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에 부는 '2인극' 바람
제작자는 20~30% 비용 절감 배우는 연기력 검증에 활용…능력 달릴 땐 밀도감 확 떨어져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쓰릴미', 연극 '경남 창녕군 길곡면''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 '웃음의 대학'….
등장 배우가 둘뿐인 2인극들이 무대로 쏟아져나온다. '인간' '추적' '거미 여인의 키스' 등 최근 막을 내렸거나 준비 중인 작품까지 합치면 10편이 넘을 만큼 붐이다. 2인극은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는 요즘 공연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이다. 서울 대학로의 한 공연기획자는 "2인극은 배우들이 여럿 등장하는 보통 공연보다 20~30%의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제작비 거품을 빼기 위한 시도라는 것이다. 하지만 400회를 돌파하며 9만 관객을 모은 '쓰릴미', 서울 강북·강남에서 동시 공연할 정도로 흥행 중인 코미디 '웃음의 대학'처럼 작품성을 검증받은 2인극도 늘고 있다.
- ▲ 2인극의 흥행 모델이 된 뮤지컬‘쓰릴미’. 두 남자와 피아노 반주만으로 무대를 채우는데 심리묘사가 치밀하다. /뮤지컬해븐 제공
7월 7일 대학로 정보소극장에서 앙코르 무대를 여는 연극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김숙종 작·최용훈 연출)은 백과사전을 파는 외판원이 화장실이 급해 만화가의 집에 들어오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후반부에 스릴러로 급회전하는데, 두 배우의 몰입과 호흡이 좋다.
7월 13일부터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초연하는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는 개막하기도 전에 표가 1만장 가까이 팔려서 주목받고 있다. 류정한·이석준·신성록 등 출연진의 티켓 파워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연출을 맡은 신춘수는 "서정적인 멜로디로 두 남자의 우정과 인생을 그릴 것"이라고 했다.
프랑스 인기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희곡도 2인극으로 만날 수 있다. 7월 3일부터 충무아트홀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인간'(연출 김동연)은 멸망한 지구에서 마지막까지 남은 남녀를 들여다본다. 두 사람이 인류를 멸종시킬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흥미롭다.
- ▲ 뮤지컬‘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오디뮤지컬컴퍼니 제공
"대화를 주고받는 게 연극의 본질이라면 2인극은 그 최소 단위예요. 공연이 인물 중심으로 굴러가기 때문에 배우가 더욱 중요합니다. 연기력이 있다면 밀도감이 좋을 테지만, 반대의 경우는 구멍이 더 커 보이겠지요."
연극열전 시리즈의 하나로 '경남 창녕군 길곡면'(7월 30일부터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을 연출하는 류주연의 말이다. 연극평론가 김명화도 "2인극은 실내악 같은 정교함이 있을 때 빛난다"고 했다.
5000만원으로 배우 5명을 쓰는 소극장 공연(1개월)을 할 경우 출연료로 보통 1000만원이 들어간다. 축소지향의 2인극이 증가하는 건 그 인건비를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한 연출가는 "최근 2인극 붐은 연기력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배우들의 욕망과 내핍(耐乏)이 필요한 제작자의 이해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라면서 "하지만 능력이 달리는 배우가 2인극에 도전하는 건 관객에 대한 모독"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001년 대학로에서 시작된 '2인극 페스티벌'은 올해 10주년을 맞아 오는 9~10월에 2인극 스무 편을 모아 큰 잔치판을 벌인다. 이 축제를 기획한 김현 한강아트컴퍼니 대표는 "2인극의 성패는 두 배우의 몰입·호흡·균형에 달려있다"면서 "연극의 기본인 배우예술을 강조하면서 '경남 창녕군 길곡면'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 등 수작(秀作)을 여럿 배출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