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로 밤 새우다
『북』쓸데없이 시조를 외우며 밤을 꼬박 새운다는 뜻으로, 어떤 허망한 일에 얽매여
세월을 헛되이 보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조-하다(-時調-)
「동사」
- 「1」『문학』시조를 읊거나 부르다.
- 「2」(낮잡는 뜻으로) 말이나 행동을 느릿느릿하게
하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시조時調'를 찾아 보다가 관련 속담과 '시조時調하다'라는 동사의 뜻을 보고, 시조의 의미 중에 부정적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는 걸 알게 돼 좀
실망스러웠다. 농번기를 정신없이 보내는 농민들이 정자에 앉아 시조를 읊는 양반들을 보는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 이해는 되었다. 하지만 사전의 풀이가 사정없이 이 몸을 후려친다. 샌디 에이고에서 처음으로 대면한 내 첫 시조집으로 인하여 무슨 큰일이나 한 것처럼 마음이 부듯하고 뭔가 보람을 느끼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얼굴에 찬 물을 끼얹고 정신을 차리란다. 사전을 찾다가 물벼락을 맞은 꼴이지만 차제此際에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속담이 말한 바대로 나는 세월을 헛되이 보낸 것인가. 또는 특별하게 하는 일 하나도 없이
너무나 한가하게 지내며 편안만 추구하는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몸에 배어 의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스스로 묻는다. 사실 3장 6구의 짧은 글이 뭐 그리 중대한 의미가
있다고 책까지 낸 것인가. 냉엄한 현실 속에서 의식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나 자신도 시조가 내 생활의 전부가 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뭔가 의미 있는 생활을 하며 그 건강한 생활이
시조로 표현되기를 원한다. 누구든지 현실 속에서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그에 기반을 두지 않은 문학은 건강한 문학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현실과 거리가 먼 문학은 현실 도피적인 성격을 갖게 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말하자면 초점이 맞지 않아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는 사진이 아니라 구도도 맞고 선명한 사진,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시조, 분명하지 않던 생각이나 감정이 잘 정리되어 나타난 시조로 다른 사람이 읽을 때 동감하면서 즐거움을 느끼게 되고 뭔가 풀리며 사는 맛을 만끽할 수 있는 시조, 즉 현실과 문학의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시조를 쓰기 원한다.
샌디에이고에 머물며 '새소망교회'에 출석했는데 한국에서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단조로운 생활 중에 일요일은 특별한 날이었다. 멀리 한국에서 찾아 온 교회라 그런지 어떤 때는 내가 성지 순례를 하고 있는 것 같은, 특이한 감정으로 설교를 듣곤 했다. 목사님이 여러 주 걸쳐 창세기의 말씀으로 설교하셨는데 한국에서보다 훨씬 더 집중해서 들었다. 그
중에 아브라함에 대한 내용을 듣고, 나도 나이가 들었지만 뭔가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구체적인 변화를 꿈꾸게 되었다.
우선 떠나자. 최소한의 비용을 쓰며 여생을 자연과 벗하며 지내는 것이 얼마나 이상적인가. 70이 넘어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이주지로 떠나 다시 시작하는 아브라함의 그 용기를 본받고 싶다. 노인이라는 테두리를 정하지 않고 뭔가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싶다. 만일에 떠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또 다른 형태의 시조나 아니면 수필이나 소설에 도전하여 책을 내는 것도 일종의 '떠남'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브라함이 떠났다는 건 꼭 지리적인 뜻은 아닐 것이다. 모두 아브라함을 본받아 떠난다면 농사지을 사람도 없고 교통 혼잡으로 세상은 더욱 어수선하게 되니 문제가 클 것이다.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꿈을 꾸고 도전하여 새로움을 추구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으리라. 오늘의 시작은 바로 떠남이 아닌가. 어제에 얽매임이 없이 진정한 오늘을 새롭게 시작한다면 바로 그는 75세에 친족을 버리고 과감하게 떠난 아브라함의 인생을 사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이제 일주일 후면 90일 동안의 샌디에이고 생활을 마감하고 한국으로 간다. 정말 잊을 수 없는 건 샌디에이고의 청명淸明한 날씨이다. 그래서 밤이면 달빛도 유난히 청명했고 별도 총총하지는 않았지만 드문드문 그래도 꽤 보이는 편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떠나는 것, 다 버리고 떠나야 한다. 하지만 매일 산책할 때마다 내, 약한 기관지가 이야기한다.
"단지 아쉬운 것은 미세 먼지 걱정 없이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거야."
이제 한국에 돌아가면 산책은 날씨 좋은 날로 미루고 '미세 먼지 나쁨'보다 더욱 심각하고 오랜, 내 마음에 낀 미세 먼지를 제거해야 한다. 잘했든 못했든 지난 일에 안주하는 안일한 생활 태도, 여러 가지 반복되는 불필요한 감정으로 '오늘'이라는, 귀한 시간을 어둡게 물들이며 낭비하는 습성 등 끊임없이 나를 지배하려고 하는, 그러한 초미세 먼지를 깨끗이 씻어 내는 데 더욱 힘써야 한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바로 사전 읽기였는데 바로 언어 활동, 독서와 글쓰기가 바로 그러한 작업일 것이다. 특히 갈고 닦기, 끊임없는 습작習作이 필수이니 앞으로 '이슬이'를 더 자주 만나야 하리.
첫댓글 어느새 귀국 날이 다가와지겠습니다.
에버그린님, 방문 감사! 임시 거주는 90일까지이니 돌아가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