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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9년간 일본인 최소 17명 체포...이젠 남 일 아닌 중국 反간첩법
조선일보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입력 2023.07.03. 03:00업데이트 2023.07.03. 08:26
https://www.chosun.com/opinion/correspondent_column/2023/07/03/XCLLGC5IRVBMXNZ5UZNOMHMPY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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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0일 컨설팅 회사 '캡비전'의 상하이 본사 앞을 행인들이 지나가고 있다. 중국 국영 CCTV는 이 업체가 해외에서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과정에서 중국 산업 정보를 누설해 압수수색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EPA연합뉴스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국에서 일본인이 간첩으로 잡혀가는 일이 꽤 잦다. 지난 2월 후난성 창사에서 50대 일본인 남성이 간첩죄로 12년형을 선고받았다. 3월엔 일본 제약사 중국법인의 고위직이 베이징에서 간첩 혐의로 구속됐다. 귀국을 앞두고 호텔에 묵던 그가 체크아웃을 하는 순간 공안이 덮쳤다고 한다. 면책 특권을 갖는 외교관도 예외가 아니다. 작년 2월 베이징에서 일본 외교관이 간첩 의심을 받던 중국 언론인과 식사하다 한 호텔 방으로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2014년 이후 최소 17명의 일본인이 중국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 구체적 혐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대부분 ‘중국통(中國通)’ 학자나 기업 고위직이다. 중국 관료와 만나 북한 상황을 물어본 일본인 사업가가 체포된 사례도 있다고 한다. 동중국해·대만 문제 등으로 중일 관계가 악화된 시기에 체포·처벌이 집중된다. 일본은 중국과의 고위급 회담마다 간첩 혐의로 수감된 자국민의 석방을 요구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껏 중·일 간 ‘간첩 분쟁’에 관심이 적었다. 중국이 ‘간첩 카드’로 한국을 압박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외교 소식통은 “2014년 중국 반간첩법 제정 이후 한국인이 이 법으로 처벌받은 사례가 없다”고 했다. 청나라 때부터 일본 간첩에 시달린 중국이 과민 반응할 수밖에 없다고 이해하는 시각마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남 일 아니게 됐다. 외국인을 손쉽게 간첩으로 몰아갈 수 있는 ‘반간첩법 개정안’이 이달 1일부터 시행됐기 때문이다. 간첩 행위의 정의를 ‘국가 기밀·정보를 빼돌리는 행위’에서 ‘국가 안보·이익과 관련된 자료 제공’ ‘간첩 조직에 의지[投靠]하는 행위’ 등으로 확대했다. ‘안보와 이익’의 뜻은 모호하고, 간첩 조직에 가입하지 않아도 간첩으로 간주할 수 있다. 죄를 입증 못해도 벌금형 등 행정처분이 가능하게 바뀌었다. 이런 법을 내놓고서 중국 외교부는 “법치국가라 외국인도 중국 법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중국의 반간첩법 달라진 것들. /조선DB 그래픽=양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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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과 공조를 강화하는 한국은 개정안의 최우선 타깃이 될 수 있다. 베이징 교민 사회에서는 “사드 보복으로 한국 압박 카드를 대부분 써버린 중국이 한국인 간첩 몰이에 나설 수 있다”는 말이 나돈다. 중국에는 25만 교민이 살고 있고, 학자·기자·기업 주재원도 유독 많다. 이미 중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는 한인들은 ‘중국’을 주제로 한 논문 작성을 제한받고 있고, 한국 대기업 중국 법인들은 ‘종교 활동도 조심하라’는 내부 지침을 내렸다.
가까운 이웃이었던 한중의 사이는 더욱 벌어지게 됐다. 중국 내 정보 반출을 막는 ‘데이터 3법’, 타국 제재 근거를 마련한 ‘대외관계법’에 이어 반간첩법 개정안으로 기업과 개인의 중국 진출 리스크가 크게 높아진 탓이다. 중국에 ‘죽(竹)의 장막’에 이어 ‘법(法)의 장막’이 드리워진 듯하다.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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