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암울한 시기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1932년에 미국인의 약 4분의 1이 일자리를 잃었고 주식시장은 89퍼센트 폭락했습니다. 하지만 1930년대가 미국 역사상 가장 생산성이 높았고 기술적으로 발전한 기간이었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습니다. 주식이 휴지 조각이 되고 길거리에는 구직자가 넘쳐나던 1930년대에 어떤 일들이 있었기에 이 같은 눈부신 발전이 일어날 수가 있었을까요?
주지하다시피 미국 정부는 대공황을 타개하기 위해 '뉴딜정책'을 실시했고 공공사업청(Public Works Administration)의 주도하에 수많은 인프라 건설사업이 추진되었습니다. 인프라 건설에는 당연히 도로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도로 건설에 지출하는 비용이 1920년 GDP의 2퍼센트에서 1933년에는 6퍼센트로 대폭 증가했습니다. 1929년에 판매된 자동차가 2,900만 대나 되었지만 도로 건설이 자동차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930년대의 전국적인 도로망 구축에 힘입어 수송의 황금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1930년대에는 전기의 보급도 급증했는데 도시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던 농촌지역에서도 전기의 혜택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력망의 확충으로 가정에 세탁기, 진공청소기, 냉장고가 보급되고 여성의 가사 노동시간이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이에 따라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활발해졌고 이는 GDP의 증가와 생산성 증대로 이어졌습니다.
대공황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당시의 미국인들은 적은 돈을 보다 가치 있는 방식으로 사용해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수요에 부응하여 1930년에 최초의 슈퍼마켓이 문을 열었습니다. 과거에 고기는 정육점에서, 빵은 빵집에서, 채소는 농산물 판매점에서 각각 구입해야 했지만 슈퍼마켓의 등장으로 모든 물건을 한 장소에서 보다 저렴하게 구입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세탁기를 살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세탁기를 빌려주는 빨래방도 1930년대에 등장했습니다. 생산비를 절감해야만 했던 기업가들은 '헨리 포드의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공장에 도입했습니다. 일자리가 없다 보니 1930년대의 젊은이들은 좀 더 오래 학교에 머물게 되었고 그에 따라 고등학교 졸업률이 높아졌습니다.
이처럼 새로운 생산공정을 도입한 공장,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노동자, 살아남기 위한 경제주체들의 혁신적인 아이디어 등이 합쳐져서 1930년대는 그 어느 시대보다 높은 생산성을 보였던 것입니다.
혁신은 필요에 의한 간절함과 절박함이 있어야만 일어납니다. 1930년대의 암울했던 시기에 단지 살아남기 위해 분투했던 미국인들은 비극적 사건의 한가운데에서 이와 같은 긍정적 변화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목격되듯 위기와 비극 속에는 언제나 밝은 면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아무런 걱정도 고통도 스트레스도 없는 행복한 삶을 꿈꿉니다. 하지만 그런 삶에는 동기 부여도, 발전도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의미가 있다면 목적의식이 있기 때문일 것이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고통과 역경이 수반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우리가 누리는 편안함이 부모 세대의 고통에 기반하고 있듯이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현재의 고통은 자식 세대가 누릴 기회의 씨앗이 될 것입니다.
산업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사)지역산업입지연구원 원장 홍진기 드림
첫댓글 많은 지식을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