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전우를 찾아서
정군수
2021년 1월 30일 토요일, 서울 동작구에 있는 국립서울현충원에 갔다. 종합민원실에 들러 파월장병 윤 병장의 이름을 적어주자 친절하게‘안장위치안내도’에다 동그라미와 화살표로 묘소 위치와 방향을 표시해주었다. ‘2묘역 4판 3074호’ 이곳이 그가 묻혀있는 곳이다.
하루에 정글복을 다섯 번 빨아 널어도 마른다는 뜨거운 태양 아래서 구릿빛 얼굴로 웃던 윤 병장의 얼굴을 떠올리며, 작전 나갈 때 피가 마르도록 목이 마려워도 수통 한 개의 물은 남겨서 돌아온다는 그의 말을 생각하며, 묘지를 찾아갔다. 낙화처럼 눈가루가 흩뿌리고 있었다. 회색 하늘에서 하루 종일 그치지 않을 듯 눈바람이 불고 있었다. 현충원 가득 겨울 흰 나비 때가 날고 있었다. 나는 열병하듯 늘어선 묘지석의 번호를 확인해가며 전우를 찾아갔다. 열대의 나라 뜨거운 정글에서 피 흘리며 죽은 전우의 이름을 한국의 겨울 눈 속에서 찾아냈다. 앞면에 ‘육군하사 윤ㅇㅇ의 묘’, 뒷면에 ‘1970년 4월 27일 월남에서 전사’라고 새겨져 있었다.
나와 윤 병장은 1969년 6월에 같은 배를 타고 열이틀 만에 남지나해를 거쳐 월남에 도착했다. 그리고 퀴논에 있는 같은 부대에 배속되었다. 우리는 같은 배를 태고 왔다는 것만으로도, 돌아갈 때 같은 배를 타고 간다는 것만으로도, 분에 넘치게 친해질 수 있었다. M16을 어깨에 메고, 수류탄 2개를 가슴에 달고, 수통 네 개를 허리에 차고 헬리콥터를 타고 작전에 나갈 때, 우리는 살아 돌아가야 한다는 의지를 눈빛으로 교감하였다.
우리는 고독할 때 고국에서 온 편지를 바꾸어 읽었고, 기쁠 때 스콜 쏟아지는 낙숫물에 목욕하며 서로 그것을 바라보며 킥킥거렸다. 그의 기쁨은 나의 기쁨이었고 나의 슬픔은 그의 슬픔이었다. 그리고 전우가 죽었을 때 우리는 월남주를 병채로 마시며 울었다. 전우의 죽음은 우리 모두의 눈물이었다. 우리가 살아 작전에서 돌아왔을 때는 천장에 붙은 도마뱀과 전갈에게도, 월남의 나무와 바위에게도 감사하고 싶었다.
윤 병장은 1970년 4월 27일에 전사했다. 깍쏜계곡 작전에서 부비츄렙에 걸려 장렬하게 산화했다. 그의 피는 흥건하게 정글화를 적시고 강물로 흘러갔다, 화장터에서 타고 남은 유해는 비행기를 타고 귀국했다. 전우들 사이에서는 비행기를 타고 귀국한다는 말은 죽는다는 말이었다. 우리는 절대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지 말자고 농담처럼 약속을 했지만 그는 먼저 그 약속을 깨뜨렸다. 윤 병장은 귀국 한 달 남짓 남겨놓고 전사했다. 정말 안타깝고 슬픈 일이었다. 나는 월남을 떠나올 때 하늘에 대고 목이 터져라 윤 병장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 목소리는 포탄이 날아가는 하늘로 가뭇없이 사라졌다. 살아있는 우리들은 월남에 올 때처럼 남지나해를 거쳐 그해 6월 17일 부산항 제3 부두에 도착했다.
나는 월남에서 돌아와 고향에 들렸다가 이곳 현충원에 와서 월남 전우들의 묘소를 참배한 일이 있었다. 그 뒤 이곳을 다시 찾아왔다. 그때는 동작동 국립묘지라 했는데 너무도 많이 변해 있었다. 51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 나는 육군하사 윤ㅇㅇ이라 새겨진 그의 묘비석 앞에서 묵념을 올렸다. 월남에서는 나와 같은 맹호부대 육군 병장이었는데, 그는 하사가 되어 있었다. 그는 죽어 하사라는 계급장을 달고 누워 있었다. 나는 자랑스러운 육군 병장을 단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포연 가득한 죽음의 계곡을 생각했다.
지금 현충원 묘역에는 죽어 자유로운 영혼들이 살고 있다. 그곳에 자꾸 눈이 쌓이고 있다. 뜨거운 열대 정글에서 불로 산화한 전우의 몸을 식히려고 차디찬 눈이 내리고 있다. 내가 월남에서 죽었으면, 젊은 내가 묻혀있을 이곳에 눈이 내려 쌓이고 있다
다음에 인용한 시는 월남에서 귀국 후 윤 병장을 생각하며 쓴 나의 졸시다. 시는 부족하지만 전우가 그리워 여기에 옮겨놓았다.
피 한 방울보다
물 한 방울이 귀하다던 윤 병장이
네 개씩이나 수통을 차고
깍숀 계곡에 작전에 나가던 날
부비츄렙에 걸려 사지가 찢겨
그는 죽었다
끝내 물 한 통을 남긴 채
마신 물보다 더 많은 피를 흘리고
그는 죽었다
그의 피는 스콜 속으로 스며들어
숲을 적시고 나의 정글화를 적시고
베트공 동굴을 지나 선인장 가시밭도 지나
쏭바강 강물에 몸을 씻고 강물이 되었다
내가 월남을 떠나오던 날
연병장에 모여선 우리의 머리위로
한 떼의 흰나비가 날아가고 있었다
나는 목이 터져라 윤 병장을 불러보았지만
나비는 강물로 날아가고 있었다
우리를 실은 배가 남지나해를 지나
윤 병장이 쓴 편지의 잉크보다
더 푸른 먼 바다로 나왔을 때
강물도 바다로 흘러들어
바다에 몸을 씻고 바닷물이 되었다
내가 부산에 닿기 전에
그의 피는 살아서 동해 어디쯤 흐를 것이다
내가 고향에 돌아가 흙냄새를 맡으며
살아있는 눈으로 산천에 묻혀 뒹굴고 있을 때
고향 찾아가는 연어 떼를 만나
그의 피는 거슬러 거슬러
강물로 몸을 씻고 강물이 되어
남대천 어디쯤에서
고향마을을 보고 있을 것이다
들에서 일하고 돌아와
강물로 얼굴을 씻고 돌아서 가는
늙은 제 어미의
뒷모습을 보고 있을 것이다
- 졸시 「강물」 (19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