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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 시 104:28
(2016년 8월 14일 주일 설교자: 마경훈 목사)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좋으신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은 믿음대로 역사하셔서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 좋은 것은 것으로 만족하게 하실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이 주신 것을 받는데 주께서 손을 펴시니 좋은 것으로 만족한다고 말씀합니다. 시 103:1-5을 봅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3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4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1-2에서는 하나님을 송축하며 하나님이 주신 은택을 잊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3-5에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주시는 은택을 나열합니다. 첫째, 죄사함의 은택입니다. 둘째, 병고침의 은택입니다. 셋째, 속량의 은택입니다. 넷째, 인자와 긍휼의 은택입니다. 다섯째, 좋은 것으로 만족하게 하시는 은택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것으로 우리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에 개입하시고 우리를 간섭하시고 인도하시면 좋은 일들이 풍성하게 일어납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6일간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씀이 6번 나오고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는 말씀이 1번 나옵니다. 하나님은 보시기에 좋은 것을 만드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간섭을 받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한다면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들에 대해서 나누겠습니다. 크게 두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을 막는 것들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1.좋은 것이 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있다.
하나님은 좋은 것을 주시고 싶으시지만 우리가 좋은 것을 받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파악하고 제거하셔서 좋은 것을 풍성하게 받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한적한 길을 따라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갑자기 발길을 멈추고 무엇인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남의 집 정원 한 구석에 놓여 있는 아무렇게나 생긴 대리석이었습니다. 그는 주인을 찾아 가서 말했습니다. “저 돌을 주실 수 없겠습니까?” 주인이 이상하여 물었습니다. “저렇게 쓸모 없는 돌을 가져다 무얼 하시려고요?” 그가 말했습니다. “저 안에 예술이 갇혀 있군요. 그것을 자유롭게 해주고 싶어서요.” 그 사람은 그 돌을 가지고 가서 최고의 조각품을 만들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최고의 미술가 미켈란젤로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늘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그것을 막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바위에서 쓸데 없는 부분을 제거하고 작품을 만들 듯이 우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고 있는 것들을 찾아서 제거해야 합니다.
1) 마귀가 좋은 것을 막는다.
요10:10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마귀는 도둑입니다. 그의 목적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의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낙원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에덴동산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서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마귀의 시험에 져서 좋은 것을 빼앗긴 것입니다.
마귀가 주는 시험은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별것 아닌데 시험에 들면 모든 좋은 것을 잃게 됩니다. 얼마 전에 고교생이 한 친구를 때려 죽였습니다. 경찰이 붙들어서 살인 동기를 물었습니다. 이유는 어이가 없는 한 마디였습니다. “저 자식이 째려보잖아요?” 마귀가 역사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시험에 듭니다. 그리고 그 시험으로 좋은 것을 날려버리는 것입니다.
2) 죄가 좋은 것을 막는다.
마귀 죄를 통로로 삼아서 사람 속에 들어오고 그 사람을 조정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을 누리며 살려면 죄를 회개하고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죄가 우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는다는 진리를 예례미야 선지자가 자세히 말했습니다. 렘5:25입니다.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예레미야는 아주 단순하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너희의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여기서 이러한 일들이 무엇입니까? 문맥상으로 보면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셔서 농사를 풍성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표면적으로 해석하면 경제적인 복이고 영적인 해석을 하면 성령의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역사를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죄가 경제적인 복도 막고 성령의 역사도 막는다는 말입니다.
렘8:15에 보면 평강을 잃어버리는 이유도 죄 때문입니다. “우리가 평강을 바라나 좋은 것이 없으며 고침을 입을 때를 바라나 놀라움뿐이로다” 문맥상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짓을 말하고 성적인 타락과 우상숭배로 인하여 평강을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떠난 마음이 좋은 것을 막는다.
렘17:5,6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6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막과 같은 인생을 살게 되는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난 증거는 무엇입니까? 그들은 사람을 의지하고 육신으로 자신들의 힘을 삼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떠난 증거입니다.
좋은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데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났으니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실 수 없는 것입니다.
4) 잘못된 만남이 좋은 것을 막는다.
요나가 탔던 배가 큰 풍랑을 만나서 요나가 죽음의 위기에 처했고, 그 배에 탓던 모든 사람들도 죽음의 위기에 내몰렸습니다. 그 이유는 그곳에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자기의 길을 가는 요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자기 때문인줄 알고 배사공들에게 자기를 바다에 던지라고 하였습니다. 사공들은 요나를 바다에 던지지 않고 풍랑을 이겨보려고 했으나 이겨낼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요나를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풍랑이 그쳤습니다.
롯은 복의 근원인 아브라함과 함께 살 때는 복을 받아서 소유가 많았었습니다. 그런데 롯이 양들에게 먹이는 풀 문제로 삼촌 아브라함과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롯은 소돔성에 들어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는 죄악이 가득하여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소돔성 사람들과 교제하며 지내다가 주변 강대국들이 연합하여 소돔성을 공격하는 바람에 모든 재물을 빼앗기고 포로로 잡혀가는 비극적인 상황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만남은 복을 가지고 오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만남은 저주를 불러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가?
좋은 것을 받는 것은 세 가지 조건이 충족 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둘째는 사람이 받을만해야 합니다. 그릇이 아닌데 좋은 것을 많이 받으면 교만해집니다. 그릇이 작은 사람에게 큰 복을 주는 것은 그를 망하게 만드는 지름길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러나 사람이 받을 만 하지 않다면 못 받는 것입니다. 셋째. 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겠다고 에덴동산에서부터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2천 년 전까지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갈 4:4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때가 차니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이 땅에 보내신 것처럼 좋은 것을 받는 것도 때가 있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전 3:1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하나님이 원하시고 내가 받을 준비가 되었어도 하나님이 작정하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편에서는 하나님이 좋은 것을 주실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어떻게 준비할까요?
1)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드린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
복음은 아담 안에서 잃어버린 모든 것을 예수 안에서 회복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복된 소식, 좋은 소식입니다. 그런데 그 복된 것 좋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골2:3입니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여기서 그는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모시면 그분 안에 있는 모든 좋은 것이 우리의 것이 됩니다. 고전 1:30입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그분을 모시면 그분의 지혜와 의로움과 구원함이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버리는 것은 다 버리는 것입니다. 구두닦이가 우연히 복권 한 장을 샀습니다. 10억원에 당첨되었습니다. 그는 한강 옆을 지나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제 이 구두통은 필요없다.” 그리고 지금까지 벌어먹고 살던 구두통을 한강으로 던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통쾌하게 웃으면서 다시 한 번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는 부자다.” 그 순간 그는 펄썩 땅에 주저앉아 땅을 치며 울었습니다. 구두통속에 복권을 넣어 두었던 것을 몰랐습니다. 주님을 얻으면 모든 좋은 것을 다 얻는 것입니다. 주님을 버리면 모든 좋은 것을 다 잃는 것입니다.
2) 깨끗한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
벧전 3:10,11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악한 말을 그치고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해야 합니다. 이 말은 악에서 떠나 깨끗한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좋은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신데 거룩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그릇으로 사용하시기를 원하시고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들을 보시는 기준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중요한 것이 얼마나 깨끗한가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봅니다. 큰 집에는 다양한 그릇이 있는데 그 중에서 주인은 깨끗한 그릇을 쓰는 것입니다.
3)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
마 7:11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동일한 내용을 누가복음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눅11:13입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성령충만한 상태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을 소유한 상태입니다.
성령님은 원제나 우리를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 인도해주십니다.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갈 길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인도를 따라 가나안에 들어갔던 것처럼 우리는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적절한 곳으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곳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 강호규 목사님이 우리교회 부교역자로 있을 때에 사람들은 그가 운전하는 차를 타기 싫어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싫어서가 아니라 길을 잘 못 찾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시화에 가는데 한참 가다보니 대전 이정표가 보이더랍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가장 확실한 인도자이십니다. 우리를 언제나 가장 좋은 곳으로 인도해주십니다.
4)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
잠16:20입니다.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여기서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말씀에 따라 조심하며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내가 하려는 일이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것인지 아닌지를 살펴는 사람을 말합니다. 자기가 하고 싶다고 하고 자기가 하기 싫다고 하지 않는 사람은 말씀에 주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하고 싶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금하는 일이라면 안 하는 사람, 내가 하기 싫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하라고 하면 하는 사람이 말씀에 주의하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이삭을 얻었습니다. 100세에 낳았으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춤이라도 추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 아들은 부모님에게 불순종하는 일이 없이 늘 부모님에게 웃음을 주는 아들이었스니다. 그러니 얼마나 예뻤습니까? 그런데 이삭이 청소년기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물로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친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하나님께 드릴 수 없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이삭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막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래서 복 있는 삶을 산 것입니다. .
5) 연합하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
전4:9입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둘이 연합하면 좋은 상을 얻습니다. 연합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레26:8을 봅니다. “또 너희 다섯이 백을 쫓고 너희 백이 만을 쫓으리니 너희 대적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다섯이 백을 쫓는 것은 20배의 승리입니다. 그런데 백이 만을 쫓습니다. 100배의 승리입니다. 수가 더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능력은 늘어나는 것입니다.
한국인들의 약점이 잘 연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 똑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를 낮추고, 상대를 인정하며 연합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좋은 것을 주십니다.
강문호 목사님은 교회는 독창이 아니라 합창입니다.라는 설교를 하셨습니다. 독창을 잘하는 것도 아름답지만 합창이 더 좋답니다. 교회는 합창입니다. 교회가 합창처럼 되려면 먼저 다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스프라노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알토도 필요하고 바리톤도 필요하고 테너도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 중에 필요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가족이 차를 타고 여행을 하던 중 모기떼가 극성을 부렸습니다. 아들이 운전하는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왜 모기를 만드셨을까요? 모기는 이 세상에 없어도 되지 않을까요?” 갑자기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무엇이라고 대답할 줄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하나님이 왜 모기를 만드셨는지 모르겠다.” 조금 가다가 보니 모기약 공장이 나타났는데 수많은 이들이 퇴근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이 모습을 보면서 말했습니다. “아들아! 하나님께서 모기를 만드신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만일 하나님이 모기를 만들지 않으셨다면 저들이 다 직업을 잃게 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 중에 필요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기도 필요해서 만드셨습니다. 하물며 사람이겠습니까? 더군다나 그가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는 정말 주님이 필요해서 만드신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런 자세를 가져야 연합할 수 있는 것입니다.
6) 기도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
마7:11입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렘29:11-12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여기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 싶으신 것은 평안이요 재앙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네요.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해야 합니다. 부르짖어야 합니다.
기도는 개인을 변화시키는 것만 아니라 도시도 국가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여행을 하다보면 ‘이런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모세의 기도가 아말렉과 전쟁에 승리를 가져다 준 것처럼 우리가 기도하면 대한민국도 북한도 바뀔 수 있습니다. 우리는 10월에 캄보디아로 기도여행을 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쓰셔서 캄보디아에 좋은 일들을 행하실 것입니다. 특히 선교사들이 들어가지 않는 지역인 끄라째에 저의 제자 선교사가 들어갔는데 아마도 우리팀이 끄라째에 들어가는 최초의 기도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의 수도 워싱톤은 1993년 454명이 살해되었습니다. 미국 최고의 살인도시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그러나 6년 후 232명으로 반 정도 줄었습니다. 강도사건은 70%가 줄었습니다. 강간 사건은 40% 줄었습니다. 워싱톤을 위한 중보기도팀의 기도가 응답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들은 1년 12달 365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하였습니다. “사기 사건이 은폐되지 않게 하소서.” 이렇게 기도하자 말자 워싱톤 시장 마리온 베리가 약물단속에 걸려 구속되었습니다. 6천 명 이상 중보기도자들이 매일 기도하고 있습니다. 국회위원들도 기도모임에 동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과테말라에서도 중보기도 능력이 확인되었습니다. 알모롱가라는 도시는 2만 명 정도가 살고 있습니다. 그 도시 깡패들이 모조리 변화되어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90%가 복음화 되었습니다. 감옥소가 4개 있었는데 범죄자가 한 명도 없어서 폐쇄되었습니다. 결혼식장이나 사무실로 개조하였습니다. 알모롱가는 알콜 중독자 투성이였습니다. 폭력과 술, 성적 범죄와 도박이 난무한 도시였습니다. 감옥소 4개는 항상 만원이었습니다. 마시몽이라는 우상 숭배가 깔려 있었습니다. 지금은 ‘교회의 도시’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술집 36개중에 33개 없어지고 3개만 남았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가 분명합니다. 마리아노 목사님을 중심으로 한 중보기도팀들의 기도가 맹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 고향이 그런 모습인 것을 보고 일주일에 3-4일 금식하며 맹렬히 기도하였습니다.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지역 토지가 모두 옥토로 바뀌었습니다. 농작물이 2-3배씩 커졌습니다. 수확이 갑자기 1000배가 되었습니다. 미국 농업 전문가들이 몰려와서 조사하였습니다. 그들의 조사 결과는 간단하였습니다. “원인을 찾을 수 없다.” 중보기도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ㅔ게 좋은 ㄳ을 주십니다 .
7) 말을 잘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고, 좋은 일들이 일어나게 하려면 어떻게 잘 말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야 합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을 들으시고 말대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벧전 3:10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카이오라는 프랑스의 시인이 길을 가다가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장님입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는 팻말을 목에 걸고 구걸하는 한 장님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도와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는 장님 가까이에 가서 물었습니다. “그렇게 앉아 있으면 하루에 얼마나 법니까?”, “8프랑에서 10프랑 정도 법니다.”, “그래요? 내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그는 팻말을 바꾸어 다른 글을 썼습니다. 다음 날부터 동전을 던져 주는 사람이 부쩍 많아져 하루에 80프랑을 벌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카이오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요즘에는 어떻습니까?” 장님은 음성을 듣고 그가 카이오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선생님이 팻말을 바꿔 주시고 난 뒤로 수입이 하루에 80프랑이나 됩니다. 도대체 팻말에 무어라고 썼기에 사람들이 이렇게 나를 도와줍니까?” “전의 팻말에는 ‘나는 태어날 때부터 장님입니다.’라고 써있었는데, 그것을 ‘봄이 와도 나는 봄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습니다.’라고 바꾸어 썼습니다.”, ‘봄이 와도 나는 봄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습니다.’라는 글을 보고 사람들이 안 된 감정을 느껴 장님을 도와 준 것입니다. 그 시인이 돈을 준 것이 아닙니다. 따뜻한 글 한 마디로 장님을 도왔습니다. 말의 파워입니다.
말을 지혜롭게 하는 사람은 야구 선수가 공을 제대로 쳐서 안타를 날리거나 홈런을 날리는 것과 같습니다. 말에 지혜가 없는 사람은 헛 스윙을 하거나 공을 쳐도 상대 수비수에 의해서 아웃 되는 것과 같습니다. 계속 안타를 치고 홈런을 치면 그 선수는 인기가 올라가고 연봉이 올라갑니다. 인기가 따라오고 돈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계속 헛 스윙이나 하고 공을 쳐도 계속 아웃 된다면 그 사람은 인기도 물러가고 돈도 물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말이 그런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의 능력을 모르기 때문에 아무 말이나 하고, 하고 싶은 말을 막 해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을 스스로 막습니다. 말을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말만한 말을 해야 합니다. 늘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말을 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