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의 글은
2015년 11월 3일 포스팅하였습니다.
얼마전 우리 허 강도사님에게서
한 통의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라는 말씀이 있듯
권위적이고 목이 곧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사람과는 달리......
목회자로서 흠이 없는 선한 목자상을 가진 훌륭한 분이 있다면서 소개를 하며
설교를 검증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즉시 사이트에 들어가서
동영상 설교를 들으며 분석을 시작하였습니다.
몇 일 후.....메일을 보내면서
선한 목자로서 훌륭한 신앙 인격적 삶은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설교의 메세지는 1학년 1반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혹평하였습니다.
쓰잘데없는 예화로 설교의 절반을 채우고......
성경 본문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가 없고 또한 복음적인 시선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말씀으로 복음을 증거하지 못하는 맹목적인 설교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삶으로는 존경하고 본받아도
성경을 이해하는 메세지로는 전혀 배울 것이 없다고 메일을 보냈습니다.
우리 허 강도사님 실망하여
묵묵부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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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날 우리 허 강도사님과 유명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설교의 복음적인 검증을 하면서 일천한 지식으로나마 말씀을 지도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강단의 복음이 살아 있다는 어느 유명한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복음적인 분석을 시작하였습니다.
여러 편의 설교를 들으면서 프리노트 하였고
마침내 문제점을 나누었습니다.
강단의 복음이 살아 있다는 말은 명불허전이 아니라
유명무실의 빈깡통이었습니다.
개혁주의를 강조한다고 개혁주의가 아니듯
복음을 강조한다고 복음적인 설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성경을 강조하는 곳이 진리의 복음이 없고
구원을 강조하는 곳에 구원의 말씀이 없는 사막이었습니다.
신묘막측하다고 탄성하는 설교의 이면에는
기막힌 알레고리의 알고리즘이 비결이었습니다.
맛집의 맛이 MSG이듯이
MSG의 알레고리로 복음의 옷을 입힌 메세지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교인들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날마다 그 말씀에 은혜 충만히 받고
복음적인 설교로 유명한신 목사님을 마냥 존경하며 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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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느 목사님은 신.구약을 관통하는 설교로 유명하여
우리 허 강 도사님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설교의 검증을 부탁해서
사이트에 올라온 설교를 거의 다 듣고 분석하였습니다.
정말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졌고.....
신.구약 성경 배경사에 대해서도 학자의 지식을 가졌습니다.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학자의 혀로 하는 그 설교는 어떠했을까?
에스겔의 환상과 요한계시록의 환상을 대조하면서
요한 계시록을 입체적으로 설교하였습니다.
그러나 요한 계시록은 누구든 설교하면.......
해석과 적용에서 이단이 된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요한 계시록은 읽어야 되는 성경이지......
해석을 하면 함정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요한 계시록을 읽어서 이해되지 않는 것은
더 이상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요한 계시록을 읽으면 어린 양 되신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과 주이신 것을 믿게 되지만
요한 계시록을 해석하면 곧 바로 이단의 함정과 올무와 덫에 걸립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이단은 요한 계시록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또 다른 계시의 비밀을 그리다가 사이비 이단의 뿔을 달았습니다.
놀라운 계시의 말씀을 읽기만 하여도
어린 양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모습을 온전히 믿을 수 있습니다.
하늘의 영광을 보고 그 계시의 말씀을 기록한 사도 요한도
깨닫지 못한 것을 해석하는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도 요한이 본 것을 보고 들은 것을 듣고
믿음의 탄성으로 마라나타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초막절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계시록에 적용하였고
구약 성경의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심판을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한 제물로 해석하는
치명적 오류를 범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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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복음적인 설교로 유명한 어느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같이 분석하였는데
복음의 심리적인 적용으로 도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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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어느 목사님은 대부분 야망과 비전의 설교를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비밀스럽게 공유하는 메세지를 전하는 가운데
묘한 송과선의 연결 고리로 목자와 양을 심리적으로 엮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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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검증한 설교 가운데 총신 교수로 협동 목사인 어느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는데
본문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를 개혁주의적인 관점으로 설교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살아있는 개혁주의적인 설교의 전형이라면서
본을 삼아 힘써 배우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성경 저자의 시선으로 진리의 복음을 바로 전하지 않으면
생명의 향기로 묻어난 그리스도의 편지가 아닙니다.
선포된 말씀의 왜곡과 날조는
거짓 입술을 가진 자의 형벌을 성경의 말씀대로 반드시 받을 것입니다.
설교에 대한 복음적인 분석과 검증은
한국 교회 강단의 혼잡한 말씀으로 오염되었다는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이렇게 목회 사역의 성공은 선한 목자의 표징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수탈하는 양의 탈을 쓴 이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바울은 3여년 동안 밤낮 눈물로 양육한 에베소 교회를 떠나면서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께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행20:29-31)
바울이 떠난 후 에베소 교회는 요한 계시록에 의하면
양의 탈을 쓴 니골라당이 들어와서 어그러진 말로 제자들을 유혹하며 미혹하였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1년 6개월 동안 머무르면서 고린도 교회를 복음으로 굳건하게 세웠지만
바울이 떠난 후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으로 혼란한 실상을 고린도 전.후서에 남겼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선한 목자의 올바른 복음이 선포될 때 예수님의 몸인 교회로서 온전하지만
양의 탈을 쓴 이리가 혼잡한 말씀을 전하면 사탄의 소굴이요, 강도의 굴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주 예수이 복음을 바울처럼 증거하는
우리 시대 선한 목자는 누구이며, 그 어디에 있습니까?
누구든 선한 목자라고 생각하면
선한 목자가 됩니까?
어떤 예배의 설교라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면.....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생명의 말씀이 됩니까?
오늘날 대부분 한국 교회의 강단은
사도 바울이 증거한 진리의 복음, 곧 구원의 말씀을 선포하지 않습니다.
강단의 주 예수를 증거하는 복음을 상실한 목회자도
선한 목자입니까?
교회 이름이 선한 목자 교회면....
선한 목자가 됩니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선한 목자의 표상은 윤리 도덕적인 선한 삶의 모습이 아니라
바울이 증거한 주 예수의 복음을 온전히 선포하고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올바로 증거해야 합니다
바울이 전한 구원의 말씀과 진리의 복음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로 믿음의 마음에 새긴 자만이
인내의 믿음으로 고난을 받으며 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