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31(월)■
(사도행전 23장)
12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13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14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15 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물어보려는 척하면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하더니
16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내에 들어가 바울에게 알린지라
17 바울이 한 백부장을 청하여 이르되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로 인도하라 그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 하니
18 천부장에게로 데리고 가서 이르되 죄수 바울이 나를 불러 이 청년이 당신께 할 말이 있다 하여 데리고 가기를 청하더이다 하매
19 천부장이 그의 손을 잡고 물러가서 조용히 묻되 내게 할 말이 무엇이냐
20 대답하되 유대인들이 공모하기를 그들이 바울에 대하여 더 자세한 것을 묻기 위함이라 하고 내일 그를 데리고 공회로 내려오기를 당신께 청하자 하였으니
21 당신은 그들의 청함을 따르지 마옵소서 그들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 사십여 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지금 다 준비하고 당신의 허락만 기다리나이다 하니
22 이에 천부장이 청년을 보내며 경계하되 이 일을 내게 알렸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고
23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24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25 또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일렀으되
26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께 문안하나이다
27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들어 알고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
28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알고자 하여 그들의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29 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30 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려 주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고발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에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 하였더라
31 보병이 명을 받은 대로 밤에 바울을 데리고 안디바드리에 이르러
32 이튿날 기병으로 바울을 호송하게 하고 영내로 돌아가니라
33 그들이 가이사랴에 들어가서 편지를 총독에게 드리고 바울을 그 앞에 세우니
34 총독이 읽고 바울더러 어느 영지 사람이냐 물어 길리기아 사람인 줄 알고
35 이르되 너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 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니라
(묵상/행 23:12-35)
◆ 헛된 맹세와 헛된 열정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12)
바울을 죽이기 위해서 맹세한 자가 무려 40여 명이나 되었다. 이들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겠다고 했다. 대단한 결심이며 목숨을 건 헌신이다. 그러나 얼마나 무모한 열정이며 얼마나 헛된 헌신인가?
나름대로는 하나님을 위한 열정이며 헌신이지만, 실상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이다. 사실 바울도 과거에 이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바울은 이와 같은 자들의 열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 10:2)
오늘날에도 대단한 열정으로 봉사하고, 헌신하는 듯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자들이 수두룩하다. 열정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가 훌륭한 신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올바른 지식을 가지지 못한 자는 나름대로는 하나님을 위한다고 열심을 내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들의 열심이 하나님 나라에 큰 해를 끼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석가탄신일에 조계사 앞에서 마이크 들고 전도하는 자들은, 그 반대로 우리가 예배드릴 때 교회당 앞에서 불경을 크게 외우고 목탁 소리가 나는 것을 감수할 각오가 되어있을까? 하나님 나라와 세속국가를 혼동한 무지의 결과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지만, 올바른 지식을 따르지 않고 있다.
이들의 열정 이면에는 자기 야망, 자기 자랑으로 가득 차 있다. 겉으로는 예수님을 위하고 있지만, 그의 근본 사상은 자기 과시이며, 자기 영광 추구다. 그들은 감히 하나님 앞에서 생색 내며, 신자들에게 자신의 영웅적인 행위를 쉬지 않고 자랑한다. 이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정말 대단해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한 사람이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희생이 얼마나 엄청난지를 안다면, 우주같이 광대한 십자가의 사랑과 희생 앞에서 코딱지보다도 작은 자기의 수고를 그렇게 떠들어 댈 수 없을 것이다.
천부장은 바울을 죽이고자 하는 음모를 전해 듣고 무려 470명이나 되는 군사를 동원하여 바울을 호송하기로 한다.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하였지만 고작 40여 명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과연 그들은 맹세한대로 굶어죽었을까?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다. 그들은 헛맹세한 셈이 되었고,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한 것이 되었다.
이들을 보면서 맹세라는 것은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교훈 받는다. 내가 아무리 진실하게 맹세해도 환경 때문에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오직 하나님만이 맹세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을 온전히 지키실 수 있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다(마 5:34). 더구나 그것이 남을 해치고자 하는 악한 맹세라면 더더욱 금해야 할 것이다.
◆ 천부장의 도움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알고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27)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당시 총독 벨릭스에게 바울을 호송하여 보내면서 자신의 편지를 썼다.
그런데 그 편지를 살펴보면 흥미롭다. 그는 바울을 보호한 이유가 그가 로마 사람이기 때문임을 밝힌다. 천부장은 자신이 많은 돈을 들여서 로마시민권을 얻은 자(행 22:38)인 데 반해 바울은 태어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고 바울을 매우 존중했다.
사실 그가 공정한 사람이라면 바울이 로마 사람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올바른 재판을 위해 보호해야 했다. 그런데 천부장이 벨릭스 총독에게 이런 편지를 쓴 것은 자신이 얼마나 로마에 충성하는지를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가 '하나님의 뜻'이라면, 세상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는 '생색'이다. 이것을 잘 이해하면 우리가 세상을 훨씬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 가이사랴에 갇힘
"그들이 가이사랴에 들어가서 편지를 총독에게 드리고 바울을 그 앞에 세우니"(33)
바울은 마침내 가이사랴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여기에서 2년 정도 머무르게 된다. 이 시기가 대략 AD 58-60이다. 그 이후는 로마로 옮겨져서 3년을 더 감옥 생활을 하게 된다. 바울같이 유능한 사람을 5년이나 감옥에 묵혀두시는 하나님의 처사가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회사 경영 입장에서 보면 사람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무능한 관리자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과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다(사 55:8).
바울은 감옥에 있는 동안 왕과 총독들 앞에서 재판을 받으면서 그들에게 자신의 간증과 더불어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는다. 평소라면 결코 만날 수 없는 신분들이다. 그리고 5년간의 감옥 생활에서 옥중서신인 골로새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빌레몬서등을 기록한다. 감옥 생활을 수년간 지속한 상황에서 기록된 빌립보서의 한 구절을 살펴보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Rejoice in the Lord alway: and again I say, Rejoice.(KJV)"(빌 4:4)
바울은 수 년간의 감옥이라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형제들에게 기뻐하라고 권하고 있으며, 자신도 기쁨을 잃지 않고 있다. 이런 바울을 상상할 때마다 큰 감동이 온다. 우리는 신앙을 어떤 봉사나 헌신으로 규정하기를 좋아하지만, 진짜 신앙은 바로 이런 것이다. 주 안에서 기뻐하는 것!
주님,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묵상하는 가운데 기쁨을 잃지 않게 해주시고, 바울처럼 꿋꿋이 맡겨진 사명을 다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