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북선은 속도 빨라 돌격대
방송에 사극으로 <이순신>이 방영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이순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마도 거북선일 것이다. 그만큼 거북선은 임
진왜란에서 수군 승리의 원동력으로 머릿속에 새겨져 있다.
거북선은 조선 초에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3대 왕인 태종 때 왜선
과 거북선이 싸우는 군사 훈련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초에도 거북선이 왜구의 배들과 싸우는데 이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거북선은 이순신의 주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약 1년 전인 1591년 2월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순신은 전란에 대비하여 함선의 제작에 힘을 기울였다. 거북선도 그 중
하나였다.
배 위에 나무를 깔아 거북등처럼 만들어 그 위에 군사가 겨우 통행을 할 수
있을 만큼 십자로 좁은 길을 내고, 나머지 부분에는 모두 칼이나 송곳 같은
것을 줄지어 꽂았다. 배의 앞쪽은 용의 머리처럼 만들어 입은 대포 구멍으
로 활용하고, 뒤에는 거북 꼬리 모양을 만들어 꼬리 밑에 총구멍을 설치하
였다. 배의 좌우에는 6개의 구멍을 만들어 병사들이 그 밑에 숨어서 총과
포를 쏠 수 있도록 하였다. 전투를 할 때면 거적이나 풀로 배 위를 덮어 송
곳과 칼날이 드러나지 않도록 해서 적이 뛰어오르면 찔리게 하였으며, 적선
이 포위해도 사방으로 일제히 총을 쏠 수 있었다.

사실, 거북선은 조선의 주력 배는 아니었다.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의 숫자
는 3척에 지나지 않았다. 거북선을 철로 만들었는지, 위를 덮은 철갑선 또
는 철선이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당시의 전투 상황이나, 전투에 패한 일본군의 기록, 조선 후기에 전해지는 이야기에서 그렇게 짐작할 뿐이다.
조선 수군의 주력 배는 판옥선이었다. 판옥선은 일본 배에 비해 크기도 크
고 선체도 높았다. 그래서 일본 배에 비해 더 많은 병력과 무기를 실을 수
있었다. 이에 반해 일본 배는 병력을 수송하는 데는 편리하였지만, 해상에
서 전투를 할 수 있는 능력은 뒤떨어졌다.
다만 판옥선은 속도가 느린 것이 단점이었다. 해전에서 적 함대의 진영을 교란시키기 위해서는 속도가 빠른 배가 필요하였으며, 이 용도로 사용된 것이 거북선이었다. 조선 수군은 먼저 거북선을 돌진시켜 적선의 대열을 흐트러뜨리고, 주력선인 판옥선으로 전면적인 공격을 하였다. 거북선은 일종의 돌격선이었던 셈이다.
이런 전략은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한산도 대첩을 비롯한 여러 차례 전투에서 거북선은 승리를 하는데 커다란 공을 세웠다.

이순신이 죽고 임진왜란이 끝나고 난 다음, 거북선의 구체적 모습이나 제작
방식에 대해서는 전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도 거북선에 대한 관
심은 계속되었으며, 실제로 사용되었다. 예컨대 청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당
한 병자호란 후에는, 청과 국교를 끊을 경우를 대비한 군사적 대책으로 거
북선의 주조가 논의되었다. 이후에도 기존의 거북선을 개량하거나 숫자를
늘리자는 이야기도 종종 나왔으며, 이순신이 만든 거북선이 그 모델로 거론
되었다.
※ 그외 거북선의 흥미로운 점과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점이많다.
거북선의 귀두가 들어 갔다 나갔다 하였고 그 밑에 보면 도꺠비 모양이 있을 것이다.위쪽에 있는 세번째 그림은 내가 보기엔 확실히 그냥 문양이나 보기 좋은식으로 받은것 같다..
그러나 원래는 그렇지 않다. 도깨비 모양은 적의 심리나 공포를 주기위해 험악함과 공포감의 주기위해 도깨비 모양으로 하였고 적의 배가 가까이 접근시 도꺠비 머리가 앞으로 나와 적의 배를 부숴버리는 아주 중효한 역할의 하였다.
그리고 하나더 원래 임진왜란 전쟁시 거북선 귀배판에 철갑의 덮고 못의 박은건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그것이 다일까? 거기에다가 귀배판에 짚의 덮어 육박전에 강했던 일본군이 도선의 할려고 할떄 무찌를수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배 및 부분도 평평해서 우리나라 인근 해역에 알맞았고 특히 배가 회전의 할댸 선회능력이 좋았고 얇은 바다같은곳도 뾰족한 서양이나 다른 나라배와 달리 갈수 있었다.
그리고 왜란때 쓰이던 주력 함선 중소 판옥선이 주력 이였고 거북선이 실제로 쓰인 사천해전부터 쭉 거북선이 쓰여 졌다는 문헌도 있으나 칠천량 해전에서 거북선의 모두 소실하면서 그 이후 재정상 판옥선의 만드는 비용에 거북선 비용의 더불어 만들었을지 의문이 가는 부분이고 사천 1척 한산2척 부산포에 는 거북선이 참전 하였으나 그 이후 칠천량 해전떄 명량과 노량해전에 참전 하지 않았다는 점의 알아 두었으면 한다.
우리나라의 뛰어난 조선 다루는 기술과 지혜에 이루 감탄의 아니할수 없다.
왜란의 막아낸 우리 선조들의 피와 땀의 결실이 아닐까..
첫댓글 그리고 우리가 흔히 사극이나 국내에서 볼수 있는 복원 함선은 약간 축소 해서 많든 것이다..실제로는 큰 것은 200명이상도 탈수 있는 함선인데다가 거북선도 지금 육사에 있는 거북선보다 훨씬 컸다는 점이다.
저 그림은 해사 같은데요...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
오류 옥포해전에서 거북선은 전투에 투입되지 않았습니다. 그이후의 사천해전에서 부터 항상 출전했고 칠천량해전에서 조선수군이 보유한 거북선전부를 상실합니다. 다만 이후의 해전에서 판옥선을 개조한 거북선을 투입했다는 기록은 등장합니다.
옥포해전에 사용 했다는 오류는 수정 하였고 사천해전에 처음으로 1척 참전하였고 8차해전인 한산도 해전에 두척 참전 하였으나 그 이후는 칠천량 해전이후 모두 파괴 되었고 주력함선이 아니라는 점과 재정 문제로 또 만들수 있었을까? 심지어는 19세기에도 거북선이 있었음의 밝힌다.
사천한사부산포 해전때 거북선이 참전하였으나 칠천량해전떄 모두 소실되고 그이후(몇백년 뒤)사용되기는 하였으나 그 당시 명량과 노량해전에서도 거북선이 참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거북선은 판옥선과 전혀다른 새로운 타입의 배가 아니라. 기존의 판옥선에서 장대를 철거하고 갑판부분에 덥개를 덥은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거북선을 만들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건 아니고 기존의 판옥선을 손보는것으로 거북선으로 개조가 가능했습니다.
거북선이 철로 덮혀 있다면야 한척건조하는데 엄청난 비용이 소모되었겠지만 단순히 나무덮개로만 덮었다면 건조하는데 많은 비용이 소모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칠천량이후의 이순신이 다시 조선수군을 지휘할때 거북선을 전장에 다시 투입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근데 기록에 칠천량 해전 이후에 일어 난 해전중 규모가 큰 해전이나 노량해전에 거북선의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고요. 예전에 우연히 거북선 그림의 보게되었는데 이후에 거북선의 개조해서 철은 없고 나무를 덮고 그위에다 누각 비스무리한거 올렸더라구요
판옥선 한척에 그당시 동으로 약 쌀 150석입니다.. 엄청난 돈이죠..거기다가 쇠갑자체가 돈 많이 들겠죠? 거북선은 말했듯이 돌격선의 형태고 그 당시에는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판옥선에서 개조를 하면 그것이 거북선 입니다.. 주력선이 판옥선이였기에 구지 거북선의 만들 필요도 없었습니다.
얼마전에 여수엘 갔댔는데 거기서 실물크기인 거북선을 타보았습니다. 방머목적으로 상당히 우수하다 느꼈습니다. 왜선에서 칼싸움에 능한 왜군들이 거북선으로 들어오기가 어렵겠더라구요. 그리고 거북선의 무기중에는 거대한 낫같은 무기가 있는데, 그것으로 거북선으로 기어오르는 왜군들의 목이나 발목을 베었다고
하더라구요. 이렇게 방어에 유리하니 당연히 돌격에도 적합하지요. 돌격에 적합한 또 하나의 고안은 노입니다. 통상 판옥선은 노를 저을때 배바깥쪽으로 나오게 되어있는데(보통의 어떤 배라도 그렇지만) 거북선은 노가 밑으로 향하게 고안되어있어서 접근전에서도 노가 손상을 덜 입도록 되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왜선에 비해서 판옥선은 훨씬 더 무겁고 견고하게 지어졌기 때문에 그냥 받아버리면 왜선은 부서진다고 합니다.
참 잘 아시네요^^ 7년전쟁중 조선 함선은 거의 피해를 보지 않았다고 하죠. 우리나라는 예로 부터 조선의 다루는 기술도 으뜸~!
정확히 말하면 이순신이 지휘한 함대겠죠. 칠천량해전 전까지 이순신이 지휘한 조선수군의 함선손실은 부산포전투때 실화로 불탄 배한척이 전부입니다. 반면에 원균은 후임통제사로 부임하고 나무하러온 왜군들 잡다가 배한척을 가져다 바쳐버렸죠.
그리고 거북선이 철갑선인지에대한 여부는 신빙성이 낮습니다. 조선측기록에는 거북선이 철갑선이라는 기록은 전혀없고 가장 중요한 사료라고 할수있는 난중일기에도 거북선이 철갑으로 덮었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다만 일본측기록에 철갑으로 덮은것으로 보인다는 기록이 있을뿐입니다.
사실 맞는 말이긴 합니다.. 창이나 칼 따위를 꽃았다는 말은 있으나 철판의 덮었다는건 안타깝게도 없습니다만 일본측에 말하기를 철판의 덮었다고 나오니 철판의 덮었니 목선이었니 하는걸 따지는 건 지금으로서 옳지 않습니다.
지금도 철판의 사용했는냐 아니면 나무를 덮었느냐 논란이 많은데 좀더 등쪽의 효과적으로 보호할려면 얇은 철판의 사용했을 것입니다.
얇은 철판이라도 거북선의 덥개 전체를 덥으려면 무개는 엄청나게 늘어납니다. 그정도로 무개가 늘어나면 돌격선의 역활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더군다나 철포의 경우에는 나무방패로 충분히 방어가 가능했습니다. 나무로 방어가 불가능하다면 장대에 철로만든 방패를 설치했을겁니다. 그런데 송판으로 만든 방패를 설치
했죠. 일본측도 철포를 방어하는데 나무로 만든 방패를 사용했습니다.
거북선의 나무방패로 방어할수있었다는것 묻는게 아닙니다.. 간단하게 말하겠습니다..일본배에 철포쏘는건 어려운 일이였구요.철포를 그렇게 잘쏘았으면 조선수군도 큰 피해를 봤을겁니다.나무는 불 안붙나요?그리고 송판으로 만든 방패를 거북선위에다 설치했다는 건 처음듣는말이네요..
전 송판이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거북선의 덥개가 철판이라는건 무리라고 했고. 판옥선의 장대에서 철포방어용으로 송판으로 만든 방패를 사용했다고 했죠. 그리고 조선수군이 원균때를 제외하고는 함선을 격파당한적은 없지만 철포에의한 사상자는 끊임없이 나왔습니다. 이순신장군과 나대용 그리고 정운이 철포에
의해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었습니다. 나무는 불에 안붙냐고 질문하셨는데. 조선군도 그에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었고 실제로 판옥선의 경우에는 갑판에 물에적신 거적을 깔아 적의 화공에 대비했습니다. 물에적신 효과라고 해봐야 한나절도 안가지만 해전의 경우 한나절안에 결판이 난다는걸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 입니다. 그리고 정작 난중일기에서 철판으로 거북선의 덥개를 덥었다는 기록이 안나오는걸 어떻개 설명해야 합니까? 거북선을 만드는데 베 몇필이 소모되었다고 까지 기록이 되어있는데 베보다 더중요한 재료인 철의 사용이 언급되지 않은건 말이 안된다고 봅니다만.
지금 역사교과서를 배워보셔서 아시겠지만 철판의 안덮었다는건 지금 역사에 충격적인 반론입니다.. 현재는 철갑의 덮은걸로 인정하는 편이 더큽니다.
맞는 말입니다. 충격적인 반론은 아니고 그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온 주장이지만. 현재로서는 철판이 안덥혔다는 증거가 있는것도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