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여름밤,
너른 벌판 위
고고한 불빛 속에 숨겨진 자태.
풀벌레 소리와 적막 속에 쌓여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듯한 분위기.
익산 왕궁리 5층 석탑.
오늘은 단순한듯 또 신비로운 얼굴을 가진 유적을 소개할까 합니다.
왕궁리 5층 석탑은 전북 익산시 왕궁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유적입니다.
1998년 9월 17일 사적 제408호로 지정되었고
1989년 7월 문화재관리국에 의해 학술발굴조사 되었으며
인접한 익산 미륵사지와 함께 최대 규모의 백제 유적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백제의 왕도였다는 왕도설을 갖고 있는 등 백제사의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왕궁리 유적.
이 유적에는 백제 무왕때인 639년에 건립했다는 제석정사터를 비롯해
그 안에 관궁사와 대궁사 등의 절터도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곳이 왕도였거나 왕도와 직접 관련이 있는 유적이라는 학설이 지배적이라고 해요.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대동지지의 문헌등에서 이 곳이 '옛날 궁궐터'와 '무왕이 별도로 세운 곳', '마한의 궁성터'라고 명기하고 있어
이 사실을 뒷받침하기도 합니다.
또한 왕궁리 유적 발굴에서는 기와편이 총 30만장이나 출토되었는데요,
그 중 일부를 교육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전시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왕궁리 유적에서 토기와 기와, 유리나, 금제품 등의 약 4천점의 유물이 출토되고
또한 이 곳은 2015년 7월 4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지정되며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기도 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는
공주의 공산성, 송산리 고분군과 정림사지, 나성, 능산리 고분군, 미륵사지등
현재 다양하게 지정되어 보존중에 있습니다.
(* 관련 정보 http://www.baekje-heritage.or.kr/html/kr/)
왕궁리 오층 석탑으로 가는 길은 이렇습니다.
정비중이라 어수선하지만 그래도 멀리서 바라보는데도 뭔가 고고한 아우라가 펼쳐집니다.
나무들은 전부 벚나무로 벚꽃이 필 봄철에 오면
석탑과 함께 벚꽃이 어우러진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해질무렵 석탑 근처로 들어가니
꽤 더운 날씨라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미 몇몇 가족이 이 곳에서 산책을 즐기고 있습니다.
기념사진을 찍거나 벤치에서 탑을 바라보며 간식을 먹는 등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군요.
조금 더 다가서니 나무사이로 그림같은 풍경이 드러납니다.
가지치기를 하지않아 무수하게 드리워진 아름다운 나뭇가지와
노을로 붉게 물든 왕궁리 석탑...
뭐랄까, 시대를 초월한 풍경이랄까요.
그리고 그 풍경속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을 아이와 함께 멍하니 바라봅니다.
마치 아이와 함께 과거로 돌아가 백제의 한 시간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듭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면서 살랑살랑 바람도 불어 더위를 가셔줍니다.
나무들 사이에 솟아있는 왕궁리 석탑은 해가 저물수록 더 눈부신 자태를 더합니다.
해가 거의 저물고 석탑 주변에 조명이 하나둘씩 켜집니다.
사실 우리 가족은 오늘 이 곳에서 가족사진을 찍기 위함을 목적으로 방문한거라
저는 슬슬 장비를 챙겨 앵글을 잡습니다.
촬영준비를 하는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힙니다.
촬영준비가 힘든지 시원한 가을에 와볼껄, 하고 조금 후회합니다.
남편과 아이를 앞으로 보내고 앵글을 잡아봅니다.
왠지 역시 뭔가가 어색하네요. 앵글이 문제였을까요?
"거기 좀 똑바로 서봐", 라고 말하지만
이 더위에 아이를 목마태우는 것도 쉽지 않은 듯. 남편은 비틀거립니다.
겨우 찍은 한장.
아주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만족하고 남편을 목마에서 해방시켜 줍니다.
<늘 모델을 하느라 고생인 남편과 아이>
왕궁리 오층석탑은 발굴 당시 석탑 아래에서 목탑터와 불전의 판축층과 대규모 강당터 등이 발견되었다고 해요.
그것을 바탕으로 이 곳이 백제시기 대관사였음을 추측하게 됐다고 합니다.
'삼국사기' 태종무열왕 8년에는 '대관사 우물이 핏빛으로 변하여 금마군 땅에 흐르더니 왕이 돌아가셨다'고 기록되어지고 있는데요,
즉 백제를 멸망시킨 태종무열 왕의 죽음을 예고하는 이변이 일어난 곳으로
당시 백제의 시기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치가 있는 유적을 떠나 그저 보고만 있어도 고고한 아름다움이 가득합니다.
저녁거미가 지고 푸르스름한 밤기운이 도는 시각에
따뜻한 불빛이 왕궁리 오층석탑을 감싸는 모습은
역사의 한 부분을 눈으로 읽어내는 기분이랄까요.
별 정보없이 무작정 찾은 곳임에도 무척 풍요로운 인상을 심어주는 왕궁리 오층석탑...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니 석탑의 고고한 분위기에 압도됩니다.
이 분위기를 놓칠세라 아이를 안고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석탑을 기준으로 플레시를 터트리지않고 촬영하니
멀리서 찍었을때보다 조금 더 멋진 분위기를 담아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실루엣만 나오는게 몰골이 추레한 저에게는 이로운 것이기도 합니다.
탑 주변에서는 익산 왕궁리 유적의 주변 모습을 탁 트인 풍경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조명이 워낙 많아서 광공해가 높은 편에 속하지만
드넓게 트인 장소로 인해 하늘에 뜬 별들도 제법 관찰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왕궁리 유적 위로 뜬 별들.
장노출로 인해 별들도 드러나지만
핏셀이 죽은 핫픽셀들도 빨갛게 드러납니다.
이는 카메라가 수명이 거의 다 됐다는 이야기...
거의 10년정도 써왔던 카메라라 그런지 왠지 마음이 아픕니다.
'카메라 너도 이 유적처럼 역사가 되는건가...'
더우니까 별 생각이 다 듭니다.
"이 아름다운 유적이 너의 세대에 물려줄 소중한 우리 역사란다"
조금 오글거리는 멘트를 순수한 눈망울로 바라보는 딸에게 말해줍니다.
아이는 그저 눈망울만 초롱거리고 '더워, 언제가?'같은 표정을 짓습니다.
그래요. 역사보다는 더운것이 더 큰 문제죠. 맞습니다.
그래도 내 아이도 나의 이런 마음을 언젠가는 깨닫고
훗날 지금처럼 자신의 아이의 손을 잡고 이곳을 찾을수도 있겠죠?
유적이란 역사와 현재를, 또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통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름밤, 여름철 별자리가 왕궁리 5층 석탑 위로 반짝입니다.
선선함이 묻어있는 바람도, 드리워진 구름도 이 아름다운 석탑 위에 머뭅니다.
풀벌레 소리도 풍경에 장식을 더해 한폭의 시를 읽는 기분이 듭니다.
왕궁리 5층 석탑, 천년의 과거.
약 천년 전, 이 탑이 세워질 즈음에도 이런 풍경이었겠죠.
이 여름 밤의 풍경을 바라보며 천년 전의 풍경을 상상하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족사진을 남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