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강한 전염병 몰려올 것···이대로는 또 당한다”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의 번역자 강병철씨. 본인 제공
2020.03.07. 경향신문. 반기웅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면에서 주목받는 책이 있다. 2017년 발간된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데이비드 콰먼 지음·강병철 옮김·꿈꿀자유)다.
책의 번역자 강병철씨(53)는 의사다. 의대를 졸업한 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 일하다 2008년 임상을 떠났다.
지금은 캐나다 밴쿠버에서 번역·출판일을 한다. 그는 왜 의사를 그만두고 책을 만들까.
강씨는 ‘사회에 문제가 생기면 출판이 답을 내놓아야 한다’고 믿는다. 99%가 책을 읽지 않아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1%를 위한 책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2012년 메르스 첫 발병 이후 그는 전염병에 대한 진실을 찾아 세상에 알리기로 마음먹었다. 해외 전문서적을 번역하고 논문을 찾아 읽으면서 전염병 분야를 파고들었다.
그는 무엇을 깨달았을까.
코로나19에서 우리는 어떤 메시지를 읽어야 할까.
인터뷰는 지난 3월 3일부터 이틀간 e메일과 전화로 이뤄졌다.
-코로나19가 이 정도로 확산될 것이라고 예견했나.
“아니다. 초기에는 사스나 메르스 정도에서 그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 규모의 전염병이 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물론 머지않아 코로나19는 물러갈 것이다. 잠잠해질 것이고, 치료제와 백신도 나올 것이다.
문제는 코로나19가 아니다. 더 센 전염병이 올 것이다. 지금 상태로는 또 당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혼란을 겪고, 우리는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다.”
-신종 감염병에 대한 대응 체계는 발전하고 있다는데 왜 또 당할 수밖에 없나.
“질병과학 분야는 진일보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더 정교한 대응 전략이 나오고 있다.
사스 때는 새로운 병원체가 등장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데 수개월이 걸렸다. 바이러스를 분류하고 보유숙주를 찾아내는 데만 몇 년이 걸렸다.
그런데 코로나19 때는 어땠나. 불과 몇 개월 만에 그 과정을 끝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먼저 신종 전염병의 특성부터 보자. 코로나19는 동물의 병원체가 인간에게 옮겨져 발생하는 인수공통감염병이다.
1940년부터 2004년 사이에 발생한 300건 이상의 전염병 유행 ‘사건’ 가운데 60%가 인수공통감염병이다. 그중에 약 12%가 신종 전염병인데, 또 그중에 75%가 인수공통감염병이다.
그러니까 인수공통감염병이야말로 새로운 전염병, 특히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신종 전염병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열쇠인 셈이다.
신종 인수공통감염병의 72%는 가축이 아니라 야생동물에서 유래한다. 야생동물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생태계의 영역에 속한다.
그런데 지금 인간은 그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을 파괴하고 있다.
생태계 파괴 행위를 근절하지 않는 이상 전염병은 또 나타날 것이다.”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인류는 빠른 속도로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도시를 개발하고 인프라 건설, 벌목과 화전 작업을 광범위하게 벌인다.
동물 서식지가 줄면 동물들은 먹이를 구할 길이 없다. 목숨을 걸고 인간과 접촉해 먹이를 찾아야 한다.
기후변화는 이를 부채질한다.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높아지고, 숲이 사막화되면서 더 많은 야생동물이 인간과 가까운 곳으로 오고 있다. 인간과 접촉이 늘어나면 동물 병원체가 인간에게 넘어올 기회가 많아진다. 동물과 병원체는 오랜 진화 과정에서 서로 적응했기 때문에 큰 문제 없이 함께 살 수 있다.
하지만 병원체가 인간의 몸에 넘어오면 사정이 달라진다. 대부분 인간의 면역계가 격렬한 면역반응을 일으켜 병원체를 막아내지만, 그 과정에서 병원체는 아주 빠른 속도로 증식하면서 수많은 돌연변이가 일어난다. 그러다 인간의 몸에 침범하는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 이때 치사율이 높은 변종이 나타나면 무시무시한 전염병이 시작되는 것이다.”
-생태계 파괴가 전염병과 같은 폐해를 부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이를테면 기후변화를 보자. 기후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피부로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이 인간의 활동 때문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는 수많은 시간과 비용과 과학자들의 노력이 필요했다.
자본을 쥔 사람들은 언제까지고 편한 방법으로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귀를 막고 눈을 가리려고 한다. 그 속셈을 꿰뚫어보고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한다. 생태계 파괴와 기후변화를 막아야 한다.”
-감염병은 취약계층에게 더 치명적이라는 사실이 코로나19 국면에서 다시 드러났다.
“그렇다. 이번 코로나19 유행 중에도 폐쇄병동에 입원 중인 정신장애인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가난과 장애가 모든 질병의 위험인자라는 사실은 이제 하나의 상식이다.
보통 면역이라고 하면 개인의 신체적 기능을 떠올리는데 면역을 ‘역병을 물리치는 힘’이라고 확대 정의해보자.
그러면 면역력 강화에 대한 범위도 넓어진다.
백신 기피하고 보신을 위해 야생동물을 섭취하는 행위 등 비과학적 행동을 몰아내는 것과 인권.감수성을 키워 장애인이나 사회적 약자가 불편과 차별을 겪지 않도록 하는 것, 정보 격차 해소를 통해 누구나 양질의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 모두가 면역을 키우는 일이다.
율라 비스가 지적했듯 ‘면역은 우리가 함께 가꾸는 정원’이다.”
-국내 공공의료 인프라 부족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우리나라 보건의료 공공성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공공의료를 확충한다면 그 전에 명심할 것이 있다. 방만하지 않게 능률적으로 경영해 세금을 낭비하지 않는 동시에 이윤창출보다 공공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점이다. 언뜻 모순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예컨대 신종 전염병에 경각심을 갖고 대비하는 것은 옳은 방향이다. 하지만 별도의 기관을 마련하는 것보다 민간 기관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일각에서 공공 의대를 설립해서 공공의료 인력을 확충하자는 의견도 나오는 모양인데 좋은 생각이 아니다.
누구 말마따나 우리 의료는 고쳐 쓸 대상이지 버리거나 대체해야 할 대상은 아니다.
정부가 의료 분야에 투자할 때 과학과 의학적 근거를 원칙으로 예산을 책정해야 한다.
서로 신뢰하는 사회는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다.”
-코로나19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
“지금의 불행은 결국 우리가 자초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무엇이 궁극적인 가치인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삶의 모든 우선순위를 바꾸어야 한다. 성장·발전·효율·속도에 중독된 상태에서 깨어나 유한하고 아름다운 이 행성에서 뭇 생명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그런 근본적인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그때가 정말 인류의 종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