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도서관
봄글밭 정순주
소희에게 새 친구가 생겼다. 머리가 하얀 71살, 이필남 할머니. 소희랑 60살 차이가 난다. 할머니는 3년 동안 비어 있던 빨간 벽돌집에 이사를 왔다.
동네 하나뿐인 친구 영욱이가 놀자는 약속을 어겼다. 하긴 어느 순간부터 영욱이는 소희랑 약속한 걸 잘 까먹었다. 축구를 한다고, 물놀이를 한다고 말이다. 소희는 예전처럼 영욱이랑 소꿉놀이하고, 신랑각시 놀이했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희는 영욱이 집 앞에 가 어슬렁거렸다.
“너 누구 기다리니? 계속 그러고 있는 거 보니 아주 심심해 보이는구나.”
빨간 벽돌집 옥상에서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말했다.
“친구가 약속을 어겼어예.”
“아! 영욱이? 영욱인 축구공 가지고 급히 가던데.”
“짜식, 내 그럴 줄 아았대이. 잉~”
“아가, 울지 말고 우리 집에 놀러 올래?”
소희는 울음을 딱 멈췄다.
할머니 집 거실에는 책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할머니는 책꽂이에 그림책 한 권을 꺼냈다.
“이 책은 뉴욕타임지 베스트셀러 책이야. 우리가 먹는 쿠키를 통해 인생을 얘기하는 멋진 책이지.”
할머니는 주방으로 가 쿠키랑 오렌지 주스를 가지고 왔다.
아사삭,
소희는 쿠키를 한 입 베었다.
할머니는 그림책을 펼치며 글을 읽었다. 그림이 퍼뜩 눈에 들어 왔는데 아이가 할머니께 쿠키를 입에 넣어주었다.
“어른을 공경한다는 건, 갓 구운 쿠키를 맨 먼저 할머니께 드리는 거야.”
“죄송해요.”
소희는 얼른 쿠키를 집어 할머니 입에 갖다 대었다.
“호호호, 나는 많이 먹었단다.”
할머니는 한참이나 웃었다.
“이 책 선물이야. 찬찬히 읽어보렴.”
“책이 왜 이렇게 많아예? 도서관 같이요.”
“옛날 할머니의 선생님이 말씀하시더구나. 결혼할 때 혼수 준비 하지 말고 책을 한 차 싣고 가 지혜를 쌓으라고. 그때부터 책의 소중함을 생각하고 한 권, 한 권 모았지.”
할머니 이름은 이필남이라고 했다. 40여 년간 학생들을 가르쳤고, 정년퇴직하고 야트막한 산자락과 계곡이 좋아 이 마을에 왔다고 했다. 소희와 이필남 할머니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소희는 이필남 할머니가 친구같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친구하자. 또 놀러 오렴.”
“친구예? 히히. 또 올게예!”
소희는 팔랑팔랑 뛰어가며 손을 흔들었다.
소희는 엄마, 아빠가 일하는 비닐하우스에 갔다. 소희 엄마, 아빠는 끝물인 딸기를 따느라고 바빴다.
“엄마, 엄마, 나 빨간 벽돌집에 갔다 왔대이.”
아빠가 도끼눈을 하고 쳐다봤다.
“소희 니, 빨간 벽돌집에는 와 갔노? 가지 마라.”
“이필남 할머니 사는데 친구하기로 했어예. 계속 갈 꺼 에요.”
“친구는 무슨……. 소희 니, 다시는 가지 마라.”
“교직 생활 오래 하시고 좋은 분인갑디더.”
엄마가 말했다.
“갈 꺼다. 엄마, 잉~”
소희는 엄마에게 바짝 붙어 큰 소리로 울어댔다.
엄마는 아빠 눈치를 살피며 소희를 한쪽으로 끌고 갔다.
“소희야, 빨간 벽돌집에 예전에 아빠 친구가 안 있었나? 딸기 농사 배운다고 들어 와 성실히 해서 깜빡 속았다 아이가. 그 사람이 우리 돈, 동네 사람들 돈 챙겨가 밤에 도망갔잖아.”
소희는 3년 전, 소희 집이랑 동네가 떠들썩했던 게 어렴풋 기억 낫다.
“너그 아빠가 저래 화내니 니도 이유는 알아야 되지 싶어 말한다. 가고 싶으면 살짝 살짝 갔다 온나.”
소희는 가만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마을 사람들이 외지에서 온 사람을 썩 믿지 않는다는고 했다. 마을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떠난 사람도 많았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조촐한 잔치도 열리던 마을은 3년 전 이후로 조용해졌다.
“소희야! 지금의 나는 집 옆에 도서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빌게이츠가 한말 들어 봤지?”
“우리 선생님이 전에 말씀하셨어예.”
“이 할머니는 우리 마을에 작은 도서관을 지으려고 하는데 소희가 좀 도와줄래?”
소희는 할머니를 어떻게 도와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할머니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는 걸 얘기해야 되나도 고민되었다.
“저기예…….”
“응?”
할머니의 들뜬 표정을 보니 마을 사람들 얘기가 나오지 않았다.
소희는 머릿속으로 스치는 생각을 말했다.
“도서관예? 마을에 아이들도 많이 없는대예.”
“영욱이도 있고, 영욱이 동생도 있고, 소희 너도 있잖아. 그리고 아이들만 책 읽니? 어른들이 읽어야지. 평생 학습 시대, 책은 평생을 즐겨 보아야 하는 거란다.”
“아, 그래예. 울 엄마, 아빠 책 읽는 거 한 번도 못 봤어예. 히히.”
할머니는 작은 도서관을 짓는 것이 소망이 되었다고 했다. 문화 시설이 없는 산골 마을 작은 도서관 여러 곳을 다녀 보기도 했단다. 필요한 자료들도 많이 모아두었다고 했다. 소희는 할머니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예…….”
소희는 마을 사람들의 얘기를 더 이상 숨기면 안 된다 싶었다. 소희가 알고 있고 들은 것을 할머니께 말했다.
“그랬구나!”
할머니는 한참 말이 없었다.
“우리 마을 도서관은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가 될 거란다.”
할머니는 함박 웃었다. 소희도 따라 웃었다.
오랜만에 마을 회의가 이장집 앞에서 열렸다.
소희는 할머니와 손잡고 섰다. 마을 사람들을 잘 아는 자신이 할머니에게 힘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소희는 아빠 앞에서는 혼이 났다. 할머니 뒤에 숨었다.
“도서관을 지으면 우리 마을에 활력소가 될 겁니다. 대화의 장이 되겠지요. 빌게이츠 같은 인물도 나올 거예요.”
할머니는 설명했다.
“식구 먹여 살리기도 바빠요! 책은 무슨 책.”
아빠가 말했다.
“아이들 먹는 것도 잘 못 먹이고 있구만 책만 보면 빌게이츠 되나?”
영욱이 아빠가 얼굴을 찌푸렸다.
“또 속을 줄 아나?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 아니가?”
뒤에서 수군수군 거렸다.
“마을 여론이 안 좋으니 우린 좀 지켜볼게요.”
소희가 예술가라고 알고 있는 베레모 아저씨와 아줌마가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흩어졌다. 할머니는 실망한 눈빛이었다.
다음날, 소희는 할머니 집에 갔다. 할머니는 집에 없었다.
영욱이가 반가이 뛰어 나왔다.
“나하고 놀러 왔나?”
“아니거덩. 흥.”
소희는 고개를 팩 돌렸다.
“이필남 할머니 보러 왔제. 할머니 파주에 출판사랑 잡지사 가고, 책도 사온다 하더라.”
“할머니, 나도 데려 가시지. 잉~”
“니는 학교 가야 안 되나. 할머니 새벽에 일찌감치 가셨대이. 니도 도서관 생겼으면 좋겠제. 나도 간절히 원한대이.”
영욱이는 두 손 모아 비는 듯 했다.
소희는 영욱이랑 놀았다. 놀면서 할머니를 기다리기로 했다. 영욱이랑 축구도 했다. 발이 공에 착착 붙는 듯 재미있었다. 들꽃들을 짓이겨 밥과 반찬도 만들었다. 영욱이도 재밌는 표정이었다.
할머니는 해가 뉘엿뉘엿 지는 대도 오지 않았다. 소희는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뛰어갔다. 내일 다시 와 할머니를 만나자고 생각했다.
소희는 학교를 마치자마자 할머니를 만나러 갔다. 할머니는 볼이 푹 패인 듯 했지만 밝은 표정이었다.
“소희야, 이번 달 중으로 책이 어마어마하게 쌓일 거란다.”
할머니는 천 오백만원을 들여 우선 책을 구입하고 출판사, 잡지사를 돌며 책을 수집했다고 했다.
할머니 집 빨간 벽돌집 앞으로 책이 쌓여 갔다. 할머니는 아예 빨간 벽돌집을 개방한다고 했다. 책꽂이가 더 들어왔고 발 디딜 틈 없이 되었다. 할머니와 소희, 영욱이, 영욱이 동생 영수, 영아가 단골이었다.
할머니는 매일 쿠키와 주스를 조금씩 나눠 주었다.
그러다가 이장 부부가 오가며 책을 빌러 갔다. 며칠 후 예술가 부부 베레모 아저씨와 아줌마가 다녀갔다. 소희 아빠가 일을 마치고 소희를 데리러 한 번 왔다.
빨간 벽돌집 작은 도서관 소문은 차츰 마을에 호기심을 일으켰다.
얼마 후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소희야, 이장 부부가 마을 회관 옆 부지를 선뜻 내놓는다는구나.”
할머니와 소희는 끌어안았다.
그 이후, 예술가 부부가 이동식 스틸 하우스를 기증했다. 도서관의 모습이 하나둘 갖춰지기 시작했다.
뚝딱뚝딱,
소희 아빠는 책꽂이를 만들었다.
“젊을 때 이 아빠가 촉망받는 목수였던 거 아나?”
소희 아빠는 젊을 때 망치를 더 야무지게 쥐었다. 다시 하니 감이 안 잡힌다고 머쓱해 하면서도 열심히 했다.
자신이 진짜 예술가라며 이성백 화백이라는 아저씨가 도서관 가운데 놓을 탁자랑 현판을 만들었다.
<필남 도서관>
할머니의 이름을 따 ‘필남 도서관’ 현판이 붙였다.
필남 도서관은 24시간 열려 있고 누구나 찾아와 책을 읽어도 되었다. 집에서 굴러다니는 책을 가져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과일, 과자를 가져오기도 했다. 영욱이 아빠는 도서관 청소, 한겨울 연탄 화덕 불 지피는 일을 하겠다고 자청했다.
별다른 일 없으면 얼굴 보기도 힘들었던 사람들이 도서관으로 모여 들었다. 그리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일을 마치고 책을 보러 왔다. 소희도 일직 저녁을 먹고 엄마, 아빠랑 왔다.
할머니는 마을 사람들과 얘기했다.
“독서 토론회도 하고 시인도 초청하고 음악회도 열어 봐요. 온 마을 사람들이 도서관을 함께 만들어 가요.”
할머니는 소희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할머니! 소망도 이루셨네요.’
소희는 힘차게 손을 흔들어 답했다.
“산골 생활을 여유롭게 하는 특별한 공간이 바로 도서관인 것 같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기적 같은 일이야!’
소희는 이런 게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후 필남 도서관에 현수막이 내 걸렸다.
갓골 마을 방인성, 진진선의 둘째 아들 방소희의 남동생, (사진 첨부) 소율이가 태어났어요. 모두 축하해 주세요. |
온 마을 사람들이 소희네를 축하해 주었다.
(끝/28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