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깔스런 글에 제가 초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만
님이 보신 달은
초생달이 아닐 것입니다.
그믐깨로 가는 달입니다.
초생달은
보통 초저녁이면 벌써 서녘하늘에 걸려있습니다.
새벽녘에 볼 수 있는 달이 아니지요.
상현이 지나야 볼라나요...
하여
님이 보신 달은 그믐달인가 합니다.
--------------------- [원본 메세지] ---------------------
곤히 자다,누군가가 나를 환하게 바라보다 기척이나 한 것처럼
화들짝 깨었다.
두 눈을 번쩍 뜨고 정황을 살펴 보려고
낯선 공간인냥 두리번 거리다가,
창 밖 푸른 새벽 하늘에 하얗게 떠있는
초승달이 눈에 확 박혀왔다.
저것이 나를 깨운것인가.
항상 한 밤중에 높이 떠있어,
가끔 베란다에 나가서 고개를 맘껏 제겨서나 볼 수 있었던 달님인데,
오늘은 남쪽 하늘에 낮게 걸려서는
이렇게 가까이서 쿨쿨 정신없이 자고 있는 나를 보고 있었다니
반갑고도 고마워라.
무슨 평생 처음 달빛을 보는냥 멍하니 희안스레 그 빛을 바라기 하고 있었다.
1년 넘게 얕은 개운산 자락을 가리며 신축 공사로 괴괴하게 서 있는 아파트 철골 위로,
그 앞에 가로등 불빛 환하게 밝히고 우뚝 서있는 내부순환도로 위로,
가련하게 그래도 여기는 산자락이라며 빙산의 일각이라도 자신을 드러내리라 발악하는
아주 조금 보이는 개운산 자락 위로,
검푸른 도화지처럼 밑밑한 하늘을 배경으로,
그 손톱같은 초생달이 빛을 내는데.... 아하....
갑자기 마음이 급해서 서두르며 츄리닝을 찾아서 입고는 밖으로 나갔다.
보통때 같으면 해가 뜨기 전 감히 앞산에 오를 엄두를 내지도 못해,
방안에 콕 박혀 있다가 사위가 밝아지면 집을 나섰던 산책길이건만,
그 놈의 달빛에 홀려 오늘은 겁없이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달빛을 바라보며 오르는 길이라,
허허 저놈의 빛 봐라 하며 흐믓하게 별 생각없이 오르다가,
지리산 세석에서 달그림자를 벗삼에 산행하던 기억이며,
달맞이 꽃과 같이 달빛을 바라보며 지샜던 여름밤,
새하얀 눈길위에 동동 떠있던 달빛등
무수하게 타지에서 보았던 달들이 주렁주렁 떠오르더니
꿈길처럼 가뿐하게 내가 날고 있는건 아닌가 싶더라.
조금씩 하늘은 하얀색이 더 가미되면서
달빛은 서서히 사라지고 덩그러니 그 형체만을 유지해가는 초생달의 모습
이,
왜 그리 애잔하던지.
밤새 어두움을 비추느라 모든 힘이 소진되었을텐데 쉴수 있으니 좋은걸
까......
하늘에 닿아있는 오르막길 끝에는 이제 동트기 시작할 조짐으로
붉은 기운이 움터오기 시작했는데,
그 정상에 오르니, 그 기운은 벌써 하늘을 점령할 태세였다.
모든 만물에 서서히 색을 부여하기 시작하는 그 거대한 빛,
아차산 너머에서 움틀거릴 태양은 벌써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자락을 선명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런데 난 그 옆에 덩그마니 남아 있는 초생달이 가슴에 아렸다.
그렇구나. 너는 이제 들어가야할 시간이구나. 너의 시간은 끝났다....
가야할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이 이 얼마나 처량한가.
수 백번은 반복되고 담금질되어야 자신이 가야하는 것을 인정하는 아름다
움에
이를수 있겠구나. 쉬운 일이 아니야.....
그러나, 달빛은 아름답게 해에게 자신의 자리를 넘겨주고,
미련도 아쉬움도 없이 소리조차 없이 사라졌다.
나만이 아직도 밝은 대낮의 태양 앞에서도
밤새 외로이 어둠의 친구였던 달빛의 빈 자리를 응시하며
아무 소용도 없는 쓰라림을 스스로 도려내지 못하고 서있을 뿐이다.
카페 게시글
茶독락 ⚊ 독락차도
Re:초생달이 아닌가 합니다.
산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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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3.1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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