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이나 이념이거나 철학이거나 상수원리의 역경이 거나
우주의 원대한 운동과 변화의 원리이거나
우리는 한 포기의 풀 하나의 생명성 운동의 위대함에 대하여
단 한발자욱도 못 나갔다.
1961년 우주변화의 원리를 발표하고 책을 저술한 한동석 박사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결국 생명에 대한 창조를 하신 분이 누구신지는 모르지만
위대하다.
그런데 생명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정신 인데
정신이란 무엇인가. 또한 어떠한 작용을 하는 것인가 ? 와
조물주란 과연 인격적인 존재일까?
그렇지 않으면 우주를 움직이는 자연 자체일까 하는 것과 같은 문제는
인류문화에서 최대 최고의 숙제 인 것이다.
그런데 문화의 추축(樞軸)을 이루는 철학의 연구에 있어서
마치 이 문제는 유일한 神 (즉 하나님과 같은 것) 만이 알 수 있으며
또한 주제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함으로서 인간정신의 연구 분야에서
신 의 분야로 양도하여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것이 정신을 전제로 하고 연구하는 것이 오늘날의 철학의 경향이다.
물론 과거나 현재에 있어서 이 문제에 대하여 매력을 느끼지 않고
지나간 철인은 단 한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매력의 문을 열어낸 사람은 아주 적었던 것 같다.
물론 이것은 역대의 성철(聖哲: 성인의 말씀을 상세하게 연구하는)
들이 유의이불언 (有意而不言:뜻은 있었으나 말을 하지 않음)
유술이요간(有術而要簡: 간단하게 그저 편지쓰는 것처럼 술회하는 방법)
하였던 곳이므로 다만 우주의 신비로 전해졌을 뿐이다."
한동석 박사는 동양철학자 인데 상수원리에 도통 하였는데.
우주의 원리를 나름 철저하게 형이하 형이상 의 이치를 가지고
생명운동을 연구 한 분이시다.
또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원자세계의 운동에서 에너지를 창조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우주가 정신을 창조하는
과정과 아주 같은 것이다.
거기에서 오인은 원자가 우주의 최소단위이기 때문에 그의 운동 전모가
우주와 꼭 같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공자는 천도운행의 원리를 근취제신(近取諸身)이라고 했지만
오늘에 와서는 근취원자 하라고 하는 것이 더둑 타당하다고 할 만도 한 것이다.
중략
그런즉
핵융합반응은 탄소에 의해 결합됨으로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이것은 상수 원리에서 (대자연정수) 보면 음토(지구를 보면 축 미 토를 음이라
하고 사람을 보면 음양으로 여성이 아이를 낳는 과정)
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즉 중성자와 탄소는 음양 2 토에 불과 한것이다.
(음 중성자 양 의 삼수운동을 말함, 중성자는 음 과 양을 잡고 있는데
음양은 이 모탈을 벗어나지 못하고 빙글 빙글 돈다는 것인데
모순으로 음과 양의 비중이나 무게가 같지 않아 비중이 강한쪽으로 움직이게
하는 원리)
따라서 헬륨(수소가 합성하게되면 임게치를 넘어 변화하는 물성의 화학구조로는
응집되어지는 변이되어 지는 현상)
핵의 융합이 상화(相火: 서로 비춘다) 와 동일한 것인즉
만일 이후로 원자물리학이 이 방면에 대한 실험과 아울러 동양철학의 상수원리
에서 그의 철학적인 발판을 얻으면서 발전한다고 하면 , 수소핵의 융합반응에
의해서 수소폭탄을 만드는 데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에너지를 완전 융합시키게
됨으로써 수명의 연장이나 무한동력과 같은 것을 발견 하게 될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상수원리에 대하여 이 책한권을 다 이해해야 하고 다분한 설명이 필요 하겠지만
이를 약하기로 하고 , 당시 나는 당시 지옥에 갔다가 (감방) 금방 나올 당시
그 안에서 지낸 공간에서 성인들의 말씀에 대하여 어리석은 도면을 그린 적이
있었는데 1995년 7 월 경 동인천 주변 큰 서점에서 이 책을 구입하게 된 사실이
있었다.
비판:
한동석 박사는 생명의 원인에 대하여는 설명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불교의 이치와 마음작용에 대하여 전모를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빛의 동시적인 작용의 운영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했다.
단지 미분적에 더 취우쳐서 합리화 시키는 생명운동의 작용 과정을 아주 세밀하고 정확하게 그 철학적으로 풀어낸 유일한 사람이라고 나는 발견 할 수 있었다.
나는 스스로 자인 하는 것은 성인들에 대한 탐구와 그 진리에 대하여 접근하고자 하는
철저한 치열한 시간을 가진 경험이 있었기에 ,미급하지만 성철의 의미로서 세상과 한판을 벌이자고 한 것인데, 생명의 원인과 생명의 운동관계는 성인의 말씀에 의하면 그것은 동일해야한다, 그러므로 한동석 박사의 이러한 언급에는
생명과 생명운동에 대한 격차가 주어지므로 동의 할 수가 없었다.
단지 무한동력에 대하여 언급한 사실에 대하여 아주 정확한 예언을 했다는
것에 대하여 그분을 높이 평가하고 동경하게 되었다.
그것은 0 의 이론으로 상수학의 원리를 관통했다는 점인데
그 이론이 너무나 정직하다는 사실에 대하여 일말의 의심이 없었다.
나는 당시 한 박사이 말처럼 유의이불언 상태였다
이치는 보았으나 용기도 없었고 생활력이 부재인지라 입안에서만 흘러가는
소리로 웅얼거릴뿐이였다.
한동석 박사의 이 충격적인 주장은 나에게 힘과 용기가 부재 했다는 것을
일깨워준 동력이 되었음은 부인할 수가 없었다.
까짓거 죽기밖에 더 하겠는가 라고 마음을 다져 먹은 적이 있었다.
또한 한박사는 우리나라의 유일무이한 천부경의 맥을 이어가는 대순진리교의
상생철학의 교리를 추앙하는 것을 보고, 종교적인 관점도 지니고 있음을
발견하고 관심을 가질 수 가 있었다.
왜 이러한 글을 소개 하는 가 하며는
무한동력이라는 무한하게 생명이 변화 하며 유지하는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인의 말씀에 대하여 이에 해야 한다.
과학적인 고찰이나 실험을 통하는 소재 분석과 통계치로서는 집안의 기둥하나를
가지고 집안윤곽을 알려고 하는 것과 같다.
장인이 기둥을 만지면 코끼리 다리라고 할 수 도 있으며 , 나무라는 입장만 고수
할 뿐인 각해만 쏟아낸다.
하지만 성인들께서는 우주를 보았다는 사실이다.
우주를 보게된다면 .... 인간들은 절대 우주를 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원근감을 볼 수 없으므로 정신이라는 형이상학적 개념에
의미는 모르고 겉다리에 치장하고 있을 뿐이다.
집 전체를 보고 기둥하나를 논 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인의 말씀을 접근 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과학으로 무한한 생명의
이치가 운동하는 면면 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인간은 절대로 우주를 창조 할 수가 없다
오로지 발견해야 한다,
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정신이라 함은 빛 보다 빠르다, 시간과 공간의 장애를 받지 않는다
그러면 정신은 빛과 다른가?
아니다 같다.
이런 명제를 확보하지 않으면 생명의 원인과 생명운동을 분리해서
자꾸 격을 주고 생각하는 한계점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왜 생각이라는 것이 빛 보다 빠르며 동시적인가 를 보아야 한다.
같은 빛인데 말이다.
빛과 생각이 같다는 정의를 낸 사람은 없다.
오로지 성인들께서 이러한 정의를 확연하게 보시고 이미 다 아신다.
그러므로 경전을 공부해야 만
과학도 들도 일보 전진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과학도가 물리체게로 빛의 운동을 다 파악하고 안다 하여도
정신체게를 모르면 절대로 무한 동력을 만들 수가 없다
만든다 하더라도 실패한다
마음의 깜냥이 우주의 바운다리인 빛의 정체를 알지 못하기에
만들자 말자 죽어버리거나 심장이터져 죽을 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마음은 태양하나쯤은 쉽게 만들수 있다
하지만 태양은 우리들의 마음을 절대로 만들 수가 없는 것과 같다
보편인들에게 황금을 안방가득 쌓을 정도 로 갖다 주면 얼마나 큰 부자가
되겠는가? 그렇게 수량학적으로 계산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황금을 가지게 된 사람은 몇년이 안되어 죽어버린다.
이 이치를 알아야 한다.
심장운동이 적응하지 못해서 그러하다.
우리가 무엇을 기준하여 정오를 12 시라고 수량으로 표시하였는가?
12 시가 기준이 된 수치의 개념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개념을 벌리면 규칙은 서지만 끝 간데 없이 현란한 충동과
이해관계가 맞물려 돌아간다.
나는 시간에 대하여 약속한 바가 없다.
시간에 구속되어서는 절대 빛을 보지 못한다.
그런데 빛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관성력에 대하여서 운동성 규칙은 동일하다
그 차이점은 무엇인가를 보아야 한다.
이를 볼때 에는 항상 성인들의 말씀이 곁에 함께 하시는 것은 명확하다
이게 무서운 것이다. 이게 엄정한 것이므로
우리는 성인들께 머리를 숙이고 그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
성인들에게 꼬리를 바짝 내려야만 인간은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 해야만 한다.
무한 동력이란 성인들게서 바라볼때에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미 그렇게 만들어 놓고 세상을 작용시키기 때문이다.
생명이 무한하게 굴러가는 성인의 말씀에 대하여 믿고 지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