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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흐릿한 산은 반야봉이다. 제석봉 전망대에서
三韓之外方丈山 삼한의 경계 벗어나 우뚝 솟은 방장산
六鰲不動高㠝岏 자라도 꼼짝 않는 높고 험준한 그 자태
白頭南流窮海際 백두대간 남쪽 해변으로 흘러내려
秀氣橫蟠天地間 천지간에 빼어난 기운 서리게 하였도다
――― 계곡 장유(谿谷 張維, 1587∼1638), 「방장산 노래를 지어 대방으로 떠나는 고사군 용후를
전송하다(方丈山歌 送帶方高使君 用厚)」에서. 대방(帶方)은 남원(南原)의 옛 이름이다
▶ 산행일시 : 2015년 6월 13일(토), 맑음
▶ 산행인원 : 29명(모닥불, 수영, 도봉거사, 제임스, 더산, 가은, 대간거사, 사계, 신가이버,
자유, 해피, 해마, 베리아, 우각/악수, 즈믄/영희언니, 스틸영, 은하수, 장미,
한계령, 챔프, 화은, 소백, 상고대, 도~자, 승연, 무불, 메아리)
▶ 산행시간 : 15시간 53분
▶ 산행거리 : 이정표 거리 37.9㎞(화엄사에서 노고단고개까지 7.0㎞, 노고단고개에서 천왕봉까
지 25.5㎞, 천왕봉에서 중산리까지 5.4㎞, 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는 44.2㎞이다)
▶ 교 통 편 : 대형버스 대절
▶ 구간별 시간
22 : 10 - 동서울터미널 출발
01 : 43 - 화엄사(華嚴寺) 입구, 산행시작
02 : 10 - 연기암 갈림길
03 : 11 - 집선대
03 : 50 - 코재(이정표 : 노고단고개 1.1㎞)
04 : 04 - 노고단(老姑壇) 대피소
04 : 15 - 노고단고개
04 : 52 - 돼지령
05 : 16 - 임걸령(林傑嶺)
05 : 45 - 노루목
06 : 15 - 삼도봉(三道峰, 날라리봉, 1,499m)
06 : 30 - 화개재(花開-)
07 : 00 - 토끼봉(1,534m)
08 : 04 - 명선봉(明善峰, 1,586.3m), 연하천 대피소
08 : 37 - 삼각고지(1,480m)
09 : 04 - 형제봉(兄弟峰, 1,453m)
09 : 38 - 벽소령(碧霄嶺) 대피소
10 : 35 - 덕평봉(德坪峰, 1,522m) 선비샘
11 : 13 - 칠선봉(七仙峰, 1,558m)
11 : 48 - 영신봉 입구, 점심(16분 소요)
12 : 23 - 영신봉(靈神峰, 1,652m)
12 : 35 - 세석(細石) 대피소
12 : 50 - 촛대봉(1,703m)
13 : 40 - 연하봉(烟霞峰, 1,721m)
13 : 52 - 장터목 대피소
14 : 15 - 제석봉(帝釋峰, 1,808m) 전망대
14 : 50 - 천왕봉(天王峰, 1,915m)
16 : 00 - 법계사(法界寺), 로타리 대피소
17 : 36 - 중산리 탐방안내소, 산행종료
1. 연하봉 가는 길, 멀리 우뚝한 봉우리는 천왕봉이다
【산행결과】
절반의 성공이다. 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 완주한 사람은 14명(그들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낸
다). 나는 실패했다. 산행시작한 지 불과 5분 정도 지나 세 그룹(선두, 중간, 후미)으로 갈리면서
면면의 완주 여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다만, 중간그룹에 속했던 모닥불 님과 우각 님이 각각
연하천 대피소와 세석 대피소에서 도약하여 완주 대열에 합류하였다.
천왕봉에서 중산리로 탈출 1명, 장터목 대피소에서 중산리로 탈출 1명, 세석 대피소에서 거림
으로 탈출 13명이었다. 그 명단은 위 산행인원에서 알아보도록 구분 표시하였다.
▶ 화대종주를 시작하기 전에
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 이름 하여 화대종주.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수일 전부터 마음 한
구석을 무겁게 짓누르는 명제다. 잊고 있다가도 불현듯 산행할 일이 생각나고 그때마다 막연한
불안감이 들었다. 산행거리 44.2㎞이면 내 여태 산행한 중 가장 긴 거리이다. 가다 끝까지 못 갈
것 같으면 탈출하면 되지 않겠는가? 쪽팔리는 노릇이고 처음부터 그럴 마음을 갖는 것은 산행
을 더욱 힘들게 할뿐이다.
여러 걱정이 앞선다. 등산화는 중등산화가 좋을까? 경등산화가 좋을까? 돌길 오래 걸으려면
아무래도 중등산화가 나으리라. 중등산화를 신기로 한다. 무엇보다 장거리 산행은 무게와의
싸움인데 배낭무게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
더구나 산행공지 댓글을 보면 십년 전 화대종주 할 때(나는 가지 않았다) 저마다 걸린 시간을
올린 것을 보면 오지산행의 여느 때와는 달리 마라톤 경주하듯 각자 냅다 달릴 모양인데 혼자
가는 산행이 될지도 모를 일. 탁주는 1병만 넣고 가벼운 빵을 넉넉히 넣는다. 그런데 문제는
묵직한 카메라다. 가벼운 콤팩트 카메라를 호주머니에 넣고 갈까 여러 번 생각했지만 그건
지리의 풍경을 담는데 예의(?)가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작용하여 그대로 가지고 가기로 한다.
혹시 걷다보면 사타구니나 겨드랑이가 쓸릴지 몰라 바셀린을 샀다. 약국에 갔더니 약사는 메르
스 때문에 콧등에 바르려는 사람들이 하도 많이 찾아 바셀린을 갖다놓기가 바쁘게 팔려나간다
며 딱 하나 남았다고 한다. 바셀린을 콧잔등에 바르면 메르스에 안 걸리는지 묻자, 숨 쉴 때 공
기 중의 먼지에 있을지도 모를 메르스균이 콧잔등에 바른 바셀린에 먼저 붙게 된다고 한다.
한밤중인 01시 30분쯤에 산행을 시작할 터인데 산행 중 졸지나 않을까? 평소에는 밤 24시쯤에
잠이 드는데 22시에 동서울을 출발하여 화엄사 가는 도중의 차안에서 잠을 잘 수 있을까? 산행
출발 당일에는 잠자는 데 지장이 있을까봐 커피도 삼간다.
뭔가 시도할 용기가 없다면 삶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What would life be if we had no
courage to attempt anything?) 빈센트 반 고흐의 말이다.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은 언제
나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In this world there is always danger for those who are afraid of it).
버나드 쇼의 말이다. 나 두 야 간다/이 젊은 나이를/눈물로야 보낼 거냐/나 두 야 가련다.
용아 박용철의 시구다. 나도 간다!
“……밥 한 공기만으로 미군의 공습을 피해 험난하기 그지없는 산악지대를 하룻밤에 50㎞씩
달리는 베트콩 전사들, 6개월 동안 걸어야만 통과할 수 있었던 미로 같은 호치민루트, 포신을
여러 사람의 허리에 묶고 하루에 반마일씩 3개월을 끌고 갔던 정글 속의 대포…….”(마이클 매
클리어 지음, 유경찬 옮김, 『베트남 10,000일의 전쟁』에서 ‘역자의 말’이다)
베트남 전쟁에서 베트콩들의 신화 같은 사실이다. 그러한데 우리는 어떠한가? 그들에 비하면
유람이지 않는가? 유람!
2. 멀리는 만복대, 반야봉 남쪽 자락 노루목 전망바위에서
3. 지리주릉 토끼봉
4. 삼도봉 정상에서, 왼쪽부터 소백, 상고대, 챔프, 스틸영, 도~자
5. 지리주릉 남쪽 자락
6. 토끼봉과 그 너머
7. 안부는 벽소령 대피소, 그 뒤로는 덕평봉
8. 형제봉 정상 아래 암봉
9. 형제봉 넘어서 지나는 석문
▶ 노고단 고개
화엄사 가는 길. 대형버스가 덜컹거리지 않고 미끄러지듯 스르르 나아가서 챔프 님은 종전의
25인승 버스는 여관방이었다며 오늘은 호텔방처럼 편안하다고 두 좌석 차지하여 두 다리 쭉 뻗
고 잠자리 보전한다. 그렇지만 나는 더 불편하다. 25인승 버스에서는 좌석 4개를 차지하여 가로
누워서 가는데 오늘은 한 좌석에 정좌하여 가야 하니 말이다.
동서울에서 화엄사 입구 주차장까지 논스톱으로 왔다. 기사님에게 내 잠든 사이에(전혀 잠을
잔 것 같지 않은데 혹시 잔지도 모른다) 고속도로 휴게소를 들렸는지 물었더니 아무도 쉬자는
주문이 없어 곧바로 왔다고 한다. 거사를 치르려는 우리 오지산행을 수송하는 기사님답다.
화엄사 일주문이 예전에는 화엄사 절집 아래에 있었는데 훨씬 뒤로 밀려나 있어 달리는 차안에
서 얼핏 보고 지나간다. 일주문 앞뒤에 각각 ‘智異山大華嚴寺’와 海東禪宗大伽藍’이라는 웅건한
필체의 편액을 서예가 석전 황욱(石田 黃旭, 1898~1992) 선생이 망백(望百)인 91세에 썼다.
선생은 62세 때부터 오른손이 수전증으로 떨리게 되자 왼손으로 붓을 움켜쥐고(악필握筆이라
고 한다) 썼다.
화엄사계곡 거슬러 노고단고개 가는 길.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한밤중 입산을 막지나 않을까
한 걱정은 기우였다. 사방이 괴괴하다. 출입자 카운터기(작동되는지 모르겠다) 지나고 콘크리
트 포장된 대로를 간다. 밤공기가 시원하여 걷기 알맞다. 산행 시작한 지 5분쯤 지났을까
세 그룹으로 나뉜다. 선두, 중간, 후미. 나는 중간그룹이다.
혼자 가는 산행이다. 선두의 헤드램프 불빛은 유성인 듯 사라졌다. 아무쪼록 내걸음으로 가야
지 몇 번이고 급한 마음 다독인다. 묵언, 묵상, 수행한다. 연기암 가는 길은 따로 산자락 도는
차도가 있나 보다. 그 갈림길에 올라서고 이정표에 노고단고개 5.0㎞다. 등로는 박석 깐 길과
맨 돌길이 번갈아 나타난다. 이제 산죽 소로로 드는가 싶다가도 다시 박석 깔린 등로다.
너덜 길 오르막은 잠시다. 가파른 돌계단으로 이어진다. 쏴아 하여 바람소리인가 가만 귀 기울
이니 물소리다. 오른쪽 깜깜한 계류 물소리로 이마에 흐르는 땀 식힌다. 참샘터일까? 등로 옆
계류에 다가가 한 움큼 물 떠 마신다. 암반에 걸터앉아 쉬며 가쁜 숨 좀 고르려니 헤드램프 불빛
보고 날벌레들이 떼로 몰려들어 쉬지도 못한다.
집선대. 너덜 길이다. 헤드램프 심지 돋우고 눈과 발, 스틱에 힘주며 잰걸음하다 엉뚱한 데를
헤맨다. 잡목이 막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더듬어 길 찾는다. 03시 45분. 대~애앵 하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린다. 화엄사 범종소리다. 환청처럼 들린다. 가파른 사면 올라 코재다. 너른 임도
따라간다. 임도 주변 함박꽃은 우리의 스틱 끄는 소리에 아랑곳 하지 않고 곤히 잔다.
임도 따라 산모롱이로 돌고 노고단고개는 임도 놓아두고 사면 오르는 돌길로 가는 편이 가깝
다. 한 피치 올라 노고단 대피소다. 불야성이다. 경향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붐빈다. 그들 중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다. 훨씬 내 앞서 간 상고대 님이 허기져서 더 못 가겠다며 요기하고
있다. 나는 아직 견딜만하다. 박석 길을 오른다.
노고단 고개. 노고단(老姑壇, 1,502.2m) 오르는 능선마루의 등로는 막았다. ‘천왕봉 25.5㎞’라고
전광판이 안내하는 데크계단 잠깐 내려 산허리 왼쪽으로 길게 돈다.
10. 오른쪽 멀리는 북부능선 삼정산
11. 백당나무
12. 미나리아재비, 벽소령 대피소 주변은 미나리아재비 꽃으로 산상화원이다
13. 덕평봉, 푸짐하고 너른 품이다
14. 벽소령 대피소 뒤의 봉우리
15. 벽소령 대피소 뒤의 봉우리를 배경으로 챔프 님과 소백 님
16. 덕평봉 남쪽 자락
17. 멀리 우뚝한 봉우리가 천왕봉, 그 뒤는 중봉, 칠선봉에서
▶ 연하천 대피소
지리산 10경 중 하나인 노고운해(老姑雲海)를 기대했는데 날이 흐리기도 하려니와 너무 이르
다. 지리산 10경은 ① 천왕일출(天王日出), ② 반야낙조(般若落照), ③ 노고운해(老姑雲海),
④ 직전단풍(稷田丹楓), ⑤ 세석철쭉(細石躑躅), ⑥ 벽소명월(碧霄明月), ⑦ 불일폭포(佛日瀑布),
⑧ 연하선경(煙霞仙境), ⑨ 칠선계곡(七仙溪谷), ⑩ 섬진청류(蟾津淸流)이다. 나는 십 수회 지리
산을 올랐으면서도 이중 겨우 불일폭포나 섬진청류만 보았을 뿐이다.
어두운 숲속 길이다. 오가는 사람이 뜸하여 이 길이 맞는가? 의심할 때면 반야봉 간다는 이정표
가 나타난다. 돼지령에서 잠깐 하늘 트이고 다시 어두운 숲속을 간다. 피아골 삼거리에서 무불
님과 함께 휴식한다. 모닥불 님이 쉬지 않고 지나기에 뒤쫓고자 얼른 일어나서 동행한다. 임걸
령(옛날에 임걸(林傑) 또는 임걸년(林傑年)이라는 이름의 의적이 은거하였다고 한다)을 지나서
야 숲속 뚫고 머리 내밀어 비로소 지리주릉에 든 기분이 든다.
코재에서 보던 노고단 위 그믐달은 물을 잔뜩 먹었더라니 우중충한 날이다. 사방 둘러 볼 것이
없다. 임걸령 지나고 1,431m봉 넘고 반야봉 남쪽 자락인 노루목을 오르기가 힘들다. 코재까지
는 뵈는 것이 없어 막 달라붙었지만 날이 훤하여 주위 사정이 명료하게 보이니 눈부터 피곤하
다. 어쩌면 반야봉을 들려볼까 했던 마음은 진작 멀리멀리 달아나버렸다.
노루목. 쉬는 사람들이 많아 장터목 버금간다. 우리 일행(중간그룹)은 등로 약간 비킨 전망바위
에 모인다. 경점이다. 더불어 스틸영 님이 꺼낸 데친 땅두릅(독활)이 입산주 탁주의 훌륭한 안주
다. 한 잔에 알딸딸해진다. 만복대에서 노루목으로 이어지는 산첩첩 지리주릉을 살피고 삼도봉
을 향한다. 반야봉 남쪽 자락을 길게 돌고 완만한 한 피치 오르면 하늘 트인 암반인 삼도봉이다.
삼도봉에서 바라보는 반야봉이 근엄한 거봉이다.
무불 님은 노루목에서부터 뒤처지기 시작한다. 영희언니는 발에 쥐가 났다고 한다. 중간그룹은
앞서가니 뒤서거니 하며 간다. 삼도봉을 너덜과 데크계단으로 쭈욱 내린 안부는 화개재다. 남
원 쪽 사람들이 뱀사골을 통해 화개장터를 가기 위해 넘나들던 고개다. 토끼봉이 겁나게 높아
보인다. 그렇지만 시간이 나를 데리고 갈 것이다.
심심하여 오르막 돌길 경계목재를 평균대 지나듯 하며 간다. 지리산 오가는 사람들은 다 힘들
다. 오가는 사람들과 자주 마주치지만 서로 수인사가 시큰둥하다. 토끼봉. 날씨가 한 부조한다.
능선에 서면 시원한 바람이 불고, 또한 박무로 사방 경개를 가렸으니 카메라 파인더 들여다보
는 횟수가 적어 그저 걸을 수밖에.
토끼봉 내리고 명선봉 가는 길이 쉽지 않다. 고봉 4좌를 넘어야 한다. 등로는 주로 돌길이다.
가파른 슬랩에는 데크계단이 있어 적잖이 덕 본다. 1,542m봉 오르고 가파름이 수그러든다.
명선봉 정상은 등로에 약간 비켜 있고 가지 못하도록 금줄을 쳤다. 이것도 내 발품을 덜어주는
고마운 일이다. 그 핑계로 좌고우면 하지 않고 데크계단 400m 내려 연하천 대피소다.
18. 가운데가 천왕봉
19. 지리주릉 남쪽 자락
20. 천왕봉을 배경으로 상고대 님과 우각 님(오른쪽)
21. 영신봉 전위봉
22. 영신봉 전위봉 전망바위에서 지나온 능선 전망
23. 멀리 우뚝한 봉우리가 천왕봉
24. 눈개승마, 등로 내내 눈개승마가 만발하였다
25. 눈개승마
▶ 세석 대피소
연하천 대피소에서 선두였던 승연 님과 베리아 님을 만난다. 반갑다. 그들은 30분이나 쉬었다
며 일어선다. 선두인 대간거사 님이 통과한 지 1시간이 지났다고 한다. 모닥불 님은 식수만 보
충하고 그들 뒤를 따른다. 천왕봉 도착 데드라인이 15시라고 했다. 아무려면 그때까지 못 가려
고? 중간그룹은 사뭇 태평하다. 푹 쉰다.
챔프 님은 수완이 좋다. 옆자리에 앉은 전주에서 왔다는 등산객 한분이 삶은 감자를 맛에게
먹고 있기에 자기 빵과 바꿔 먹자고 사정하여 큰 감자 하나를 그냥 얻는다. 그 덕분에 우리 일행
도 감자 맛본다. 연하천 대피소에서 벽소령 대피소 가는 길은 비교적 순탄하다. 오솔길 등로로
삼각고지 넘고 바윗길 내리막이다. 한계령 님은 졸음이 오는지 주저앉아(도~자 님이 함께 있
다) 나더러 앞서가라고 한다.
우람한 석주의 석문 지나고 앞서 가던 스틸영 님이 삐쭉 나온 돌부리에 무릎을 받힌다. 갑작스
런 비명으로 짐작컨대 전도가 암담한 사고였으나 상고대 님이 부축하여 얼음찜질하고 좋아졌
다. 석문을 연거푸 지난다. 암봉인 형제봉은 드문 경점인데 날이 흐려 경치 찾느라 눈만 아프다.
형제봉 내리는 길도 바윗길이다. 암봉 아래 형제봉이라는 이정표가 있다.
1,403m봉을 왼쪽 사면으로 길게 돌아 넘어 벽소령 대피소다. 대피소 주변은 노란 미나리아재비
꽃이 만발한 산상화원이다. 벽소령 대피소에서도 챔프 님과 소백 님은 의기양양했다.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던가, 무라도 찔러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던가.
어쨌든 대원사까지 종주하고자 하는 의지가 확고부동했다.
벽소령 대피소에서 덕평봉 가는 길도 수월하다. 임도 같은 등로로 산자락 돌아 넘는다. 1,435m
봉 절벽 아래 낙석주의 구간에서는 돌 떨어질라 자연스레 발걸음이 빨라진다. 골 건너편 덕평
봉의 푸짐하고 너른 품이 볼거리다. 덕평봉을 오르다 말고 오른쪽 산허리 돌고 돌아 선비샘이
다. 선비샘(해발 1,400m가 넘는 고지에 있다)은 오늘도 파이프 타고 졸졸 흘러 뭇 등산객들의
갈증을 씻어준다.
칠선봉. 드디어 천왕봉이 보인다. 칠성봉은 주변의 주봉(柱峰)인 암봉이 7개여서 일 것. 그러나
고개 돌리기가 귀찮아서 세어보지 않았다. 영신봉 서릉은 암릉이다. 저기를 올라가야 하는가?
지레 다리에 힘이 풀리고 배고파서 더 못가겠다. 등로 비켜 도시락 꺼낸다. 나 혼자다. 밥알을
씹기조차 힘들고 물 말아 넘긴다. 배가 차니 눈에 초점이 잡힌다.
영신봉 서릉 암봉을 그 옆 곧추선 데크계단으로 오르고 전망바위에 들려 지나온 아스라한 주릉
감상한다. 너덜 같은 바윗길 오르내리고 다시 더 오를 데 없어 영신봉이다. 눈길을 남쪽으로
돌려 남부능선 낙남정맥 굽어보고 수로로 패인 등로 500m 내리면 세석 대피소다. 상고대 님을
비롯한 중간그룹이 쉬고 있다.
대원사에 어서 가자고 채근하자 여기서 후미를 기다렸다가(선비샘을 지나는 중이라고 한다)
그들과 함께 거림으로 탈출하겠다고 한다. 나는 그럴 수는 없다며 식수 보충하고 대원사까지
가겠다고 하자 박수 쳐주고 세석 샘이 머니(50m 정도 떨어져 있다) 자기들의 식수를 내게 주었
다.
26. 남부능선, 영신봉에서
27. 장터목 대피소 가는 길
28. 연하봉
29. 제석봉 오르는 길에서 뒤돌아 봄, 멀리 흐릿한 봉우리는 반야봉
30. 제석봉 오르는 길에서 뒤돌아 봄, 멀리 흐릿한 봉우리는 반야봉
31. 제석봉 오르는 길에서 뒤돌아 봄, 멀리 오른쪽 흐릿한 봉우리는 반야봉
32. 제석봉과 지리주릉
33. 제석봉과 지리주릉
▶ 천왕봉, 아아, 천왕봉
그러나 금방 갈등이 인다. 당장 천왕봉 데드라인(15시) 돌파가 난제로 다가온다. 촛대봉 오르는
발걸음이 무겁다. 여태 시원하게 불던 바람 그치고 햇볕은 쨍쨍 내리쬔다. 오르막길에서는 그
만 포기하자 마음이 약해지다가도 평지나 내리막길에서는 해볼만하다는 욕심이 생긴다. 등로
주변의 눈개승마는 무리지어 흰 꽃술 흔들며 힘내라 응원한다.
촛대봉만 넘으면 장터목인 줄 알았는데 연하봉이 있었다. 연하봉을 바위군의 이름일 것이라고
연화봉(蓮花峰)으로 오해했다. 신예 우각 님이 따라붙었다. 우각 님에게 중간에 탈출할 것을
넌지시 떠보았더니 어렵게 잡은 기회인데 절대 포기할 수는 없다며 대원사까지 꼭 가겠다고 한
다. 든든한 원군을 얻었다. 그러면 나도 갈 터이니 장터목 대피소에서 기다려 달라고 했다.
사람들 소리 왁자한 장터목 대피소다. 장터다. 우각 님이 보이지 않는다. 뭇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보도록 크게 소리쳐서 우각 님을 불렀으나 없다. 내가 늦도록 오지 않아서 갔나보다 생각
하고 제석봉을 향한다(그때 우각 님은 장터목 대피소에서 깜박 잠이 들었다고 한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제석봉 넘고 천왕봉 오르는 길.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된다.
데크계단 오르고 가파른 돌계단 오르는 길에서 때 이르게 녹아난다. 산천은 의구하되 내가 변
했을 것. 젊었던 옛적을 추억해서 무슨 소용이 있으랴. 엉금엉금 기다시피 오른다. 고사목이
한 경치 했던 제석봉도 변했다. 고사목이 드물고 민둥산이 되었다. 제석봉에 데크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숨 돌릴 겸 들린다. 삼신봉에 이르는 남부능선, 반야봉에 이르는 지리주릉이
가경이다.
암릉 옆 계단 내리고 줄서서 슬랩 올라 통천문이다. 천왕봉까지 500m. 마의 구간이다. 계단
하나하나에, 너덜 하나하나에 비지땀 쏟는다. 마침내 천왕봉. 14시 55분이다. 털썩 주저앉는다.
만사가 귀찮다. 데드라인 15시는 간신히 넘기지 않았지만 기력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 더구
나 중봉을 바라보니 저기를 또 어떻게 오르랴. 끔찍하다.
기력이 0.0000001%만 남았어도 어찌 해보겠는데 완전 고갈이다. 지극히 자명한 법계사, 중산
리 탈출도 지금은 난망이다. 내 그간, 극한이 과연 있는 것일까? 그 상태를 어떻게 형용하는 것
인가? 하고 조롱했는데 막상 당하여 내 한계를 비로소 보고 알게 되니 그건 바로 쓸쓸함이다.
지리산 정상 표지석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어 들여다볼 수가 없다. 모기보다 좀 더 큰 날벌레
들이 온 얼굴에 달라붙지만 훔쳐 털어낼 힘이 없다.
지리산 천왕봉 오른 의식(儀式)으로 선인의 발자취를 엿본다.
조선 전기 문신이었던 청파 이륙(靑坡 李陸, 1438~1498)의 『유지리산록(遊智異山錄)』에 의하
면 그 당시 지리산 천왕봉 오르는 길은 아주 험했다.
“보암사(普庵寺)에서 곧장 올라 빨리 가면 하루 반에 천왕봉에 당도할 수 있다. 그러나 돌 비탈
이 험준하여 오솔길을 찾기 어렵고, 또 느티나무와 회나무가 하늘을 가려 있고, 아래는 산죽이
빽빽이 들어차고, 혹은 죽은 나무가 천 길의 비탈에 비껴 있고, 이끼가 부스러져 떨어지고,
또 샘 줄기가 멀리 구름 끝에서 날아와 그 사이를 가로질러, 아슬아슬한 밑바닥으로 쏟으니
나아가려고 해도 발뒤축을 돌릴 수 없고, 돌아서려고 해도 뒤가 보이지 아니한다. 수십 그루의
나무를 베어내야 비로소 조금 하늘을 볼 수 있다. 일 꾸미기를 좋아하는 자가 왕왕 돌덩이를
주워서 바위 위에 두고, 노정을 표시하며
自普菴直上 急行一日有半 可到天王峰 然崖石峻嶮 無磎徑可尋 又槐檜蔽天 下有細竹森密 或有
死木橫千仞之崖 苔蘇剝落 又有飛泉遠自雲端 衝冒基間 下注不測 進不旋踵 回不見後 當斬數十
木 始可見尺天 好事者往往拾石瑰置巖上以表路”
진주사람 남효온(南孝溫, 1454∼1492)이 덕산사(현 내원사)에서 구곡산(961m)을 거쳐 천왕봉
가는 길에 들른 보문암을 보암사라 기록한 것을 보면 지금은 폐사한 보암사의 위치를 어림짐작
할 수 있다.
34. 이 골짜기는 중산리로 간다
35. 오른쪽 능선은 남부능선, 제석봉 데크전망대에서
36. 멀리는 구곡산
37. 천왕봉
38. 통천문 전망대에 제석봉 쪽 전망
39. 제석봉
40. 통천문 전망대에 제석봉 쪽 전망
41. 멀리 가운데는 삼신봉
▶ 법계사, 중산리
탈출이다. 아쉬움은 없다. 아쉬움은 내게 힘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나 느낀다. 천왕봉에도
우각 님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 대원사를 향했을 것이다. 여러 등산객들의 취한 걸음에 섞여
가파른 너덜 길을 내린다. 노천인 천왕샘은 바위 틈 비집어 새록새록 솟는다. 한 바가지 떠서
마신다. 아주 시원하거니와 물맛이 좋다.
돌길의 연속이다. 개선문 지나고 슬랩 내리고 데크계단 내리고 너덜 내리고 돌계단 내리기를
반복한다. 법계사로 내리는 등로 주변까지 산죽은 꽃을 피웠다. 조만간 지리주릉의 산죽은
전멸할 것으로 보인다. 대나무(산죽을 포함하여) 꽃은 개화병(開花病)이라고 한다. 대나무 번식
과는 무관한 돌연변이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대나무 꽃은 한두 그루가 아닌 대나무 밭 전체에
일제히 핀다. 꽃이 피고 나서 대나무는 죽는다.
법계사 일주문이 보이지 않는다. 절이 이사 갔는가 둘러보니 시주 안내문에 재작년 태풍이
불어 무너졌다고 한다. 법계사 일주문의 편액도 볼만한 글씨였다. 그 아래 로타리 대피소는
안개가 자욱하다. 야트막한 봉우리 잠깐 올랐다가 쏟아지듯 내리는 돌길 등로다. 칼바위 근처
장터목 대피소 가는 갈림길까지 그런다.
망바위를 망(望)하고 내린다. 줄곧 등로 주변의 울창한 수림 바라보니 하산의 감회를 고운
최치원의 「운봉사에 제하다(題雲峯寺)」 시구로 대신할 생각이 든다.
煙霞應笑我 연무와 노을은 내 모습 보고 비웃으리
回步入塵籠 속진의 새장 속으로 도로 들어가느냐고
42. 멀리 흐릿한 반야봉이 보인다
43. 오른쪽 멀리는 구곡산
44. 삼신봉
45. 중봉, 그 너머는 하봉
46. 산죽 꽃, 개화병에 걸렸다
47. 산죽 꽃
48. 로타리 대피소 주변
첫댓글 저가 마치 지리 주릉을 걷는 것처럼 악수님의 글을 읽으며 10년 전을 떠올려보았습니다.
"극한이 과연 있는 것일까? 그 상태를 어떻게 형용하는 것인가? 하고 조롱했는데 막상 당하여 내 한계를 비로소 보고 알게 되니 그건 바로 쓸쓸함이다."
악수님의 얼굴과 매치되어 절절하게 다가오는 명구입니다. 화대를 말아먹은 사람이나 떼어 먹은 사람이나 모두들 수고많았습니다.
멈춰야 할 때 멈출 수 있는 것도 지혜이고 용기입니다.
화엄사 출발하여 5분만에 갈라진 그룹을 읽으며 "잘될 놈은 떡잎부터 알아본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스틸님의 "악소리 비명"을 읽으며 험난한 인생사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모닥불님의 "식수만 채우고 앞으로 나아간다"에서 인생역전의 드라마도 즐겼습니다만,
악수님의 "내 한계를 보고 알게되니 그건 바로 쓸쓸함이다" 라는 대목에서는,
내가 이번 화대종주에 갔더라면 아마 나도 어디선가 아쉬움을 달래야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악수님이 느끼신 쓸쓸함은 예전(젊었을 때)라는 기준이 있어 아쉬움이 쓸쓸함으로 발전해 가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화대종주에 도전하신 모든 분께 축하드립니다.
악수님의 DSLR 대포에 한대 맞았어야
앞으로 구라치는데 도움이 될텐데
총대장님의 완전 소중한 쥐포 사진에
만족해야만 하는 화대종주네요ㅎ
명품 산행기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사진도 좋구요. 저는 오직 홀로산행?을 하다보니까 나름 외롭기도 했지만 그래도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일행이 있다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그날 컨디션이 안좋으셨나보군요, 요즈음 못가본 지리 멋진 풍경 잘 보고 갑니다....
악수님 잘 따라 붙었으면 천왕봉 까지는 가능 했을 텐데요. 악수님의 시원한 주법 내년에는 흉내낼까 모르겠네요.
고생 많으셨습니다...저도 함께 했더라면 혹시나 천왕봉은 생각했지만 애시당초 후미 본다는 생각으로 세석에서 마음편히 하산하였습니다...평상시보다 더 장시간 산행을 하니 월요일까지 피로가 안 풀리더라구요^^
햐~~ 악수님이 그 무거운 사진기를 가져 오셨으니...
이 멋진 지리산의 풍광을 제대로 담아 온거죠
메인의 제석봉에서의 반야봉 모습 정말 예술입니다
세석에서 앵벌이 하지말고 악수님과 발 맞출걸~~~ 이제야 후회합니다.ㅋㅋ
지리산 안에 있을때와 뒤로 물러나 바라보는 산이 어쩜 이렇게 다르게 느껴질까요?
못가 본 제석봉 주능이 참 멋지네요^^
악수님의 레이더 망에 한번도 걸려들지 못한 아쉬움이 남지만 멋진 사진으로 심심한 위로를~~~
산행기 잘 읽고 갑니다~
전 조만간 혼자라도 가야겠습니다. *^^*
형님 누님들 즐거웠겠습니다. ㅠㅠ
우보는 누구랑 간담 ㅠㅠ
갈 사람들은 많고 시간도 많으나 ........ 당일 종주에 동행할 사람이 ㅠㅠ
망설여지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