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파랑 길은 해피한 길(여섯 번째)
<축산천하구→망양정 옛터, 2017. 7. 8∼9>
瓦也 정유순
축산천(丑山川)하구에 설치된 출렁다리인 영덕불루로드다리를 지나 나무계단을 따라 죽도산전망대에 오르면 지나온 해파랑 길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죽도산(竹島山, 87m)은 화살대를 만들던 신우대가 많아 붙여진 이름으로 원래는 섬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매립공사를 통해 육지와 이어졌으며 정상에 등대가 있었지만 일제 때 미국의 폭격 표적이 된다하여 철거하였다가 해방 후 등대를 세웠고, 2011년 등대자리에 7층 높이의 죽도전망대를 대신 세웠다.
<죽도산과 전망대>
<영덕불루로드 출렁다리>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옆에는 대나무뿐만 아니라 야생화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계단 끝에는 축산항으로 강구항과 함께 영덕의 대표적인 어항이다. 소 형상을 하고 있다는 축산항(丑山港)에서는 만선(滿船)이 된 배에서는 청어를 하역작업 하느라 구슬 같은 땀방울을 쏟아낸다. 죽도산에서 바라볼 때도 느꼈지만 아래로 직접 내려와서 보니 죽도산 품에 안겨 바람도 쉬어 갈 편안하고 안옥한 천혜의 항구다.
<축산항-죽도산에서>
<축산항 청어>
축산항을 끼고 한 바퀴 돌 무렵에는 남씨발상지(南氏發祥地) 표지석이 나온다. 남씨(南氏)의 본관은 영양(英陽) ·의령(宜寧) ·고성(固城) ·남원(南原)의 4본이 있지만, 모두가 같은 시조에서 분파된 혈족이다. 시조는 남민(南敏)으로, 본명은 남충(南忠)이다. 그는 원래 당(唐)나라 사람이었는데, 신라에 귀화하여 신라왕으로부터 남씨(南氏) 성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남씨발상지 표지석>
영해면 사진리 해변에 이루어진 바위는 부정합(不整合)으로 “퇴적이 중단되거나 먼저 퇴적된 층의 일부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다시 퇴적이 되어 시간적인 공백이 있는 지층(네이버 두산백과)”으로 한 쪽의 바위는 18억년이 되는 편암이고, 맞물려 있는 역암은 1억년 된 바위라고 한다. 편암은 화성암이나 퇴적암이 지하에서 심한 열과 압력을 받아 압력방향에서 수직방향으로 재배열된 변성암이고, 역암은 운반작용을 통해 암석 중에 2㎜이상인 입자가 많은 암석을 가리킨다.
<부정합(不整合)>
한 방울씩 떨어지던 빗방울은 굵어지기 시작한다. 우장(雨裝)을 꾸리고 도착한 곳은 대진항이다. 상대산(上臺山, 183m)을 배산(背山)으로 위치한 대진항은 1971년 12월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었다. 해양레져스포츠를 위한 기반시설을 겸비한 어항으로 어촌체험관광마을로 조성되었다. 대진항에서 남서쪽 대소산 북쪽 자락을 넘으면 고려 말의 문신이자 학자인 목은 이색(牧隱 李穡, 1328∼1396)의 출생지인 영해면 괴시리마을이다.
<대진항과 상대산>
대진항 북쪽으로 인접해 있는 대진해수욕장은 소설가 이문열(1948∼)이 “한 때 실의에 빠져 방황하던 젊은 날의 절망을 집어 던진 곳”으로 그의 자전적 성장소설인 <첢은 날의 초상>의 ‘그해 겨울’에서 “비록 우리들의 삶이 신마저 구원하기를 단념할 절망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갈매기는 날아야 하고 받은 잔은 마땅히 참고 비워야 하듯이, 복수에 대한 망집을 바다에 던져버린 칼갈이 사내 옆에서 치기어린 절망으로 상징되는 독약병을 버리고 새로운 길로 향한 상행열차에 올라탄다.”
<대진항 해변>
이렇게 이문열의 삶에 반환점이 된 대진해수욕장은 맑고 깨끗한 바닷물이 내 영혼까지 비춰진다. 폭 100m이상의 백사장이 8㎞까지 펼쳐지고 솔밭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장관을 이룬다. 경사도가 완만하고 수심이 1∼2m 정도여서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단위 피서지로 적합하다고 한다. 모래는 알이 굵고 몸에 달라붙지 않아 모래찜질하기에 제격이다. 특히 백사장을 가로지르는 송천(松川)이 있어 담수욕을 즐길 수 있는 천연샤워장이다.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기수역(汽水域)으로 민물낚시와 바다낚시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어족이 풍부한곳이다.
<대진해수욕장>
대진해수욕장에서 송천(松川)을 가로지르는 고래불대교를 지나면 고래불해변과 연결된다. 송천은 영덕군 창수면 보림리에서 발원하여 남동쪽으로 뱀처럼 구불거리며 흐르다가 대진해수욕장 근처의 고래불대교 아래에서 바다로 빠져나가는 지방2급 하천이다. 하구는 수초로 잘 발달된 곳으로 손만 집어넣으면 월척의 물고기들이 금방 잡힐 것 같다.
<송천 하류>
<고래불대교>
<송천하구의 수초>
고래불이란 이름은 목은 이색이 상대산에 올랐다가 고래가 노니는 것을 보고 지은 이름이다. 대진, 덕천, 고래불 등 여섯 개의 해안마을을 배경으로 대진에서 고래불까지 연결되는 8㎞에 달하는 해변덕분에 ‘명사 20리’로 불린다. 자동차로 빨리 달린다고 해도 10분 이상 달려야 하는 해수욕장으로 전국의 피서객이 몰려드는 성수기에도 상당히 여유로운 해변이란다. 고래불국민야영장에는 별도의 수영장과 분수대, 오토캠핌장 등이 완비되어 있고, 새로 들어선 봉송정(奉松亭)이 운치를 더한다.
<별도의 수영장과 놀이터>
<고래불국민야영지>
<오토캠핑장>
고래불수영장에는 개장 전(7월14일 개장) 수영금지표지가 대문짝만하게 설치되어 있으나,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사람들은 성급하게 바닷물 속으로 뛰어든다. 백록천(白鹿川)이 흐르는 고래불2교를 고래불해변 북쪽 정자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영덕군 병곡면 병곡리 어느 집 울타리에는 돌배나무가 눈으로 보기에는 무슨 병에 걸렸는지 비정상으로 보이나, 잎은 무성하고 나무는 실하다. 나무를 깎아 다듬은 장승은 의연하고 칠보산휴양소를 지나 울진군 후포면 금음리로 접어든다.
<수영금지-고래불해수욕장>
<수영 중-고래불해수욕장>
<봉송정(奉松亭)>
<나무 장승>
울진군은 강원도 땅이었다가 1963년 1월 행정구역 개편 때 경상북도로 편입된 지역이다. 울진군 후포면은 관동지방의 최남단에 위치한 곳으로 대부분이 낮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구릉들이 해안까지 이르러 절벽이 많고 하천의 발달이 미약하다. “천년포라는 호수에서 후릿그물로 고기를 잡는다”고 해서 후포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고도 하고, 각종 물고기의 집산지로 만선으로 돌아온 어선들이 팔고 남은 고기를 인심 좋게 나눠주어 ‘후한 어촌’이란 뜻으로 ‘후포(厚浦)’라는 지명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후포의 몽돌해변>
후포항으로 가는 해변에는 오후에 들어 파도가 거세진다. 내리던 빗방울도 그쳤다. 억센 자갈밭이 걸음을 더디게 하더니 이내 모래밭이 나와 여름을 맛보게 한다. 어느 집 감나무는 파란 감나무 잎 아래에 보호색으로 열매를 보호하고 바위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와 향나무들은 고달픈 삶을 살아간다. 후포해수욕장도 다른 해수욕장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피서차 몰려들어 물놀이에 여념이 없다.
<바위의 생명들>
<후포해수욕장>
후포항 입구에는 어느 장인의 기막힌 솜씨인지 각종 목각(木刻)작품들이 잠깐 넋을 빼앗아 간다. 주민의 60% 이상이 어업에 종사하는지라 야간 어업(漁業)을 나가려는지 많은 어선들이 후포항에서 출어를 기다린다. 1987년부터 후포∼울릉도간 정기여객선이 취항하면서 종전 포항∼울릉도간보다 소요시간이 단축되어 이곳을 이용하는 관광객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한다.
<목각 노점상>
<후포항의 어선들>
<울릉도-후포 여객선터미널>
나리꽃 향내 맡으며 돌아 간 골목에는 ‘후포등기산근린공원’이라는 간판이 보이는데, 올라가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 어느 집에서는 향나무 가지를 끈으로 묶어 원으로 만들려고 더운 여름날을 힘겹게 보낸다. 등기산 절벽에는 LED불빛으로 만든 조형물을 바라보니 마을 주민께서 “밤에 와서 보면 돌고래가 춤을 추는 장관을 볼 수 있다”고 하며 못내 아쉬워한다. 그리고 등기산 근린공원에는 ‘울진 후포리신석기유적관’이 있다고 보고 가라는데 발길을 돌린다.
<후포등기산 근린공원>
<후포등기산>
<LED조형물>
후포6리마을회관 앞을 지나면 한진그룹의 한국공항에서 부대사업으로 운영하고 있는 평해광업소의 컨베어벨트시스템이 보인다. 한국공항 평해광업소는 철강업체인 포스코에 양질의 제철용 석회석을 공급하고, 대기오염 방지를 위한 화력발전소 탈황용 석회석을 한국전력에 공급하기 위하여 설립되었으며, 석회석 광산에서 연간 240만 톤 규모의 생산설비와 대량수송이 가능한 자가 항만시설을 갖추고, 생산에서 수송까지의 일괄체계에 의한 안정적인 공급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석회석 운반용 컨베어벨트>
<석회석 운반용 컨베어벨트>
각양각색의 접시꽃 안내를 받으며 도착한 곳은 평해읍 거일2리 대게공원 앞이다. 매년 12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 맛볼 수 있는 울진대게는 다른 지역 게와는 달리 속살이 쫄깃쫄깃하고 담백해서 왕실의 진상품이었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울진항에서 23㎞ 떨어진 왕돌초에 서식하는 대게를 으뜸으로 친다. 울진대게를 널리 알리기 위해 매년 4월 후포항 한마음광장에서 울진대게축제를 열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평해군과 울진현의 기록에 대게를 ‘자해(紫蟹)’라고 표기하며 옛날부터 주요한 특산물의 하나이다.
<울진대게공원>
울진군보다 영덕군이 대게의 명산지로 알려진 것은 영덕(盈德)의 교통이 편리하여 서울과 부산 대구 등 대도시에 대게를 쉽게 반출할 수 있기 때문에 영덕이 대게의 집산지가 되어 ‘영덕대게’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거일’이란 이름은 마을의 지형이 ‘게알’과 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게알’에서 ‘기알’로 변했다가 ‘거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울진군에서는 울진대게의 다리에 표식인 반지링을 부착하여 다른 지역 대게와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울진대게원산지 마을>
숙소가 있는 울주군 온정면 온정리에 있는 백암온천에서 오랜만에 온천욕으로 피로를 풀어본다. 백암산(1004m) 동쪽 자락에 위치한 백암온천은 신라 때부터 알려진 유서 깊은 온천이다. 신라 때 한 사냥꾼이 창에 맞은 사슴을 탐색하던 중 사슴이 누웠던 자리의 지하에서 온천이 솟고 있음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그 뒤 백암사(白巖寺)의 스님이 욕탕을 지어 병자에게 목욕을 시켜 효험을 보았다고 한다. 수원지는 3개소이고 수온은 32∼53℃이다. 1997년에는 관광특구로 지정되어 종합온천장으로서의 각종 시설을 갖추었다.
<백암온천관광안내소>
어제 날이 저물어 발길을 돌려야 했던 평해읍 거일2리 대게공원에서 새롭게 출발한다. ‘울진바다목장 해상낚시공원’은 이른 시간이라 아직 문을 열지 않았고, 그 곳으로 발길을 옮긴 사람은 다시 발걸음을 돌릴 수 밖에 없다. 어촌계사무실도 한가하고 덩달아 갈매기들도 백사장과 갯바위에서 망중한을 즐긴다. 해변을 따라 한참을 걷다가 월송정으로 가기 위해 버스로 잠시 이동한다.
<울진바다목장 해상낚시공원 입구>
<갈매기들의 망중한>
월송정 가는 길목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 안에 평해황씨대종회(平海黃氏大宗會)와 황씨시조제단원(黃氏始祖祭壇園)이 있다. 평해 황 씨는 후한시대 학사인 황락(黃洛)을 시조로 하는 황 씨의 한 파이다. 황락은 풍랑을 만나 평해에 상륙하여 신라에 귀화하였고, 후손에 이르러 평해∙장수∙창원으로 분파되었다. 평해 황 씨는 고려시대 태자검교를 지낸 황온인(黃溫仁)을 중시조로 하고 있다. 개인의 시조를 모신 제단인데 그 규모가 상당히 크고 정자와 연못으로 꾸며진 규모 있는 정원이다.
<평해황씨대종회(좌) 황씨시조제단원(우)>
<재실-추원제>
<연못과 솔밭>
<백련>
또 다른 관동팔경 중의 하나인 울진 평해의 솔밭 길을 걸어 월송정(越松亭)에 오른다. 신라의 화랑들이 이곳의 울창한 송림에서 달을 즐기며 선유(仙遊)하였다는 정자다. 조선 연산군 때 강원도 관찰사 박원종이 중창하였는데 긴 세월의 찌든 때에 퇴락한 것을 당시 이곳 사람들이 다시 중건 하였으나 조선말에 일본군이 철거해 버렸고, 1969년에 재일동포들이 정자를 다시 신축하였으나 옛 모습과 같지 아니하여 해체하고 1980년 7월에 현재의 정자를 복원하였으며, 현판은 당시 대통령이던 최규하(崔圭夏)의 휘호로 되어 있다.
<월송정 전경>
<최규하 글씨의 월송정 현판>
<월송정에서 본 동해>
월송정에서 솔밭사이로 바라보이는 동해의 끝에는 누가 기다려 줄까? 떠오른 태양에 해맑은 미소를 듬뿍 머금고 다가 선 곳은 울창한 송림과 어울리는 구산해변이다.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에 위치한 구산해수욕장은 백사장 길이는 400m, 수심 1.5∼2m, 경사도 15∼20°의 아담한 규모의 해수욕장이다. 규모는 작지만 고운 모래와 해수욕장 주변을 둘러싼 울창한 송림으로 조용한 휴식을 원하는 피서객들이 많이 찾아온다. 1991년 해수욕장으로 개장했다.
<구산해변>
구산항 북쪽 방파제 부근에는 대풍헌과 독도조형물이 있다. 대풍헌(待風軒)은 조선시대 삼척 진영에 속한 평해군의 기성면 구산리(邱山里)에 위치한 건물로, 울릉도와 독도에 파견된 수토사(搜討使)들이 배를 타기 전 바람을 기다리며 머물렀던 곳이다. 정확한 건립 연대는 확인할 수 없으나 1851년(철종 2) 중수하고 대풍헌(待風軒)이라는 현판을 걸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대풍헌에서 50여m의 거리인 대로변에는 독도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어 독도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다.
<대풍헌>
<독도조형물>
구산항을 지나 봉산리 쪽으로 나아가는데 해변 바닷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방생법회(放生法會)를 하고 있다. 음력날짜를 짚어보니 오늘이 음력 윤5월 16일이다. 보통 정월 대보름에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뭇 생명들을 살려주는 법회에 대해서 이유를 달 필요는 없다. 다만 방생법회 행사를 위해 외래종을 들여와 자연으로 마구잡이로 돌려보내 자연생태계를 교란하는 원인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 보면 스스로 살아가는 뭇 생명들에게 괴로움을 주지 아니하는 것이 진정한 방생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방생법회>
갈매기들은 백사장 가장자리에서 파도와 밀고 당기는 놀이를 하고, 울진군 기성면 봉산리 항곡동마을로 가는 해변 길은 예리한 암석들이 디딤돌을 해준다. 마을 뒷산에 있는 표산봉수대(表山烽燧臺)는 작열하는 태양의 빛으로 다음 봉수대로 이방인이 왔음을 알려주는 것 같다. 봉산1리 항곡경로당 앞에 당도하니 오전이 후딱 지난다.
<해변 바윗길>
<울진 표산>
점심을 마치고 봉산1리 항곡경로당에서 북으로 약6㎞ 떨어진 평해 황 씨 해월종택에서 시작한다. 해월헌(海月軒)은 울진군 기성면에 있는 해월 황여일(黃汝一, 1556년∼1622년)의 별당이다. 1588년(선조 21)에 건립된 건물로 1847년(헌종 13)에 후손들이 현 종택 안으로 이축하였다. 해월헌 주위에는 토석 담장을 둘렀으며, 담장 앞면에는 1993년에 복원한 대문채가 자리 잡고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ㅁ’자형의 정침과 해월헌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으며, 해월헌 뒤편으로 사당이 자리 잡고 있다.
<해월헌>
종택인 해월헌(海月軒) 입구에는 거위들이 낯선 손님을 바라보고, 배롱나무는 꽃을 활짝 피웠다. 해월헌에서 사동항 북쪽 해안 길로 접어든다. 산자락은 바다를 향해 급경사를 이룬다. 길옆의 바위는 움푹 페인 바위 속을 긁으면 쌀알이 떨어지듯 알갱이들이 떨어져 쌀바위라고 이름을 붙인다. 향나무 옆으로 난 길은 날 선 도끼가 하늘을 향한다.
<거위>
<배롱나무>
불규칙한 바윗길과 절벽처럼 우뚝 솟은 송곳바위를 유격훈련을 하듯 넘어야 하고 내려가야 한다. 세상을 이처럼 정신집중하고 살아간다면 무슨 일이든 못할 일이 없을 것 같다. 그리고 하루에 한 번쯤은 이런 길을 걷는다면 치매(癡呆)를 예방하는 좋은 훈련이 될 것 같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디딜 때마다 가장 아름다운 길은 ‘가장 힘들고 어려운 길을 해쳐 나온 길’이라고 생각해 본다. 대충 500여m의 거리를 넘어오는데 한 시간 가량 소요된다.
<절벽과 바윗길>
<절벽 올라가는 길>
<절벽 내려가는 길>
바윗길을 지나면 울진군 기성면 망양해변이 펼쳐진다. 망양해수욕장은 1997년에 개장하였으며,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망양리를 지나는 동해안 7번 국도의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다. 완만하게 펼쳐진 백사장은 길이 600m, 폭 80m이다. 최대 1,000명까지 수용이 가능하다. 백사장 뒤 도로 주변으로 소나무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어 햇살을 피해 휴식하기 좋으며, 야영장과 오토캠핑장도 마련되어 있다.
<울진 망양해수욕장>
망양해변의 북쪽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경사진 언덕마루에는 원래 관동팔경의 하나인 망양정(望洋亭)이 있었던 곳이다. 망양정은 고려시대 때 이곳 해안가에 세워졌으나 오랜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허물어져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로 새로 지어 이전하였으며, 옛날 있던 자리에는 정자를 지어 놓아 옛터가 있었던 자리임을 표시한다. 관동팔경(關東八景)은 건물이나 정자 자체가 절경이 아니라, 그곳에서 바라보는 주변의 경치가 절경이라는 뜻이다.
<망양정 옛터>
<망양정 옛터를 지킨 소나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