용까지 다 읽고 책을 내려 놓으니 이런 독백이 절로 나온다. “앞으로 이 책 하나만 보면 되겠네!” 만약 글쓰기에 대한 책을 한 권만 남기라고 한다면, 그리고 글쓰기에 대한 책을 한 권만 추천하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함 없이 이 책을 추천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독서를 사랑하고 글쓰기를 제대로 하고 싶다면 당신의 책상 위에 항상 두 권의 책을 놓고 매일 보라고 말하고 싶다. 한 권은 모티머 애들러의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이고, 다른 한 권은 김기현의 ‘글쓰는 그리스도인’이다. 그 두 권만 제대로 읽으면 충분하다!
첫댓글 제대로 마무리를 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