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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캄의 면도날 : 에피사이클 운동과 타원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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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캄의 면도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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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란 무엇이냐? “과학이란 알 수 없는 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인간이 선택한 가장 간단하고 논리적인 방법이다” 그리고 그 방법론으로 “오캄의 면도날”을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가 오캄의 면도날에 대하여 처음 접한 것은 외계 문명과의 아름다운 조우를 담은 영화 “컨택트”를 보고 나서 부터이다. 그 동안 과학을 공부하면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것들이 오캄의 면도날이란 단어를 듣고 나서부터 한결 재미있고 흥미로와 졌으며 같은 사물에 대해서도 전혀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나에게 있었던 작은 변화를 짧은 글로 통해 독자 제현과 공감하고자 한다. 오캄의 면도날을 간단히 정의 하면 같이 풀이된다. “어떤 사건의 해석이 두가지 이상 대립하고 있을 때 가장 간단하고 이해하기 빠른 것이 진실에 가깝다.” 이 법칙은 경우에 따라 매우 간결하고 강력하며 과학을 이해하기 쉽도록 바꾸어 준다. 그러나 어떤 현상은 너무 간단하게 이해하려고 한 나머지 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커다란 함정을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간단한 법칙은 인류역사와 과학을 지금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장본인임에는 변함이 없다. 물론 이 범주 안에 천문학도 예외는 아니다. 따라서 필자는 우리가 그 동안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던 천문학적 법칙과 수많은 물리 법칙에 대하여 오캄의 면도날적 관점으로 다시 한번 짚어봄으로써 인류역사를 통해서 과학은 어떻게 발전해왔고 진행되어 나갈 것인가를 재미있게 이야기 하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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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사이클과 타원궤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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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태양계 행성의 공전 궤도가 타원궤도라는 것은
일반 상식이다. 그러나 사실 이 사실을 안 것은 불과 394년전(A.D.1605)의 일이다. 그러면 그전에는 태양계의 궤도가 어떤 모습이라고 당시의 과학자들은 생각했을까? 그리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태양계의 행성궤도가 타원이라고 아무 의심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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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사이클 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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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천문학의 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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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사이클 운동의 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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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적 사고를 통하여 자연철학을 연구했던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와는 달리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 알렉산더 대왕이 건설한 알렉산드리아의 왕립학교 무세이온은 관찰과 실험을
통한 실용적인 학풍이 강한 곳이었다. 그리고 이 학교에는 천문학자들을 위한 관측장비로
두개의 청동 고리로 만든 고대의 천구의인 아르미라가 있었다. 아르미라는 360도의 눈금이 새겨져 있었으며, 기둥위에 수직으로 세운 후, 자오선에 맞추어 관측할 수 있도록 설계된 천문관측 장비이며, 천구의 모습을 축소시켜 옮기는데 꼭 필요한 장비였다. 그리고
그 이외에도 무세이온의 천문대에는 사분환과 아스토롤라븀이라는 천문관측 장비가 있었으며 이것을 통해서 별의위치를 비교적 정확히 잴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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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세이온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는 이와같은 현상을 설명하고자 무척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리스타르쿠스설로 이런
현상을 처리하면 깔끔하게 해결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프톨레마이오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을 지지하는 대열에서
탈락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무세이온을
설립한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난하는 것과 마찬가지 였기 때문에 죽음을 각오해야만 하는 커다란 모험이었다. 그래서 프톨레마이오스는 지구를 그대로 두고 다른 천체들에게 엉터리 역할을
맡겼다. 달에는 지구의 둘레가 아니라 존재하지도 않는 하나의 점을 완주하는 원형궤도를 그려넣었다. 물론 이 달의 원궤도 중심은 지구가 아니었다. 그리고 5행성을 위해서는 좀더 복잡한 원궤도를 첨가했다. 그리고 사고의 사고를 거듭한 후, 프톨레마이오스는 달, 태양, 별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으며, 5행성은 지구를 중심으로
한 대원 이외에 대원 궤도의 한점을 중심으로 하는 작은 원을 덧붙여서 설명하는 항성
운항표를 만들었다. 완성된 운항표에 사용된 원의 개수는 자그마치 81개 였고, 이것을 통해서 프톨레마이오스는 태양계 5행성의 모든 관측적 사실을 설명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에피사이클 운동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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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사이클 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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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톨레마이오스는 그의 저서 "알마게스트"에서 에피사이클 운동을 설명하고 있으며, 태양계를 순수한 기하학적인 표현으로 관측사실을 설명하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에피사이클 운동은 태양계 행성의 운동을 비교적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에피사이클 운동은 그 당시 행성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이 설명해야만 하는 다음과 같은 골치거리를 어느정도 해소해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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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왜 행성은 운동속도가 일정하지 않고
빨라졌다 느려졌다 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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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왜 행성은 공전하다가 멈추기도 하고, 역행하기도 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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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원 궤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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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타르쿠스의 태양 중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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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원궤도의 실체는 엄밀히 말하면 태양 중심설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독자들은 인류 역사상 지동설을 최초로 주장한 사람이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라고 알구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1800년 전에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타르쿠스에 의해서 최초로 제창되었다. 아리스타르쿠스는 스트라톤 밑에서 물리 철학을 공부하였으며, "태양과 달의 크기와 거리"라는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다는 독특한 가설을 세웠었다. 그러나 종교적 관점에서 성서에 위배된다는 이유 때문에 아리스타르쿠스의 주장은 훗날 코페르니쿠스가 꺼낼 때까지 어둠 속에 묻혀 버리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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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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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르니쿠스의 직업은 천문학자, 의사, 성직자, 그리고 법학박사였다. 그 중에서 천문학자로서의 코페르티쿠스는 날마다 그의 개인 천문대에서 화성 관측에 심취해 있었다. 그런데 화성의 위치가 선배 천문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행성운행표와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순수한 마음에서 행성의 운동에 관한 다른 견해가 없는지 조사해 보기 시작하였다. 이 때 키게로가 쓴 역사책을 통해서 지구가 움직인다고 주장한 고대인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이름은 아리스타르쿠스와 마르티아누스 카펠라였다. 아리스타르쿠스는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1년에 한번 회전한다고 주장하였고, 마르티아누스 카펠라는 금성과 수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 중에서 아리스타르쿠스의 이론은 코페르니쿠스의 심장을 강타하였으며, 여기에 마르티아누스 카펠라의 주장을 접목시켜 태양을 중심으로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이 원궤도 운동을 하는 지동설을 주장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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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직자이기 했던 코페르티쿠스는 자신의 이론을 당장 발표하지 않았다. 대신에 지구가 정지한 것이 아니라 태양이 정지해 있다는 내용의 비망록을 남겼다. 이 비망록은 기존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을 뒤집어 엎은 것은 물론, 지구가 태양을 1년에 한번 공전한다든가, 하늘이 매일 한번씩 회전을 한다든가, 태양이 1년을 기준으로 황도상을 여행한다든가 하는 기본적인 지동설 이론이 실감나고 흥미진진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다만 종교적 박해를 두려워한 나머지 이와 같은 내용을 다룬 정식책은 그가 사망하기 바로 직전에 나왔으며, 당시 교황 클레멘트 7세에게 가장 먼저 우송하였다. 이것은 사후에도 미칠 종교적 박해를 염려하여 우주의 혁명이 담긴 자신의 저서가 레오10세에 의해서 개정된 역법이 정확하지 않은 것을 저서로 보완할 수 있으므로, 제발 박해하지 말아달라는 완곡한 부탁의 의미였다. 코페르니쿠스는 자시의 사상을 담은 저서를 출판하는데 36년을 기다렸다. 그리고 출판 후에도 교황에게 먼저 보내 내용보다는 실용성을 주장하여 박해를 피했다. 한마디로 진정한 우주 혁명가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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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코브라헤의 관측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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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육안 관측가 티코브라헤는 1572년 11월 11일 카시오페이아자리에서 이제까지 본적이 없던 새로운 별을 발견하게 된다. 이 별은
가장 밝을 때는 화성만큼 밝았다가 1573년에는 5등급까지 떨어지고, 1574년에는 완전히
소멸해 버렸다. 물론 이 때에도 티코는 이 별을 볼 수 있었다. 말 그대로 티코의 눈에만
비친 새로운 별이었다. 그러나 그의 발견은
'별에는 변화가 존재할 수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을 뒤집어 엎는 것이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아리스토 텔레스의 신봉자였던
티코는 이 새로운 별의 관측 결과만은 "초신성"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물론 그 책에는 혜성과 점성술에 대한 내용도 일부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신성의 발견을 계기로 티코는 덴마크 국왕 프레드리히 2세로부터 흐벤섬에 "우라니엔부르크(하늘의 도시)"라는 천문대 건설을 지원 받아 본격적인 관측사업에 착수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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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 케플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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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케플러는 먼저 코페르니쿠스의 열렬한 신봉자였다. 그는 수학자로써 코페르니쿠스의 행성궤도 사이에 존재하는 수학적인 관계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뉴튼에 의한 중력 법칙이 나오지 않은 시대이기 때문에 다분히
기하학에 의존하여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역시 '행성의 궤도는 완전한 원궤도'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관측적 사실과 정확하게 일치하지도 않았으며, 기하학적인 관계를 찾아내는 것은 더욱더 어려웠다. 그래서 케플러는 5개의 행성이 다섯 행성의 궤도로 이루어진 구 사이에
다섯 종류의 정다면체를 꼭 맞추어 넣을 수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섯개의
정다면체가 그 때까지 알려진 행성들의 궤도와 거의 일치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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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플러는 지구 궤도에 외접하는 정12면체를 그리고 난 뒤 여기에 외접하는 화성의 궤도를 화성의 구면으로 외접하여 정4면체를 묘사해서 여기에 외접하는 목성의 궤도를 그리고, 모것으이 구면에 내접해서 정 8면체를 그리고, 거기에 내접하는 수성의 궤도를 디자인 했다. 케플러는 이것을 유도해 내느데 19번 실패하고 20번째에 비로서 성공하였다. 그러나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이 이론의 증명을 위해 사용된 관측자료도 그리 정확한 것이 못되었다. 그러나 위 저서를 당시 최고의 관측천문가인 티코브라헤와 갈릴레오 갈릴레이에게 보냈고, 이것을 계기로 케플러는 티코를 만나게 된다. 1599년 케플러는 티코의 초청을 받고, 곧바로 화성 연구에 찾수하기 시작하였고, 티코가 사망하기 한달전인 1691년 9월 부터 지구 운동 연구에 착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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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코 사후에 케플러는 루돌프 국왕에 의해서 티코의 관측자료의 정식 인수자가 되었으며,
티코가 16년 동한 정밀 관측한 화성 데이터를 기본으로 행성의 궤도 연구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코페르티무스의 열렬한 신봉자였던 케플러는 화성의 관측데이터를 원궤도에 맞추려고 오랜 시간을 소모하였다. 거의 성공했다고 생각했을 때, 그 결과값은 관측치와 약 8분(1분=1/60도)의 차이가 발생하였다. 케플러는 티코의 관측 결과가 이정도의 오차가 발생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따라서 케플러는 화성의 궤도가 원궤도라는 것을 버려야 했다. 그리고 4년의 끈질긴 수학 및 기하학과의 싸움 끝에 1605년 2월에 드디어 화성의 궤도가 타원궤도라는 것을 밝혀 내고야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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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원 궤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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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원은 수학적으로 두 초점으로부터의 거리의
합이 일정한 점들의 좌치이다. 고등학교 수학책에 보면 자취의 방정식이라는 이름으로 표현되어 있다. 즉, 타원은 장반경과 단반경의
합이 일정하기 때문에 화성의 궤도가 타원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화성까지의 거리를
먼저 구해야 했다 과연 케플러는 중력 법칙도
발표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화성까지 거리를 구했을까? 그것이 바로 케플러가 4년이라는 시가을 수학계산에만 매달리게 한 원인이기도 하다. 케플러는 화성의 1항성 주기의
처음과 끝을 이용하여 화성까지의 거리를 구했으며, 이 내용을 참조해보고자 하는 독자는
"천문학 및 천체물리학 서문"이라는 책을 참조하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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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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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결코 정지해 있지 않으며 역전의 드라마를 릴레이하며 지금 이 순간도 달려나가고
있다. 2300여년전 한 천제 과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수로 인하여 인류는 최소한 1500년간 우주의 신비를 풀 수 없었고, 행성궤도를
에피사이클 운동과 타원운동이라는 두가지 이론이 심하게 대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종교적 박해를 당한 과학자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브루노가 그랬고,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그랬다. 그들은 타원 운동의 근간을 이루는 지동설을 지지하다가 박해를 받기 해다. 그러나
수백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지구가 움직인다는 것에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는다. 어떤 이유 때문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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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캄의 면도날로 돌아가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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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너머 총수 권봉기 |
-http://haneul.c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