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친정 아버지는 1929년 생이셨다. 자수성가해서 큰 재산을 일구셨던 할아버지 덕에 비록 식민지 백성이기는 했으나 큰 고생없이 자라셨고, 공부를 뛰어나게 잘 하셔서 주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셨다고 들었다. 그러나 한국 근대사와 현대사의 격동기에 태어난 죄로 아버지가 세상에 치러낸 대가는 적지 않았고 평생을 통해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사셨다. 돌아가시는 날까지...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소학교 시절을 마치고, 가업을 잇기 위해 부산에서 가장 좋다는 상업학교 (제 1상업학교, 부산상고의 전신)에 들어가신게 비극의 출발점이었다. 그 학교는 일본인 학교였고, 전교생 중에 조선인은 아버지를 포함한 단 두 명.
조선인이 시건방지게 그런 학교에 들어왔다는 죄로 끔찍한 민족차별을 받으며 학교생활을 하셨다고 한다. 뛰어난 성적과 상관없이 이어지는 이유없는 구타와 이지메... 자존심강한 아버지는 처음으로 민족의식이란 것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일련의 탐색을 거쳐 항일 비밀결사 단체에 들어가셨다고 한다. 처음엔 부산 영남 일원에서 삐라를 뿌리고 무장준비를 하다가 나중에는 일본과 만주에 대원들을 보내어 무장봉기에 가담한다는 계획하에 열차로 만주로 이동중 체포당하셨다고 들었다.
아버지와 친구분들은 재판을 거쳐 부산 형무소에 수감되었고, 친구분이셨던 대원 한 분은 심한 고문의 결과로 옥사하셨다. 1년여의 형무소 생활 중 해방이 되어 감옥에서 풀려나신 아버지를 기다린 것은 풍지박산난 집안과 화병으로 중풍을 얻은 할아버지...
민족의식을 지니기에는 너무나도 평범한 필부셨던 할아버지, 아들로 인해 잃어버린 재산에 집착하신 할아버지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20년 넘게 주구장창 아들을 원망하셨고, 그 할어버지의 모습은 지금도 내 어린 시절 기억속에 남아있다. 항상 화를 내고 무서웠던 분으로.
아버지는 뒤이은 한국전쟁에 육군으로 참전하신 후, 어렵게 학업을 마치고 고교 교사가 되셨고, 기울은 집안의 가장이 되어 힘겨운 인생을 사시다가 10여년 전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일생에서 가장 아이러니하게 느꼈던 부분은...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성장기와 청년기 전체를 걸쳐 아버지가 들은 음악, 읽은 책들 모두가 일본 것이었고, 그 영향은 너무나도 커서 평생을 두고 아버지를 지배했다는 사실이었다. 아버지 세대의 다른 분들도 일본어에 익숙하시겠지만, 활자중독 혹은 책벌레라고 불리우셨던 아버지 역시 평생을 통해 한글 못지않게 일본어를 편하게 읽고 쓰셨고, 회화는 말할 것도 없었다.
당시 우리 가족이 살던 곳 (부산, 마산)은 지리적으로 일본과 가까워서, 평범한 라디오로도 일본 방송이 잘 잡히곤 했었다. 아버지는 일본 라디오 방송을 가끔 들으셨고, 친구분들이 사서 보내주는 문예춘추같은 잡지를 읽으셨고 (마음에 드는 기사가 가끔 있다고 하셨었다), 이와나미 문고를 사서 모으시곤 했다. 일본어로 셰익스피어를 읽고, 톨스토이를 읽으셨었다는 아버지. 다락방에 일본어로 된 책을 그득그득 쌓아두고 읽으시던 아버지... 아버지의 인생에 화두가 된 항일무장활동을 생각하면 아이러니 혹은 모순이 아닐 수가 없다.
식민지인으로 성장기와 청년기를 보내고, 일본 정신의 엑기스만을 뽑아놓은 엘리트 교육을 받은 그 후유증은 너무나도 커서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아버지에게 영향을 미쳤고, 이성으로는 일본을 증오했지만 감성으로는 식민지 체험에서 많이 벗어나지 못하셨다, 슬프게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다락방의 책들은 다 버려졌고, 낡은 앨범만 한 권 남았다. 소년시절의 아버지가 일본에 여행가셔서 찍은 사진들이 담긴... 영리하고 차분한 눈빛을 가진 빡빡머리 소년. 나를 무척이나 마음 아프게 했고, 지금도 아프게 하는 아버지의 모습.
내가 자란 후 겪었고 아직 겪고 있는 또 다른 아이러니라면... 호주에서 생활하고 공부하는 동안 여러 명의 일본인 친구들을 만났고, 아주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평생 기억에 남을 아름다운 추억도 많이 만들었다. 그 중의 몇 명은 지금까지 연락을 하고 지낸다. 그리고 내가 지금껏 돌아다닌 여행지 중에 가장 좋아한 장소도 일본이었다.
그러니... 일본이란 나라를 생각하면 내 마음은 형용할 수 없을 만치 복잡한 빛깔이 되고 만다. 증오와 추억, 우정과 익숙함, 낯섬과 호감이 마구 뒤섞여버린... 그래서 거리를 두고 차분한 마음으로 한 가닥 한 가닥 나눠서 정리하면서 분석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시간을 두고.
과거사는 절대로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되나 거기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용서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안 되는 것이 있다. 감성으로 접근해야 할 이슈가 있고, 이성으로 냉정하게 판단해야 할 이슈가 있어서 그 둘을 혼동해도 안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발전적인 미래를 생각하면서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야한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독도문제와 관련한 움직임들에서는 그런 냉철한 이성적인 판단이 잘 보이질 않는다. 멀리 앞을 내다보는 안목도, 일본인들의 기질과 국민성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 대응하는 냉정함도, 국제적인 감각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펄펄 끓어오르는 열기와 아우성뿐... 그게 나를 안타깝게, 아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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