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德華滿發*
대화의 기술
도반 동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를 아시나요? 일본의 민족성을 얘기할 때 흔히 거론되는 개념이 이 혼네와 다테마에죠. 혼네는 말 그대로 ‘자기 본마음에서 우러러 나오는 소리나 생각’을 말합니다. 반면 다테마에는 ‘다른 사람 앞에서 드러내는 겉 표정’이죠. 이 개념을 끌어와 일본인을 뭔가 비난하고 싶을 때 ‘겉 다르고 속 다르다’는 말로 그들의 이중성을 거론합니다.
아주 오래 전에 제가 권투 푸로모터로 일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외국에 나가기 꽤 어려울 때이죠. 일본에 갈 때마다 일본인들의 그 말끝마다 하는 ‘스미마셍’ 과 몸에 배인 친절을 보고 감탄을 하였습니다. 이들과의 비즈니스에서 이 혼네와 다테마에를 구별할 줄 모르면 백 전 백패입니다. 많이도 당했죠. 그러나 그건 그저 속마음이니 겉치레니 하는 이중성보다는 오랫동안 몸에 배인 그들의 예절이며 에티켓이 아닌지요?
도반 동지 여러분!
우리 덕화만발 가족 중에 부산의 최상태 교수님이 계십니다. 우리 최교수님이「오랜만에 꽤 중요한 글이라 전달합니다. 상대의 심리를 아는 기법과 여유는 참 중요하네요. 경상도 남자에겐 더 합니다. 특히 저에게는 요.」라는 편지와 함께 ‘가족과의 대화’라는 글을 보내오셨습니다. 그 글을 보고 어느새 우리문화에도 혼네와 다테마에가 상륙한 것 같아 씁쓸하기는 하지만 우리도 혼네와 다테마에 같은 대화의 기술을 한 번 생각해 볼 때라고 여겨 간추려 보냅니다.
도반 동지 여러분!
【나는 여자 세 명과 산다. 확실히 여자들은 말이 많다. 잠시도 쉬지 않고 떠들어댄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존재일까? 방에서 일하고 있어도 수시로 나를 불러내 얘기를 하자고 하는 걸 봐서는 아직까지는 대화의 상대로 인정받는 것 같다. 하지만 여자들과 사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계속 긴장해야 한다. 조금만 방심해도 날카로운 피드백이 들어온다. 여자들과 대화하며 몇 가지 노하우를 배웠다.
콘텍스트를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자는 남자와 다르다. 여자들이 말하는 것을 곧이곧대로 들으면 곤란하다. 낭패를 겪을 수 있다. 드라이브를 하는데 아내가 묻는다. “자기, 커피 마시고 싶어?” 내 의견을 묻는다. 사실, 난 커피 생각이 없다. 이럴 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처음에는 솔직한 내 의견을 얘기했다. “아니, 난 별로 생각이 없는데” 근데 분위기가 서늘하다. 아내는 말이 없어졌다.
뭔가 잘못됐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내 의견을 물은 게 아니었다.
자신이 커피 마시고 싶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했을 뿐이다. 정답은 무얼까? 여러 가지가 있다. 되묻는 것이 안전하다. “당신은 어떤데?” 생각이 없어도 생각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도 방법이다. 적극적으로 마시자고 해도 된다. 대화는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느낌, 속내를 읽어야 한다. 여자들만 그런 건 아니다.
아는 사장님을 만나 얘기를 나누던 중 “코칭을 하신다면서요?”라고 지나가듯 묻는다. 왜 갑자기 뜬금없이 이런 질문을 할까? 뭔가 사정이 있는 거다. 난 즉시 답했다. “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 내 예상이 맞았다. 임원과의 사이에 문제가 있었고 코칭을 통해 해결하고 싶어 했다. 이런 게 콘텍스트다. 말이 아니고 그 안에 다른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거다. 특히 여성들과의 관계에서는 이게 중요하다.
나를 비롯한 남성들은 이게 떨어진다. 감이 없다. 글자 그대로 해석을 한다. 드라마를 볼 때 분위기 파악 못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같이 드라마를 봐도 여성들은 이해가 빠르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고, 어떤 관계이고, 나중에 어떤 결말이 날 거라는 걸 여자들은 귀신같이 안다. 매일 보는 나보다 가끔 보는 딸이 더 잘 안다. 이해가 안 된 나는 자주 질문을 한다. 그래서 드라마를 볼 때 나는 기피인물이다.
설교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설교는 대화가 아니다. 난 집에서 설교하지 않는다. 좋아하지도 않고, 하고 싶지도 않다. 씨가 먹히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애들이 내게 설교를 한다. 단점이 많기 때문이다. 설교는 대화가 아니라 대화의 장애물이다. 많은 가정에서 대화가 사라진 이유 중 하나는 부모님의 설교 때문이다. “설교하고 있네!”란 말은 부정적이다. 쌍방향이 아닌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이다.
설교는 잘 난 사람이 못 난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하는 말이다. 설교는 대화가 아니다. 어떤 부모는 설교를 하고 대화를 했다고 착각한다. 상사 중에도 그런 상사들이 많다. 혼자 떠들고 사람들이 다 알아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설교를 하는 사람인가, 대화를 하는 사람인가? 당신이 입을 열면 사람들이 도망가는가, 주변으로 몰려드는가?
고집을 피우는 것도 좋지 않다. 똥고집은 대화의 장애물이다. 자기 의견이 강한 것도 좋지 않다. 난 집에서 내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 아니 의견이 없다. 고집을 부리지도 않는다. 텔레비전 프로를 갖고 다투지도 않는다. 스포츠 대신 드라마로 전향한지 오래다. 내 의견보다는 가족들 의견을 듣는다. 딸들이 자주 “아빠, 오늘 저녁 뭐 먹을까?” 라며 물어본다. 나는 언제나 되묻는다. “너희들은 어떤데?” 그들은 뭔가 먹고 싶을 때 그런 질문을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대화는 단순히 얘기를 나누는 것 이상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반응을 보여야 한다. 상대는 내 반응을 보면서 얘기한다. 내가 이해하고 공감했다고 생각하면 활기를 띤다. 반대로 집중하지 않거나 딴소리를 하면 김이 샌다. 나 같은 아저씨들은 촉이 무뎌져서 상대가 적극 반응을 안 보여도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지만 우리 집 여자들은 다르다. 바로 날카로운 피드백이 들어온다. 표정이 왜 그러느냐, 왜 다른 곳을 보느냐, 알아들었느냐, 왜 웃지 않느냐… 그래서 관심 없는 분야의 얘기를 해도 집중해야 한다. 심지어 화장법에 관한 얘기를 할 때도 긴장해야 한다. 그들을 봐야 하고, 반응을 해야 한다. 적극 추임새도 넣어야 한다. 참, 사는 게 만만치 않다.】
도반 동지 여러분!
참 인생이 만만치 않죠? 오로지 진실만 얘기하며 살아온 우리가 어느새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요! 우리가 안 배워도 좋을 혼네와 다테마에를 수입해 사는 현실이 여간 서글픈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어찌합니까? 원만한 인간관계를 가지려 한다면 배워야 하는 대화의 기술인 것을요!
원기 98년(2013) 3월 26일 덕 산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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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한심성>은 중국 불교 거장들의 어록인 <벽암록>을 해설한 것입니다
화두의 세계를 공부 삼아, 더듬어 보면 좋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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