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은 어디일까요?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세상의 끝입니다. 왜냐하면 지구가 둥글기 때문이지요. 가다, 가다 보면 서 있던 그 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끝을 찾아갈 필요는 없습니다. 이론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정서로는 그렇지 않지요. 무언가 보다 낯설고 이상하고 신비하고 아름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할 수 있는 그런 곳을 상상합니다. 가보지 못한 곳을 생각합니다. 처음 보는 곳을 그려봅니다. 호기심이 일어나고 보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단순히 여행을 꿈꿀 수도 있지만 좀 더 용기를 가진 사람은 모험을 상상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뭔가 색다른 대상들이 나타날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어찌 보면 숙제를 내준 선생님이야말로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싶습니다. 어떻게 아이들에게 그런 과제를 내줄 수 있을까요? ‘세상의 끝’을 찍어 오라고요. 그만한 상상력이 있어야 그만한 과제를 내줄 수 있습니다. 이제 겨우 중학교 1학년 학생들입니다. 그만큼 뛰어난 아니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남다른 상상력에 어른들이 눈을 똥그랗게 뜨는 경우도 많습니다. 물론 기막힌 사실 표현에 배꼽이 틀어지도록 웃기는 우문현답도 있습니다. 인터넷에 초등학생의 시험답안지를 올린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수에 4를 더했더니 1이 되었다. 어떤 경우인가?’ 어떤 대답이 나왔으리라 상상합니까? 학생의 답은 이러했습니다. ‘어이없는 경우.’ 참으로 대단하지 않습니까?
아무튼 과제를 받은 네 학생이 모여서 의논하고 결론을 내립니다. 1호선 지하철 끝으로 가보자는 것이지요. ‘신창역’입니다. 그런 역도 있나?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가보지 않은 사람이 많을 테니 말입니다. 가봐야 할 일이 없지요. 어르신들 한창 ‘온양’으로 많이 왕래하셨습니다. 돈 1만원이면 하루 소풍으로는 끝내주니까요. 전철이야 무임승차이니 점심과 목욕비만 있으면 되었습니다. 요즘은 처음보다 좀 시들해졌는지 모르지만 아직도 서늘한 계절에는 꽤 인기 있는 하루 여행길로 알고 있습니다. 온양에서 바로 다음 역이 신창입니다. 아이들도 전철 안내도를 보고 결정한 장소입니다.
어디인지도 어떤 곳인지도 누구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 끝’이라고 하였으니 전철역의 끝이라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서 결정한 듯합니다. 여태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곳으로 가야 그래도 세상 끝과 조금이라도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어린 학생들이니 여행경비가 많은 드는 곳을 택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자기들의 힘으로 가능한 곳을 선정했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리고 떠납니다. 계절도 여름이니 간단한 차림으로 각자 가방 하나씩 둘러매고 떠납니다. 그렇다 해도 짧지 않은 거리입니다. 반쯤 가면 전철 안도 비교적 한산합니다. 자리에 앉아서들 떠들다 자다가 종착역까지 옵니다. 내리기는 했는데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릅니다.
그곳 마을버스를 타고 또 어디엔가 까지 들어갑니다. 목적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끝’이라 생각할 수 있는 곳까지 가보자는 심사였을 것입니다. 완전 전형적인 시골입니다. 좌우에 논이 펼쳐져 있습니다. 어디인지도 모르는 길을 그냥 갑니다. 그러면서도 이곳저곳 연신 사진을 찍습니다. 과연 여기가 끝인가? 이것이 끝인가? 풍경도 있고 자기들도 있고, 이것도 담아보고 저것도 담아봅니다. 어쩌면 끝과는 무관하게 그냥 이상하다 또는 좀 색다르다 싶으면 카메라에 담아보는 것이겠지요. 사실 누가 끝을 본 사람이 있습니까? 누구도 보았을 수 있고 아무도 본 적이 없을 수도 있는 것이 ‘끝’ 아닌가요? 이것이 끝이다 한들 이론을 제기할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재잘재잘 쉴 새 없이 재잘댑니다. 아이들의 특징이지요. 나아가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을 잊을 수 있습니다. 일단 혼자가 아니니 두려움은 적을 것입니다. 그래도 각자 마음 한 구석에 두려움은 숨어있으리라 짐작합니다. 갑작스럽게 비가 쏟아져도 아이들에게는 장난의 도구가 됩니다. 아이들에게는 세상 자체가 놀이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또 그래야 세상을 보다 가깝게 배울 수도 있습니다. 도로 신창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버스는 끊어진 모양입니다. 워낙 인구가 적은 곳이니 자주 다닐 필요가 없겠지요. 아이들을 위해 따로 마련해둘 수도 없고 아이들이 갑자기 나타난 것도 모릅니다. 다행히 마을회관이 빈 채로 열려있어 하룻밤 지냅니다.
짧은 인생이지만 나름 경험한 것들을 나누면서 밤이 깊어갑니다. 늦도록 이야기하다가 잠이 들지요. 다시 아침이 옵니다. 부스스 일어난 아이는 방문 입구로 가서 다시 카메라로 바깥 풍경을 담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 부모는 없는가? 걱정도 안 되나? 낯선 곳에서의 하룻밤을 허락받은 것인가? 특히 여학생들인데 그들만의 여행을 쉽게 허락하였는가? 현실과 좀 동떨어진 상황은 아닌가? 주제는 들어오는데 설정된 상황은 용납해주기 쉽지 않네요. 영화 ‘종착역’(Short Vacation)을 보았습니다. 영어 제목보다는 우리말 제목이 더 마음에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