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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국민동원'론과 '자발적매춘부'론의 공존
제국의 위안부에는 얼핏보면 일본정부 혹은 군의 명령에 의해 위안부들이 징집되었다, 즉 위안부의 연행에 일본군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듯이 읽히는 부분이 있다. 가령 다음과 같은 서술이 그렇다
국가-대일본제국이 군인을 위해동원한 위안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여기에 드러나있다(제국의 위안부 61P)
... 군대화된 위안부의 모습이 전쟁으로 국민총동원이 이루어진 또 하나의 모습인 이상, 업자도 그 구조하에서 움직인 것도 확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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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라면 말려들지 않아도 되었던 타민족 여성- 조선인 위안부들이 자발과 타의에 의한 동원을 당하고 일본군의 사기를 높이는 역할을 강요당하며 고통의 나날을 보낸것에 대해 일본국민은 어떠한 말로라도 응답해야 하지 않을까
이 기술들을 일독하면 독자는 박유하가 조선인 위안부를 공권력에 의해 징집된 존재로 이해하고 있는 듯이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이다. 제국의 위안부를 독해할때에는 박유하가 '동원'을 특수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면 박유하는 '가라유키상'에 대해서도 동원되었다고 표현한다(29P). '동원'을 넓게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제국의 위안부 제1부 제1장의 결론은 조선인 위안부의 모집에서 '강제연행'은 예외적이며 그것은 '국민동원'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거에서 말하는 '동원', '국민총동원'은 공권력에 의한 '위안부'의 징집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박유하는 공권력을 통한 연행을 예외적인 것으로 기각시킨다. 그런 다음 아시아태평양전쟁 시기의 "300만명을 넘는 방대한 인원의 군대가 아시아 전역에 주둔하면서 전쟁을 수행했기 때문에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상황에 대처하도록 동원된 것이 위안부다.. 그것은 느슨한 국민동원이라고 할 수 있을것"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이 "느슨한 국민동원"이라는 개념이다. 박유하가 제국의 위안부에서 '동원'의 의미를 전혀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 찾기는 어렵다. 박유하가 말하는 "느슨한 국민동원"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부정론자의 '자발적 매춘부'설에 대한 이 책의 입장이다.
위안부문제에 관한 논쟁에서 자주 논의되는 1944년 매일신보와 경성일보의 위안부 모집광고에 대해 박유하는 "위안부라는 존재가 공공연히 모집해도 되는 '공적' 존재였음을 나타내는"것으로 "신문에서 공모할 수 있었다는 것은 '위안소라는 장소가 결코 지금처럼 인식되지는 않았던 것을 탄낸다"고 해석한다. 주1)
이 모집광고에 대해서는 하타이쿠히코는 모집광고에 응한 경우가 많았을 가능성이 있다며 본인에 의사에 반해서 끌려갔다는 주장에 대한 반증으로 사용했다. 반면, 요시미 요시아키교수는 업자대상으로한 광고라고 보는쪽으로 반론을 했고, 김부자도 문맹률 때문에 신문을 보고 모집에 응하는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라고 보았다.
모집광고의 해석에 대해 박유하가 사실상 하타설을 채용하고 있음은 다음의 기술에서 알 수 있다.
그러나 설령 '자발적'으로 간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은 표면적인 자발성일 수밖에 없다. 그녀들에게 '추업'이라 불리는 일을 선택하게 만든 것은 그녀들의 의지와는 무관한 사회구조였다. 그녀들은 그저 가난하거나 식민지에서 태어났거나 가부장제가 강한 사회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자립 가능한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만큼의 교육(문화자본)을 받을 기회를 얻을 수 없었다.(159P)
박유하는 "추업에 그녀들이 자발적으로 향했다면 무엇이 그렇게 시켰는지를 생각해야 한다"(158P)면서 '추업'이라는 개념을 무비판적으로 사용한다. 나아가 그것을 '선택'한 사실을 자명한 전제로 하여 주장을 전개한다. 이 서술에는 앞에서 언급한 박유하의 책임 부정론 비판의 독특한 레토릭이 잘 드러나 있다. 박유하는 부정론자들의 주장을 역사적 사실의 검증을 통해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부정론자(하타)의 주장, 즉 '자발적'인 '추업'의 '선택'을 사실이라고 인정한 후 그 평가를 전환시키려 하는 것이다. 박유하는 업자에 의한 사기를 중시했을 터임에도 불구하고 간단히 '자발적'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만다. 이러한 부정론자의 씨름판에 말려든 '반론'은 제국의 위안부의 부정론 비판의 특징이다.
이상에서 보면 '동원'이라는 개념을 자발적으로 매춘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따라서 '국민동원'이면서 동시에 '자발적'이었다고 모순 없이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정영환 저)-
『제국의 위안부』와 기억의 정치학 -이헌미 -
주1) 실제로는 위안부관련 문서도 소각은 말할것도 없고, 경찰이 단속과정에서 군이 위안부같은걸 모집할리가 없다고 생각하다가 조사결과 진짜여서 황당해했고, 성매매목적 해외이송에 대한 국제적으로 부정적인 여론때문에 조계지의 성매매종사자를 창기가 아닌 작부라 부르며 공창의 역할을 떠맡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은폐하려 들었고 나중에 위안부를 부르는 명칭이 작부 등 여러가지가 난립하며 통일성이 없는 모습을 나타난다는게 학계의 통설입니다
한편, 우에노는,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2014년)에서 그려진 '위안부' 상에서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 즉 자발적인 '위안부 ' 를 발견했다. 우에노가 한국 여성운 동 측에 소거되었다고 주장하는 「불순한 피해자」상을 전면적으로 제시한 것이 『제국의 위안부 』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증언집 』 1 〜 5 권의 증언 을 자기 맘대로 문맥을 무시하게 잘라내
⑴ 조선인 ’위안부’은 "매춘 " 와 같은 구조에 있는 자발성을 가진 존재라고 강조하고
⑵ 징집 당시 10 대 소녀가 많았다는 조선인 ’위안부 ’ 의 특징 을 부정, 한국여성운동의 창작물이라 하면서, 동시에 일본인 ’위안부 ’ 는 성인인 경우 가 많고, "애국심 " 을 가졌다는 특징을 가졌음에도 이러한 특징들을 무시하고 한없이접근시키고 (역자: 비슷하다 여기고) 그리고,
⑶ 조선인 ’위안부 ’ 의 대일협력, 병사들 과의 ‘동지적 관계 ’ 를 강조함으로써
⑷ ’위안부’ 의 실태를 "성노예 "라는 기존 연구를 부정, 새로운 조선인 ’위안부 ’상을 만들어 냈다.
우에노가 말한 '위안부 '에서의 '대일 협력' 언설, 박유하가 말하는 ‘동지적 관계’는 성폭력 피해에서의 '합의' 언설이라 할 수 있 다 . 둘은 다 일본군과 일본정부의 책임을 푸는 언설이다 . 우에노를 비롯한 일본 지식인 미디어는 『제국의 위안부』 가 제시한 위의 특징 을 가진, 즉, ‘성노예 ’ 가 아닌 조선인 ’위안부 ’상을 모두 "다양성 "으로 찬양했다. 그 러나 치명적인 것은 이 책은 역사수정주의자 정도로 허술하게 쓰여져 신뢰성이 떨어진다 (김부자, 이타가키 류타 2018; 정영환, 2016 등).
결국 ‘위안부’로 끌려간 조선인 ‘소녀’는 ‘소수이며 예외적’이라는 박유하 주장의 근거는 그 자신이 의거한 증언집과 미군 자료에서도 되레 부정된 것이다. 이는 명백한 오독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조선 각지에서 10대 소녀를 비롯한 젊은 소녀들이 사기와 협박, 유괴, 인신매매 등의 방법으로 일본군 ‘위안부’가 된 것은, 이미 실증된 사실이다
-피해증언과 역사수정주의적 페미니즘 : 구술사를 미래로 전하기 위하여 김부자-
역사수정정주의자들의 주장:
1. 위안소에서의 강제성은 무시하고 연행과정의 강제성만 강조하고
2. 총칼로 끌고가는 협의의 연행의 강제성을 노예사냥식 연행으로 표현해서 이것만 범죄적강제성으로 보고
3. 그런걸 지시한 공문서가 없으니 책임을 부정
학계의 반론
1. 위안소의 강제성이 성노예임
2. 취업사기도 강제에 해당하며, 협의의 강제도 증언이 매우 많은데 우파는 이걸 처음부터 부정함
3. 요시미교수가 지적하다시피 공문서에 저런 위법한 명령을 남길리가 없음
박유하의 문제점
우파가 내세우는 사실관계를 받아들인채로 논의를 전개함
1. 역시 위안소의 강제성에 있어서 국가의 책임을 부정,
2. 요시미교수가 노예사냥이 있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주장하고, 하타등 우익의 김학순주장을 그대로 인용해와서 강제연행 부정론을 펼치나, 협의의 강제연행만 문제가 되는것도 아니고 요시미는 정작 하타의 김학순 할머니 증언에 대한 왜곡을 비판하였음
3. 박유하 역시 공문서 중심주의에 집중하는 우익들의 논의를 그대로 따라감
4. 박유하의 경우에는 매춘부차별이라는 명목으로 자발성을 강조하나 실질적으로는 연행과정에서의 사기등을 부정하고 자발성이 존재한 사례가 많았다고 왜곡을 하기 위해서 사용
책의 논조를 가만보면 위안부에 대한 시선이 가난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가게 되었다는 인식에 기반을 두고있고
이러한 모습으로 위안부피해자상을 넷상의 탈민족주의자들의 입맛에 맞게 전복시키려 들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나온 램지어 논문에 대한 평론을 보면 자발적 매춘부론 관련해서 이젠 이론의 여지가 없이 확인사살이 이루어졌다고 봐야합니다
박유하의 책에 대한 서평을 가만보면 자발적매춘부같은 이상한 주장을 한적이 없는데 책 읽어보지도 않은 사람이 이상한 소리한다는 괴이한 평이 많더군요
위에 서적에서 언급하다시피 박유하의 책자체가 역사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의 사실관계를 논박하는 대신 그걸 인정하고 해석만 교묘하게 전개하는 식이다보니,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비판을 민족주의자들의 비이성적인 반일정서에 기반해있다는 식으로 인신공격을 하면서 옹호하는게 생각보다 쉬운편이기도하고요
나중에 램지어의 논문에 대해서도 사실관계는 틀리지 않았을수도 있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군의 관여를 완전히 부정했으면 그건 잘못된거라고 변명하는걸보고 박유하가 오해하고 이상한 소리했다는식으로 쉴드치는 주장도 많이 보이는데
박유하는 단 한번도 자발적 매춘이라는 시선을 포기한적도 없고, 램지어 관련해서 군의 관여를 완전히 부정한건 잘못이라는 식으로 나중에 한 논평도 결국은 자발적 매춘이라는 시선을 포기한게 결코 아니라는것이 드러나는데 기레기가 짜집기나 농간을 부린게 결코 아니라는것도 알아야 할 부분입니다
첫댓글 박유하..
각종 새로운 논리와 이론을 만들어 내는 군요.ㅋ
책도 좀 팔릴 듯요.
'반일종족주의'도 베스트셀러 등극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