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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은혜의 찬양 감사합니다.
오늘은 성령 강림 주일입니다. 교회에서 많이 부르는 찬양 중에 성령이 오셨네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그 가사 중에 이런 내용의 가사가 있습니다.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내 주의 보내시. 성령이 오셨네. 우리 인생 가운데 진이 찾아오셔서 그 나라 꿈꾸게 하시네. 다시 한 번 하겠습니다.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내 주의 보내심 성령이 오셨네. 우리 인생 가운데 친히 찾아오셔서 그 나라 꿈꾸게 하시네.
할렐루야. 그 옛날 마가의 다락방에 임한 성령의 역사가 오늘 예배하는 우리 가운데도 임하게 될 줄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이 성령 충만이 주는 의미 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성령 충만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 그 첫 번째는 우리 인생을 충만케 하시기 위해서 오셨다.
할렐루야 우리 4절 말씀을 같이 한번 읽어 4절의 말씀, 4절의 말씀 보겠습니다. 시작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부도들로 말하기를 시작합니다.
아멘, 그들이 다 성령의 뭘 받고 충만함을 받고 성령에게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들이 다 무엇을 받았다고요?
성령 충만, 성령의 충만함을 다 받았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바로 성령 하나님 모인 그들에게 성령 충만을 다 허락해 주신 줄을 믿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또 기도하고 찬송하고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는 귀한 시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성령 충만을 받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을 받으면 내가 내 힘으로 말을 잘하게 되고 어떤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면 온전히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런 존재가 된다.
할렐루야 그게 바로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님을 의지하게 된다. 말씀에 보면 그들이 말을 했다고 했지 기도를 할 때 방언으로 기도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떠오르는 말이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무조건 방언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성령 충만 받게 되면 방언을 해야 된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로 방언을 기도할 때 사용하니까 방언 기도 또는 방언은 기도할 때 사용하는 것이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국에서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찾았던 경건한 유대인들이 그 말을 다 알아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말씀이 5절에서 8절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 5절에서 8절 말씀을 천천히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그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이 소리가 남에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자기 떼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이 놀라 신기하게 이게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아멘 6절의 말씀 보니까 이 소리가 남에 큰 무리가 뭐야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많은 것을 듣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거든요.
또 7절에 보니까 7절 말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사람들이 제자들이 기도하는 것을 보았다고 하지를 않았습니다. 제자들이 뭐 하는 것을 보았다고요? 말하는 것을 들었다 말하는 것, 기도하는 것을 보지 않았다는 말하는 것, 그들이 어떤 말을 했는지 또 우리는 그런 말을 하지 못하는가에 대해서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상황과 그때가 다르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방언의 말을 할 때가 있고 또 필요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무조건 방언으로 말해야 된다. 무조건 꼭 그런 말을 해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그런 방언을 한다고 들을 외국인들이 우리 가까이에는 없습니다.
또 그런 역할로서의 방언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함을 받았다라고 해서 어떤 현상이 현상이 일어났는가 그런 성령 충만함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가에 에서 우리가 집중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고 하면 성령 충만은 무조건 방언을 해야 되고 외국말을 해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성령 충만하게 되면 이 성령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는 사람, 성령 충만하게 되면 성령 충만의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봉사의 일이든 교회의 사역이든 전부 성령님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순종하며 사는 사람 그것이 바로 성령 충만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의 현상은 그들의 말 또 그들의 설교, 그들의 행동이 교회 안에 머물지 않았고 교회 밖으로 흘러나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이 성령 충만 이후에 사건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성령 충만을 받고 나니까 이런 역사들이 가득 채워 나오는 것이 바로 성령 충만해 계속해서 일어나는 일들을 우리가 주목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 주목해야 될 내용이 뭘까요?
두려움에 떨던 이 제자들이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할 수밖에 없었던 그 사람들이 이제는 밖으로 나와서 이방 사람들에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했다는 겁니다.
이거 굉장한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특별히 베드로 베드로와 그 제자들 그들이 설교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전에는 밖으로 나가는 것이 굉장히 두려웠습니다. 예수님을 증거하기가 굉장히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그 집 안에만 꼭 숨어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을 받고 나니까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담대하게 선포를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본문 1절 14절을 한번 읽어봅시다. 14절의 말씀을 한번 읽어봅시다. 시작
베드로가 영양 사도와 함께 서서 손을 들었는데 너희들과 예루살렘의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를 와 게 할 것이니
아멘 자 베드로가 11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12 제자들이 어디서 이런 이런 용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어디서 이런 담대함이 있었는지, 갑자기 어디 가서 무슨 설교를 잘하는 법을 배운 것도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 이유가 뭡니까?
바로 성령 충만을 받았기 때문인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에게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성령 충만을 받게 되니까 그 염려와 근심, 두려움이 다 떠나게 됩니다. 이게 바로 성령 충만의 역사입니다. 또한 성령 충만을 받게 되면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사도행전 2장 46절 47절의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의 골기를 휩쓰고 집에서 더 길며 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하며 모든 백성에게 주께서 남은 사람을
아멘 자 보시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뭐 하기를 힘쓰고 모으기를 힘쓰고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절에 하나님을 뭐 하며 참 온 백성들에게 백성에게 뭘 받으니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어떤 사람 구원받는 사람은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할렐루야 바로 이것이 성령 충만해 받은 성도들의 모습이었다는 겁니다. 성령 충만 받기 전에는 마가 다락방에 움츠리고 앉아 있는 그들이었지만 성령 충만을 받게 되는 밖으로 나가서 그런 성령 충만한 사람으로 변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성령 충만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교회 안에서만 착하고 교회 안에서만 봉사 잘하고 은혜스러운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게 되면 교회 밖으로 나가서 여러분 직장 생활 속에서 여러분 이웃들 속에서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이것은 이미 우리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 말씀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이 같이 너의 지시 사랑 치게 하여 그대로 너의 한 위치를 보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아멘 자 이 같이 너의 빛이 어디에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무슨 행실을 보고 착한 행실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뭐가 이러라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할렐루야 우리가 성령 충만 받게 되면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우리 착한 행실을 보여주고, 그리고 그들이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임을 인정하게 되고 그것이 하나님께 무엇이 된다 영광을 올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았다고 성령 충만 받았다고 하면 거짓말하고 또 나음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그런 사람은 결코 성령 충만한 성도의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도 오래전에 그런 분이 있었습니다. 정말 교회 봉사도 잘했습니다. 전도도 너무나 열심히 잘하신 분이셨는데 이상하게 전도하면 열매가 없습니다. 전도하는 사람마다 시험이 들어서 교회에 나오지를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성령 충만한 성도의 모습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성령 충만을 기억하십시오. 성령 충만하면 꼭 방언을 해야 된다. 그거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을 보면 정말 성령 충만하게 되면 성령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고 성령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들을 행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게 바로 성령의 충만합니다.
성령 충만하게 되면 교회 안에 있어서만 내가 잘해야지 그게 아니지는 거죠. 성령 충만하게 되면 내가 교회 밖에서도 세상에서도 내가 직장생활을 어떻게 하면 내가 예수님을 잘 전할 수 있을까 그런 마음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게 바로 성령 충만의 결과물인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주님 내가 성령 충만해서 교회 안에 머물지 않게 하시고 교회 밖으로 나가서 예수님을 잘 전할 수 있게 해주세요.
할렐루야 이런 믿음이 생길 때 그것이 바로 진정으로 성령 충만한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이러한 모습이 여러분의 삶에 가득 나타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두 번째로 성령 충만의 의미는 우리 삶에 우리 삶을 충분하도록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을 뭐 하도록 충분하도록 우리 성령 충만에 대한 말씀을 배웠다고 했지 않습니까? 성령 충만 충만이라는 말은 가득 차 있다. 그러니까 성령 충만하게 되면 내 안에 성령님으로 가득 차 이게 있다는 겁니다. 내 안에 가득 차게 되면 우리가 교회 안에서만 착한 것을 자랑하지 않고 교회 밖에서도 정말 성실하고 착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 충만입니다.
그리고 또한 성령 충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충분하다 모자람이 없이 넉넉하다는 겁니다. 우리 어저께 아동부에서 친구 초청 잔치를 했습니다. 제가 참 보기 좋았습니다. 그때 우리 아이들 전두환 친구들도 많이 왔고 또 어머니들도 많이 왔어요. 제가 아이들이 어떻게 전도했을까 어떻게 했길래 저 친구들을 저렇게 많이 데리고 왔을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아마 그렇겠죠.
너 교회 한번 와봐라. 우리 달성 교회 한번 와봐라.
너도 예수님 믿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애들이 온 거예요. 사실 요즘 그렇게 한다고 아이들 잘 안 오거든요. 전도한다고 잘 안 되잖아요. 그런데 그 순수한 아이들이 그런 고백을 하니까 애들이 많이 찾아왔더라고요. 그 모습을 볼 때 정말 마음이 너무 좋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넉넉하다는 말은 우리가 예수님을 잘 믿게 되면 예수님 한 분으로 충분합니다 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예수님 한 분으로 뭐 하다고요?
충분하다. 그런데 충분하지 못하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예수님뿐만 아니라 나는 이것도 필요하고요. 저것도 필요하고요. 다 필요합니다. 그거 충분한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충분하다는 것은 예수님 한 분만이 나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 한 분으로 나는 조카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 충분입니다. 충분한 삶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충분히 성령 충만하다는 것은 부족함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뭘 알지 못한다고요?
부족함을 알지 못한다. 제자들에게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했을 때 제자들은요 부족함을 알지 못했어요.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했습니다. 그러니 전혀 걱정도 없었고 염려도 없었고 두려움도 없었지 않습니까? 그전에는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가의 다라 보니 성령이 임하게 되니까 그 마음속에 염려와 근심 걱정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똑같은 사람인데 똑같은 사람인데 성령 충만 받기 전과 성령 충만 받고 난 이후의 삶이 완전히 달라지더라는 겁니다. 이거 놀랍지 않습니까? 그전에는 성령 충만 받기 전에는 고난을 받을까 봐 혹시 자기들이 불이익을 당할까 봐 감옥에 들어갈까 봐 그게 굉장히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밖으로 나오지를 못한 것이죠. 근데 성령 충만을 받고 나니까 더 두려움이 다 사라지게 되고 밖으로 나와서 예수의 이름을 증거하고 놀라운 기적과 역사를 일으켰다는 사실을 여러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지의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를 고쳐준 사건이 있지 않습니까? 앉은뱅이를 고쳐주었습니다. 이 사건도 굉장히 놀라운데 그런데 이 사건으로 인해서 이 베드로와 요한이 이 처벌당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그 말씀이 사도행전 4장 21절에 나오는데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아이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아픔을 참지 못하고 다시 내원하여 놔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주는 길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아멘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대니를 보고 누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돌림이라 그리고 또 사도 5장 17절의 말씀도 보겠습니다. 시작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도교의 당파가 그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18절 말씀 시작
사도들을 잡아다가 함께 나누었으니
아멘 사도들을 잡아다가 어디에 갔다가 지 옥에 가두었다. 그전에는 오게 가는 감옥 가는 게 굉장히 두려웠는데 두렵지가 않았다는 거죠. 이렇게 성령 충만을 받게 되니까 이 고난도 핍박도 두려움이 사라지고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에게 무엇을 받았기 때문에 성령 충만을 받는 성령 충만을 받게 된다 이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고 더 험악한 일도 있을 텐데 성령 충만을 받게 되니까 아무 문제가 되지를 않았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잘 믿으면 정말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겠는데, 때로는 예수 잘 믿는 것을 갖다 믿다 보면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고 핍박을 당하 억울한 손해를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 받고 나니까 기분 나쁘지 않습니다. 괴롭지 않습니다. 오히려 은혜가 되고 감사가 되는 이유가 바로 성령 충만 받았기 때문인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령 충만을 받게 되니까 마음에 감사가 있고 기쁨이 있고 은혜가 있습니다. 여기에 바로 성령 충만의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있는 줄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뭘까요?
물론 세상에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지만 오늘 여러분들에게 성령 충만히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이제 말씀의 결론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잘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오순절 2천년 전에 120명의 무리들에게 성령님이 오신 사건, 그 사건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늘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들에게도 성령님의 역사가 있음을 여러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에게 충만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위함인 줄 믿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면 우리가 혹 질병 가운데 놓였다 할지라도 그 질병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는 줄을 믿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삶에 낙심이 되고 어려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낙심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감사가 되는 줄 믿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성령 충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 인생 가운데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성령님 의지하심으로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