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사자는 영혼만을 데려간다
홍주 태안사 주지는 경과 논을 강론하는 강사였는데
오직 마조스님을 비방하기만 하였습니다.
하룻밤은 삼경에 저승사자가 와서 문을 두드리니,
주지가 물었습니다.
“누구시오?”
“귀신세계의 사자인데 주지를 데리러 왔다.”
“내가 이제 예순 일곱인데 40년 동안 경론을 강하여
대중들에게 공부하게 하였으나
말다툼만 일삼고 수행을 미처 하지 못했으니,
하루 밤 하루 낮만 말미를 주어 수행하게 해주시오”
“40년 동안 경론을 강의하기를 탐하면서도
수행을 못하였다면 이제서 다시 수행을 해서 무엇에 쓰겠는가?
한창 목마른데 우물을 파는 격(임갈굴정臨渴掘井)이니,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러면서 어서 갈 것을 채근하니,
둘째 사자가 말했습니다.
“저 왕께서 벌써 이런 사실을 아실 터이니,
이 사람에게 수행케 해준들 무방하지 않겠는가?”
첫째 사자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루쯤 수행하도록 놓아주겠소.
우리들이 돌아가서
왕에게 사뢰어 허락해주시면 내일 다시 오겠고,
만일 허락지 않으시면 잠시 뒤에 다시 오겠소.”
누구에게나 원래 갖춰져 있는
분별심 없는 자리로 돌아가야
사자들이 물러간 뒤에 주지가 이 일을 생각했습니다.
“귀신 사자는 허락했으나,
나는 하루 동안 어떤 수행을 해야 하는가?”
아무 대책도 없었습니다.
날이 밝기를 기다릴 틈도 없이
개원사로 달려가서 문을 두드리고
마조스님께로 가서 앞의 일을 자세히 말씀드리고
온 몸을 땅에 던져 절을 한 뒤에 말했습니다.
“죽음이 닥쳐왔는데 어찌해야 되겠습니까?
바라옵건대 스님께서
저의 남은 목숨을 자비로써 구제해 주십시오.”
스님께서는 그를 곁에 서 있게 하였습니다.
날이 새자 귀신사자는
태안사로 가서 주지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다시 개원사로 와서 주지를 찾았으나 찾지 못했습니다.
이때 마조스님과 주지는 사자를 보았으나
사자는 스님과 주지를 보지 못했습니다.
어째서 사자는 마조스님과 주지를 보지 못했을까?
저승사자가 끌고 가는 것은 몸뚱이가 아닙니다.
누가 죽었다고 해서 가 보면 몸뚱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저승사자는 다만 영혼을 데려가는 것입니다.
이 영혼은 다름 아닌 분별식分別識입니다.
분별식이란
나다 남이다, 맞다 틀리다,
좋다 싫다고 분별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이것은 시비분별 할 때 나타납니다.
시비분별하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습니다.
나타나지 않으니 볼 수 없고,
볼 수 없으니 데려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분별식 이전의 자리는 무엇인가?
이것이 바로 평상심입니다.
여기서의 평상심이란 평상시의 마음가짐,
즉 분별의 한 생각 내기 이전의 무분별심無分別心을 뜻합니다.
이러한 무분별심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본래 갖추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누구나 바로 지금 여기에서 분별심을 쉬면
곧바로 본래 마음인 평상심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귀신도 볼 수 없는
그 자리에 돌아갈 수 있도록 평상시에 잘 연습하는 것,
이야말로 참다운 죽음준비가 아닐까 합니다.
《인과경》에서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 외도들은 두 견해에 떨어져서
유심唯心의 도리를 알지 못하고,
스스로의 마음에 망상과 분별만 증장시킨다.
몸과 살림살이와 기세간器世間 등도
오직 마음으로 분별함이다.
그 토끼 뿔을 분별하지 말고,
있음과 없음을 떠날 것이다.
또한 모든 법도 분별하지 말고,
있음과 없음을 떠날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있음과 없음을 떠났다고 하면서 말하기를,
'토끼 뿔이 있다는 분별을 할 수 없으므로
토끼 뿔이 없다고 하는 분별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상대적인 것으로 보고서
토끼 뿔이 없는 것을 분별하지 않을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미세한 미진微塵을 분석하고 관찰할지라도
진실한 것은 보지 못하고,
성인聖人의 지혜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또한 소뿔이 있다고도 분별하지 말 것이다."
- 집일체불법품集一切佛法品 -
두 견해에 떨어져서
유심唯心의 도리를 알지 못하고,
스스로의 마음에 망상과 분별만 증장시킨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다, 저것이다, 아니다,
틀렸다, 옳다 하는 분별심分別心을 놓고 보면
저승사자는 영혼만 갖고 가는 것이니 육체를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이것이 오늘 드리는 따끈따끈한 말입니다.
2024년 11월 06일 오전 07:01분에
남지읍 무상사 토굴에서 운월야인雲月野人 진각珍覺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