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자께
카페의 표지에 올려진 시 <달관>의 작자 오새영(서울대 명예교수, 전 한국시인협회장, 예술원 회원)입니다. 제 졸작을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경주에 관한 저의 아래와 같은 시들도 있으니 많이 활용해주기기 바랍니다.
경주 남산
경주 남산엔
아직도 옛 신라인들이 살고 있다 하더라.
욕된 삶이 싫어 속된 인연이 싫어
몸을 벗어버리고 색을 벗어버리고 마침내 이 땅을 벗어나
남산 그 어드매
온전히 혼령으로 살아 있다 하더라.
경주 남산엔
아직도 옛 신라인이 신라 말로 신라를 살고 있다 하더라
낮엔 굳어버린 저 돌부처,
모로 누워 침묵한 저 돌미륵,
그러나 그대는 보리라.
달빛 푸르게 쏟아지는 어느 봄날엔
돌부처 피가 돌아 숨쉬는 것을,
돌미륵 벌떡 일어나 춤추는 것을,
햇빛 부신 낮이 아니라, 어둠 짙은 밤이 아니라
처용이 춤추던 꼭 그 밝은 달밤에---
그대
남산 솔바람에 실려오는
만파식정
그 영원한 소리를 들으리라.
석굴암 석불
누가 돌을 깨서 한 생을 풀어놨나
동그란 어깨선에 깍은 듯 고운 미소
반쯤 입술에 머금은 천년 미소 신비롭다.
지존이라 하기엔 오히려 아름답고
미인이라 하기엔 너무나 고결하다.
떨리는 마음을 추스려 멀리 두고 봄이여.
미풍에 스칠라면 파르르 흩날릴 듯
비단가사 얇은 천에 살픗 비친 속살이여
돌에도 더운 피 돌아 숨쉬는 듯 하구나.
여근곡
나 이 세상에 태어나서
여자보다 더 아름답고
고귀하고
기쁨주는 그 어떤 것도
아직 본 적이 없나니
그로하여 태어나서 그러하여 길러지고 또
그와 더불지 않고서는
이 한세상 살 수 없기 때문이니라.
내 생애의 모든 의미가 되는
어머니여, 아내여, 딸이여,
아아, 신라의 여인들이여,
당신들은 태초에 우리를 어떻게 만들었는가.
지금도
이글 이글 끓어오르는 태양을 받아
안기 위하여
생애의 가장 맑고 푸르른 날,
빛나는 나신으로 하늘을 향해서
화알짝 몸을 열고 누운
그대
아름다운 신라의 여인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