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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 론 ―
■ 줄거리
2019년의 미래, 환경오염으로 인해 지구가 황폐해졌다고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 중 링컨 6 에코와 조던 2 델타가 있었다. 사실 그들은 상류층들의 의뢰에 의해 탄생된 클론으로, 예측할 수 없는 사고에 대비하거나 질병에 의한 장기 손상, 화상에 의한 피부손상 시에 희생되는 희생양이다. 거기다가 출산(또는 불임) 시 겪는 고통에 대한 두려움, 출산 후의 부작용 등이 싫어 클론을 대리모로 활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를 낳은 클론은 죽는다. 따라서 그들은 성욕이 제거되고 정신연령의 발달을 제한받는다.
클론들은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클론제작을 신청한 부르주아들은 클론들이감정, 감각, 의식이 전혀 없는 식물인간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살아 움직이지 못하는 장기는 이식에서 거부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에, 메릭은 은폐라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평소 컴퓨터가 고장이라는 핑계를 대가면서 몰래 빠져나와 클론들의 세상 밖 제 5구역에서 일하는 맥코드와 간간히 친분을 맺어오던 유난히 호기심 왕성하고 불만 많은 6 에코는 어느날 제 5구역에서 날벌레 한 마리를 발견하는데 이런 큰 날벌레가 어떻게 환경오염에서 살아남았고 어떻게 그 험한 경계망을 뚫고 건물 안으로 들어왔는지 궁금해진다.
그래서 날벌레를 따라 가다가 수술실에 가게 되고, 임산부가 출산 후에 안락사 당하는 것을 보며, 아일랜드에 당첨되었던 흑인이 수술 도중 뛰쳐나왔다가 도로 잡혀 들어가는 광경도 목격한다. 그래서 아일랜드에 당첨되어 죽게 될 2 델타를 데리고 도망을 쳐버린다.
링컨과 조던이 도망친 것을 알고 박사는 특수부대에 의뢰해 클론들을 잡아오라고 하고, 에코는 맥코드를 찾아가 도움을 부탁하고 맥코드는 그 때문에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에코와 델타가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경찰에 쫓기고, 특수부대가 전격적으로 나서게 된다.
그리고 에코는 자신의 의뢰인인 톰 링컨을 찾아간다. 톰은 처음엔 황당해하지만 에코와 델타의 요구를 들어주고 팔찌도 풀어준다. 그러나 사실 톰은 간이 안 좋아서 시한부인생이기 때문에 에코가 필요하므로 그를 빨리 회수해가라고 몰래 메릭 박사에게 통보한다. 그리고 에코의 행방을 알게 된 특수부대가 등장하고, 똑같이 생긴 클론과 본래 톰을 헷갈린 로렌은 톰을 쏴버리고 만다.
그리고 에코는 쭈욱 톰 행세를 하며, 메릭 박사는 뒤늦게 6 에코의 검사결과를 보게 되고, 단 3년만에 30세 어른의 지능을 갖게 된 그의 뇌를 보면서 클론사업에 큰 전환점이 생겨야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리콜을 신청한다.
클론 생산공정에서 삭제해야 할 한가지를 빼먹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고 그것은 인간의 호기심이었다. 메릭 사는 제작과정에 놓여있던 클론들을 부수고, 무더기로 아일랜드의 당첨자를 뽑아 데려다가 클론들을 죽이는 작업에 돌입한다.
델타와 에코는 따로 메릭 사에서 만나고, 모두에게 알리기 위한 작전을 짜며, 메릭 사로 향하는 헬기 안에서 델타는 자신의 팔에 찍힌 낙인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데 로렌은 자신에게도 비슷한 낙인이 있기 때문에 나중에 이들을 돕게 된다.
메릭 박사는 톰의 시체가 클론의 것이 아니라 그 스폰서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에코를 찾아내 싸우게 되고 그 과정에서 메릭은 죽는다.
이러한 에코와 델타의 활약으로 죽을 위기에 처했던 클론들은 대탈출에 성공하게 된다.
톰이 된 에코, 새라가 된 델타는 배를 타고 진짜 아일랜드로 가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 등장인물
*링컨 6-에코
- 보트 디자이너인 스폰서(톰 링컨)의 클론.제5세대, 에코 세대의 남성 상품.
- 존재에 대한 의문을 가진 첫 번째 제품.입력된 정보 외의 정보를 스스로 개발, 재생시킴.
메모리 입력으로 꿈을 꾸는 것이 불가능한 복제인간의 특징에서 벗어나는 오류를 보임.
- 끝없는 발전을 성취하기 위한 메릭 바이오테크사의 치명적인 결함인 동시에, 역으로 유전적 DNA인자가 머리 속에 자리잡아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생겨난 매우 잘 만든 클론.
*조던 2-델타
- 유명 모델인 스폰서(새라 조던)의 클론. 델타 세대에 속하는 여성 상품.
- 스폰서의 교통사고로 장기 추출을 위해 수송 중 탈주함.
- 링컨과 극진한 우정을 공유하고 하는 사이. 아일랜드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 후 심한 충격을 받지만 본능적으로 링컨을 따르게 된다.
*메릭 박사
- 메릭 바이오테크사를 창립한 인물.
- 유일한 관심은 가치 높은 투자물을 보호하는 것.
- 과학을 동원해서 인간성을 최대한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잘못됐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는 생명공학 분야에서는 선구자로서 자신이 하는 일이 인간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자신을 신과 같이 인간을 창조할 수 있고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맥코드
- 복제인간 통제 시설 직원. 링컨과 친분을 맺으며 가끔 술과 같은 금지 물품을 거래한다.
- '상품'과 정을 나누는 소수의 인간들 중 하나. 시설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태에 대해서 죄의식을 느끼고 이들도 똑같은 인간으로 여겨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이들을 돕는다.
*알버트 로렌트
- 메릭 박사가 자신의 불법적인 행동이 노출될 것에 두려워 도움을 요청한 사설경호대 블랙호크의 대장.
- 단순히 탈주 사건으로 알고 일을 진행하다가 후에 복제인간에 대한 전말을 알고 갈등한다.
-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며 톰과 새라의 탈주를 돕는다.
■ 영화선택이유
아일랜드라는 영화를 통해 우리는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연 인간이란 무엇이고 인간이 만들고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어떤 것이며, 영화에서처럼 인간과 복제인간과의 구분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에 대해서 우리는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먼저 인간이 존엄하다고 하는데 무슨 이유에서 존엄하다고 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아일랜드란 무엇을 의미하는 지도 생각해 보았다. 이중에 먼저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서 먼저 조사를 해 보았다.
― 본 론 ―
■ 인간의 존엄성 (정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사전적 용어의 정리를 하여 그 의미를 찾고자 하였다. 국어사전에서 존엄은 ‘높고 엄숙함’, 또는 ‘인품이나 지위가 높아서 범할 수 없음’이라고, 존엄성은 ‘존엄한 성질’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영어의 dignity나 독일어의 Wurde는 존엄에 대한 라틴어인 dignitas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이는 다시 “어울리다‘ 또는 ’적당하다”라는 뜻의 형용사 dignus에서 유래한다. 존엄의 의미를 인간과 함께 결부 시켜 사용하여, 앞에서 내린 존엄의 어원적 의미에 부합해보면 “인간에 대하여”, “인간이 가진 근본적 가치에 비추어” 어울리는 것이 인간의 존엄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어울린다는 것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그 내용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존엄의 개념이 인간의 존엄으로 발전하면서, 인간의 자율성을 전제로, 자율적이고 실천이성이 있는 인간의 본질로서, 즉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지는 존엄의 관념이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철학적 근거를 제시하고자 했던 가장 유명한 시도는 칸트 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칸트는 “인간을 단순히 ‘수단’으로 다루지 않고, ‘목적’으로서 다룰 때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가치를 의미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즉, 인간의 존엄성이란 인간을 한 사물처럼 대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존재, 인격적 존재로 여기고 인간을 모든 가치의 최상위에 두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성이 결국 인간이란 것에 대한 결론을 지어주지는 못하는 듯 했다. 그들이 말하는 목적으로 다룰 때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가치를 두고 인간이 존엄하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 것만으로는 인간이 존엄하다고 생각되어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한가지의 생각을 더 하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인간의 가치나 형태가 누군가에 의해서 창조된 피조물이라면 과연 어떤 답이 나올까 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 니힐리즘을 통한 접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도전)
니체가 말한 “신은 죽었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그가 말한 신은 죽었다는 말이 왜 그렇게 명언이 될 수 있었는가? 그래서 찾게 된 사상이 니힐리즘이다. 니힐리즘이란 허무주의를 뜻하는 말이다. 이 말은 아주 오래전 그리스 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써 '그리스의 소피스트 고르기아스' 라는 사람이 이미 주장했던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근래에 들어 이 니힐리즘이라는 것은 어떻게 쓰이는가? 근래에 들어 이 니힐리즘은 절대적인 진리나 도덕이 존재하지 않는 약간은 혼란스러운 상태를 뜻하는 것으로써 원래 어원인 "무"와는 상관이 없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이것은 마치 기존의 도덕과 윤리에 대한 무질서를 이야기 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흔히들 말하는 아노미 현상과는 다르다. 사실상 위에서 무질서라고 언급했지만 무질서라기보다는 가치관이 바뀜에 따라 도덕과 윤리가 조금씩 바뀌었다는 게 옳을 것이다. 니힐리즘. 즉 과거의 도덕이나 계념이 바뀌는 것 즉 지극히 유럽인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옛 유럽의 종교로 인한 도덕과 체제가 바뀌는 것. 즉! 교회의 힘이 약해지고 사람들의 신앙심이라는 것(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경탄이 사라진)이 사라진 이 시점에서 신이라는 존재는 결국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지극히 보편적인 가치 즉 "사람을 죽이지 말라." "훔치지 말라." 등등의 것들이 아닌 이상 이웃의 아내와의 간음과 같은 것은 점점 사람들 사이에서 이상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교회의 권력으로 인한 그리고 사람들의 경외로 인한 도덕과 가치들이 무너지는 것이고 교회의 도덕과 가치 혹은 유럽의 옛 도덕과 가치들이 무너지는 것을 니체는 신이 죽었다는 표현을 함으로써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쉽게 표현하자면 신으로 인해 생겼던 도덕적 가치가 무너지고 사람들은 신을 믿기 보다는 과학, 혹은 개인을 믿기 시작함으로써 신앙심을 받지 못한 신은 결국 잊혀 지고 잊혀 진 신은 죽은 것과 다름없다는(즉 신이 쓰러짐으로써 도덕적 가치들도 따라 무너지는)것이다.
만약 예전에 인간복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면 아마도 엄청난 탄압을 받았을 것이다. 신에 대한 도전이고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인간이 직접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영화로도 이러한 것들이 이야기 할 만큼 쉬워졌다. 그리고 우리는 작년에 황우석 박사의 배아줄기 세포 사건을 통해서도 보게 되었을 것이다. 인간중심적인 사고관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을 위한 과학의 발전을 통해 이제는 생명을 만든다 못 만든다를 논하게 되었다. 결국 그가 말한 것처럼 신은 정말 죽은 것처럼 보였다. 모든 것이 정복 되어질 것 같은 이런 변화가 과학의 힘으로 점점 더 가까워 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니체 역시도 신을 부정했고 니힐리즘 역시 그런 대세를 반영하지만 그 말은 다시 말해서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죽었다라고 표현 한다는 것은 신이 존재하기에 죽을 수 있다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예로 자연은 항상 인간의 과학을 초월해 왔고 인간의 능력이 아주 작은 것이라는 것을 항상 보여주었다.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같은 존재들도 아직까지 완벽하게 이기지를 못하고 있다. 또한 자연재해나 천재지변 등을 완벽히 막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의 과학조차도 완벽하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그 안에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라는 의문을 던져보게 되었다. 지금 세상에서 가르치고 있는 지식으로는 인간은 진화에 의해서 발전되어 왔다고 말을 하고 있다. ‘한 마리의 원숭이가 진화해서 인간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터무니없는 생각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이 세상 그리고 인류가 다 어디서 시작을 하고 어디서부터 출발을 한 것이며, 어떻게 발전해 온 것인지 알고 싶었다.
■ 인간이란?
먼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종교의 힘이 약해지고 인간의 자체의 힘이 강해진 것에는 분명 인간으로서 봤을 때는 인간 스스로의 존재를 찾은 듯 보이지만 다시 뒤집어 보면 오히려 인간이 신을 거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그래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고민하고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인간이란 말의 정의에 대해서 알아봐야 할 것이다. 영화에서처럼 인간이 복제되는 시대가 온다면 과연 누구를 인간이라 말을 할 것이란 말인가? 나와 같은 신체와 생김새 모든 것이 다 같은 존재가 있다면 과연 우리는 그 존재를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인가?
▷인간의 정의(사전적 의미)
→ 우리 조는 인간의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 많은 생각과 많은 자료들을 참고해 보았다. 그중에 가장 먼저 찾은 자료는 다름이 아닌 인간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통해 알아보았습니다. 보면 ㉠언어를 가지고 사고할 줄 알고 사회를 이루며 사는 지구상의 고등 동물, ㉡사람이 사는 세상, ㉢사람의 됨됨이, ㉣마음에 달갑지 않거나 마땅치 않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등이 있다. 그 중에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는 첫 번째 의미가 아닌 가 싶다. 언어를 가지고 사고할 줄 알고 사회를 이루며 사는 지구상의 고등 동물이라고 나와 있다.
■ 인간의 출발은 조물주에 의해서다(유신론적 의미에서의 인간)
그렇다면 인간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이 아닌 인간은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다. 다른 동물과의 차이를 둘 수 있는 것은 영혼을 가졌다는 차이를 들 수 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은 기독교적 사고관을 인정하고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그 말은 인간이란 존재는 창조 되어 진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 진 것은 다른 동물들과 식물들과는 달리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이 생령이 됐다고 말을 하고 있다.(성경 창2장:7~8절) 생령이란 살아있는 넋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동물들은 생명을 가지고 살고 있지만 인간은 영적인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와 연관을 갖는다면 비록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이 복제되어 진다고 하더라도 복제 되어진 그 존재를 인간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다. 그리고 그 존재를 가지고 의료행위를 하게 될 경우 살인이다, 아니다 라고 말을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살인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위해 필요한 존래를 만들고 이용하는 것이기에 살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의료행위일 뿐인 것이다. 사람의 모습까지는 창조 할 수 있어도 사람임을 구분 짖는 영혼까지는 창조 할 수 없기 때문에 살인이라고 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진화로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창조로써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이다. 비유를 들자면 인간의 필요에 의해 돼지나 소와 같은 가축을 사육하고 그리고 인간의 필요에 의해 잡아먹고 아님 계속 키우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우리는 그 가축을 필요에 의해서 죽였을 때, 죄성에 빠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인간과 같은 존재를 복재하여 키우고 사용하는 것 또한 같은 생각이라고 말을 하고 싶다. 반면에 그것이 살인이 아니기에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인간의 정의를 내린다면 그렇게 말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독교적 사고관에서 인간에 대해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적 사고관에서의 인간
먼저 과학에서 말하는 무에서 화학반응에 의해 생물이 진화하고 그 생물이 각기 자기의 생활환경에 맞추어 진화했다는 것이 아니라 신이 존재하고 그 신이 우주와 지구를 창조하고 그리고 지구 안에 많은 동물과 식물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인간을 자기의 형상대로 창조하고 그 안에 생기를 불어넣어 영을 주셨다. 인간과 다른 생물들과의 차이점이 바로 이점이다. 사고하고 지혜를 갖고 도구를 사용하고 선택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바로 신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고 그 안에 그 영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다. 그러나 태초부터 지금까지 인간이 겪고 있는 문제는 바로 인간은 어디서 왔고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이다. 인간이 선악과에서의 잘못은 바로 인간의 단편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었기에 그들은 그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인간이 계속해서 사고하고 발전하려고 하는 것은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신의 자리에 인간이 가려고 하는 것이다. 선악과의 사건도 뱀은 그것을 먹으면 신과 같아진다고 말을 해주었고 그 말은 들은 아담과 하와는 결국 그렇게 될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창세기에 사건 중에 바벨탑의 사건 역시 탑을 쌓다가 보니 하늘과 점점 가까워지고 결국에는 신과 같아질 수 있다는 오만함에 빠지게 되었다. 결국 그 오만함에 인간을 여러 갈래로 나누어 놓는 사건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사건들과 일들이 있는 가운데 지금의 현대에 역시 신의 능력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벌써 그들은 이 세상의 중심이 인간이기에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과학을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과학의 문명은 항상 자연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이다. 결국 지금에 와서는 신이 가장 축복한 인간을 창조하려고 노력하고 그것을 통해 신의 능력 밖으로 나아가 결국 신은 없고 결국 신이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인간은 인간을 벗어 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발전시켜 왔던 과학이 되려 다시 인간에게 독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그 대표적인 문제는 환경 호르몬은 들 수 있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든 것들이 결국에는 인간을 불행하게 하고 있다. 그로 인해 많은 불치병과 난치병 그리고 이름 모르는 기형아의 출생, 양성을 가진 사람 등 많은 문제를 야기 시키고 있다. 그렇게 논증과 과학을 통해서 우리가 얻은 것은 역시 아무것도 없다.
→ 또 하나 인간이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죽음이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은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사람이 한번 태어난 것은 정하신 것이요 죽는 것 또한 정하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그 부분도 넘으려 하고 있다. 그리고 사후 세계에 대해서도 분분하고 의견이 나뉘고 있다. 수많은 사이비 종교와 사상들 사후세계에 대한 터무니없는 예언들...
그것은 바로 그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라 그들이 신이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원하는 것이다. 바로 이 세상의 주인이 인간이기에...복제인간 이것도 왜 나온 것일까? 결국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고 보다 긴 수명을 살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 지는 노력이 아닌가 싶다. 분명 어려운 병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도 있을 것이다. 병을 치료한다는 궁극적인 것은 결국 생명을 연장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 인간이 결국 인간의 존재를 부정하고 인간의 겉모습만을 찾기 노력하고(과학이나 철학) 있다면 결국 이 순환은 아마도 이 지구가 망하는 순간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란 자유의지를 가졌고 사고하고 등등 이런 다른 영장류가 하지 못하는 특정 행동 양식만을 가지고 분류 한다면 그것은 인간이란 동물의 특징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런 동물이 아닌 영혼을 가지 성스런 존재란 것을 깨닫는 순간 인간은 보다 소중한 존재로 거듭날 것이다.
■ 아일랜드의 의미(기독교적 의미에서의 의미)
영화에서 아일랜드는 편안한 휴식이 있고 그들에게 파라다이스와 같은 세상으로 보여 지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 가기 위해서 노력하고 또한 기도한다. 우리는 아일랜드의 의미를 그 영화에서처럼 인간이 만들고 찾아가는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인간이 사고하고 탐구하고 노력하면 그곳에 대한 비밀이 파헤쳐 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인간 중심적인 생각에서 보고 있기 때문에 아일랜드는 인간이 갈 수 있는 곳이라 여겨지는 것이다. 인간은 파라다이스를 동경한다. 옛날에는 왕이 죽으면 저승에 가서도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으로 산다고 믿고 그가 사용하던 그릇이나 물건 등을 넣어주어 그곳에서 행복하라고 그 무덤에 넣어 주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사후세계에 대한 연구와 또한 지구 말고 또 다른 행성에서 생명체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으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U.F.O와 같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결론은 하나다. 인간의 노력으로 파라다이스를 열겠다는 것이고 이 영화는 그것을 비추어 표현해 준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기독교적인 의미에서 다시 본다면 그것은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갈수 없는 곳을 눈으로나마 상상으로나마 볼 수 있다는 것으로 희망을 같게 하고 꿈을 꾸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파라다이스는 인간의 힘으로 열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 허락하신 세상은 바로 지금이고 죽고 나면 우리는 그 영혼이 되어 영혼이 머무는 곳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신에 의해 창조 된 존재이기에 그 안에 있을때 바로 우리가 원하는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창조의 원리에 의해서 본다면 물고기가 물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육지에서 최고로 좋은 자동차를 갖고 다닌다면 좋은 집과 많은 재산을 자지고 살아간다면 과연 그 물고기는 그 곳이 파라다이스라고 생각을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단순하다. 당연히 아니다 라고 대답할 것이다. 왜냐고 묻는다면 역시 당연한 대답이 나온다. 물고기는 물에서 사니까 물에 있어야 행복하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그럼 어디에 있어야 행복한 것일까? 그것에 대한 해답은 위에서 언급했다. 태초에 인간이 창조 되기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되었다고 말한 것처럼 우리는 원래 하나님과 함께 있어야 할 영적인 존재인데 그것을 우리는 포기했고 그리고 그 곳을 떠나 있기에 계속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허나 우리가 갈 곳은 다른 곳이 아니라 한곳이다.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다. 생명 연장, 인간의 위대함과 존엄성에 대한 연구, 미지에 세계에 대한 연구와 희망 이 모든 것이 어디서 시작한 것인지 다시 보면 보일 것이다.
― 결 론 ―
■ 인간이란? (인간의 정의)
결론부터 먼저 말을 하겠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다. 동물이 아닌 영장류가 아닌 신의 창조로 만들어진 존재이다. 우리가 본 영화와 우리가 접하고 있는 과학이나 문화가 다 인간이 하고 인간이 중심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창조의 원리에 반대로 세상은 흘러가고 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좋은 것들 우리가 갖고 깊은 동경의 대상들 그러나 정작 물에 있어야 할 물고기가 그런 것에 눈이 멀어 물에 밖에 있는 것이라면 점점 죽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이란? 문제의 답과 우리가 영원히 살고 싶은 파라다이스에 대한 동경에 대한 답은 결국 인간이 찾고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닌 인간은 원래로 돌아가는 것이 그 답일 것이다. 원래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는 것. 그 창조의 원리 안에 답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