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월드리포트]
'타락 요부' 전락한 '경국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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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 남성들의 가슴 설레게 하는 절세미녀를 일컬어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고 합니다. 나라를 쓰러뜨릴 정도의 아름다움이라는 뜻입니다. 미인과 관련된 고사성어가 많은 중국에서는 ‘경성경국(傾城傾國)’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漢)나라 무제 때 이연년(李延年)이라는 사람이 “미인을 한 번 돌아보면 성(城)이 기울고, 두 번 돌아보면 나라가 기운다”며 ‘경성경국’이라는 격언을 남겼습니다.
중국 역사상 수많은 미녀가 명멸했지만 최근 중국 권력층 내에서 ‘경성경국’이란 말이 잘 어울리는 여인이 한 사람 있습니다. 그녀는 바로 현재 공산당 통일전선부장이자 정협 부주석인 링지화(令計劃 58)의 아내 구리핑(谷麗萍)입니다. 구리핑으로 말하자면 중국 최고의 학부인 베이징대 법학과를 졸업한 수재에다 영화배우 빰치는 미모로 학창시절부터 장차 나라를 뒤흔들 ‘경성경국’ 감이 라는 얘기를 숱하게 들어왔던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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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대학가에서는 장차 누가 그녀를 차지하는 행운의 주인공이 될 지 설왕설래가 이뤄졌고 어쩌면 ‘경성경국’이란 말에 걸맞게 그녀로 인해 나라가 휘청거릴 지도 모른다는 시샘어린 수근거림도 적지 않았습니다. 구리핑이 아직 미혼이던 1970년대 초, 당시 마오쩌둥의 후계자로 불리던 린뱌오(林彪)는 한창 며느리감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포스트 ‘마오’ 린뱌오 밑으로 줄을 서려던 수많은 권력 부나방들은 전국 각지에서 최고의 신부감을 물색해 린뱌오에게 올리느라 분주했습니다. 중국 대륙의 처녀 1억명 가운데 가려 뽑는 며느리 간택 작전에서 그 시절 최고의 ‘엄친딸’들이 모두 망라됐습니다. 당시 10대 후반이던 구리핑도 그 중 한 명이었을 지 모릅니다.
그녀와 남편 링지화가 어떻게 만나 부부가 됐는 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습니다. 아무튼 링지화는 70년대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에 들어간 후 80년대 공청단 1서기였던 후진타오의 비서 일을 보게 되면서 고속 출세를 하게 됩니다. 후진타오가 대권을 장악하자 링지화는 후 주석의 비서실장인 중앙판공처 주임을 맡았고 한때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로 위세를 떨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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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물 정치인의 아내였던 만큼 구리핑에 관한 보도는 철저히 중앙의 통제를 받았으며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소식은 그녀의 공식적인 활동에 국한됐습니다. 구리핑은 결혼 전인 1978년부터 30년 넘게 청소년 교육운동을 해 왔습니다. 청소년과 관련한 책도 여러 권 펴냈고 청소년의 범죄문제 등에 대한 연구 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친 끝에 YBC(청년창업국제계획)이란 창업지원조직의 총 간사이자 ‘잉’이라 불리는 공익기금회 부이사장 자리에 올랐습니다. 남편의 후광 덕도 있었겠지만 여전히 곱고 품위있는 외모로 부지런히 현장을 누비며 민생을 챙기는 구리핑을 두고 ‘국모’의 풍모가 느껴진다는 찬사를 쏟아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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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타오 집권 마지막 해인 2012년 18차 공산당 전대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진입이 유력하게 점쳐지던 링지화는 아들 링구의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인해 하루 아침에 낙마 위기에 몰렸고 ‘국모’의 풍모를 풍기던 구리핑도 추락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청소년 사회 운동가로서의 우아하면서도 청렴한 이미지를 보여줬던 구리핑은 자신이 책임자로 있던 창업지원조직의 눈 먼 돈을 빼돌리고 고속철 사업에 관여해 무려 40억 위안(우리 돈 6천6백억원)을 뇌물로 챙겼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철판처럼 두꺼운 가면이 벗겨지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아들 링구가 만취 상태로 페라리를 몰다 충돌사고를 내고 즉사하자 이를 은폐하기 위해 차에 동승했다가 중상을 입은 두 명의 여성을 주사기로 독극물을 주입해 죽였다는 살인 누명도 구리핑에게 씌워졌습니다.
중국인들이 더욱 충격을 받은 건 한때 ‘경성경국’으로 추앙받던 구리핑이 띠 동갑보다 어린 CCTV 스타 앵커 루이청강(芮成剛)과 여러 해 동안 불륜 관계였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7월 생방송 도중 간첩혐의로 체포됐던 루이청강은 구리핑의 강요로 관계를 가진 것이라며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구리핑이 자신과 불륜관계인 루이청강을 이용해 대권 승계를 앞두고 있던 시진핑 당시 부주석 일가의 비리와 부정 축재 관련 자료를 외국 언론에 넘기려 했다는 보도가 중국 언론들을 통해 쏟아졌고 구리핑을 조종한 것은 다름 아닌 시 주석의 대권 승계를 방해하려던 남편 링지화였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남편의 대업을 위해 또 일가의 영달을 위해 물불 안 가린 ‘타락 요부’였음이 만천하에 드러난 겁니다.
2013년 모든 공직에서 물러난 구리핑은 그 뒤로 공식무대에서 사라졌고 감금된 채 조사를 받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한직으로 쫓겨난 링지화는 측근들과 함께 언제 낙마할 지만을 기다려야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중국과 홍콩 언론들은 산시성 정협 부주석 자리에서 쫓겨난 형 링정처(令政策)에 이어 동생인 링완청(令完成)도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면서 링지화에 대한 사법 처리가 임박했음을 알렸습니다.
예상과 달리 어제 끝난 4중 전회에서 저우융캉에 대한 사법처리가 공식 발표되지 않았지만 시간 문제일 뿐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다음 차례는 정책, 계획, 완성 링씨 3형제가 될 공산이 커졌습니다. 구리핑의 파국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경성경국’이 기어이 나라를 휘청거리게 만들 참인가 봅니다.
[임상범 기자] SBS뉴스 공식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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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