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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www.dmitory.com/index.php?mid=horror&page=5&document_srl=145635003
원문 : https://amp.reddit.com/r/nosleep/comments/4kvw4f/afternoon_tea/
할머니가 애프터눈 티를 마시는 모습을 본 건 어려서부터였다.
그녀는 매일 자신의 테이블에 앉아 비싼 가운 중 하나를 골라입고 뜨거운 차를 홀짝이곤 했지만,
엄마가 죽기전까지 한번도 내게 같이 마시자고 권하지 않았다.
엄마의 장례식이 끝난 3일 후, 나는 할머니의 사유지에 도착했다.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본 지 20년이 지났지만, 50에이커의 전원지대에 자리잡은 거대한 영국식 저택은 여전히 압도적이었다.
서플 주 깊숙한 곳 완만한 초록언덕 가운데에 서있는 그 집은 내 어린시절의 꿈을 봉인해놓은 거대한 철문과도 같은 존재였다.
보안초소 뒤쪽으로는 조약돌을 깐 길다란 진입로가 놓여있다.
저택까지 3마일 정도 이어진 진입로는 완벽히 다듬어진 단풍나무 사이로 구불구불 뻗어있다.
진입로를 향해 쏟아질 듯 빽빽한 정원이 조성 되어있고, 그 사이로 우뚝 솟아있는 저택이 보인다.
저택의 입구를 장식하는 이 형형색색의 정원에는 대리석 분수가 있다.
푸른 수정같은 물 속에 20피트짜리 대리석 아프로디테 조각상이 알몸으로 서있었다.
그녀는 길게 흩날리는 머리카락으로 가슴을 가린 채 유혹적인 자태를 뽐내며, 다가오는 모든 이를 노려보고 있다.
사유지의 동쪽에는 마굿간이 있었다.
나는 그 마굿간에서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말들과 함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정문에서부터 타고 온 검정 롤스 로이스에서 내려서며 아름다운 집을 마주보았다.
저택은 켄싱턴 궁전을 본 딴 3층짜리 전통 영국식 건축물로,역사속의 유물처럼 우뚝 서있었다.
매해 여름 2주동안, 이 곳은 나만의 놀이터였다. 나는 정말로 이 곳을 사랑했다.
엄마의 장례식 사진을 겨드랑이에 낀 채 화강암 계단을 올라 거대한 오크나무 문 앞에 섰다.
벨을 누르고는 내 안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길게 심호흡을 했다. 할머니의 집사인 제프리씨가 문을 열어주었다.
'안녕하세요. 다시 뵙게 되니 반갑습니다' 안으로 들어서자, 제프리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제프리. 오랜만이네요.'
'너무 오랜만이지요. 그리웠답니다. 아주 성숙해 지셨네요.'
'할머니가 부르셔서요, 급한 일이라고 하던데' 나는 차갑게 대답했다. 수다나 떨 기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티 룸에 계세요. 어디인지는 이미 알고 계시겠지요?'
'알아요.' 나는 돌아서며 대답했다.
'아가씨 가방은 어디에 두셨나요? 쓰시던 방을 예전처럼 정리해 두었는데요.'
'오래 머물지 않을거예요, 제프리.' 나는 대답하며 로비를 빠져나왔다.
'아쉽네요. 다시 생각해보세요 아가씨.'
할머니가 평생동안 수집한 수백개의 아름다운 미술품들이 벽을 장식하고 있는 웅장한 복도에 들어섰다.
수백년이나 된 그림도 많았는데, 르네상스 시대의 장인이 그린 작품도 있다며 종종 자랑하곤 했었다.
이 늙은 여인이 얼마나 돈이 많은지, 믿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어려서는 크게 생각해본적이 없었지만 이제와서 보니 한 사람이 이 만큼의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터무니없게 느껴졌다.
구두 굽 또각거리는 소리가 20피트 높이의 천장을 울리며 거대한 복도에 메아리 쳤다.
한 발 내딪을때마다 화가 치밀어올랐다.
유화, 조각상, 벽을 수놓은 스테인드 글라스 모두 한 점당 수천달러의 가치가 있는 물건들이었다.
집 전체에서 부의 냄새가 풍겼다. 이토록 부유한 사람이 어떻게 자기 자식을 완벽히 무방비한 상태로 버릴수 있는걸까?
작품들 중 하나만 있었어도 우리 엄마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치료를 받을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프렌치 도어를 거칠게 열자, 티 테이블에 앉아 항상 쓰던 오래된 컵에 담긴 차를 홀짝이고 있는 할머니가 보였다.
다른 화려한 물건들에 비하자니 이처럼 소박한 컵을 아직도 쓰고 있다는게 이상했다.
'테레사 왔니' 할머니는 꿰뚫는듯한 회색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나직히 인사했다. 여전히 아름다운 눈동자였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나는 책망하듯 대답했다.
'같이 앉지 그러니.'
속은 끓어올랐지만, 나는 완벽하게 세팅된 테이블에 앉았다.
테이블은 화려한 아치와 기둥으로 꾸민 거대한 방 안에 길게 놓여있었다.
벽을 메운 호화로운 그림들 곁에는 대리석 누드 조각상들이 흔들림없는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고,
황금빛 천장은 비잔틴 양식의 모자이크를 강조한 실링로즈로 뒤덮여 있었다.
티 룸 이라기 보다는 박물관 같았다. 할머니의 의자는 사유지 뒤쪽의 넓은 정원이 내다보이는 창문을 향해 놓여있었다.
유지하려면 종일 일할 인부가 필요할듯한 정원이었다. 우리는 너무도 다른 삶을 살고있었다.
'카산드라는 잘 크고있니?' 할머니가 물었다.
'내 딸 인생에 관심있는 척 하지마세요.' 말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수다나 떨려고 이 먼 길을 날아온 줄 아세요?'
'더 해봐라. 나한테 할 말이 많을거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그럴수가 있어요? 당신은 진짜 냉정한 사람이야.'
나는 움직이지 않고 할머니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회색 눈동자 깊숙이에서 죄책감이 보이는 듯도 했지만, 그뿐이었다.
'어떻게 외동딸 장례식에도 참석을 안하나 싶겠지. 니 입장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란거 안다.'
'엄마는 마지막까지 할머니를 찾았어요. 죽어가는 순간에도 어린애처럼 울면서 할머니를 찾았다구요.언제나처럼 할머니는 거기 없었죠. 여기 이 성 안에 숨어있었잖아요.'
'엄마가 자기 딸보다 오래 사는건 안될일이지. 엄마가 된다는 게 어떤건지 너도 이해할꺼다.'
내 말을 듣는 것 같지도 않은 그 대답에, 할머니의 멱살을 쥐고 흔들고싶었다.
'그런 말로 무마하려고 하지마요. 병이 천천히 악화 되어가는 데도 춥고 외딴 곳에 돈 한푼 없이 내버려둔건 할머니잖아요. 이 집을 좀 보세요. 돈이 이렇게 많은데도 죽어가는 딸을 위해 한 푼도 쓰지 않고 말이죠.' 나는 분노에 차 말했다.
'그래 이해해. 니가 옳다.'
'엄마랑 내가 왜 여길 더 자주 오지 않았을까요? 1년에 1번, 할머니가 우릴 여기, 이 환상의 나라로 불렀잖아요.
할머니는 이 집을 이용한거예요. 어린 나한테 이 집이 얼마나 유혹적이었겠어요.
이 집에 오면 할머니가 실은 우릴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걸 잊어버릴꺼라 생각했겠지만 그렇지 않아요.
엄마는 다 알고있었고, 나도 자라면서 다 알게 되었다구요.'
'미안하구나. 하지만 그럴수밖에 없었어. 당장 이해하기는 힘들겠지. 그 때문에 널 부른거야. 진실을 밝힐때가 되었으니까.'
'노인네 한심한 변명따위 듣고 싶지 않아요. 들어봤자 뭐하겠어요.
후회하는 기색이라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있는거라곤 늙은이 한명 뿐이네요.
예쁜 말이랑 선물을 아무리 갖다바쳐도 엄마랑 내 사랑을 살 수는 없어요. 그 선물도 다 가짜잖아요. 당신이 가짜이듯이.'
나는 의자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이제 떠날 시간이다.
'기다려 테레사. 나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든 어쩔수 없지만, 마지막으로 이 늙은이 이야기 좀 들어줘.'
'들어주면 그 다음에는요?' 내가 말했다.
'너 자신을 봐봐. 젊음이라고는 찾아볼수가 없잖니. 보고 있기 괴로울 지경이다.'
'뭐라구요?' 나는 경악하며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이 여인의 뻔뻔스러움을 믿을수가 없었다.
'넌 아주 예쁜 애였지. 어두운 밤에도 그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 반짝이는게 보였어.
몸매는 어찌나 흠 잡을 데 없던지, 7학년때 처음으로 모델 제의가 들어올 정도였지.
주위 사람들에게 넌 젊음과 미의 상징 같은 존재였어. 하지만 그것도 시간의 무자비한 손길에 다 사라져버렸지.
아무리 염색을 해도 흰 머리는 계속 자라나서 모두가 볼 수 있게 되었어.
그리고 그 피부, 어리석게도 20대때 험한 파티를 즐기느라 늙어버린 그 피부는 어떻고..
앞으론 더 나빠지기만 하겠지. 하지만 그 중에서도 최악인건 니 딸을 낳느라 망가져버린 몸이야. 그건 숨길수도 없지.
너는 50이 다 되어가는 가난한 싱글 맘이야. 10대 딸까지 딸려있고. 너 젊을 적에야 많았다지만, 지금 널 좋아할 남자가 있을 것 같아?'
'어떻게 감히' 소리지르는 내 얼굴 위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할머니가 옳았다. 어딜 가던 내가 가장 예쁜 여자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예쁜 여자에게 세월이란 친절하지 않다. 세월은 괴물처럼 다가와 내 정체성을 다 먹어치우곤 나란 사람의 껍데기만 남겨놓았다.
그러곤 무자비하게도 내가 사랑하는 남자를 더 아름답고 더 신선한 모델 앞에 데려다 놓는것이다.
'미안하지만 사실이야. 시간은 항상 이기지. 혼자 늙어가는 동안 상황은 더 심각해질꺼야.
너에겐 아주 무서운 이야기겠지, 테레사. 넌 항상 특별한 남자의 관심을 받는 걸 좋아했잖니.
평범한 남자는 성에 차지 않아했어.'
'제발 그만해요. 왜 이러는거예요? 후회하는 모습을 기대하면서 왔더니 날 모욕하고 있잖아요.
정말 한심한 사람이군요.죽을때가 되면 당신 딸을 혼자 죽게 했다는 사실이나 곱씹길 바랄께요. 잘있어요.
혼자 두려움에 떨면서 지옥에서 썩길 빌어요. 보아하니 그 날이 그닥 멀지도 않은 것 같네요.'
나는 방에서 걸어나왔다.
'이렇게 가버리면, 널 도와줄수가 없어.'
'엿이나 먹어요. 당신이 어떻게 날 도와? 당신 자신 말고는 누구도 도운적이 없잖아.'
'다시 되찾을 수 있어. 완벽한 머리결, 아름다운 얼굴, 천사같은 피부.. 그 중 최고는 네가 갈망하는 엘리트 남자들의 관심이지.
모두 다 다시 한번 네 것이 될 수 있어.'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이 여자는 정말로 정신이 나간것이다.
'미쳤어요? 나 50 다 되어간다고 당신이 말했잖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너 실수하는거야 테레사. 내가 다 되돌려줄 수 있어. 앉아서 내 말 좀 들어봐. 5분이면 되.'
'당신 돈 필요없어요. 칼로 난자당한 성형괴물이 되고싶은 마음은 없다구요.'
'성형 하라는게 아니야. 난 기적을 보여주려는 거야.'
'내가 이러다니 믿을수가 없네... 딱 5분만이예요.' 나는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
'내가 몇 살로 보이니?' 할머니가 물었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흥미로운 질문이었다.
할머니의 나이는 언제나 미스터리였다. 항상 노인처럼 보이긴 했지만 노인처럼 움직인적은 거의 없었다.
그녀의 정신은 변함없이 날카로웠으며, 아픈 적 한번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이상한 일이었다.
'80세?' 우리 엄마의 나이를 감안해서 한 말이었다.
'나쁘진 않지만 좀 어리게 봤네. 지난 주에 101세가 되었단다.'
'말도 안되요.' 나는 할머니의 터무니없는 이야기에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말이 되고도 남지. 나는 1915년 4월 2일생이야. 원한다면 출생 신고서를 보여줄수도 있어.'
그녀의 얼굴을 관찰한 결과 거짓말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100세가 넘은 사람이 이렇게 정정할리가 없었다.
하지만, 못 본 지가 20년인데 이상하게도 할머니는 예전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았다.
머리가 좀 더 하얗게 세고 주름이 조금 늘어났지만 눈만은 그대로였다. 강하고 생명력이 가득했다.
'하나 물어보자 테레사. 내 손을 마지막으로 본지가 언제니?'
이것 또한 흥미로운 질문이었다.
어린 시절 이 곳에서 보낸 여름을 곰곰히 떠올려봤지만, 할머니가 라벤더 색 장갑을 벗은 모습은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희안하게 맨 손을 본 기억이 없네요. 항상 장갑을 꼈잖아요.'
'정확해. 자, 그대로 앉아있어. 놀라지말고.' 부드러운 동작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할머니가 말했다.
힘든 기색이 전혀 없었다. 100세가 넘은 노인이 이토록 기품있게 움직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대체 어떻게!' 나는 경악하며 소리쳤다.
'기다려. 더 흥미로워질테니.' 그녀가 웃으며 대답했다.
할머니가 손을 들어 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잡아당기자 가발이 벗겨지며 길다란 금발머리가 어깨위로 쏟아져내렸다.
머리카락은 아름답고 건강했다.
'당신 누구야?' 나는 당황했다. 그리고 곧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누군가 우리 할머니를 가장한 것 아닐까.
'난 네 할머니야. 목소리 들으면 알잖아.'그녀가 부드럽게 말했다.
할머니가 옳았다. 착각하기 힘든 목소리인것이다.
'자, 이제 최악의 부분이야. 침착하게 있거라.' 이마로 손을 가져가며 그녀가 말했다.
매니큐어를 바른 손톱이 피부에 박힌다 싶더니,고도로 세밀하게 만들어진 라텍스 마스크를 벗겨내기 시작했다.
입이 떡 벌어졌다. 변장을 벗겨내니 20세도 안되어 보이는 어리고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눈을 제외한 모든것이 변했다. 그 눈만은 어린시절 본 그대로였다.
'이게 뭐예요?' 나는 비틀거리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심장이 뛰고있었다.
'놀랐을거란 거 안다. 하지만 무서워 마. 나야. 네 할머니'
그녀의 독특한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우리는 모계 쪽으로 아주 희귀한 혈통을 이어받았어. 너와 나는 매우 특별한 사람들이란다.
이제 너희 엄마도 이 세상에 없으니 진짜 네가 누구인지 알아야 할때야.
차 한잔 하면서 모든 걸 설명하겠다고 약속하마. 오랫동안 바래왔던 일이야.'
'하지만 그 차는 못 마시게 했었잖아요.'
'오늘까진 그랬지.'
나는 마지못해 자리에 앉으며 내 할머니라고 주장하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이 이상한 사건을 받아들이기가 힘에 겨워 손이 떨렸고, 숨쉬기도 어려웠다.
그녀는 그릇장으로 걸어가 작은 찻잔과 받침을 꺼냈다.
손으로 꽃무늬를 그려넣은 황백색의 찻잔으로 할머니가 항상 사용하던 것과 똑같았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것들을 테이블위에 올려놓았다.
'네 것이야, 테레사. 아주 오래된 물건이란다. 함부로 다루지 말아라. 찻잔이 깨지는 것만큼 비극적인 일은 없을테니.'
그녀는 주둥이에서 김이 올라오는 차주전자를 들어 우리 둘 몫의 차를 따르고,어서 마시라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찻잔을 입술에 대고 한모금 홀짝였다.
'윽..' 나는 역겨운 맛이 나는 차를 입안에 머금고 말했다.
'이게 뭐예요? 독이예요?'
'완전 그 반대지.' 그녀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마실수록 나아질꺼야. 결국엔 그 맛을 즐기게 될껄.'
'못 마시겠어요. 정화조에서 떠온 물 같아.'
'좀 기다려봐.' 한 모금 길게 마시며 그녀가 말했다.
'무슨 뜻이예요?'
'뭔가 달라진걸 못 느끼겠니?'
'이 끔찍한 맛을 이야기하는 거라면 맞다고 해야겠죠.'
'아 그래. 깜박했다.내 것보다는 효능을 발휘하기까지 시간이 좀 더 걸릴꺼야. 한 모금 더 마셔봐. 괜찮으리라고 장담하마.'
'안마셔요. 이건 너무 끔찍한 맛이예요.'
'조금만 있으면 마음이 바뀔껄.'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나는 전신에 흐르는 희열을 느끼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마치 스위치가 켜진것 같았다.
처음 이 집에 왔을때 나는 화가 나있었고, 시차 때문에 완전 기진맥진 해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로 몇 시간 자지도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몸 안에서 행복의 에너지가 폭발하는 듯 했다.
고급 코카인을 했을때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약을 한 기분은 아니었다.
'대체 이게 뭐예요?' 숨을 쉴때마다 차의 효능은 강해졌다.
'차를 다 마셔라. 지금 네가 느끼는 건 시작일뿐이야.'
나는 망설임없이 차를 목안으로 쏟아부었다. 맛은 처음보다 더 끔찍했지만 상관없었다.
더 마시고 싶었다. 차가 뱃 속을 적시는 순간,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에너지의 강렬한 폭발이 전신으로 스며들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약이 혈관 구석구석을 도는 것 같은 굉장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효과에 취하는 대신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무엇보다도 살아있음을 느꼈다.
'나한테 뭘 준거예요?'
'애프터눈티의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한다. 이제 날 따라와봐.'
할머니는 아이처럼 부드러운 손으로 내 손을 잡고 티 룸을 나섰다.
대리석 복도를 거니는 동안 액스터시에 취해 하늘을 나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이상을 느끼기전까지는.
' 눈이 이상해요. 앞이 안보여.' 갑자기 시야가 몹시 흐릿해졌다. 사물의 색깔만 드문드문 보일 뿐이었다.
할머니가 다가와 내 안경을 벗기자, 마치 안대를 벗은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전에 없이 선명하고 정확하게 보였다.
안경과 렌즈를 착용하기 시작한 20대 초반부터 시력이 계속 나빠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어떻니 테레사?' 신이 난 어조로 할머니가 물었다.
'굉장해요.' 모든 것이 너무 세세히 보이는데 놀라며 내가 말했다.
'내 눈이 어떻게 된거죠?'
'나은거야.'
'낫다니요? 어떻게요?'
'이건 시작일뿐이야.'
1층에 있는 할머니의 침실을 향해 저택 깊숙이까지 들어갔다.
침실 옆에는 내 아파트보다 더 큰 드레스룸이 있었는데,꽉 들어찬 값비싼 옷과 신발들로 터질듯했다.
드레스 룸 안으로 들어서자, 그녀는 나를 거울 앞으로 이끌었다.
'처음에는 변화가 크지 않을거야. 그래도 자세히 살펴보고 무엇이 보이는지 말해주렴.'
아무것도 착용하지 않은 나의 눈은 전보다 훨씬 정확해졌다.거울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뭔가 다르긴 했는데 그게 무엇인지 집어내기가 어려웠다.
'뭘 찾아야 되는거죠?' 내가 말했다.
'얼굴을 더 가까이 들여다봐.'
거울쪽으로 더 가까이 가 내 얼굴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여전히 주름이 보이긴 했지만 확연히 줄어들어 있었다.
푹 잔 후 전문가에게 메이크업을 받은듯한 모습이었다. 눈 밑의 볼록한 주머니가 없어지고 기미는 옅어졌다.
희끗희끗함이 사라진 머리카락은 찰랑거렸다.
'세상에.. 5년은 젊어보이네요.'
'정확해.'
'이게 어떻게 가능한거죠?'
'이게 네가 물려받은 유산이란다, 테레사.'
'나의 유산이요?'
'넌 18세기 초반부터 우리 집안에 전해져 내려온 아주 특별한 선물을 받은거야.
이 힘은 정말 강력하단다. 네가 지금 경험한 것은 일부에 불과해. 넌 그 힘을 상상할수도 없을게다.
이 힘을 다 느껴보기에 앞서, 네가 선택할 것이 있다. 이 일을 전부 잊고 집으로 돌아가던지, 이 늙은 할미랑 여기에 머물면서
내일 애프터눈 티를 함께 마시던지 선택은 네 몫이야. 제프리가 네 방을 정리해 두었단다.쓰던 방이 어디인지는 기억하지?'
'당연하죠. 어떻게 잊을수 있겠어요?'
'어릴때처럼 마굿간도 둘러보면서 하루 더 머물러보고 결정해라.
네가 이미 알고있는 그 삶으로 돌아갈건지, 토끼 굴을 탐험할껀지 말이야.
난 후자를 택했으면 좋겠어. 그럼 너도 내가 한 행동들을 이해할 수 있을꺼야.'
말을 마친 그녀는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으로 돌아갔다. 한 가지 분명한것은, 생각할 시간 따위는 필요없다는 것이다.
처음 차를 마신 순간 이미 나는 토끼 굴을 탐험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정확히 오후 3시,나는 티 룸으로 향했다.
할머니의 집에서 티타임은 언제나 오후 3시였다.
엄마도 나도 티타임에 함께 하지는 않았지만, 할머니는 언제나 차를 마시며 유리문 너머로 정원에서 노는 우리를 지켜보곤 했다.
그녀는 반짝이는 검정 가운을 입고 이미 자리에 앉아있었다. 마스크를 쓰지않은, 어제 본 젊고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었다.
이제는 변장 할 필요성을 못느끼는 듯 했다. 방으로 들어가자 그녀는 내 결정에 만족한 듯 웃어보였다.
테이블 위에는 찻잔 2개와 김이 피어오르는 찻주전자가 놓여있었다.
'잘잤니? 오기로 결정해줘서 고맙구나.' 그녀가 말했다.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어요?' 나는 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
'그렇지.'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오래 전, 나도 네 입장에 처한 적이 있었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관심은 온통 주전자에 쏠려있었다.
'더 마시고 싶은거지?' 그녀가 말했다.
'이건.. 이건 너무 대단해요. 이런 느낌은 몇년만이라구요.'
'오늘은 좀 어떻니?'
'여전히 평소와 달라요.어제만큼은 아니지만요.'
'불행히도 효과가 영원한 건 아니야. 계속 마셔줘야 해.'
'도대체 뭐예요? 이 차 말이예요.'
'설명하기 복잡하단다.' 할머니가 내 잔에 차를 따르며 말했다.
'천천히 마셔라. 천천히 마시는 편이 훨씬 좋아.'
잔을 입술에 대고 한 모금 들이켰다.잠시 입 안에 머금고 있었지만, 곧 삼켜버렸다.
'이 차가 뭔지, 말해주세요.'
'곧 말해주마.' 차를 한 모금 홀짝이며 할머니가 말했다.
'토끼 굴로 뛰어들 준비가 되었니?'
'준비 됐어요.' 나는 고약한 맛을 내는 뜨거운 차를 게걸스럽게 마셔대며 대답했다.
'너와 나는 아주 특별한 집안에서 태어났지. 불행히도 우리 조상에 대해선 아는 바가 거의 없어.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하다. 우리는 놀라운 선물을 받는 축복을 누린거야.
네 엄마가 죽고나서 네게 전수된 유산이지.
이 힘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수는 없지만, 다행히도 그 혜택은 남아있잖니.
우리의 힘은 네가 마시고 있는 그 차에서 나온다. 다른 건 필요치 않아. 자 이걸 섞어봐라.'
할머니가 그녀의 컵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너보다는 나한테 더 효과가 좋단다.'
'왜 그렇죠?'
'특별히 나한테 잘 맞도록 섞은 차야. 곧 너도 너한테 꼭 맞는 배합을 찾아낼꺼야.
마시면 단 몇분만에 네 인생을 모조리 바꿔놓을 그런 차 말이야.'
'내 시력이 좋아진 것 처럼 말이예요?'
'시력은 일부일 뿐이야. 효능의 범위는 그것보다 훨씬 넓어. 간단히 말하자면 이 차는 젊음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지.
젊어서 누리던 그 미모를 다시 찾을 수 있어. 그때보다 더 아름다워지지.
메이크업을 할 필요도 없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되는 걸 상상해봐.
무엇을 시도하든 쉽게 해내는 프로 운동선수의 신진대사와 체력을 가질수있어.
화장품을 바르지 않아도 티 하나 없는 피부에 흠 잡을데없는 혈색도 말이지.
그 검고 긴 머리카락은 옛날처럼 다시 찰랑댈꺼야. 몸은 그 어느때보다도 건강해지지.
눈가 주름이 사라진 것처럼, 몸이 아팠던 기억도 인생에서 사라지는거야. 다시 18살이 된 것처럼.'
'18살이요? 진심이세요?'
'물론이지. 자. 네 모습을 봐.' 놋쇠로 만든 작은 거울을 건네며 할머니가 말했다.
거울속의 나는 벌써 환하고 생기있어 보였다. 한 모금 마실때마다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다시는 몸이 아플 일이 없다구요?'
'난 지난 70년간 기침 한번 한적이 없다.'
할머니가 말했다.
'그렇게 오래 마신건가요?'
'그래, 아마 70년쯤 마셨을게다. 이 차는 대단한 자산이야.
지금 네가 보고있는 내 젊음, 엄청난 부 모두 이 차에서 나왔다고 할수있지.'
'어떻게 젊음으로 이 많은 돈을 벌 수 있는건가요?'
'여러 방법이 있지만 유혹과 조종이라는 가장 쉬운 방법을 쓰면 되. 여신의 외모에 지혜로움까지, 치명적인 매력을 겸비했잖니.
남자란 파리와 같아. 꿀을 좀 꺼내놓으면 지갑까지 다 갖다 바치며 몰려들지.단순한 생명체야.
하지만 네 무기는 그것만이 아니란다. 세상이 바뀌어서, 요즘 여자들은 남자 없이도 앞가림을 잘 하잖아.
네가 가진 혜택은 젊음과 아름다움만이 아니야. 그 차는 불완전한 뇌 기능을 다방면으로 개선해 준단다.
지능이 10배는 향상되지. 계속 마시기만 하면 어마어마한 정보를 쉽게 빨아들여 네 걸로 만들 수 있어.
이런 재주를 가지고 있으면 부를 축적하는 건 간단한 일이지.'
'그렇게 쉽다니 믿어지지 않네요.'
' 어떤면에선 네 말이 맞아.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그 대가보다 혜택이 컸어.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그 대가라는게 뭔데요?'
'네 엄마.' 할머니가 말했다. 기분이 갑자기 나빠졌다. 흥분에 취해 엄마를 잊고있었던 것이다.
'엄마가 왜요?' 다시 분노가 치솟는 걸 느끼며 내가 물었다.
'난 네 엄마를 정말 사랑했다 테레사. 거리를 둔 것, 장례식에 불참한 것 모두 네 엄마를 위해서였어.
그 이야기는 곧 해주마. 지금은 이 일에 엄청난 대가가 따른다는 것만 기억해둬라.
그 대가를 치를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너 스스로 결정해야해. 난 치를만했다고 생각한다.'
' 우리의 이 능력은 모계쪽으로만 유전이 되는데, 불행히도 항상 한 세대를 건너뛰어서 나타나.
나는 할머니로부터 이어받았고, 할머니는 또 그 분의 할머니로부터 이어받는 식으로 지난 3세기간 지속된거지.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내 능력을 발견했어.슬프지만 네 엄마는 이 능력을 받을 수 가 없었기 때문에 외손녀인 너에게
바로 오늘 전수해 주는거야. 네 엄마처럼 네 딸 카산드라도 이 능력을 받을 수 없어.
네게 손녀가 생긴다면 그 애가 이어받을꺼야. 만일 카산드라가 여자아이를 낳지 못한다면, 이 모든게 끝나는거지.'
나는 깊은 생각에 잠긴 채 의자에 몸을 묻고, 역겨운 차를 홀짝였다.
알갱이가 씹혔고 맛은 썼지만, 한 모금 마실때마다 바라던 이상의 효과가 느껴졌다.
모든 감각이 예민해졌다. 청각,촉각,후각,시각까지 선명하고 정확해진 것이다.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 네가 이 막대한 힘을 이해했으니, 그 원천을 밝힐 차례구나.
많이 심란해질수도 있다는 건 미리 말해두마.
이 힘의 어두운 비밀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그 날을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단다.
받아들이기 힘겨웠지. 하지만 일단 그 첫 잔을 다 비우면 부정적인 기분도 사라질거라고 장담하마.'
'이 첫 잔이 뭐가 그리 대단한데요?'
'모든 점이 대단하지.' 할머니가 빙그레 웃었다.
'너한테 맞게 배합한 차야. 전에 마시던 차는 나한테 맞춘거였잖아. 그걸로는 커튼 뒤에 뭐가 있는지 살짝 훔쳐보는 수준밖에 안되.
제대로 전부 보려면 남김없이 마셔라. 다 마시고나면 20대가 된 기분일꺼야.
효과가 며칠은 지속 되겠지만, 매일 마시면 그땐 진짜 마법같은 일이 일어나지.
전에 없던 무기로 무장한 채 인생의 장년기에 접어드는거야. 무엇도 널 막을수없어. 넌 죽지않으니까.'
'죽지 않는다구요?'
'맞아. 믿고 의지했던 사람이 갑자기 널 죽이려 한다고 치자.
이 힘을 얻게 된 이상 적어도 한번쯤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 질투란 끔찍한 괴물과도 같거든.
네가 칼에 찔렸다고 상상해봐. 그래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네 몸은 상처를 입은 즉시 저절로 낫기 시작할꺼야.
목을 졸린다해도 문제없어. 숨 쉬는데 어려움이 없을테니까.
어떤 병도 너를 해칠 수 없게되. 차를 마시는 한 넌 불멸의 존재가 될꺼야'
이 모든게 꿈이 아닐까 생각하며 돌처럼 굳어있었다.
불멸의 삶, 영원한 아름다움, 다 쓰지도 못할만큼 많은 돈..너무 황홀한 이야기라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차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준비됐어요.' 나는 말했다. 기다림은 끝났다.
'백만불짜리 질문이로군, 더 지체할 이유가 없지. 받아들일지 말지는 네가 정해라.'
'대체 그 대가라는게 뭐예요? 아주 중요한 문제같은데 말이죠.'
'차 다 마셔라. 내 직접 보여주마.'
얼굴을 찌푸리며 남은 차를 꿀꺽 들이켰다.
자리에서 일어나니, 더는 무릎에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단숨에 마라톤도 완주할 수 있을만큼 폐기능도 좋아진 듯 했다.
'이 쪽으로 오렴.' 할머니가 말했다.
'지금부터 일어날 일들이 불편하고 기괴하게 느껴지겠지만, 부디 침착해라.
나무보다는 숲을 보도록 노력해주면 좋겠구나. 너에게 아주 좋은 기회야 테레사. 이해해주렴.'
'지금 어디가는거죠?' 한번도 본 적 없는 좁고 어두운 복도를 지나며 내가 물었다.
'대가가 뭔지 알고싶다고 했지?'
'네.' 나는 대답했다.
'아주 혹독하단다.'
복도 끝은 막다른 길이었다.
할머니의 손가락이 벽에 섬세한 문양을 그렸다.
벽 뒤에 세련된 키패드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손바닥으로 벽을 밀자 숨겨진 문이 열리고, 차가운 공기가 뿜어져 나왔다.
'여긴 뭐하는 곳이죠?' 내가 물었다.
'내 냉동고란다.'
방 안에는 갖가지 물건들이 놓인 작은 테이블이 있었고,저 편에는 거대한 냉동고로 통하는 커다란 철문이 보였다.
잠시지만, 환희는 사라지고 약간의 두려움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걸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때가 됐다. 저 문 뒤에 진실이 있어.' 천천히 냉동고의 문을 열며 할머니가 말했다.
형광등 빛이 깜박이는 냉동고 안을 들여다 본 나는 고개를 돌려 구역질을 하며 뱃 속에 든 차를 게워냈다.
'제기랄.' 나는 들것위에 놓인 시체를 보며 소리질렀다. 왼쪽 다리와 팔이 잘린 여자의 시체였다.
'테레사. 저건 내 어머니야. 네 증조 할머니지.' 할머니가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내 증조 할머니라구요?' 나는 공포에 떨며 소리쳤다.
'증조 할머니가 왜 냉동고에 있는거죠?'
'이게 바로 그 대가야'
할머니는 고리에 걸린 커다란 칼을 빼내어 시체 쪽으로 걸어갔다. 백년도 더 된 알몸의 시체는 놀라우리만치 상태가 좋았다.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단히 굳은 오른쪽 허벅지를 난도질 해 살점을 조금 떼어냈다.
나는 남은 차 마저 게워낼뻔 했지만 충격에 마비된 채 최면에 걸린 듯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녀는 테이블 쪽으로 다가가 작은 믹서기에 살점을 넣었다.
몇 초 뒤 고운 가루로 변한 살점을 테이블위로 던진 할머니의 손에는 빈 티백이 들려있었다.
나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게 우리가 마시던 차예요?' 나는 공포에 질려 말했다.
'이게 바로 숨겨진 비밀이란다.'
'어떻게 이런 짓을 할수가...당신 엄마잖아.'
'불행히도 이 방법 밖에 없다. 우리의 삶은 어머니들의 죽음에서 비롯된거야.'
깨달음이 달려오는 기차처럼 나를 치고 지나갔다.
내 몫의 차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게된 것이다.
'설마 진심은 아니겠죠?' 믿고싶지 않았다.
'이 방법 뿐이야. 영원한 젊음을 얻으려면 네 선조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가야 한다.'
'내가 우리 엄마를 난도질해서 마시고 싶어할거라 생각하는거예요? 떨어져 지내는 동안 단단히 미쳐버렸나보네요.'
'선택은 온전히 네 몫이야. 난 그냥 방법을 알려줄뿐이지. 카산드라가 죽으면 너도 네 손녀를 위해 이 일을 해야 해.'
'헛소리마요. 있지도 않은 손녀가 카산드라를 먹어치우게 놔두진 않을꺼예요.'
'받아들이기 힘겨울거라는거 안다. 나도 겪어본일이니까. 하지만 널 설득하려는게 아니야. 그저 방법을 알려줄뿐이지.'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꺼예요.' 나는 단호히 말했다.
'좋아. 하지만 이 일을 마칠 수 있도록 해주겠니? 그게 나의 의무란다. 네게 모든 것을 알려주겠다고 맹세했으니까.'
'빨리 끝내요.' 내가 말했다.
'일단 네 엄마의 시체가 필요해. 물론 준비해놓았지. 너도 곧 돈이면 모든게 다 해결된다는걸 알게 될꺼다.
내 어머니를 냉동 시켜놓은것처럼, 네 엄마도 냉동시키게끔 해놓았어. 얼려야 부패하지 않고 훨씬 오래가니까 말이야.
일주일에 최소 1잔은 마셔야 건강과 30대의 외모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효능을 모두 누리고 젊음을 되살리려면,
하루에 1잔씩은 마셔야 해. 내 계산이 정확하다면, 1년에 6개월씩만 하루 한잔씩 아껴 마실 경우 200년쯤은 문제없어.
양을 적절히 분배하면 100년쯤 더 늘릴수도 있지.'
'어떻게 그런 한심한 소릴 해요? 지금 당신 배로 낳은 딸 이야기를 하고있는거 알고나 있어요?'
'내가 그걸 모를 것 같아? 분노에 찬 목소리로 할머니가 말했다.
'나라고 후회가 아주 없는 줄 아니? 단지 네 엄마를 먹는걸로 끝나는게 아니야. 그보다 훨씬 더 심하다고.'
'우리 엄마한테 무슨 짓을 한거예요?' 치솟는 분노를 느끼며 내가 물었다.
'네가 왜 그렇게 힘들게 자랐는지 생각해본적 있어? 왜 항상 가난한지, 네 엄마는 왜 그리 운이 없는지
궁금한 적 없었느냐고?'
'무슨 소리예요?'
'모든게 순환 하는거야. 내가 젊어지는 만큼 네 엄마는 늙어버리지. 내가 부자가 되면 네 엄마는 가난해져.
난 건강했고, 네 엄마는 그렇지 못했어. 극단적인 희생이 필요한 일이야. 네가 차를 마시기 시작하면, 네 외동딸의
인생이 추락하기 시작하지. 카산드라는 힘든 삶을 살게 될테지만 간신히 살아남아 손녀를 안겨줄꺼야. 그 아이가
이 유산을 물려받아 우리처럼 되겠지. 손녀의 삶은 풍족할꺼야. 결국 카산드라는 딸에게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을 안겨주게 되는거지.네 엄마가 네게 그랬듯이..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주 숭고한 일이지않니?'
'그렇게 되진 않을꺼예요. 난 그 정도로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니까.'
'이제 내가 왜 너희 곁에 없었는지 이해하겠지? 고작 1년에 한번씩이긴 했다만, 널 보고싶어서 고통을 감수한거야.
나는 모든걸 다 가졌는데, 네 엄마는 점점 무너지는 걸 보는게 너무 힘들었어. 처음엔 같이 살아보려고도 했지만
감당할 수 없었지. 그래서 영국으로 이사를 간거야. 변장을 하고 비밀을 간직한 채 사는걸 택했지.'
'지난 20년간은 어떻게 된거예요? 어디에 가있었던 거죠?'
'네 엄마가 심하게 아플거라는걸 알고있었다. 불가피한 일이지. 고통속에 죽어가는 걸 차마 볼 수 없었어.'
'다 당신 잘못이예요.' 나는 경멸을 감추지 않고 말했다.
'그래야만 했어. 다 널 위해서 한 일이야. 모르겠니?'
'다 끝났어요. 난 떠날꺼예요. 내 딸 인생을 망쳐놓고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겠어요?'
'이해한다.' 할머니가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 알고는 있어라. 네가 이렇게 나올줄 알고 준비해놓은게 있다.'
'잘 있어요 할머니. 난 돌아오지 않을꺼예요.' 나는 할머니의 도자기 같은 얼굴에서 시선을 떼며 말했다.
그리고 그 날 오후 LA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탔다.
집에 도착했을때는 완전히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차의 효과는 사라졌고,
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침실 하나 짜리 집을 향해 계단을 터덜터덜 오르고 있었다.
현관 바로 앞 복도에 쓰러져있는 마약중독자를 보기 전까지는, 집에 돌아오니 참 좋다는 생각을 할뻔도 했다.
카산드라는 아빠에게 가 있었다. 새엄마인 켈시와 함께 말리부의 해변 집에 머무는 중이다.
가족들과 함께 그 집에 살 사람은 그 여자가 아니라 나인데도, 늙고 지친 채 여기에 홀로 처박혀 있다.
할머니의 집을 다시 보니 내 인생이 얼마나 쓰레기 같은지 여실히 와닿았다. 그래도 내일 아침이면 카산드라를 볼 수 있다.
딸이 그리웠다. 문을 막 열려고 할때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카산드라: 엄마 안녕. 집에 잘 도착했지? 주말 아빠 집에서 보낼께. 켈시가 말을 사줬어. 말 타보라구 나파 밸리에 데려가준대.
맘 상하지 않았으면 해. 나중에 봐 :)]
문자를 읽으니 손이 떨렸다. 카산드라는 요즘 아빠와 보내는 시간이 부쩍 많아졌다.
외로운 엄마를 남겨두고 대학으로 달아날 때가 그닥 멀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아이들이란 정말이지 빌어먹게도 빨리 자라버린다.
현관문을 여는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택배였다.
'테일러씨?' 상자를 손에 든 남자가 물었다.
'네. 전데요.'
'긴급배달건이 있어서요. 이 상자랑 냉동고예요. 냉동고는 트럭에 뒀습니다.'
할머니다. 그 비열한 노인네는 말길을 못 알아먹는다.
할머니의 전철을 밟을 생각은 없었지만, 우리엄마가 박스트럭에 실린 채 질질 끌려다니는 것도 원치 않았기에
마지못해 대꾸했다. '가지고 올라오세요.'
어떻게든 엄마를 묘지에 묻어줘야 했다.
'알겠습니다.' 남자는 계단을 내려갔다.
집 안으로 들어와 밤 사이 영국에서 날아온 상자를 살펴보았다. 열어보니 안에는 편지 한장과 똑같이 생긴 8개의
작은 찻잔이 담겨있었다, 나는 편지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테레사에게:
불미스럽게 헤어지게 되어 안타깝구나. 그래도 너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받아들이기 힘든 충격적인 사건이라는 거 이해한다.
지금 이걸 읽고있다면, 내가 냉동고를 배달했다는 것도 알겠구나. 그래, 냉동고 안에는 너희 엄마가 있다.
화가 났다면 알려주렴. 묘지에 이장하겠다. 하지만 만에 하나, 선조들의 발자취를 쫓기로 결심했다면 꼭 따라야 할 규칙이 있어.
계속 읽어가려는데 냉동고를 진 남자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이거 어디에 놓을까요?'
'저 안쪽 방에 놔주세요.'
남자는 냉동고를 들여놓고 코드를 꼽았다. 서류에 사인한 뒤 남자가 떠나자, 나머지를 읽기 시작했다.
1.아껴라. 공급을 원활히 하려면 속도를 잘 조절해야 한다. 매일을 젊은 모습으로 사는것에 중독 되어버릴 수 있으니
자제할 줄 알아야 해. 곧 이해하게 될거다.
2. 정신적 안정을 위해서, 카산드라와는 거리를 두는게 좋다. 카산드라가 진실을 모르는게 나아. 내가 수십년전에 그랬던 것처럼,
너도 이사를 가는게 좋을게다.
3. 컵을 소중히 다뤄라. 고쳐쓸수도 없게 깨져버리면 모든 것이 소멸한다.
4. 살점은 동전 크기면 충분하다. 티백은 3번 적셔라. 티백 하나로 차를 30번 우릴 수 있다. 뼈를 포함해서 어느 부위든 사용가능하니
낭비하지 않도록 해라.
5. 첫 잔은 효과가 아주 강하다.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짧은 시간에 극단적인 변화를 겪을테니 혼자 지내는게 좋을거다.
6. 비상금을 마련해라. 돈이 많이 필요할거다. 비상금은 신분을 위조하는데 사용한다. 제프리처럼 믿을만한 사람을
고용하고, 비밀을 지키는데 지장이 없게끔 충분한 급여를 지급해라.
7. 카산드라가 죽으면 네 손녀에게 반드시 이 비밀을 전해줘야 한다.
네 것을 뺀 나머지 컵을 손녀에게 주고 차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면 된다.
이 힘은 이제 네 손안에 있다.
이게 다다. 나머지는 때가 되면 알게 될꺼야. 다시 방문해주면 좋겠구나. 의논할 것이 많다. 나는 언제나 너를 환영한다는 걸
기억해라 테레사.
사랑하는 할머니 테리로부터.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내려놓고 욕실로 달려갔다. 변기를 움켜쥐고 속에 든 걸 쏟아내려 했지만 나오지 않았다.
몸을 일으켜 거울속에 비친 내 모습을 응시했다. 차의 효과가 다하니 수 년간 자행된 학대로 초췌해진 늙고 처참한
본래의 내 모습이 보였다. 20대때 즐긴 유흥에 발목을 잡혀, 모든것을 잃고 말았다.
평범한 사람들 무리에서 헤매는 그저 그런 중년여인이 되버린 것이다. 평범한 것이라면 질색인데도.
태양 아래서 구릿빛 몸을 태우며 보내던 10대 시절은 끝났다.
끝없는 공짜휴가와 날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관심을 끌기위해 선물공세를 하던 남자들도 이제는 없다.
부자에 유명인사인 사람들과 어울리며 캘리포니아 사교계를 주름잡던 나 였지만 임신을 하면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내 꿈과 함께, 몸도 망가졌다.
카산드라의 아빠는 성공한 헐리웃의 제작자로, 내가 이렇게 되자마자 날 버린 허영에 찌든 개새끼이다.
정규교육도 받지 못하고 취업할 가능성도 없던 나는 무일푼이 되어 홀로 아이를 키웠다.
몇 년 후 돌아온 남편은 딸 바보가 되어있었다.
내가 홀로 아이를 양육하느라 고군분투 하는 동안 그는 카산드라의 환심을 사려고 버릇을 망쳐놓는 짓을 일삼았다.
가난한 싱글 맘의 고충을 알지 못했던 카산드라는 아빠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원하는 건 뭐든지 다 해주는 아빠인데 왜 안그렇겠는가.
이제 카산드라는 쿨한 새엄마와 지내느라 날 보러 오는 일도 거의 없다.
그동안 나는 최저임금을 받는 쓰레기같은 일을 하며 쓰레기 같은 정부보조 아파트에서 썩어가는데 말이다.
나는 비명을 지르다가 울기 시작했다. 분노 외엔 아무것도 남지 않을때까지 울었다.
그러곤 부엌으로 가 칼을 쥐고, 천천히 침실로 향했다. 냉동고가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진짜 이 안에 있는걸까?'
심호흡을 한 후 냉동고의 문을 잡아당기자 태아처럼 몸을 웅크린 엄마가 보였다. 생각보다 쉬웠다,
나는 냉동고 문을 닫고, 벽장에서 꺼내놓은 원두 분쇄기를 찾으러 부엌으로 갔다.
할머니가 한 그대로, 살점을 갈아 가루로 만들었다.
가루를 작은 냅킨에 담아 끓는 물에 집어넣었다. 첫번째 차를 우려낸 것이다.
갈색의 액체는 고약한 냄새를 풍겼지만 나는 기대에 차 군침을 흘렸다.
'남편이 다시 날 원하게 될꺼야.'
이번엔 그의 삶이 망가질 차례다.
나는 자리에 앉아 엄마에게 감사인사를 한 후, 차를 들이켰다.
첫댓글 아... 나라면 못한다... 여시 잘봤어!! 존잼이다!! 이거 이어지는거야?
원문 들어가봤는데 단편인거 같애!
와 미쳤다 진짜 미쳤어...설마설마하면서 봐쓴ㄴ데 충격적이여...0
와....잘봤어 여시야 흥미진진하다......
워.....존잼이다
와후.....
와 재밌다.....
와.. 진짜 충격적이고 흥미롭고... 어떻게 이런 스토리를 썼을까... 너무너무 충격적이고 재밌다 글 올려줘서 정말 고마워ㅠㅠㅜ
헐 정말 재밌다
워 개재밌어...
와 흥미롭다 잘 봤어 여샤 이런 글 좋아
와 넘 재밌아!!!!!!!
와 재밌다..
장편소설로 보고싶다
넘끔찍하다 잘봤어
잘 봤어 여샤!!!
와... 진짜 흥미진진하다 잘 봤어!
와 미쳤다 잘봤어!!!!
와 진짜 발상 대박이다 나라면 어떨까....
진짜 충격적인데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