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기자의 시각
[기자의 시각] 황당한 고도 제한 50년
조선일보
최종석 기자
입력 2023.07.04. 03:00
https://www.chosun.com/opinion/journalist_view/2023/07/04/YP27XHOE45EN5BTIUGANXO7C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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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서울시가 지난달 30일 서울 시내 곳곳의 ‘고도(高度) 제한’을 대폭 완화한다고 발표했다. 그중 제일 눈에 띈 곳은 국회의사당 주변이다. 여의도 서쪽, 서(西)여의도라고 부르는 곳이다.
여기는 고도 제한 때문에 41m 또는 51m 넘는 건물을 올릴 수 없게 돼 있다. ‘한국의 맨해튼’을 목표로 여의도를 만들었지만 이런 규제 때문에 10~13층 건물밖에 없다. 반면 여의도 동쪽은 333m짜리 ‘파크원’도 있고 285m 높이의 IFC(국제금융센터)도 있다. 국회의사당을 지키려다 보니 반쪽짜리 맨해튼을 만든 셈이다.
41m, 51m란 숫자가 어디서 나왔는지 봤더니 국회의사당의 돔 꼭대기 높이가 60m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1975년 국회의사당을 지으면서 국회 요청으로 생긴 규제다. 보안상 다른 건물이 국회의사당을 내려다봐선 안 된다는 취지다. 국가의 상징인 국회의사당을 가리면 안 된다는 이유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라면 국회의사당 앞쪽 라인만 규제하면 되는데 정부는 여의도 서쪽 전체를 41m, 51m로 묶었다. 1㎞ 떨어진 여의도공원 쪽까지 고층 건물을 지을 수 없게 했다. 일률적인 통 규제를 한 것이다. 국회의사당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던 초원아파트는 이 규제 때문에 지은 지 50년이 넘었지만 재건축도 못 한다.
서초동 법원 단지는 이번에 고도 제한을 아예 해제하기로 했다. 법원과 검찰청 앞에 왜 고도 제한이 필요한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심지어 바로 길 건너 있는 대법원 주변은 높이 규제가 없었다. 기준이 뭔지 알 수가 없다.
고도 제한이 필요한 곳이 있을 수 있다. 세계적으로도 고도 제한을 활용하는 도시가 많다. 하지만 규제에는 균형이 필요하다. 필요한 만큼 메스(외과용 칼)를 대듯 쓰는 게 맞는다. 규제에는 필연적으로 시민의 희생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번에 고도 제한이 완화되는 북한산, 남산 주변 지역 주민들은 30~50년간 자기 집도 새로 못 짓고 슬럼화된 동네에 살아야 했다. 북한산 인근 강북구는 시가지의 4분의 1이 고도 지구에 묶여 있다. 그러니 재정 자립도가 서울 25구 중 꼴찌다.
경관을 가린다는 이유로 수십 년간 규제에 묶였던 북한산, 남산 주변과 달리 강남과 서초, 송파, 용산 등 한강 변은 30층 넘는 고급 아파트들이 쭉쭉 올라갔다. 한강의 경관이 북한산이나 남산만큼 귀하지 않다는 말인가. 시민의 희생이 따르는 규제는 그만큼 원칙과 기준이 분명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지역 간 격차와 불균형을 부를 수밖에 없다.
서울에는 문화재 주변에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도록 하는 문화재 규제도 많다. 이는 문화재가 집중한 구도심 강북과 강남의 격차를 키웠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란 말이 떠오르지만 지금부터라도 하나씩 균형을 잡아가야 할 것이다.
최종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