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일 오후 서울의 한 공립 어린이집에서 어린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교육용 완구를 가지고 놀고 있다.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시설 좋은 곳은 대기자만 수백 명
국·공립 어린이집이 인기 있는 이유는 사설보다 저렴하고, 시설과 프로그램 면에서 관리가 잘 된다는 인식 때문이다. 현재 서울의 경우 국·공립 어린이집은 625개로 전체(5525개)의 11% 정도. 대기자 수는 7만3000명이 넘는다. 이처럼 국·공립 어린이집 편중 현상이 심해지자, 서울시는 내년부터는 '이중등록'을 금지하는 특단의 조치까지 내놓았다.
서울지역 0~5세 아동은 53만 명으로 이 중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동은 18만6000명 정도다. 이는 현재 서울시에 등록된 어린이집(국·공립, 사설) 정원(22만5000여명)에 못 미치는 것으로 어린이집 시설이 부족하지는 않다는 것이 서울시의 설명이다.
그러나 "부모들이 기피하는 열악한 민간 시설까지 정원에 포함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1990년 1919개에 불과했던 어린이집은 정부가 여성 인력의 사회진출에 대비해 '보육시설 확충'사업을 펴면서 2000년에는 10배(1만9200여개)로 늘어난 데 이어 2007년에는 3만856개가 됐다. 지성애 전남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수적인 팽창에만 신경 쓰면서 정작 시설과 인력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안 됐다"며 "보육 시설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지만, 전체의 90%를 차지하는 민간 어린이집은 아직도 열악한 곳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마포의 한 어린이집에서는 간식을 먹은 어린이 10명이 식중독 증세를 보여 학부모들이 "어린이집에서 먹다 남은 음식을 섞어 다시 조리했다"며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심지어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해 원아 모집을 한 어린이집도 있었다.
◆자리 없어 월 100만원짜리 놀이학교로 맞벌이 부부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는 "경제사정이 안 좋아 다시 맞벌이를 하려고 해도 적당한 보육시설이 없다"는 고민들이 쏟아지고 있다. 고정화(30)씨는 17개월 된 아들을 맡길 마땅한 어린이집을 찾지 못해 끝내 복직을 포기했다. 고씨는 "시설이 좋은 곳에 들어가려면 1년 이상 기다려야 했고, 자리가 있는 곳은 너무 비좁고 지저분해 도저히 아이를 맡길 수 없었다"고 했다.
이런 틈새를 이용해 유아들을 대상으로 하는 브랜드 놀이학교가 대도시를 중심으로 지역마다 지점까지 두며 성업 중이다. 수입 교육용 완구를 활용하고 소수 인원 관리 등을 장점으로 내세우는 놀이학교는 교재비 간식비 등을 포함해 한 달에 100만원 정도를 내야 한다. 아이를 놀이학교에 보내는 김모(33·회사원)씨는 "오죽하면 세 살배기한테 월 100만원씩 쏟아 붓겠느냐"며 "애 낳고 나라에서 해준 일은 출산 후 구청에서 받은 출산장려금 5만원이 전부"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집에서 함께 살면서 아이를 돌봐주는 입주 도우미 역시 비용이 비쌀 뿐만 아니라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알선업체를 이용해 육아 도우미를 고용할 경우 월 150만원 안팎을 줘야 한다.
중국동포(조선족) 입주 도우미 역시 비용이 월 100만원을 훌쩍 넘는다. 도우미를 알선하는 K사의 관계자는 "지금은 도우미들이 모두 파견된 상태라, 2~3개월은 지나야 면접일정을 잡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보육 시설의 질을 높이기 위해
보건복지가족부는 2005년부터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어린이집을 인증하고 지원하는 '평가인증제'를 도입했지만,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영유아보육학회 표갑수 회장(청주대 유아교육과 교수)은 "민간 어린이집 상당수가 기준을 채우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인증 자체를 '정부의 간섭'이라며 거부하는 사례가 많다"며 "좀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