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루
내가 사는 이 곳, 사방이 산으로 둘러 싸인 도심 속 전원 현천동. 광화문이 차로 30분 거리. 그러나 주소는 경기도. 거듭 말하지만 일찍 자므로 일찍 일어난다.
완벽한 시골 출신답게 저녁 8시만 넘으면 머리가 뚝, 뚝 떨어져 정신을 차리려고 눈을 부릅뜨면 남편이(아직 내 이름을 부른다) "정연아, 다크써클이 세겹이야. 그러다 수리부엉이 되겠스..zz" 아무리 남편이라지만 부끄러워 화롯불을 뒤집어 쓴 것 같다.
잠이 확 깨는 것도 잠시,
말없이 장렬히 전사하면 차례대로 픽픽 쓰러져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남편의 코고는 소리를 자장가로 착각하며 16년 째 살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커피 내리기. 그 담엔 에버랜드 호랑이처럼 어슬렁거리며 혼자 놀기가 시작된다.
3시간 정도를 그렇게 놀고 6시 30분 신문이 오면서 식구들이 하나 둘씩 일어난다. 밥상을 이마에 맞추어 남편께 정중히 올리고(?), 중2 된 큰딸 1번 타자로 학교 내보내고, 그 담은 초5 된 둘째아들, 마지막으로 남편과 유치원생 막내딸 운전기사 노릇하며 안전히 모시고 나면 9시 30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실수로 백미러 못 보고 차선 변경했다. 화난 뒷 차 아저씨, 여자가 집에서 밥이나 하지 안그래도 막히는
출근길에 아침부터 나와서 차 막히게 한다고 난리다.
"저... 밥하려고 쌀 사러 나왔는데... 죄송함다..." 미모에 넘어갔을까? 픽 웃고 기냥 간다. 역시 이쁘고 봐야 돼. ㅎㅎ 집으로 돌아온 나는 뒤꼍에 걸어놓은 가마솥 기름칠하고,
닭 모이주고, 밭 일구고... 헐떡헐떡...
풍기에서도 안 해본 농사 지으려니 허리가 휜다.
그 밭일은 기껏해야 우리 먹을 텃밭 수준이지만 내게는 엄청난 노동이다.
그래도 내 식구 친환경으로 먹일 일념 하나로 구슬땀을 흘린다.
하지만 식단은 단조롭다 못해 빈약하다.
된장찌개, 무말랭이, 깻잎, 고들빼기...그야말로 웰빙 그 자체다. 이쯤에서 다들 궁금해할 남편 이야기를 하겠다.
나이는 궁합도 안 본다는 4살 차이. 나의 못다 이룬 꿈이 사무쳐서일까?
가방 끈 긴 남편을 만났다. 서울대 천연물 과학 연구소에서 근무하다
박사 졸업하고 얼마 전 경제적인 이유로 프리랜서를 선언했다.
사업을 시작한거다. 일의 내용은 건강기능식품 소재 연구 개발 및 컨설팅이다.
그러나 사업은 뒷전인 것 같고, 뒤꼍에서 가마솥에 불 때는 걸 업으로 삼는 것 같다. ㅋ. 가마솥에 보리차도 끓이고, 돼지 등뼈도 삶고, 두부도 해 먹고,
겨울밤에는 고구마, 감자도 구워 먹는다. 참고로 남편의 고향은 서울이다.ㅋ.
가마솥에 불 때면서 불이 춤을 춘다나? 나보고 불그림을 그려 보라고
예사롭지 않은 눈빛으로 진지하게 말한다.
어떤 날은 불이 웃고, 어떤 날은 불이 슬퍼 보인다고... 제 정신인지 원...
하지만 그런 남편을 나는 무척 사랑한다. 겉과 속이 똑같은 남편,
그게 우리 남편의 가장 큰 장점이다. 아이들 이야기는 다음에 하도록 하자.
이렇게 우리 가족 다섯은 서로 사랑하며 나름 소박하게 살고 있다.
저녁상 차릴 때 뒤꼍에 심어 놓은 파 안 뽑아 오려고 서로 미루면서 말이지...
막내 희재가 우리집 대표로 얼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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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정연 후배는 이영란 친구의 망내동생입니더.. 글도 참 잘 쓰지요? 집안내력인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