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6월9일
용산공원 시범개방 첫번째 코스에서 마주할 수 있는 미군 장군숙소단지 모습. 국토부 제공
미국으로부터 반환받은 용산공원(용산미군기지) 부지 중 일부가 10일부터 시범개방을 시작한다. 서울 한복판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일제강점기와 미군 점령 및 주둔기를 거친 지난 118년 동안 국민들의 접근이 허락되지 않던 곳이다. 시범
개방되는 구역은 신용산역 인근 14번 출입구부터 미군 장군숙소~국방부(대통령실)남측~국립중앙박물관 북측에 이르는
직선거리 약 1.1km 구간(10여만 ㎡)이다. 오랜기간 외부와 단절됐던 이 곳에 들어서면 서울 도심에선 찾아보기 힘든
이국적인 풍경과 넓은 녹지공간을 만나볼 수 있다.
■장군 숙소단지 이국적 풍경으로 눈길…플라타너스길 ‘장관’
지난 7일 언론을 대상으로 한 사전취재 일정으로 용산공원 시범개방 구역을 찾았다. 여의도 면적과 비슷한 전체 294만㎡
규모로 조성예정인 용산공원엔 주한미군이 사용하던 20개의 출입구(게이트)가 있다. 이 중 이촌역과 인접한 13번 게이트가
윤석열 대통령의 집무실 출·퇴근로로 이용되고, 시범개방 때는 신용산역과 인접한 14번 게이트로 시민들이 입장하게 된다.
용산공원 시범행사 코스 및 안내도. 국토부 제공
출입구를 지나 잠시 걷다보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공간이 바로 미군 장군 숙소단지다. 장군 숙소단지는 도로가 주변으로 정원
을 갖춘 단층 단독주택들이 여러채 어깨를 맞댄 형태로 조성됐다. 1950년에 건립돼 당시 유행하던 미국의 주택양식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단지 내에 있다보면 ‘미국에 온 것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시범개방 구역 중 가장 이국적인 풍경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고층빌딩이 즐비한 용산에서 정원을 갖춘 단독주택을 보는 것도 이채롭다.
장군 숙소단지에서 동쪽 방향인 국방부 남측으로 이동하는 작은 언덕길(단지 내 도로)은 수령이 족히 수십 년은 됐을법한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양쪽에 늘어서있는 볼거리를 연출한다. 언덕길 초입에 들어서면 주변 고층빌딩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외부와 단절된 공간도 나타난다. 관람객들에겐 “이곳이 서울이 맞나”는 생각이 들게할법한 곳이다. 언덕길 나무 그늘 아래
에는 관람객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곳곳에 의자가 배치됐다.
미국 장군숙소단지 내 플라타너스 가로수길. 송진식 기자
숙소단지는 당시 용산공원을 병참기지로 쓰던 일제의 흔적도 아직 남아있다. 시범개방 행사에서 관람객에게 해설을
제공할 예정인 김형기 문화해설사는 “숙소 건립 당시 일제가 쓰던 건물기반을 그대로 이용한 곳도 있기때문에 일제
시절 당시 쌓은 석축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언덕길 내려가면 국방부(대통령실) 건물 한눈에
플라타너스 언덕길을 내려가면 대통령실이 있는 국방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국방부 남측으로 이어지기 전 합참건물을
먼저 만난다. 합참과 국방부 모두 최고군사보안시설이라 철책으로 둘러쌓인 모습이고, 곳곳에는 경비·경호인력이 근무를
서고 있다. 국방부 남측 구역은 시범개방 부지 중 가장 탁트인 공간을 자랑한다. 주한미군들이 야구장으로 쓰던 넓은 잔디밭
이 펼쳐져있고 2층 높이의 전망대가 자리잡고 있다. 야구장쪽을 바라보고 앉아있자면 한적한 시골마을에 온 듯한 기분마저
든다.
용산공원 시범개방 코스 중 국방부(대통령실) 남측 구역에서 바라본 국방부 건물. 송진식 기자
철책 사이로 국방부 건물을 조망하는건 문제가 없다. 철책 앞에는 흰색 바람개비들이 장식된 작은 언덕이 마련됐다.
시범개방의 이동로이자 국방부 남측을 가로지르는 도로가 미군의 옛 ‘10군단로’다. 10군단로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도로에는 관람객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탁자와 의자, 간이화장실 등이 배치됐다. 시범개방이 시작되면 식음료를 즐길
수 있는 푸드트럭 등도 배치될 예정이다. 탁자에 앉아 식음료를 마시며 대통령실을 바라보는 구조다.
이 구역에서는 대통령실의 각종 경호 장비 등을 관람할 수 있는 ‘국민과 만나다’ 행사도 진행 예정이다. 국토교통부는
“15분 마다 40명까지 선착순으로 국방부 앞뜰에 입장해 헬기와 특수 차량 등을 관람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10군단로를 따라 동쪽으로 더 이동하면 시범개방의 마지막 코스인 ‘스포츠필드’가 나타난다. 미군들이 사용하던 축구장,
미국 독립기념일 기념행사가 열리던 광장(도로) 등이 이 곳에 위치해있다. 축구장은 시민개방을 앞두고 깨끗하게 단장된
모습이다. 국립중앙박물관과 맞닿아있는 스포츠필드 내 넓은 잔디광장에는 너비 20m 규모의 초대형 차양막이 설치될
예정이다. 스포츠필드에서 과거 학교로 사용되던 건물 앞에 이르면 시범개방 코스가 종료된다. 코스 마지막 구역에서는
멀찌감치 남산타워가 보인다.
용산공원 시범개방 코스 중 ‘스포츠필드’에 위치한 축구장. 송진식 기자
■지나친 ‘대통령실’ 강조 어색…행사 급조된 흔적도 역력
용산공원의 전체 면적은 뉴욕센트럴 파크에 못지않지만 아직 공원 조성사업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미군이 반환한
그대로의 모습이라는 뜻이다. 이때문에 시범개방에서 실제로 볼 수 있는 풍경은 공원이라기보단 ‘미군기지’ 시절 그대로의
모습이다.
올림픽공원처럼 잘 조성된 ‘공원’을 기대했다면 시범개방이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다. 개방코스도 그리 길지않아 천천히
걸어도 20~30분이면 관람이 가능한 정도다. 120년 가까이 닫혀있던 공간이 뒤늦게나마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 점에 우선
의미를 둬야한다. 시범개방 코스 곳곳에는 관람객들의 의견을 접수하는 ‘경청우체통’이 마련돼있다. 이곳에서 향후 용산공원
조성 시 바라는 점 등을 적어 우체통에 넣으면 정부는 해당 내용을 조성과정에 반영할 방침이다.
역사적이고 뜻깊은 개방행사임에도 아쉬운 점은 몇가지 남는다. 대통령실이 국방부 건물로 이전하면서 주변 경호 문제
등으로 용산공원 접근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지하철 4호선 이촌역과 바로 붙어있고, 시범개방 코스와도 가장
가까운 출입구는 13번 게이트이지만 대통령 출·퇴근 등 경호 문제로 13번 게이트는 이번 행사 때 개방되지 않는다.
용산공원 시범개방 코스 곳곳에 놓인 ‘경청우체통’. 송진식 기자
시범개방 과정에서 ‘대통령실’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점도 ‘국민의 품으로’를 표방한 용산공원 전체 취지에 부합하는지 짚어
봐야한다. 대통령실이 갑작스럽게 이전하면서 용산공원 홍보 팸플릿 표지의 정중앙도 대통령실이 차지했다. ‘국민과 만나다
’라는 프로그램 취지와는 달리 관람객이 실제 먼거리에서 볼 수 있는건 국방부 건물뿐이고, 경호장비 전시 행사 역시 관람이
제한된다. 이국적인 풍경을 관람하다가 마주치는 철책과 삼엄한 경비태세의 모습 자체가 전반적인 공원 풍경과 이질적이다.
개방행사가 급조된 흔적도 역력하다. 장군 숙소단지 내 플라타너스길엔 미관 등의 사유로 잔디뗏장을 나무아래 이식했는데,
아직 자리잡지 못한 부분도 보였다. 편의시설이라지만 여름철 아스팔트 도로 위에 탁자와 의자를 놓아야했는지, 굳이
장소를 대통령실이 보이는 곳으로 택한 이유 등도 의문으로 남는다. 국방부 남측 구역의 전망대는 최근 보수했는지 ‘시멘트
양성 중’이란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정부가 제작한 시범개방 홍보물 표지. 대통령실이 중앙에 위치해있다. 송진식 기자
시범개방은 10일부터 19일까지 하루 5회, 최대 2500명이 관람할 예정이다. 일일 회차별로 500명씩 입장하고, 회차당 최대
2시간까지 머무를 수 있다. 군사보안시설인 관계로 방문 시에는 반드시 신분증을 지참해야 관람이 가능하다. 국토부는
시범개방이 끝난 뒤 오는 9월 일부 시설 정비 등을 거쳐 40만㎡의 규모의 용산공원 임시개방을 진행할 예정이다.
■토양오염 논란도 여전, 국토부 “9월까지 조치”
시범개방 전 불거진 반환부지의 토양오염 문제도 계속 논란거리로 남아있다. 본래 시범개방은 5월 중 이뤄질 예정이었다가
행사 시작 직전 취소됐다. 당시 토양오염 문제가 원인이라는 관측이 제기됐고, 국토부는 “편의시설이 부족해서 보완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해명했다. 미군이 반환한 용산공원 부지 전체가 오염된 것은 아니지만, 환경부 등의 조사결과를 보면
부지에 따라선 발암물질인 다이옥신 등 토양오염이 심각한 곳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김복환 국토부 용산공원추진단장이 7일 시범개방 현장에서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국토부 제공
이날도 오염문제를 둘러싼 취재진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시범개방 코스는 토양오염 위험에서 안전하다는고 국토부는 주장
중이다. 김복환 국토부 용산공원추진단장은 “기존 토양이 직접적으로 인체에 닿지 않도록 다른 토사를 덮는 피복조치를
했다”며 “그럼에도 오염된 부분은 (시범개방) 동선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시범개방 관람시간을 2시간 내로 제한한 것 역시 오염문제와 무관하다고 국토부는 밝혔다. 김 단장은 “2시간 제한은 관람객
들의 편의 및 동선의 혼잡도 등을 고려한 조치지 오염문제와 무관하다”며 “9월 임시개방 때는 혼잡도 등을 고려해 관람시간
을 확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오염된 토지는 다른 토지로 덮는 피복조치를 하거나 땅속에 파이프를 꽂아
오염물질을 증기로 뽑아내는 작업 등을 병핼할 것”이라며 “오염 저감조치를 하기 위한 용역을 발주했고 임시개방 시점인
9월까지는 저감조치를 완료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