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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하루☆]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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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심장근 시집 / 예술가시선 08 / 예술가(2016.08.12) / 값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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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 별도 함께 잠을 잔다
심장근
그만 자자
별 하나가 어느 별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수많은 별과 별 사이, 수많은 길과 길을 지나
수많은 안테나 중에 바로 그 안테나에
마침내 별 하나의 메시지는 가 닿습니다
팔 하나 달라고 언, 별로부터 답장이 옵니다
보세요, 별 하나의 반짝임은 그의 별을 향해 곧바로 가고
어느 별 하나의 반짝임도 망설임 없이 또한 가서
서로 팔을 내밀어 머리를 받쳐주고 잠자는 동안
어둠속에서 별은 기쁘게 빛나는 겁니다
별의 개수만큼 오늘도 메시지가 오고갑니다
그만 자자! 그래, 여기 내 팔!
이런 사실
심장근
지금도
꽃보다 네가 더 곱다
경계석
심장근
이제 주차해야 한다
바퀴 근처 봄 햇살 속에 문득 자주제비꽃 두엇
뿌리를 위한 흙은 없네 알아서 살아왔구나
경계를 짓는 어떤 덩어리와 덩어리 사시가
이렇게 꽃의 집이 되기도 하는 이 봄날
나도 들꽃의 집 마당에 주차하다
문자를 보내다. 2
심장근
별이 반짝입니다
어둠속 어디선가 별을 바라보는 그대가 있는 겁니다
실마리
심장근
누군가 조금 전 비운 꽃병 둘레에
꽃잎 서너 개
…붉은 장미가 거기 있었네
햇살의 말씀
심장근
올해도 능소화가 맨 위쪽가장 환한 옥탑방 하나 찜했다
거기 하늘 가까운 곳에선 하늘 보며 살아야 살 수 있는 그대
…사람이 꽃을 만나는 것은 사랑의 일일까 꽃의 일일까?
아주 조금씩 내가 변한다면, 그를 닮아 나도 꽃이 되는 쪽으로 변해간다면 사람의 일이 바로 꽃이 일이 되는 거다
날마다 나는 햇살이 되어
가난한 옥탑방 그의 몸을 따스하게 스며들었다
무지개
심장근
멈췄던 바람이 마저 지나가자
구름 사이 햇살이 빛난다 토란 잎애 고여 잇던
일곱 빛 빗물이 동시에 쏟아져내렸다
…보라남색파랑초록노랑 주황을 지나 빨강새벽에서 빛이 사라졌다 사라지면서 따뜻함을 남겨놓았다고 하는데, 맞다, 따뜻한 손을 가진 네가 거기 있는 거다
빨강주황노랑초록파랑남색을 지나 파랑색에서 빛이 사라졌다 사라지면서 남겨 놓았다고 하는데, 맞다, 구름 뒤까지 들여다보는 네 서늘한 눈이 거기에 있는 거다
원추리꽃, 패랭이꽃, 담장의 담쟁이덩굴…
거기 있던 꽃과 줄기와 잎들이 함께 빛난다
어느 집 오늘 낮에 닦은 창문도 맑게 빛나고
맛을 위하여
심장근
열매 하나를 위해
백만 마리의 별과 봄 하나가 다녀갔다
…잠시 참새가 앉았다가 떠난 자리 근처의 매실은 조금 전하고 달라요 참새 날개의 달콤한 휴식이 매실 안에 단맛으로 한 스푼 스며드는 거예요
튀어오르듯이 날아다니며 잠시 가지에 앉았을 뿐인데도 푸른 매실은 그 작은 새의 몸무게를 온몸으로 받은 거예요 동그랗고 까만 눈도 정면에서 마주본 거구요
사랑
심장근
산에 오르자 몇 겁의 산이 문득 다가오고
그 한 겹의 뒤에 무엇이 잇는지 들여다본다
또 그 뒤쪽 한 겹 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양파를 한 겹 한 겹 벗겨내는 동안 내내 눈물이 났다 아프지 않도록 눈물이 나는 것이 아니라 눈물이 나니까 안 아픈 거다 양파의 수만 겹 안에 들어있는 아픔
벗기지 않으면 양파가 될 수 없지 한 겹 한 겹 온전히 떨어져 나오면서 비로소 그동안 서로 닿아 있던 속살을 보여준다 함께 있는 동안에는 그렇게 꼭 붙어 있는 거다
산은 다시 그 안에 산을 품고
그의 나무와 새와 바람을 나누어 준다
다시 돌려받을 것이면 나누지도 않는 거다
태풍
심장근
자작나무 숲의 매미 한 쌍
그 고운 7월의 신부를 위해
바람의 길목, 튼튼한 여름잎의 지붕 아래에서
마주 손을 잡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손을 내밀어도 닿지 않는 거리에 있다면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둔다 그가 있는 그곳을 향하여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그는 편안히 잠을 잔다 바람이 점점 세어진다
자작나무 숲은 간다
7월의 신부와 그의 기쁜 짝은
서로의 그림자를 덮고 꾸고 싶은 꿈을 꾼다
바람의 중심은 고요하다 들리지? 서로의 숨소리
춤
심장근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돌담길 걸어올 때
그림자도 따라오며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단팥은 단맛을 내며 돌담에도 스며들고
팔과다리는 저마다 다른 단맛에 즐겁다
…지금이나 훗날 내 옆에 몸은 없어도 언제나 함께해줄 거라는 믿음은 혼자 걷는 걸음을 두 박자나 세 박자의 리듬을 타게 한다 결코 혼자가 아닐 거라는 든든함,
말없이 너를 향해 손을 펴면 내 손바닥에 어느 새 천천히 올라앉는 너의 손바닥의 온기는 손목을 지나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져간다 그 경쾌함!
무릎을 굽혔다가 다시 펴면서 날아오르고
너의 가슴을 향해 나는 한없이 떨어져 냐린다
날개 없는 추락은 네가 거기 있어서 가능한 거지
다시 턴turn, 아이스크림이 입에서만 녹는가
하루
- 뜨개목도리를 하고 새벽길을 나서다
심장근
수백만 번 허공을 찌른 바늘자리가
내 목을 감싼 순간
너의 두 팔 안쪽 따스한 온기로 바뀔 줄이야
하루
- 나만 아는 기쁨으로
심장근
아침에서 점심 사이의 숲속 햇빛 안에는
내가 아는 얼굴들이 제일 많이 들어 있지
지난 이른 봄에 다녀간 영지꽃, 주름잎꽃
오늘부터 보이는 소시랑개비와 꿀풀…
오래 기다려온 표시로 꽃이 되어서
비탈과 허물어진 곳에도 만드는 꽃자리
어느 땅에서 누가 천천히 어깨를 펴는 지 몰라서
나는 한껏 뒤꿈치 들고 산길을 간다
나무 사이 언뜻언뜻 보이는 먼 산의 이마
나비떼 되어 가볍게 날고 있는 연둣빛 잎들
하루
- 밝으니까 본다
심장근
날마다 그 꽃밭을 지나서 오는 해는
꽃들 중 누가 오늘 피어날 차례인지 알지
꽃밭의 일을 잘 알고 살아서
해라고 부른다 아침에 하나만 뜨지만
해는 꽃들의 수만큼 햇살을 가지고 있다
너도 어느 꽃에 물을 주어야 하는 지 안다
향이 너무 진하거나 향이 흐리면
꽃에 너는 물을 더 주거나 덜 주거나
꽃의 일을 잘 알고 있는 너는, 혹시
수많은 햇살 중의 하나이거나 한 묶음…
하루
- 어떤 봄날 저녁
심장근
달달한 빵을 먹을 수 있는 쿠폰을
그가 보내왔다 그는 여전히 내 옆에 있었구나
달달한 빵에 들어 있을
그의 달달한 마음
별목련 별꽃이 드디어 잎을 펼칠 저물녁
그 빵들의 옆집에 꽃집이 있다
빵으로 쿠폰을 바꾸어 나오는 그 사이에도
그 꽃집에 가득한
꽃들의 향은 꽃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빵을 사고 꽃을 가슴에 안을 때
빵과 꽃은 한 종류가 되기도 하는 거다
빵과 꽃과, 먼 길 떠난 어머니도
여전히 내 가까이에 있는 이 봄
별목련 꽃잎처럼 빛나는 빵 쿠폰 한 장
이 저녁 나를 둘러싼 공기도 달다
스마트 폰
심장근
긴 다리 하나를 접고 물 가운데에서
황새 한 마리 서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군
들여다본다는 건 저런 멈춤이 함께 하는 거지
… 들여다보면, 거기 내가 늘 있는 것은 아니었네 부재의 내 메모 옆에 왔다간 표시를 남기고 가면서, 다시 뒤를 돌라보며 보고 싶은 눈빛도 남기고
또한 들여다보면, 나는 거기에 늘 있네! 어긋나지 않는 번호 하나 기억하고 새소리 또는 무음의, 바람 한 줄기 되어 초인종 누르는 손길을 기다리며 나는 그 곁에 서성이는 거지
가다림이라는 게 어느 때는 하루가 되고
한 달이 되고, 살아 있는 전체 날도 되지
어느 한 순사간의 일치를 위한 대기상태는
책상 위의 부르르 떠는 울림과 동일한 두근거림이지
소금
심장근
달빛도 무게가 잇는지
달빛이 냐리는 동안 바닷물은 잔잔하다
오늘은 그렇다 바위섬 하나 가볍게 떠 있다
…그 많은 바위섬들은 파도의 이랑과 고랑을 오르내리는 동안 조금씩 부서진다 부서져서 어둠속 어디인가 흩어져 있다가 다시 달빛을 받아 섬 하나가 된다 부서져 본 섬만이 그의 멋을 가질 수 있는 거다
바람은 다시 섬을 밀고 와서 가른 섬 옆에 나란히 세우는구나 섬과 섬 사이, 해와 달과 별과…, 빛나는 것들은 수시로 찾아들고 부서지며 내려앉는 동안 바람은 어딘가에 창고를 짓고 지은 창고를 채우기 위해 다시 길을 떠난다
별빛도 무게가 있는지
별빛이 쏟아지는 동안 바다는 잔잔하다
지금이다, 고무래로 그 빛의 파편을 긁어모으는 때는
미소
심장근
석류꽃이 피던 날의 뒷자리에서
이제 붉은 석류가 익어가고 있네
익어가는 것들은 기쁘지 가득 들어있는
입안의 그 흰 씨들을 보이고 싶은 거다
…어디인가 비어 있는 나뭇가지를 찾아가서 새 석류꽃으로 채운 그 봄날은 가고, 봄날은 가면서 머뭇머뭇 작은 돌부리에도 일부러 넘어지며 하루쯤 더 남아 있었네 하루 더 남은 그 햇살은 하루 늦게 온 석류꽃을 마저 피우고
나도 너에게 하루쯤 늦게 온 꽃이지 내가 어재 저물녘 붉은 노을 앞에서 서성일 때 문득 너의 가슴 한쪽을 향하여 바람이 지나가던 거 기억하지? 네 앞에서 서성이던 내 옷자락을 잡아 네 가슴에 꽂던, 가슴에 꽂자마자 꽃이 되던 그 석류꽃
하루 쯤 너에게 늦게 온
석류한 알의 벌어진 틈에서
너는 나를 찾는구나
…그 환한 웃음, 드디어 찾았구나!
영화
심장근
8월 22일, 토요일이다 2015년
점심 먹고 찾아온 낮잠을 달게 자고 나서
집 앞 롯데시네마에서 인터넷 예매를 했다
오늘 저물 무렵에는 그중 베테랑의 붉은 노을을 만나야겠다
…기억하는구나 살아오는 동안 잃었던 길을 찾는 수많은 방법을 너는 너의 길을 지키면서 나에게 알려주었다 문밖의 길은 얽히고 끊어지고 때로는 없는 것이 보이기도 하면서 참으로 아슬아슬하게 여기까지 나는 온 거다 수많은 추락의 충격 속에서도 내가 너를 잊지 않는 것처럼 너도 나를 기억하고 있었구나
기억나는구나 언제인가 너의 차를 타고 내 하루의 목적지에 내리던 그날, 꽃은 꽃대로 피어서 더러운 길도 꽃길로 만들던 그날의 좋은 네가 기억나는구나 너를 위해 난나는 싸운다 터져오르는 팝콘처럼 날아가 길에 떨어지고 맞바람에 방향을 잃은 새가 되어 맑은 유리창에 부딪치기도 하면서 나는 잘못 살기 싫어서 지금 제대로 싸우는 거다
로러닝타임 두 시간의 어둠 속에서
나는 내안의 또 하나 빛을 보았다
그동안 거기 있었던 빛이어서 낯익다
권태로운 내 하루와 대적하여 어린 풀꽃은 오늘분
그 이쁜 얼굴을 커다란 스크린 사이로 내밀었다 사라지는구나
누룽지
심장근
뜨거운 불과 맞닿은 곳에
에메랄드나 수정, 다이아몬드가 생긴다
집 앞 작은 화단에 수국이 피었다 어머니가 오며가며 들여다보고 웃으실 때가 된 것이지 맑은 날은 허리를 굽혀 이마를 대어보기도 하고 비오는 날은 꽃들 젖은 이마에 손을 펴서 우산 삼아 잠시 받쳐주기도 하는 그때도, 뜨거운 불과 맞닿은 곳이 되는 거다 그 사이에
에메랄드나 수정, 다이아몬드가 되지 못한 것은
… 그래, 구수한 맛의 네가 되었구나
친구
심장근
하늘은 멀리 잇는 듯하지만
수많은 높이들이 섞여 있는 거지
그래서 큰 나무도 아주 작은 풀꽃도
제 높이에 맞추어 하늘을 갖는다
…키 큰 나무가 키 작은 풀한테 말한다 내 발등을 덮어줄래? 풀들은 작은 걸음으로 봄날의 들판을 건너오는 동안 다른 풀들도 옆에 앞에 뒤에 함께 산다 여름날에는 그들의 꽃으로 들판은 가득하구나 키 큰 나무는 그의 그림자로 어디까지가 그의 발등인지 표시하는 동안 또 가을이 온다
높이가 달라도 한 하늘을 나누어 갖고
어느 날 나무는 떠는 풀들에게 제 살을 나누어주며, 마침내
어깨의 높이가 같은 별이 되어 함께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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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自序
덥다. 더위 속에서도 저 뜰 안의 철늦은 주름잎풀의 작은 들꽃들은 더 많은 꽃잎을 펼친다. 이 여름, 나도 개미도 주름잎풀도 더우니까 살만하다.(봄에는 이랬다. 담장 안 햇살 속에 나란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따습다., 따스우니까 살만하다. 가을에는 이랬다. 하늘을 보는 것만으로도 비어 있던 곳이 채워진다, 채워지니까 살만하다. 겨울에는 이랬다. 오늘 쌀밥이 맛있었다. 밥이 맛있으니 살만하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그렇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없으면 백만 명도 없다!
어느 날 하루 동안 이런 일이 있었다. 동기와 희정이가 이 시집을 낼 수 있도록 내 통장의 계좌번호를 적어갔다. 남들이 볼 때 약속된 맞춤법이 맞는지 살펴주시기 위해 박 선생님은 여러 번 눈을 비비셨다. 이해인 수녀님께서는 느닷없이 추천의 말씀 요청에도 가장 맑고 따스한 마음의 물을 내 정수리에 부어주셨고, 안수환 선생님께서는, 음, 찾으면 그 어느 곳에도 안 계셨지만 안 찾으면 그 어느 곳에도 계셨다! 또한 그「하루」동안 이 시집 한 권이 생겨났고, 나는 하루의 아빠가 되었고, 그는 하루의 엄마가 되었다.
…위대한 하루다!
2016년 여름
심장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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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근 詩集 [※하루※]
[ 해설 ] -
시적 순간을 가로지르는‘조응照應’의 시학
― 심장근의 시세계
배인덕 시인. 문학평론가
1
시poetry는 독특한 발화의 양식이다. 그 특징은 우선 시poet가 ‘매우 짧다’는 점에서 글(문자)이지만 말(음성)에 가장 가깝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현대시가 시어를 일상어와 구분하지 않고 사용한다는 데서 출발해서, 탄탄한 리듬 의식을 기반으로 쓰이기 때문에 생긴다. 그러나 말이 일반적으로 정보나 정서의 교환을 목적으로 하는 반면, 즉 언어의 외연外延에 집착하는 데 반해 시는 발화의 순간, 발견과 직관을 통해 매번 새롭게 내포內包적 의미를 생성한다. 다시 말해 진정한 시에서는 소위 ‘동어반복’이 생길 틈이 없다. 현대시는 지나치게 이미지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서, 엇비슷한 이미지를 흔히 자기 복제나 인식의 불철저의 반증反證으로 치부해 왔지만 깊이 헤아려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다”는 비유를 통해 시간의 흐름과 변화를 무섭도록 냉철한 인식으로 확인하고 있다. 반면에 지난 세기 프랑스 시인 P.엘뤼아르는 그의 시「나이는 없어」에서 “단 하나의 계절을 위해 벌거벗은 물과 불/우주의 얼굴에 저무는 것은 없다”고 선언했다.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변하지만 결코 사라지는 것은 없는 우주, 혹은 순간이 바로 오늘의 시적 순간인 셈이다.
심장근의 다섯 번째 시집,『하루』는 구성이라는 측면에서 특이한 외양을 갖추고 있다. 하나는 “지금도/꽃보다 네가 더 곱다”(「이런 사실」)처럼 작품의 내용이 제목에서 완성되는 경우고, 다른 하나는 말줄임표(…) 앞에 내세울 때 발화의 방향이나 깊이가 달라진다는 점, 마지막으로「하루」와「한 사람」연작처럼 여러 작품이 하나의 계기motif에 대한 상이한 순간의 직관으로 구성된다는 점이다. 이 잘 짜여진 의도가 형식적으로 이번 시집을 튼튼하게 떠받치고 있다면, 이른바 만물 ‘조응’에 시적 인식 내지는 태도가 의미의 차원에서 시집의 지향志向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제 주차해야 한다
바퀴 근처 봄 햇살 속에 문득 자주 제비꽃 두엇
뿌리를 위한 흙은 없네 알아서 살아왔구나
경계를 짓는 어떤 덩어리와 덩어리 사이가
이렇게 꽃의 집이 되기도 하는 이 봄날
나도 들꽃의 집 마당에 주차하다
-「경계석」전문
이번 시집이 보여주는 몇 개의 간극, 정확하게 말하면 간격을 가로지르는 생의生意의 시적 순간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시적 화자는 ‘주차’라는 인간적 행위에 집중한다. 그런데 ‘바퀴 근처’에서 “문득 자주 제비꽃 두엇”을 발견한다. 이는 곧바로 “뿌리를 위한 흙은 없네 알아서 살아왔구나”라는 일종의 자각에 닿고, 뒤이어 ‘경계’의 “어떤 덩어리와 덩어리 사이가” ‘꽃의 집’이라는 사실을 재인再因하게 된다. 이 재인이 놀라운 점은 첫 행에서 보였던 ‘주차’라는 행위가 인간, 혹은 주체로서 자아의 무의식적 반응이라면 ‘어떤 덩어리와 덩어리 사이’, 즉 융합融合되지 못한 이질의 두 사물의 ‘사이’에서마저 생명의 장場을 열어젖힌 ‘자주제비꽃 두엇’의 발견의 순간 화자의 행위는 “들꽃의 집 마당에 주차”하듯 조심스러워진다는 것이다. 주인에서 손님으로의 자연스러운 전환轉換이 드러나고 그 매개가 생명임 또한 자명해진다.
이 글은 결국 “문득 자주제비꽃 두엇”을 발견하는 심장근 시인의 시적 순간에 집중하면서, 그것이 결국 “어떤 덩어리와 덩어리 사이”의 ‘경계(간극)’를 가로지르는 인식임을 밝혀보고, 시학으로서 ‘조응’의 의미를 탐색하는 도정道程이 될 것이다.
2
시적 순간이란 계기를 지칭할 수도 있고, 어떤 대상에 대한 발견이나 직관이 이루어지는 찰나刹那이기도 하고 그것이 시적 형상화하면서 ‘의미’가 생성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굳이 따져야 할 것이 있다면, 이런 순간들이 순차적順次的으로 진행하는가, 아니면 즉시 형성되는가일 것이다. 순차적이라면 작품을 시인의 의중을 보다 심층적으로 반영한 소도구로 이해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반대로 즉시성卽時性이 두드러진다면 작품의 언표 너머의 시적 지향을 찾는 데 보다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심장근 시인의 경우는 후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오랜 시작詩作과 부단한 사유의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시인은 이미 자신의 의도와 대상의 양태와 시적 의미를 한순간에 용해溶解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한 것 같다.
…사람이 꽃을 만나는 것은 사람의 일일까 꽃의 일일까?
아주 조금씩 내가 변한다면, 그를 닮아 나도 꽃이 되는 쪽으로 변해 간다면 사람의 일이 바로 꽃의 일이 되는 거다
-「햇살의 말씀」부분
…마당의 수많은 항아리 중에 어느 항아리에 매실이 있는지 매실나무는 알지요 매실나무에 앉았던 새들이 내려앉는 항아리
-「누름돌」부분
…70년을 걸어가야 만날 수 있는 별 하나를 향하여 네가 왔다 걸을 때마다 너를 앞으로 밀어내며 피어나던 봄꽃들도 제 향기에 취해서 지고
-「매미」부분
앞에서 언급했듯이 말줄임표(…)로 시작하는 연이 배치된 작품들에서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앞뒤가 일반적인 시적 서술로 시의 배경이거나 해제解題의 기능을 맡는 반면, 대체로 작품의 중심에 놓인 이 부분은 시적 화자의 직접 진술의 형태로 의미의 발생을 겨냥한다. 대체로 이 명제들은 느슨한 형태로 풀어져 있지만, 의미는 명료하고 강압적인 고지告知보다 자연스런 스밈을 지향하고 있다. 이는 시인의 발화 형식의 간과할 수 없는 특징임을 다시 강조한다.
이들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발화자가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첫 번째 인용 시의 경우, ‘나(내)’와 ‘그’ 같은 인칭명사가 등장함으로써 인격화하고 있지만, 실제 말하는 이는 ‘햇살’이다. 이는 ‘햇살의 말씀’이라는 표제에 의해 강력하게 증거되며, “사람의 일일까 꽃의 일일까?”라는 물음을 통해 제3의 존재가 개입하고 있음이 반증된다. 마찬가지로「손수건」에서는 “너는 열이 좀 있고, 너는 누군가 보고 싶구나”라고 손수건을 짚어주는 존재가 저녁 해임이 드러난다. 여기서는 ‘해(햇살)’가 사람과 꽃을 가로지르는 , 해바라기와 그를 바라보는 시선을 가로지르는 존재라는 것만을 명시하기로 한다. 이와 달리 두 번째 인용작품은 시적 화자가 직접적인 발화자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발견의 순간을 강조하기 위해서 ‘항아리’와 ‘새’ 모두를 동시에 포착하기 위한 전략이라 볼 수 있다. 이는 행위자보다 그 결과에 집중했을 때 사용되는데, 가령 「맛을 위하여」에는 “잠시 참새가 앉았다가 떠난 자리 근처의 매실은 조금 전하고 달라요 참새 날개의 달콤한 휴식이 매실 안에 단맛으로 한 수푼 스며드는 거예요”라는 직접적인 표현이 등장한다. ‘참새’와 ‘매실’ 그 어느 쪽에도 몰매를 주지 않으면서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누름돌’에서 수많은 항아리 중에 제 열매가 담겨 있는 항아리를 매실나무가 알 수 있게 해주는 새의 내려앉음은 그 이전 즉 항아리에 담기기 이전의 새의 휴식을 받아든 매실과의 상호작용의 탁월한 효과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인용 작품의 경우, ‘너(네)’는 매미인 것이 분명하지만, 걸어가야 만날 수 있는 ‘별’과 매미의 계절을 위해 먼저 지는 ‘봄꽃’들의 상징을 통해 발화의 주체가 시인임을 유추할 수 있다. 이런 경우는 비유의 사용이 결국은 시인의 정서적 표출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청포도」,「사모곡」,「쉼休」등, 이 계열의 작품들은 시적 화자의 정서가 비교적 직접적으로 표출되고, 현실의 일부분이 포착된다. 이는 ‘시간의 흐름과 변화’라는 절대 불변의 진리 앞에 선 한 존재의 자각이 자성自省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미 충분이 유의미하지만, 시인이 궁극窮極으로 겨냥한 것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시인은 “잔디밭을 지날 때 바람은/그 손에 쥐었던 것을 내려놓고 간다” ‘몇 개의 토끼풀’과 ‘그곳에 앉았던 좋은 기억’까지 내려놓고 가는 ‘바람’을 보면서 시인도 “운동화를 벗어 옆에 놓고” 길게 누워 “하늘도 한 평 거기 내려놓고” 그래서 “잔디밭을 지날 때 나는/빈손에 무엇인가 한줌 받아들고 간다”(「생성」)고 고백하고 있다. ‘생성’이라는 제목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바람이 놓고 간 무엇으로부터 나는 ‘기억’이 아닌 ‘생명’의 무엇을 건져 올린다는 간명한 명제로 환원된다. 이 환원이 이 시집이 구축하는 ‘조응의 시학’의 한 기둥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멕시코의 노벨상 수상시인 O, 파스는 현대의 언어적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단한 바 있다.
자의식의 성장은 대화와 독백이라는 언어의 두 가지 기능을 위협한다. 대화는 다의성에 기초하고, 독백은 동일성에 기초한다. 대화의 모순은, 각자가 타인들과 말할 때 사실은 자기 자신과 말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독백의 모순은, 자아가 결코 자신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말하는 것을 듣는 타인이기 때문이다. 시란 언제나 용어의 개종을 통하여 이러한 불화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되어 왔다.(「활과 리라」)
시의 역할을 존재의 차원에서 실제적으로 진단한 명쾌한 진술이다. 여기에 비추어본다면, 심장근 시인은 진단하기보다 시적 형상화를 통해 보여주기를 택한 것이라 이해할 수 있고, ‘대화와 독백’을 구분지어 사유하기보다는 가로지르기라는 전략을 채택함으로써 ‘이해’에 앞서 ‘공감’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인식과 시작을 몰아온 것으로 보인다.
3
시적 순간이 빚어내는 황홀함이, 물론 그것은 아우라Aura를 후광後光으로 두를 수 있는 시적 형상화에 성공한 작품들에만 주어지겠지만, 이번 시집『하루』에는 페이지 곳곳에서 묻어나고 뻗어 나온다.
수백만 번 허공을 찌른 바늘자리가
내 목을 감싼 순간
너의 두 팔 안쪽 따스한 온기로 바뀔 줄이야
-「하루-뜨게목도리를 하고 새벽길을 나서다」전문
개략적으로 현대시에서 발화자(시에서 말하는 이)에 대한 이론을 살펴보면, 주체, 자아ege, 시적 자아persona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때 주체는 객체(타자, 대상)과 관계되고, 자아는 무의식(욕망)과 연결되며, 시적 자아는 자극(불안과 현실)과 관련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구도는 사실 현대시에 대한 이해를 확장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시인’에 대한 이해와 시적 순간을 해명하는 데는 일정 부분 그 한계를 노출할 수밖에 없었다. 이 모두가 일종의 변별성, 즉 ‘다름’이 아닌 위계적 ‘차이’를 의연 중에 강조했기 때문이다.
심장근 시인의「하루」는 표제가 암시하는 것처럼 순간에 집중하면서 그것이 미시적 인식에서 끝나지 않고 우주를 포섭包攝할 지점이라는 점을 상기시킴으로써 시사적詩史的 의미를 획득한다. 인용 시처럼, ‘하루’는 “수백만 번 허공을” 찔러야 하는 속절없는 연장延長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목’, 누군가의 생명(‘목’이 일반적으로 유비하는)과 만날 때 ‘온기’, 즉 생기生氣로 전환된다. 어떤 이유나 과정에 앞서 접촉(일종의 만남)은 곧바로 생명의 물줄기를 튼다. 이것이 이번 시집의 전반부에서 시인이 보여준 시세계의 전모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전환, 꿰뚫지 않는 가로지르기에 익숙하지 않다. 시인은 이미 “아침에 하나만 뜨지만/해는 꽃들의 수만큼 햇살을 가지고 있다”(「하루-밝으니까 본다」)는 것을 알며 “바람은 언제나 직선으로 오지 않고/높낮이가 다른 나뭇잎들을 고루고루 지나서/내가 서 있는 눈높이에서 솟거나 내려앉는구나”(「노래」)나 “저물녘이면 새들이 돌아오는 길이 있다/아무데로나 날아들며 날개를 접지 않고/하루 종일 햇빛이 지나간 들판과/바람이 멈췄던 곳에 숨어 있는 길을 찾”(「하루-들판에서」)는다고 한다. 햇살을 꽃잎을 찌르고 지나가는 무수한 화살로 읽지 않고, 바람이 직선으로 불지 않으며, 저녁 새들의 어지러운 비행을 해와 바람이 낮 동안 새겨둔 길을 찾는 자연스런 행로行路로 읽는 마음, 만물 조응의 시학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조응’이란 서로 비춤이다. 한 방향이 중시되고, 한 함이 중요하게 인식되기 시작하면 조응이 아니라 강제적 응시凝視가 되고, 그것이 더욱이 인격일 때, 최악의 경우 시인일 때, 사물은 얼굴을 감추고 제 빛깔과 향기를 바꾸고 인간의 말을 앵무새처럼 되돌려준다. 이 ‘타인이 지옥’인 세상을 시인은 이미 벗어던진 것이다. 따라서 그의 가로지르기는 개념적이기보다는, 그렇다고 감각이라지보다는 경계의 사이에서 망설임과 같은 것인데, 여간해서 부정적 정조(情調:정서와 시어)를 드러내지 않는 시인의 의지가 역으로 돋을새김된다 해야 할 것이다.
하나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자. 낮에는 해와 꽃이 어른대로, 밤에는 별과 잠자리가 비행하는 검푸른 수면이 있다. 거기에 돌(詩心) 하나가 던져졌다고 하자. 밤의 소리는 멀리 빠르게 퍼져나가지만 ‘반향과 울림’은 소리의 다른 층위일 뿐, 신속히 사라진다. 그렇다면 하나의 조용한 형상形象만 남는다. 작은 동심원이 다음 물결로 더 넓게, 그 다음은 조금 더 넓게 퍼져나갈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형상의 표면에서(물리적 법칙을 무시하고) 작은 원과 보다 큰 원 사이의 관계를 읽어낼 수 없다. 그것은 단절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또한 각기 소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 목걸이와 너의 흰 목의 만남에도 이끄는 힘이 있었던 거지 지난 봄날 개나리 담장을 큰 목걸이 삼아 마을 하나 봄이 깊어 갔던 것처럼 너와 너의 목걸이도 함께 깊어”(「자석」)간다고, 여기서 심장근 시인의 ‘자석’을 무어라 ‘명명命名’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힘이 생명의 이 화신化身과 저 모양模樣을 끌어들여 한바탕 축제를 기획한다는 것만을 말하기로 하자.
어쩌면 ‘하루’가 시적 순간이 빛나는 지점을 지시指示한다면, 그곳을 향해 누추한 몸(아마도 그 이유는 갱신을 거듭할수록 ‘기억’에 의해 무거워지고 헐거워지는 마음이 소여所與이겠지만)이 오늘을 기록한 것이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예의 그늘이 걷힌 맑은 공간이 약간의 질식을 일으키지만, 시인은 여전히 나를 부드럽게 뻗어나가 앞서 일어나 파문波紋에 가 닿고자 한다. 그것이 비록 소멸에 가까워지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은행나무 한 그루 나뭇잎의 개수는
멀리에서 그 나무가 보일 때 셀 수 있다
들판을 지나간 아침의 개수와
들판에서 꽃 피우고 또 지던 들꽃의 개수를
아는 사람 없다 때가 되면 잊어야 해서
그들은 잊는다 아버지도 잊는 때가 되었고
이따금 전화를 나한테 하셔도 그것이 나인지
알고 하시는 때는 없다 누구요? 늘 물으시는 첫 말씀에
오히려 내가 날마다 나를 찾는다 아버지는
다 잊었어도 보고 싶은 사람은 여전히 있는 것처럼
넓은 하늘도 좋은 부분이 따로 있는 거다
멀리에서 그 나무가 보일 때쯤이면
나무는 없다 등걸의 뜨거운 나이테만 있고
-「한사람-은행나무」전문
뜨거운 마음이 한순간을 지나간다. 심장근 시인은 ‘은행나무’를 들어 현실에서 통용되는 물리적 사실로서의 원근遠近 이전에 마음의 행로를 되짚어 보여준다. ‘아침의 개수’와 ‘들꽃의 개수’는 앞으로도 셀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루’마다 새로운 것이며 하나의 관계의 장에서 매순간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육신肉身의 관계는 다르다. 치매의 ‘아버지’가 “누구요?” 라고 전화를 걸어오는 것은 “다 잊었어도 보고 싶은 사람은 여전히 있는 것”이지만, 시인은 “어디선가 꽃이 피려고/온몸의 기운을 꽃잎으로 모으는 시각/해도 그때 뜨기 시작하는구나”(「풀꽃개론」)감탄을 숨기지 않는다. 시인에게 조응의 시학은 이처럼 익숙한 것이면서 절실한 것으로 보인다. 이 두 방향이 필자에게는 분리分離보다 전화轉化로 읽히지만, 이 작업은 이번 시집『하루』에 대한 보다 상세한 후속 작업을 기대하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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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심리를 가더라도 는 걸어서 간다. 갔다. 삼십리를 가더라도 드는 걸어서 갔다. 비가 오면 심장근 시인의 발
짝에는 빗방울이 묻지 않고 천궁의 눈물이 묻어난다. 왜냐하면 그는 정성스러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성 그 자체는 하늘의 덕목이다(「중용」). 하늘의 정성이 심장근의 몸을 채웠으니, 시를 쓰지 않더라도 그는 벌써 시인인 것이다. 그의 눈에매 앞에서는 지리산의 메추라기도 한밤중 초승달도 부처님의 현신現身이 된다. 그의 눈매 앞에서는 먼지와 마음이 둘이 아니다. 적은 것은 큰 것이었다. 심장근은 그러므로 심물일원心物一元의 부챗살을 펼쳐들고 시를 쓴다.
- 안수환 시인
심장근 시인의「하루」는 표제가 암시하는 것처럼 순간에 집중하면서 그것이 미시적 인식에서 끝나지 않고 우주를 포섭包攝할 지점이라는 점을 상기시킴으로써 시사적詩史的 의미를 획득한다. 인용 시처럼, ‘하루’는 “수백만 번 허공을” 찔러야 하는 속절없는 연장延長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목’, 누군가의 생명(‘목’이 일반적으로 유비하는)과 만날 때 ‘온기’, 즉 생기生氣로 전환된다. 어떤 이유나 과정에 앞서 접촉(일종의 만남)은 곧바로 생명의 물줄기를 튼다. 이것이 이번 시집의 전반부에서 시인이 보여준 시세계의 전모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조응’이란 서로 비춤이다. 한 방향이 중시되고, 한 함이 중요하게 인식되기 시작하면 조응이 아니라 강제적 응시凝視가 되고, 그것이 더욱이 인격일 때, 최악의 경우 시인일 때, 사물은 얼굴을 감추고 제 빛깔과 향기를 바꾸고 인간의 말을 앵무새처럼 되돌려준다. 이 ‘타인이 지옥’인 세상을 시인은 이미 벗어던진 것이다. 따라서 그의 가로지르기는 개념적이기보다는, 그렇다고 감각이라기보다는 경계의 사이에서 망설임과 같은 것인데, 여간해서 부정적 정조(情調:정서와 시어)를 드러내지 않는 시인의 의지가 역으로 돋을새김된다 해야 할 것이다.
- 배인덕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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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근 시인∥
∙ 충남 아산 출생
∙ 1983년『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 2014년 시집『선물』외 4권을 냈고,
∙ 2016년 현재 충남 아산에서 교직에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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