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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 오강원, 이성주, 박진일, 김일규
- 발행일 : 2019.12.24.
- 판 형 : 46배판
- 페이지 : 184쪽
차례
초기 철기시대 중국 동북 지역 장각두형토기의 출현과 확산 배경 / 오강원
1. 머리말
2. 초기 철기시대 물질문화 속의 두·두형토기와 형식 분류
3. 장각두형토기 출현과 확산의 문화적 맥락과 배경
4. 맺음말
철기시대 중부지방 타날문토기 제작기술의 수용과 전개 / 이성주
1. 머리말
2. 물레질-타날법의 수용과 전승의 문제
3. 초기 물레질-타날법의 수용
4. 중부지방 물레질-타날법의 수용과 변천
5. 맺음말
전기 와질토기의 변한 지역 출현과 확산 과정 / 박진일
1. 머리말
2. 금호강 하류역에서 와질토기의 등장
3. 변한 지역 주요 목관묘의 전기 와질토기
4. 전기 와질토기의 변한 확산 과정
5. 맺음말
2~3세기 영남 지역 토기문화의 변동과 지역적 양상 / 김일규
1. 머리말
2. 신식와질토기의 출현과 전개
3. 일상토기(적갈색 연질토기)의 검토
4. 맺음말
인간생활의 상당 부분은 식량과 음식을 구하고 조달하기 위한 활동에 할애된다. 어쩌면 식량과 음식을 획득하고 나누고 소비하기 위해 인간 개개인의 삶이 조직되고 사회적인 틀이 형성되며 역사가 만들어져 왔다고 볼 수도 있다. 음식을 조달하고 소비할 때 중요하게 사용되는 기물이 바로 토기이다. 토기는 식량과 음식을 저장하고 나르며, 임시로 두었다가 조리하여 식사 때 담아내는데 사용된다. 물론 제사 음식을 바쳐 올릴 때도 쓰이고, 무덤을 축조하여 장례를 치를 때도 식량과 음식을 담아낼 때 토기를 사용한다. 고고학에서 토기를 인간사를 복원할 때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고고학에서 유적을 발굴 조사할 때 가장 많이 출토되는 유물이 바로 토기이다. 토기의 중요성은 선사시대로 올라갈수록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고고학자들은 다양한 시각과 연구 방법으로 토기를 분석하고자 한다. 그간 고고학에서는 토기가 시기와 지역에 따라 어떤 변화를 보이고 있는지 면밀하게 살피는 것을 통해 그것이 인간의 삶이 어떻게 꾸려져 왔는지, 나아가 인간 개개인의 삶이 모여 만들어진 사회와 문화의 변동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사색해 왔다. 사회문화 변동과 직접 연결되기 전의 토기는 그것과 관련된 식량과 음식의 저장, 운반, 조리, 식사, 제의의 행위와 연관되어 변화를 보였을 것이다.
토기는 점토의 선택과 성형 기법, 가마 사용 여부나 요법에 따라 그릇의 질감과 모양과 형태가 결정된다. 그렇다고 해서 고고학자들이 토기를 연구할 때, 토기 개별 유물의 제작 방식과 사용 방식, 토기유물군의 변이에 대해 단순한 현상적인 설명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고고학에서 토기를 현상을 단순 설명하는데만 그치고 있다면, 그것은 토기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이루어졌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고고학에서는 심지어 토기의 변이를 제작 기술의 차이에 초점을 두고 분석할 때도, 토기의 사용법과 사회문화적 맥락과 연결지어 해석하려고 노력하고, 또 그래야 할 것이다.
동북아시아 일원이 철기시대로 접어들 무렵부터 역사학계에서 관습적으로 ‘중원’ 지역이라고 부르고 있는 중국 내지의 토기 제작 기술이 주변 사회로 어떤 경우에는 빠르게, 또 다른 경우에는 다소 느슨하면서도 완만한 속도로 점차 확산되었다. 기술적인 차원에서 이 변화는 사립이 포함되지 않은 점토질의 태토, 물레질과 타날법이 구사된 성형 기술, 그리고 연소실과 소성실이 분리된 가마를 사용한 소성법 등으로 요약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토기의 기능적 분화, 즉 기종 구성의 차원에서 보면 타날문단경호·원저옹·분형토기·두형토기 등과 같은 새로운 그릇 종류의 등장을 의미한다.
이때 다양한 방식의 기술의 혼합과 선택의 과정이 진행되었고, 이와 동시에 토착 사회의 도공들이 자신들의 사회에 새롭게 유입된 토기 제작 관련 신기술을 습득하여 새로운 형태와 질의 그릇을 생산하거나, 또는 아예 신기종을 채용하여 전통적인 기술로 제작하였다. 새로운 기술은 신기종의 제작에도 적용되었지만, 전통적인 기종을 신기술로 만들어 그릇의 형태와 질감이 크게 달라지기도 했다. 예를 들어, 남한의 주머니호와 파수부장경호의 와질화는 타날문단경호의 제작을 통해 유입된 타날문 회도 제작 기술이 전통적 무문토기 기종의 제작으로 확장된 사례에 해당된다.
우리 역사에서 철기시대는 다른 어떤 시대보다도 토착 사회에서 그릇의 종류가 크게 변화된 시대였다. 이 시대에 발생한 변화는 그 이전 시대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급속하면서도 획기적이었다. 저장·조리· 운반·식사에 무언가 중요한 변화가 있어서인지, 파수부호·옹형토기·시루·두형토기 등과 같이 종전의 무문토기에서는 없었던 기종들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이러한 기종들은 철기시대에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철기시대부터 본격화된 이 기종들은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제작기술을 달리하면서 계속적으로 생산되어 한국 토기문화의 주요하면서도 지속적인 전통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토기들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거시적으로 볼 때, 처음에는 무문토기질로 제작되다 일부 지역에서는 일찍부터 물레질-타날법이 동원되고, 일부 지역에서는 질적인 차이를 보여 와질, 또는 적색연질과 도질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은 그릇 종류의 형태, 제작 기술, 그리고 사회문화적 맥락이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반도를 포함하여 고대 우리 민족이 활동하였던 지역 범위 전체를 고려할 때, 토기의 제작 및 사용과 관련하여 전승되는 문화적인 전통이 지역의 사회문화적 여건에 따라 변용되어 되어 간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간의 철기시대부터 원삼국시대에 이르는 토기유물군의 연구는 지역 단위의 접근이었다. 주로 한반도 동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삼각형점토대토기에서 고식 와질토기를 거쳐 신식 와질토기가 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지역 단위의 변화로 파악하려 했다. 그러나 토기의 생산과 사용의 문제를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파악하고자 한 공동연구는 거의 없었다. 지역-간 비교 또한 남한 특정 지역의 토기를 주변 지역의 인상적인 사례와 단순 연결시키는 정도에 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와질토기의 기원이나 지역-간 교류 관계를 단순 기술 전파의 문제로 국한시켜 논의되는 등 연구의 관점이 제한되어 있었다.
진·변한 와질토기의 기술적 기원이 전국계 토기 제작 전통에서 찾을 수 있고, 낙랑의 토기 제작 기술도 같은 시대 서한의 기술이 아닌 전국연 또는 그에 기원을 두고 있는 기술 전통이라는 점이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와질토기 출현에 대한 주장들을 전국계토기 영향설과 낙랑토기 영향설로 나누어 보려는 의견이 제시된 바 있다. 또한 진·변한 지역 도질토기의 기원을 동한의 청자나 월주요의 자기 생산과 직접 연결시켜 해석한 견해도 있다. 물론 이러한 기존 연구가 시각과 연구 방법에서 그 이전 단계의 관련 연구를 진작시키고 확장시키는 훌륭한 선국적 계기였음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들은 지역-간 교류의 문제를 단순 전파에만 초점을 맞추어 해석을 도출해낸 관점들에 속한다. 기원전 300년 즈음 요령 지역으로 철기문화와 함께 타날문 회도 기술이 들어오고 지역적 확산 과정을 거치는데, 이 과정에서 이주 도공의 제작 기술이 전수되고, 여러 지역의 토착 공인의 모방 시도가 이어지며 토착 기종에 신기종이 추가되거나 융합되고 선택되는 등의 과정이 있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시차를 두고 공간적으로 확장되면서 당연히 여러 지역의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되었을 것이고, 실제로 조사 사례와 정보가 공개될수록 이러한 과정이 단순하지 않았음이 드러나고 있다.
이 공동연구는 애초 철기시대부터 역사시대 초기까지 동북아의 여러 지역 별로 토기유물군의 변화를 다양한 연구 관점에서 분석하고 해석하기 위해 구성되어졌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토기의 기종 구성과 제작 기술의 변화는 지역-간·문화-간의 다양한 관계와 관련되고, 이러한 관계는 다시 대내·대외적인 사회문화적 맥락과 긴밀한 연관 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이러한 인식 아래 시대·지역·세부 전공에서 차이가 있는 4인의 연구자가 자신의 특화된 시대와 분야를 최대화하여 전체 기획의 실현을 목표로 공동연구를 하게 되었다. 시작 당시 4인 연구자들의 연구 주제와 목표는 아래와 같다.
첫 번째 연구는 철기시대 전국연의 직접적인 통치 범위 외곽에 분포하고 있던 동요하 유역으로부터 제2송화강 하류역 남안에 이르는 길림성 중부와 남부 지역에서 발생하게 된 문화 변동의 의미를 장각두형토기가 생산되고 확산되는 양상에 초점을 맞추어 다양한 해석을 시도하고자 기획되었다. 철기시대 초기 이 일대에서 발생한 가장 주목할만한 물질 현상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장각두형토기의 급속하면서도 광범위한 확산이다. 이 연구에서는 이러한 물질 현상을 전국연의 확산에 의해 야기된 문화 변동을 전국연이 아닌 토착문화를 주체로 하여 새롭게 조명하고자 하였다.
두 번째 연구는 한반도 중부 지방에서 토착 무문토기 공인이 타날문단경호의 제작에 참여하고 그들이 물레질-타날법이라는 신기술을 체화하는 과정을 검토하는 것을 통해, 이 일대 철기문화의 지역적 특색이 일차적으로는 토기의 측면에서 어떠한 사회문화적, 그리고 기술적 맥락을 갖고 있는지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연구 방식에서는 토착 생산 체계에서 새로운 기종을 생산하게 되는 과정, 그리고 새로운 생산 체계가 다른 기종, 즉 옹형토기와 발형토기의 제작으로 확대됨으로서 그릇의 형태가 정형화되는 양상 등을 중심으로 삼았는데, 지역적으로는 한강 본류역과 북한강 유역에 집중하였다.
세 번째 연구는 한반도 동남부 지역, 즉 와질토기가 특이하게 발전된 영남 지역의 토기유물군 분석에 초점을 맞추었다. 연구 방식으로는 목관묘 단계 와질토기의 시작과 변화에 주목하여 금호강 하류역에서 타날문 회도의 신기술이 토착 기종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분석하고자 하였는데, 진·변한 지역 가운데서도 목관묘문화가 제일 먼저 정착한 이 지역에서 고식 와질토기의 제작도 가장 먼저일 가능성이 높다는 가정 아래, 이러한 변화가 결국 진·변한 사회의 발전 과정을 해석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띄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자 하였다. 아울러 개별 유적에 대한 편년의 문제를 떠나 확산 과정과 맥락에 집중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네 번째 연구는 원삼국시대의 문화 변동에서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목관묘 단계에서 목곽묘 단계로 전이되는 과정을 토기유물군의 변화를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을 통해, 유사한 물질문화 환경과 분위기 속에서의 지역차와 사회문화적 맥락을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기획되었다. 목곽묘의 발생이 지역에 따라 불균등하고 지역차를 보이는 것처럼, 토기의 변화에서도 일률적인 변화로 파악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신식와질토기의 등장은 고식 와질로부터의 점진적인 변화라고 할 수 없고,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계기와 과정으로 신식 와질토기 기종이 등장하고 전개되었음을 밝히고자 하였다.
위의 연구 목적과 배경을 바탕으로 이 책에서는 「동북아 철기시대 토기․토기문화의 변동과 배경」이라는 대주제 아래 전체 네 개의 세부 주제를 구성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그 결과 4인 연구자의 아래와 같은 연구 결과가 제출되기에 이르렀다.
첫 번째 오강원의 「초기 철기시대 중국 동북 지역 장각두형토기의 출현과 확산 배경 및 맥락」에서는 우선 기원전 3~기원후 4세기 중국 동북 지역 토착 물질문화의 두·두형토기를 일괄하여 유형과 형식을 분류하고 각 유형과 형식의 변천 관계와 각 토착 물질문화과의 조합 관계에 대해 살펴본 뒤, 기원전 3세기 관련 지역에서의 장각두형토기의 최초 출현과 확산이 전국연과 직접적으로 경계하고 있던 동요하 중상류역의 사가가유형 집단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확산 과정에 사가가유형 북쪽과 주변 지역에 경우에 따라서는 지역적인 별개 형식들이 출현하게 되었다고 보았다.
아울러 이와 같은 현상이 발생하게 된 배경을 사가가유형이 기원전 3세기 내몽고 동남부와 요서 및 요동의 일부 지역에 형성된 전국연을 중심으로 한 상호 작용 관계망에 적극적으로 연결되어 전국연으로부터 선진적인 철제 생산도구를 적극 수입하여 이를 농경지 조성과 농경에 운용하였고, 그 결과 사가가유형이 토착 물질문화권에서 상대적인 우위를 점하게 되었기 때문으로 보았다. 이 시기에 형성된 사회경제적, 문화적 환경으로 인해 사가가유형의 일부 집단과 문화 요소가 그 북쪽과 주변 지역으로 확산, 이삼차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이러한 문화적 연쇄는 서한의 출현 이후 변동된다고 보았다.
두 번째 이성주의 「철기시대 중부지방 타날문토기 제작기술의 수용과 전개-북한강유역 취락의 토기생산을 중심으로-」에서는 북한강 유역에서 물레질-타날법을 받아들여 각종 토기 제작의 기술 혁신이 진행되는 과정과 새로운 생산시스템이 조직되는 과정에 대해 논의하였다. 남한 지역에서 최초로 타날문회도를 토착인이 경험한 시점을 기원전 1세기 전엽이었고, 이 시기의 대표적인 관련 유적이 바로 가평 대성리 전기 취락이나 달성 평촌리 취락이었을 것으로 보았다. 아울러 이때에는 아직 매우 제한된 소수의 유적의 일부 토착 공인들에 의해 토기 제작의 기술 전수가 시도되었다고 보았다.
이러한 분석과 해석을 바탕으로 말미에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전통적인 제작 기술의 생명이 매우 길다는 점, 이러한 제작전통이 이어지게 되는 취락 단위의 생산체계가 어떻게 운영되고 유지되었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점, 대성리 후기 취락이나 우두동 유적에서 확인되는 유입된 신기술체계와 전통 도공에 의한 모방 제작의 기술체계 등 토착화 과정의 여러 가지 작업 연쇄에 대한 분석이 더욱 심화되어야 한다는 점, 토착화 이후 타날문토기 생산체계가 조직되어 가는 과정과 이후 중앙과 변두리에서 서로 다른 방식의 생산체계가 운영되는 과정에 대한 연구가 심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제시하였다.
박진일의 「철기시대 전기 와질토기의 변한 지역 출현과 확산 과정」에서는 금호강 하류역 월성동 유적을 중심으로 성립한 진·변한 지역 공통의 목관묘문화가 낙동강 유역을 매개로 확산되어 가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금호강 하류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다호리에서는 와질토기 등장 이전부터 무문토기와 진·변한식 철기를 지표로 하는 목관묘가 등장하였고, 다호리 3기에 이르러 와질토기가 등장하게 되었다고 보았고, 다호리 유적을 중심으로 등장한 변한의 와질토기가 낙동강 유역을 따라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었다고 파악하였으며, 확산 과정을 창원에서 밀양을 거쳐 김해 서부와 동부 지역으로 보았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월성동 유적 목관묘를 진·변한 공통 양식의 목관묘유형으로 설정한 뒤, 월성동유형이 다호리유형을 거쳐 교동유형으로 변천한 것으로 도식화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확산 결과가 모두 일률적이지는 않았다고 보았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밀양 지역의 매우 특징적인 기종인 유개대부호를 들었다. 이와 같은 지역 양상의 차이에 대해서는 변한 각국들이 소규모 지역에 근거하여 나름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물질적으로 발현된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낙동강 유역 외의 함안이나 부산, 울산 등지의 목관묘문화는 낙동강 매개가 아닌 다른 루트로 관련 문화가 확산되었을 것으로 파악하였다.
네 번째 김일규의 「2~3세기 영남 지역 토기문화의 변동과 지역적 양상」에서는 한반도 동남 연해 지역을 중심으로 2~3세기 목곽묘의 지역별 전개 양상과 후기 와질토기의 출현 배경에 대해 살펴 본 뒤, 후기 와질토기와 일상 연질토기의 지역별 추이와 도질토기의 출현 맥락과 전개, 그리고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한 토기의 공간적 양식과 사회문화적 맥락에 대해 살펴보았다. 연구의 중심 지역과 실마리로는 김해 지역과 울산 지역의 대성동 고분군, 구지로 고분군, 하대 고분군 등을 초점으로 삼았는데, 이 지역들과 유적들에 대한 분석을 확장하여 주변 지역과 고분군과의 비교를 통해 결론을 도출하였다.
김해~울산 남부의 동남 연해 지역은 목곽묘 출현과 동시에 목곽묘사회로 전환된 반면, 울산-경주-포항을 잇는 영남 동해안 권역은 동남 연해 권역의 II단계에 해당되는 와질토기부터 확인되는 것을 통해, 태화강 유역이 동남 연해 지역에 비해 한 단계의 시간차를 두고 목곽묘사회로 전환되는 등의 지역차를 보인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차이는 일상토기에서도 확인되는데, 동남 연해 권역은 무문토기의 전통이 강하게 잔존하고 있는 반면, 영남 동해안 권역은 신식와질토기와 중부 지역 중도식토기의 영향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차이가 곧 사회문화적 차이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 공동연구는 몇 가지 점에서 연구 의의와 성과를 자평할 수 있다.
첫째, 이 공동연구는 다른 무엇보다 여러 지역, 즉 중국 동북 지역, 마한·백제 지역, 진변한·신라·가야 지역 고고학 전문가의 공동 작업이다. 기존의 원사~역사시대 초기 연구는 남한 지역을 중심으로 연구되었고 지역-간 비교 또한 남한 지역 토기군의 변화를 중심으로 서술하다 그 기원을 중국 동북 지역의 자료와 연결시키는 수준에서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에 비해 이번 공동연구는 지역 고고학 전문연구자들이 모여 각자의 담당 주제 외에 상대의 주제에 대해서도 함께 토의하고 자료를 분석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러한 점에서 각자의 결론에 완전히 동의하는가 여부를 떠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둘째, 기존의 물질문화의 형식 편년이나 단순 전파론적 해석에 머물지 않고, 토기유물군의 변화를 제작 공정의 유형화와 기종-기술 체계의 상관성 분석, 또는 기술과 작업 연쇄의 파생물로서의 특정 토기와 토기군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확산되고 또 어떠한 사회문화적 맥락을 갖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하고자 노력하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고 있다. 토기군의 변화를 주거 안에서의 생활 방식 및 매장 의례의 변화와 연결시켜 설명하려고 노력하였다든지, 기존에 전국연문화의 확산이라는 단순 설명으로 그쳤던 것을 지역 물질문화에 주목하여 과정과 현상을 상세하게 밝힌 점 등에서 의의가 있다.
셋째, 일부 연구의 경우 동북아 여러 지역 토기군의 특성과 그 변화에 대한 체계화, 그리고 여러 지역-간의 토기 제작 기술 및 토기 생산과 사용의 상관성에 대한 연구이지만, 토기의 문제를 넘어 지역-간 상호 작용에 대한 사회이론적 해석까지 도출하고자 노력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와 같은 시도를 공동연구자 전원이 실행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사고가 계속적으로 축적되고, 또 문제 의식이 개인적인 단순 사유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유적과 유물에 대한 실제적인 분석에 기반을 두고 있을 때 종국에 가서는 동북아 관계사의 세부를 드러내는데에도 보탬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공동연구에서 부족하거나 아쉬운 점도 있다. 우선 다른 무엇보다도 연구 경비의 제한으로 공동연구자를 4인으로 한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사실 위의 기획과 주제를 보다 구체화시키려면, 최소한 현재의 2배 가량의 연구자가 필요하다. 연구 경비로 인해 다루는 지역, 주제, 세부 시기가 다소 간격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보니 지역-간 관계와 사회문화적 맥락을 드러내기 위한 노력이 핵심 지역과 주제로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점 매우 아쉬운데, 향후 이 공동연구가 계기가 되어 유사한 문제 의식을 보다 풍성하게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길 바란다. (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