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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소리
이 봉 구
망우리(忘憂里) 어귀 주막에는 워헝달공의 선소리*꾼으로 청춘을 보내고 육십의 고개를 바라보는 이상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내가 이 이상한 사람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꽃이 한물 지려는 늦은 봄날 한낮이었다.
시인 박인환이가 청춘의 뜬눈으로 망우리 무덤에 잠든 지 일 년이 지난 이듬해 봄 불현듯이 쏟는 그리움에서 내가 찾아갔을 때 알게 되었고 인사를 나누기는 울적한 가슴을 축여보려는 데서 주막에 들어서자 바로 이 사람이 혼자서 술상 앞에 앉아 있었다.
시름을 잊는 곳이라서 아니 시름을 잊어버리게 되는 곳이라서 망우리인가, 이름을 지어놓고도 누가 그 이름을 붙였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 시들한 속에 봄이 오고 봄이 가고 가을이 깊는 속에서 망우리는 무덤만 늘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주막을 들어섰을 때 그는 기름에 밴 유록 조끼를 입고 혼자서 술잔을 기울이다가
“혼자시요?”
“네.”
도리어 나를 보고 혼자 이곳에 오는 게 이상타는 데서
“허…… 혼자서! 이곳에 온다는 것은.”
“잘못입니까?”
“잘못이라니…… 망우리 공동묘지에 잘못이 있다니…… 그림자라도 어른거리면 풀도 떠는 곳인데·…….”
“벅찬 말씀만 하십니다!”
“천만에, 자! 혼자라면 나하고 한잔 기울여봅시다.”
꼼짝 못하고 그의 술상 앞에 주저앉아 술잔을 드는 동안 그가 입고 있는 유록 조끼가 내 시야를 따갑게 하였다.
“내 조끼가 신기한 모양이구려.”
어느새 눈치를 채고 그는 묻는 것이었다.
“아니 올시다……”
“그러면…….”
“저는 어릴 적에 유록 마고자를 좋아했습니다.”
“허…… 내가 어린애 같단 말씀이요.”
“그게 아니고 어리던 시절이 생각나 유심 히 눈이 쏠리는군요.”
“나이를 먹어갈수록 사람은 지난날 때문에 어린애가 된다더니 아마 그런 모양이구려!”
“마음 약한 것이 부끄럽습니다.”
내가 술잔을 돌리자
“누구는 안 약한가! 나도 마음이 약하기 때문에 이렇게 때가 밴 유록 조끼를 입고 사는 거요.”
“유록색이 약한 사람의 편입니까?”
“자! 우리 그런 이야기는 구만두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거침없이 행길로 나서 멍하니 무덤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술값은 제가 치렀습니다.”
주막 앞에서 작별 인사를 하자
“술값을 내셨다고!”
그는 눈을 크게 부릅뜨고 내 아래위를 훑어보는 것이었다.
버릇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다 해진 유록 조끼를 입은 촌사람이라고 괄세를 하시는 거요?”
뜻밖에 산울림이 퍼지게 하는 큰 목청으로 나를 꾸짖었다.
“제가 마침 수중에 돈이 좀 있기에 치른 것뿐인데 그렇게 노하셔서야……”
“그렇지…… 도리혀…… 내가 이상한 사람이지.”
비탈길을 내려오는데 그도 천천히 내 뒤를 따랐다.
“혼자서라!”
술이 얼근해진 모양인 듯, 다리가 허청거리는 것을 바로잡지를 못하고, 늦은 봄날 혼자서 망우리를 찾아온 젊은 사람의 심정이 알고만 싶다는 어조였다.
“혼자서는 못 오는 뎁니까?”
나 역시 술이 얼근해지자 이야기가 하고 싶었고 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것만 같았다.
“꽃이 지는 봄날 혼자라!”
“……”
“누구의 무덤이요?”
“젊은 친구의 무덤입니다.”
“허 ―”
“참! 아까운 사람이올시다!”
“대개 아까운 사람들이 일찍 죽지! 젊은 나이라니 청춘인 모양인데……”
“청춘치고도 멋들어진 청춘이올시다.”
“멋들어진 청춘이라! 그렇다면 내가 한번 진작 알아 해줄 것을…….”
“해주시다니……”
“나는 선소리꾼이지! 워헝 달공꾼의 선소리…….”
비로소 그가 워헝달공의 선소리꾼임을 알게 되었다.
“고마운 일을 한평생 해오셨으니!…….”
“뭣이?”
뭐가 고마운 일이냐고 내 앞을 막아서서 큰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잘 다져 주섰으니 말씀예요.”
“그야 정성껏 흙을 다져주기는 했지. 그러나 어느 때는 발들이 맞지 않아 무덤을 이루어놓고도 발길이 돌아서지 않는 때가 있었지. 북을 치며 목청을 뽑는데도 발들을 맞추지 못하고 뒤꿈치만 들었다 놓았다 할 때가 있거든…… 허, 발이 맞지 않으면 만사가 허탕이요 참 힘드는 일이지요. 남이 보기엔 서러운 속에 신명이 나는 노릇이라 하겠지만 어깨를 으씩거리며 발을 굴를 적마다 가슴이 터질 듯하거든.”
그는 뒷짐을 짚고 발을 멈추었다.
“저도 선소리에 반한 사람이올시다.”
발을 멈추구 내가 말하자
“선소리에 반했다고?”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이제 사십쯤 된 나이로 보이는데 달공꾼 선소리에 반했다니 탈이로구려…….”
탈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어째서요?”
“내 말을 못 알아듣겠소?”
“……”
“주검의 장단 소리를 좋아한다니 탈난 사람이 아니고 뭐란 말이요?”
탈난 장본인이 도리어 나를 보고 탈난 사람이란 이 또한 그의 장단 소리의 한 가락인 것만 같아 다시 그의 유록 조끼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디서 거처를 하시나요?”
술김에 나온다는 내 말이 이런 싱검털털한* 문안조인데,
“하시나요…… 라……”
‘하시나요’ 라는 말이 비위에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
“당신 입에서 ‘하시나요’ 란 말투가 나올 줄은 뜻밖이요.”
“비위에 역하십니까?”
“간지러워서.”
간지럽다는 말에 나는 얼굴이 한층 더 붉어졌다.
"시체(時體)* 유행가 가락 같아 비위에 맞지 않는다는 것뿐 당신과는 아무런 틈이 없이 정이 들었소이다.”
정이 들었다고 다가서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길가 풀섶에 주저앉아버렸다.
“졸음이 오는걸…….”
곁에 앉아 진달래를 두 개 연거푸 피더니 졸음이 온다는 것이다.
“졸음이 오다니요?”
그 무슨 말이냐고 나는 술김에 대들었다.
“이게 암만해도 이상하단 말이야…… 공동묘지에서 졸음이 오다니……”
선하품을 해가며 그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다시 진달래를 꺼내 불을 붙이었다.
“취중에 오는 잠이 아닐까요? 저도 지금 졸음이 오고 있는 것을 보니……”
“이거 참.”
그는 난처하다는 듯이 벌떡 일어나더니
“기왕 낮잠을 잘 바에야 자리를 정합시다.”
함께 잠자리를 정하는 게 어떠냐는 것이다.
“거 참, 좋은 말씀이외다.”
“그러면 어디로 정한다?”
“글쎄요…….”
그는 고개를 기웃거리더니
“허…… 내가 왜 이랄까, 낮잠을 자겠다고 서두니.”
이런 일이 일찍 이 없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타는 빛이었다.
“졸음이 오면 자면 되는 거고, 자리만 정하면 구만인데 뭐……그리 걱정할 게 뭐…… 있습니까.”
“지당한 말이요. 자…… 그러면 한심 자고 헤집시다. 기왕이면 아까운 청춘으로 이곳에 와 있다는 당신 친구 무덤에 가서 자볼까.”
무덤도 모르면서 앞장을 선다고 내 앞에서 비틀거리는 그의 뒷모습을 볼제 나는 몽롱하던 머릿속이 갑자기 싸늘해졌다.
“모르면서 어떻게 앞장을 섭니까.”
그의 앞을 가로막고 무덤을 안내하겠다고 나섰다.
산비탈을 더듬어 올라가는데
“저…… 무슨 소릴까?”
발을 멈추고 무슨 소리가 들려온다고 귀를 기울이는 유록 조끼를 보고
“소리라니요?”
아직 내 귀에 들려오는 게 없다고 하자
“귀가 어둡구려.”
자기는 분명히 들려오는 게 있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내 귀가 걱정스럽다는 어조였다.
“노고지리 울음소린 데…….”
그 말에 귀를 기울여보니 분명 어디서 우짖는지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노고지리 소리가 귀를 간질이고 있었다.
박(朴)의 무덤 앞에 이르자 유록 조끼는 무덤의 떼를 손바닥으로 썩썩 문질 러보더니
“지금 한창 살아날 철인데 떼가 이 지경으로 말라버린 채로니…… 허 참.”
떼가 다른 무덤들처럼 살지 못하고 시든 채로 있다고 긴 한숨을 내쉬고 나서
“그러니 노고지리도 울 수밖에.”
어디까지 허공에서 돌고만 있는 노고지리의 소리를 노래가 아니고 울음소리로 그는 듣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말씀은 이제 구만하시요. 잠든 친구의 무덤가에서 듣기가 괴롭습니다.”
“뭐? 잠들었다고요? 말이 없이 묻혀 있으니까 잠든 줄로만 아시는구려. 허, 기찬 일이요. 뜬눈으로 있을 터인데 잠이 들었다? 뭐, 그리고 듣기가 괴롭다고? 아직도 멀었어…….”
반말이 그의 입에서 태연히 나오는데도 그 반말이 조금도 비위에 역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정이 드는 것만 같았다.
절통을 해도 시원치 않을 터인데 괴롭다는 정도 가지고는 아직도 친구 죽음에 대해 원통한 설움이 부족하다는 유록 조끼 말에 나는 술이 깨게끔 부끄러워 졌다.
“떼도 떼려니와 무덤가의 잔디가 이렇게 엉성하니 꽃 같은 청춘이 무덤 속에서 제대로 울지도 못하겠구먼.”
피던 진달래 꽁초를 노고지리 우짖는 허공에 내던진 후 춤추는 양 두 팔을 펼치는 유록 조끼의 눈동자는 꽃밭의 불꽃인 양 붉게 빛나고 안색은 숨을 거둔 지 얼마 안되는 송장의 살색처럼 검퍼레지기 시작했다.
“내가 한번 다져줘야지…… 만화방초 호시절에 이 앞에서 그대로 돌아가다니……”
무섭도록 설움에 젖은 눈동자와 얼굴색으로 유록 조끼는 높이 쳐든 두 팔을 내려 뒷짐을 짚고 비스듬히 가슴을 위로 젖히며
이팔청춘 호시절에
너는 어이 홀로 갔노
워헝 ― 달공―
목청에 맞추어 유록 조끼의 발은 그대로 장단인 양 앞으로 나갔다 뒤로 주춤 다졌다 들었다 어깨가 으쓱여졌다.
“혼자는 신이 나야지, 북도 없고 장고도 없고…… 그러나 할 수 없지, 오늘은.”
눈을 스르르 감고 가슴을 한번 치더니
낙화 분분 새 울 적에
너를 따라 여기 왔네
위헝 달공
다음 가락을 뽑을 젠 유록 조끼의 발은 제 신명에 겨워나는 듯 들렸다. 만근 무게로 땅바닥을 다졌다 다시 으쓱하는 어깨에 따라 번쩍 들렸다.
“이게 다 사바(娑婆)에서 맺은 인연이 아니요? 그래 내가 오늘 노형을 알게 되고 그래서 술을 함께 나누게 되고 다시 이렇게 노형 친구의 무덤을 다져주게 되었지. 허 참, 내야말로 이러다 죽어버릴 선소리 꾼이야.”
다지다 말고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보더니
“나는 설움을 다져주는 선소리꾼이요. 참 이상한 일꾼도 다 있거든.”
앞으로 다가와 내 등을 치는 것이었다.
“좀 좋은 일꾼이십니까. 여기서 알게 되어 반갑습니다. 또 이토록 제 친구의 무덤을 다져주시고…… ”
나는 합장을 하다시피 두 손을 모아 유록 조끼에게 치하를 올리는데 눈물이 돌아 어찔 수 없이 고개를 돌리었다.
“색시 울음 같구려!”
눈물이 도는 내 거슴츠레한 두 눈을 보고 색시 울음이라고 빙긋 웃더니 다시 물러서서 발이 뜨며 가락이 흘러나왔다.
낙화 분분 새 울 적에
너를 따라 여기 왔네
조금 전에 부르던 그 가락을 다시 되풀이하는테 나는 가슴이 터져 나는 것만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돌아가겠소이다.”
내가 돌아서자
“뭐? 돌아간다고? 그게 인사요?”
가락이 끊이며 큰소리가 나왔다.
“가슴이 터지는 것을 어떡합니까?”
“가슴이 터진다……”
“생각해보시면……”
“낸들 천치가 아닌 바에 그 심정을 모를 리 있겠소마는.”
“그런데…….”
“나는 가슴이 터진 지 옛날이요…… 풀도 설움에 떨고, 꽃부리도 넋에 젖어 피기를 주저하는 공동묘지에서 선소리로 늙은 사람인데…… 그러나 오늘만은 원통한 청춘을 위해 내가 한번 다지는데 그럴 수가 있소?”
“고맙습니다만.”
“그래도 가겠단 말이요?”
“……”
“석양녘에 헤집시다.”
한낮이 기운 지 이미 오래요 얼마 안 있으면 해가 지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유록 조끼와는 이대로 헤어지고만 싶었다.
“일찍 돌아가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내가 고집을 세우자
“정 그러시다면 하는 수 없지요.”
유록 조끼는 발등의 흙을 툭툭 털고 나서 앞을 섰다. 신작로에 나서자
“여기서 헤어진다……”
외면한 채 중얼거리는 유록 조끼의 마음을 모른 체 할 수 없어
“그러면 어떡합니까.”
난처한 대답을 하자
“술이 깨는데 헤어진다 생각하니 섭섭하다는 거뿐이지, 이게 다 인연이라…… 허, 회자(會者)는 정리(定離)라 했거늘, 만났으면 헤어지는 게 인생의 도리라…… 자, 그럼 여기서.”
유록 조끼는 작별 인사를 하며 나더러 앞을 서 먼저 가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뒤에 두고 나만 앞서 돌아간다 생각하니 마음이 금시 허전해지는 것 같아 이상스레 발이 놓이지 않았다.
“댁이 어디신지?”
아무리 해도 그가 거처하고 있는 곳을 알고 가는 것이 정든 사람의 예절인 것만 같아 집이 어디냐고 묻자
“집이라……”
금시 텅 빈 웃음을 터트리며 유록 조끼는 도대체 망우리 주변에서 집을 묻는 거조차가 세월을 허랑하게 보내온 사람의 우문(愚問)이 아니고 뭐냐 하는 듯 씨거운* 표정이었다.
그러나 기어코 알고 싶었다. 언제 다시 만나보게 될지도 모를 일일뿐 아니라 어느 때 불현듯이 보고 싶어질 때는 막막한 경우에 부닥칠 것 같은 초조한 생각에서 나는 한사코 그의 뒤를 따랐다.
“허!”
고마우면서도 난처한 데서 나오는 소리였다.
“진짜 우리 집은 황해도 봉산땅이요.”
“황해도 봉산…….”
“왜, 가본 일이 있소? 우리 고장엔 대추나무가 구만이지. 그 처량한 가락이 있잖소…… 대추꽃이 떨어지고 비바람에 대추가 떨어지면 봉산 색시가 분 바른 얼굴이 얼룩이 지건 말건 시집갈 밑천 때문에 운다는 가락 말이요.”
이 말에 나는 발을 멈추었다. 어리던 시절에 봉산땅의 대추나무 이야기가 머리에 떠올라 그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생각나는 일이 있구려?”
유록 조끼 말에
“어릴 때 듣던 이야기가 오랜만에 떠올라서…….”
“허…… 또 어릴 때 이야기라.”
“어떡합니까?”
“어떡하기는 뭐…… 피차 일반인데.”
유록 조끼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다,
“한 대도 안 남았으니.”
흥겹게 피던 진달래가 떨어진 모양 같아,
“제 담배 한 대 피시지요.”
체스터 필드 담뱃갑을 내놓자
“양담배를 피어본다…… 참 오랜만인데. 입맛 제칠까 걱정이야. 자, 그러면 내가 유하고 있는 집을 가보실까?”
담배 연기를 뿜어가며 유록 조끼는 신작로 길에서 앞장을 섰다.
신작로 길을 십 분가량 걷다 오솔길로 들어서 삼십여 호가량 살고 있는 외로운 마을이 그가 유하고 있는 곳이었다.
“우리 고향 사람 집에 식객 노릇을 하고 있는 몸이라……”
아까와는 달리 좀 서글픈 말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고향 사람은 그래서 좋잖습니까. 허물없고 서로 의지할 수 있고.”
“그 흔해빠진 말은 듣고 싶잖소. 그러나 이 집 친구는 고향땅에서 정든 친구의 한 사람이지. 그래서 내가 이렇게 훨훨 단신으로 의지를 할 수가 있단 말이요.”
비로소 그가 처자가 없이 정말 그의 말대로 훨훨 단신 이렇게 선소리꾼으로 남의 무덤이나 다져주며 망우리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는 신세임을 알게 되자 나는 불현듯이
“유하시는 곳을 알았으니까 이제 돌아가겠는데 이대로 떠나기가 인사가 아닌 듯해서.”
말끝을 흐려버리자
“이별주를 마셔 야지. 이대로 헤어질 수가 있소? 얘, 분이야.”
유록 조끼는 안 봉당을 향해 분이를 불렀다.
“새뱅이조림에 술상 좀 봐라.”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열두어 살 돼 보이는 색시아이가 손바닥만한 상에 술을 내왔다.
“얘가 이 집 막내딸인데 꼭 봉산땅에 살던 내 수양딸의 얼굴과 흡사해서 얘만 보면 생사조차 모르는 딸이 생각나 마음이 울적해 못 견디겠단 말이야……이럴 땐 논둑이라도 다져가며 선소리를 뽑아야 참아낼 수 있어.”
원래가 독신이 아니고 식구가 있었으나 삼팔선을 넘어오느라 서로가 갈팡질광하다 생이별이 된 모양이었다.
“앞을 내다보시요. 망우리 묘지가 눈앞에 널려 있으니 이 집도 묘한 자리에 터를 잡았단 말이야……”
새뱅이조림을 먹다 말고 나는 그의 말에 앞을 내다보니 망우리 묘지가 안전(眼前)에 하나 빠짐없이 전개되어 마치 묘지기 집 앞마당에서 있는 착각을 갖게 하였다.
“참, 망우리 무덤을 내다보기엔 구만이올시다.”
“이러니 내가 이 집과 인연을 어찌 끊을 수가 있소. 이게 필연 전생의 필유곡절이지……”
유록 조끼는 아무리 보아도 선소리 달구질* 때문에 미쳐난 사람이요, 무덤을 한시도 멀리해서는 살맛이 없는 인물이었다. 술이 거나해지자
“이팔청춘이 어제만 같더니 나도 벌써 오십 고개를 넘어서 이 꼴이니 어느 누가 젊다고 큰소리를 하고 버릇없이 까분단 말이요. 열흘 가는 꽃이 없듯이 인생 일장춘몽이지. 친구가 청춘에 죽었다고 노형은 서러워하지만 죽는 길은 매한가지야, 청춘에 죽으나 늙어 시들어 죽으나. 그러나 청춘에 안타깝게 사라지는 죽음이 사람의 일천간장을 녹이는 것이니 역시 좋은 게 아닐까.”
안타깝게 사람의 가슴을 터지게 하는 청춘의 죽음이 역시 멋지고 아름답다는 유록 조끼의 말은 마치 무슨 외국영화에서 듣는 세리프만 같아서
“좋은 말씀이나 요즘 그런 말이 너무 흔해서 죽은 사람을 위해 미안스러운 때가 간혹 있습니다.”
죽음을 무서워하면서도 죽음을 마치 지독한 사랑의 꽃밭길처럼 푸념을 늘어놓는 풍조가 있어 이것이 비위에 거슬려 말해본 것인데
“뭣이! 그런 말이 너무 흔해빠지다고, 죽음 앞엔 벙어리 아니면 통곡 두 갈래 길뿐인데…… 이것도 아니요 저것도 아니요 먼 곳에 서서 입만 놀리는 것들이야…… 한번 죽어봐야 알지. 자, 한잔 더 하실까.”
거듭 술 주전자를 유록 조끼가 들고 일어서는 것을 굳이 물리치고 뜰팡*을 내려서 가겠다고 인사를 한 후
“문안에 오시는 길이 계시거든 한번 들려주십시요.”
내가 드나드는 명동거리 다방 이름을 쪽지에 적어주자
“허, 나 같은 달구질꾼이 문안 구경을 하다니…… 죽는 날까지 무덤가에서 발을 구르며 피맺힌 목청만 뽑다 갈 사람이.”
무슨 허랑한 초청이냐는 듯한 어조였다.
“문안에 들리어 들뜬 인생들의 아우성 소리를 들어보시면…….”
“허, 그까진 물거품 같은 것들을…… 이곳 무덤의 새소리와 꽃이면 나는 원이 없어. 대신 노형이나 한번 더 찾아주시구려. 나도 암만해도 쉬 죽을 것만 같은 생각이 요즘 갑자기 들어 이상하단 말이야. 이게 필연 내 발로 다져준 송장들이 나를 보구 싶다고 부르기에 이렇지. 그렇지 않구야 내 목청에, 북을 치는 내 팔과 손바닥에, 내 다리와 발바당에 묻혀진 송장들의 넋이 올랐어.”
송장의 넋이 올랐다는 유록 조끼의 말 그부터가 넋이 오른 목소리였다.
“말이 쉽지 아무나 넋이 오를 수 있습니까. 미쳐나도록 반해야 넋도 오르는 것인데 저는 아직도 먼 것 같습니다.”
미치게끔 반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이 유록 조끼 앞에서 새삼스레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선소리 달구질에 미쳐난 유록 조끼와 작별 인사를 나눈 후 돌아오면서도 내 안전에 어른거리는 그 모습과 내 가슴을 적시는 듯한 선소리로 다리가 허청 거렸다.
그와 헤어져 돌아온 후 며칠 동안은 그의 구술프고도 청아한 선소리가 귀를 울리고 가슴을 헤쳐내는 것 같아 넋 잃은 사람처럼 거리를 혼자 쏘다니었다.
길에서 망우리 쪽을 향해 달리는 영구차만 봐도 금시 그 유록 조끼가 눈앞에 떠올라 다리가 떨리었다.
봄이 가고 복사꽃이 마지막 지고 노랑 장다리꽃이 피는 초여름에 뜻밖에도 망우리 유록 조끼로부터 편지 한 통이 왔다. 인편을 통해 명동거리로 나를 찾아 간곡한 초청인데, 오랜만에 기구* 있게 지내는 장사가 망우리 묘지에서 벌어지니 한번 멋있는 선소리도 들을 겸 나와달라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가겠다는 답장을 보내놓고 그날이 오자 나는 그를 위해 집에서 지은 갑사 유록 조끼와 당목 중의* 적삼을 싸가지고 망우리로 향하였다. 닿자마자
“아마 오늘 장사가 내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하는 거창한 것이라 한번 와보라고 한 것이요. 새벽부터 신명이 나서 나는 술을 한 양푼을 마셨건만 까딱없어 큰일났거든, 허.”
조끼는 봄에 본 때묻어 반들거리는 유록 조끼 그대로였다.
“오늘 입으시라고 집에서 지었기에 가지고 왔습니다. 갈아입으시고 일을 보시지요.”
옷 보따리를 앞에 내놓자
“갑사 조끼라. 허, 이 은혜를.”
갑사 유록 조끼를 그 거친 손바닥으로 어루만져가며 진정 고마운 빛이었다.
한나절이 기울자 드디어 시간에 맞추어 하관(下棺)이 되고 드디어 달구질이 시작되었다.
내가 준 당목 중의 적삼에 갑사 유록 조끼를 입고 그는 북을 어깨에 메고 소리를 가다듬기 시작하였다.
달구질은 두줄잡이로 한 줄에 열 명씩 도합 스무 명이 유록 조끼의 선소리에 맞추어 발이 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역회사 사장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그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이토록 기구 있게 장사를 지낸다는 것이었다.
선영(先塋) 묘지가 있으나 북에 있고 미처 가족묘지를 장만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선 임시로 망우리에 모셨다가 다시 이장(移葬)을 한다는 것인데 이토록 두줄잡이 달구질에 어마어마한 하관식이었다.
“두줄잡이로 해보기는 몇 해 만인지…… 참 앞으로도 없을 게요. 술이 깨시는 모양인데 좋아한다는 고추장에 붕어조림을 내가 생각해 안주로 집에서 내오고 했으니 그를 안주 삼아 한잔 더 드시구려…….”
내 식성을 잊지 않고 고추장에 붕어조림을 안주로 해온 그 마음씨에 절로 서투른 젓가락질이 떨리기만 하였다.
“좀 취하는데요.”
사양을 하자
“좀 취해가지고서야 기찬 선소리와 발돋움을 어떻게 듣고 본담. 쩟…….”
혀를 서너 번 차더니 북을 멘 채 술상 앞으로 나를 끌고 가 술 두 사발에 붕어조림 한 젓갈을 억지로 입에다 넣게 한 후 돌아서더니 북소리가 울리고 소리가 터져나왔다.
낙화분분 새 울 적에
너를 따라 여기 왔네
워헝 달공
뒤로 물러섰다 앞으로 내달으며 발이 번갈아 흙을 다지면서 유록조끼가 북을 울리자 두줄잡이 달구질꾼들이 따라서
삼신산 불로초를
어디 가면 구하리까
워헝 달공
받아넘기며 이리 으쓱 저리 으쓱 춤추는 양, 발들이 관 위를 다져갔다.
술동이를 옆에 놓고 한가락 뽑고 한바탕 구른 뒤엔 유록 조끼는 바가지로 술을 퍼마시고 나를 향해
“나는 오늘 죽어도 한이 없어…… 이렇게 구슬프고도 흥겨운 달구질을 하니까. 목청 이 이렇게 터져나올 줄이야, 허 참.”
송장 얼굴 같은, 그리고 시든 진달래 꽃잎 빛깔 흡사한 얼굴색에 눈물이 서린 눈으로 말을 던지고 나서
봄은 가도 또 오는데
이 길 가면 왜 못 오나
워헝 달공
산이 쩌렁쩌렁 울리는 유록 조끼의 선소리였다.
유족들과 조객들까지도 이 유록 조끼의 간장을 녹이는 듯한 선소리 달구질에 넋을 잃다시피 흐느끼고 있었다.
해질 무렵에 달구질은 끝나고 큰 무덤이 새로이 이루어졌다.
“먼저들 돌아가시요. 오늘은 달이 있는 밤이니 우리는 서서히 갈 터이니.”
이 말에 상가의 일행들은 돌아가고 망우리 주변 사람들과 나만이 남게되었다.
어느 때쯤 되었을까·…… 유록 조끼가 권하는 술을 물리칠 수 없어 서너 차례 받아마시는 동안 나는 그대로 취해 잠이 들어버렸던 모양이었다.
“사람 죽는다!”
아우성 소리에 어슴푸레 잠이 깨어보니 아까까지도 신바람이 나 북을 치고 가락을 뽑고 술을 마시던 유록 조끼가 안색이 백지장이 되어 숨이 경각에 달려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별안간 이게 웬일이야.”
“술이 과해서 이럴까.”
“관격이 되잖았나.”
반송장이 되어 뻗어 있는 유록 조끼를 복판에 놓고 달구질꾼들이 법석이었다.
벌떡 일어나 유록 조끼의 입술과 손을 만져보니 그대로 얼음장이 되어 있었다.
얼굴 전면엔 싸늘한 바람이 헐떡이는 가슴팍마저 얼게 하는 것만 같았다.
물을 끼얹고 사지를 주무르고 마을의 한의(漢醫)를 부르러 뛰어가고 떠메어 병원으로 가자고 유록 조끼의 팔을 쳐들고 이러는 동안 유록 조끼는 헛소리와 신음소리마저 모깃소리로 줄어들었다.
“정신을 차리세요.”
손을 쓰다듬으며 내가 소리를 치자 그제서야 눈동자를 바로 하고
“이젠 글렀어. 황천길에 들어섰어. 지금 내가, 좋은 날 이렇게 죽으니 한이 없어.”
헐떡이는 숨소리에 섞여 그 말소리조차 끊기어 나오고 나서 다시 고통에 못 이겨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정신 좀 차리세요.”
거듭 소리를 치자 다시 나를 보면서
“정신이야 똑똑하지! 헌데 나는 이제 마지막이요.”
하더니 새로 입은 갑사 유록 조끼에 손을 갖다대면서
“새 조끼를 하루라도 입어봤으니 원이 없어. 갑사 조끼를 입고 황천길을 가니·…‥”
눈물이 핑 돌고 있었다.
잠시 거친 신음소리가 멈추자마자
“여보게들, 나 죽거든 이 갑사 조끼도 한데 파묻어주게. 어디 들어볼까? 땅속에서 자네들 선소리와 발장단이 어떤가를.”
씽긋 웃더니 그대로 자는 듯이 유록 조끼는 영결 종천길로 떠나가 버렸다.
갑사 유록 조끼에 얼룩이 지든 말든 나는 솟구치는 애달픔을 참지 못해 조끼 위에 얼굴을 파묻고 울음을 쏟아놓았다.
죽은 지 훨씬 후에 억지로 끌려오다시피 한 의사에 의해서 사인(死因)은 과음과 과도한 충격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진단이 내렸다.
꽃부리도 넋에 젖어 피기를 주저한다는 망우리 묘지에 유록 조끼는 갑사 조끼를 입은 채 누워서 오늘도 북소리에 장단 맞추어 신명나는 구슬픈 선소리와 발돋움 소리를 듣고 있으리라.
『자유문학』 12호(1958. 3)
이 봉 구
이봉구(李鳳九)는 1916년 안성에서 태어났다. 중동중학교를 중퇴하고 고향에서 농촌계몽사업을 벌였다. 일본 메이지(明治)대학에서 청강하다가 소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때 서점을 경영했으며 여러 신문사에서 근무했다. 1935년 『조선중앙일보』 에 「출발」을 발표하며 등단했고, 『시인부락』 『풍림』 『자오선』 의 동인으로도 활동했다. 「광풍객」 「아핀」 「도정」 등을 발표했으며, 「명동의 엘레지」 등의 작품을 통해 명동의 술집이나 다방을 배경으로 한 작가들의 이야기를 썼다. 실제로 반평생을 명동에서 지냈으며 사람들에게 ‘명동시장’ 이라고 불릴 정도로 명동을 좋아했다. 수필 『명동백작』 은 TV미니씨 리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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