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恨)
-최석영-
3부 생존 7회
사마귀라는 동물이 있다. 그놈 역시 교미한 수컷을 잡아먹고 그 힘으로 새끼를 친다. 어쩔 때는 제 형제도 잡아먹고 어미도 잡아먹는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어쩌면 그것은 과장된 얘기 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이런 얘기를 지어내는 이유는 그 생김새가 흉측하기 때문일 게다. 그래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똑같이 서방을 잡아먹고 그 기운으로 알을 까고 종족을 번식 시키는 반딧불이나 거미에게는 그런 악성 루머가 없지 않은가. 살기 위해, 자식을 낳기 위해 서방의 고기를 먹은 년이 그 긴 살아있을 세월을 살면서 다른 고기는 못 먹고 못할 짓이 또 뭐가 있으며 두려울 것은 뭐겠는가? 악으로 깡으로 버틴다는 말이 있지만 그것도 살만한 사람이 하는 말이다. 정말 살기 힘들고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런 말을 절대 하지 않는다. 다만 살기 위해 미칠 뿐이다. 미치지 않고는 살수 없기 때문에 미친다. 악에 바쳐서 산다는 말은 미칠 만큼 힘들지 않다는 역설이기도 한 샘이다. 미친년 함이가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은 다시 자식을 낳고 낳으며 함이가 치암이게에게 들었다던 먼 옛날 조상들의 얘기, 함이의 얘기까지 입으로 전하였고 살아남아서 꼭 가문을 세워야 된다고 했다.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서 옹기장이의 자식들은 자기도 모르게 편을 갈라 나누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우리와 저것들 이다. 저것들은 항상 석타래의 후손들이었고 우리는 항상 고남산에서 왕 노릇 하던 고 씨의 후손들이다. 그들은 말했다. 저것들은 가해자 이고 우리는 피해자라고. 그러나 누가 과연 피해자와 가해자를 규정지을 수 있을까? 죽은 사람의 고기를 먹는 것조차 엄청난 일인데 고기를 먹기 위해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는 사람들을 피해자라고 할 수 있을까? 신라의 국력이 쇠잔해 지고 지방을 다스리는 분봉들의 힘이 강해졌다. 산악지대인 운봉 땅을 근거지로 삼았던 석씨의 후손들은 변화무쌍한 중앙정치에서 재껴진 채 하루에 두 번씩 반란이 일어나 아비가 자식을 죽이고 부하가 상관을 죽이고 상관이 부하를 죽이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다 보니 옹구(옹기)를 굽는 가마는 명분상 관요일 뿐 실질적으로는 사요나 다름없이 되어 가족중심 단위의 운영체계였고 이 자유는 고남산의 고 씨의 후손들이 거대한 살인 집단으로 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아비를 죽이고 운봉 땅을 차지한 석부랑은 남원 운봉 함양 구례의 분봉 왕들의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이합집산을 꾀하며 아옹다옹 하고 있을 때 반도의 큰 땅덩이는 다시 삼국체계로 틀이 잡혀갔고 신라의 서라벌 왕실에서는 다시 운봉 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옛 삼국시대처럼 운봉은 다시 국경 마을이 되었고 운봉을 내 주면 김해의가 위험해질 뿐만 아니라 무진주를 장악한 견훤의 근거지로 치고 올라갈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서라벌에서 큰 부대가 올라와 운봉 현을 장악하고 성주 석부랑을 참수해 그 머리를 성루에 걸었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자는 적으로 간주해 참수해 버린 것이다. 남원의 박거충은 그 성을 들고 견훤에게 갔으며 구례의 오달성 성주는 부하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부하는 견훤에게 투항하였다. 이로서 다시 후백제와 신라의 긴 국경을 만들게 운봉은 수천의 병사가 진을 친 군사 시설이 되었으며 성주였던 석씨 일가는 그 신분이 강등되어 5등급 대아찬에서 급벌찬이 되었다. 이제 석이라는 성씨를 가진 자는 아무리 뛰어나도 십장의 우두머리 밖에는 오를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사요나 다름없던 가마는 다시 군요가 되어 옹구(옹기)의 생산 전반을 군의 지휘를 받았고 옹구장이들은 군에서 주는 식량을 받아 먹어야했다.
“성 들었소? 곧 큰 전쟁이 난다는 디?”
“어디서? 운봉서?”
“이- 신라 허고 백제 허고.”
“이……”
“어림없는 소리. 큰 쌈은 넒은 디서 하재. 요로케 작은 재와 험한 산에서 허간디. 여그는 길목이여 길목. 사람 몸으로 치자 믄 밥이 넘어 가는 목구멍 같은 곳이란 말이여. 여그서는 서로 뺏고 뺏기는 실갱이만 허재 진짜 쌈은 안혀.”
그 때 목탁 소리가 들려 형제는 문을 열었다. 스님이었다. 어느 절에서 왔느냐 물으니 실상사 조계암 편운이라는 중인데 시주를 할까 한다고 했다. 그러자 성 이라는 맏이가 하는 말이 여기는 그릇을 굽는 가마라 먹을 것이 귀하니 사발(그릇) 이라도 시주를 받을 요량이면 시주를 하겠다. 하자 편운 이라는 중이 나무관세음보살을 하며 합장을 한다. 맏이가 동생에게 고갯짓을 하자 동생이 사발(그릇) 서너 개를 중의 바리에 넣어 주니 중이 하는 말이 시주를 받았으니 관상이라도 봐 주겠다며 성큼 방안으로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성(맏이)가 손 사례를 치며 그만 됐으니 돌아가라 했지만 막무가내인 중을 이길 수는 없었다. 중이면 부처의 제자이니 혹여 신통력이 있어 사람 잡아 먹는 일이 들통 날까 조마조마 하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동생 이라는 놈은 벌써 목침을 불끈 쥐고 있었다.
“매일 궤기만 묵으니 소채 냄새는 안 그립소? 저것들이 망했다 하나 아직도 운봉에서는 떵떵거리는 권세를 누리니 하늘이 바뀌지 않고서야 옛 영화를 찾아올 수 있겠습니까?”
“무슨 소리요?”
“소문에 듣자 하니 견훤대왕이 후백제를 세우고 신라로 가 신라왕을 꾸짖고자 한다기에 구경삼아 따라갈 가 하는데 시주님의 생각은 어떠신지?”
“스님도 참 별소리를 다 하우. 나 같은 옹구쟁이가 왕들 입씨름 판에 어찌 낀단 말이요?”
“사실은 견훤 왕의 둘째 부인인 남원부인이 소승의 4촌 누이동생이요. 그와 통한다면 못할 것도 없지 싶습니다.”
견훤 왕의 둘째 부인이라면 대단한 사람이 아닌가? 그 사람과 연줄이 닿고 왕실과 직접 연결될 수 있다면 옛 조상이 잃어버린 영화를 다시 되찾을 기회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비록 옹구(옹기)를 굽는 천한 신분이지만 누구는 날 때부터 항우장사는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그런 존 구갱거리가 있음 사 죽고 살고 따라가 볼 생각도 있는디 이것도 인연이라고 스님이 한번 알아봐 주실랑가 모르것네요 이?”
중이 고개를 조아리고 못다 본 관상을 봐 주고 방을 떠났다. 관상을 보니 집안을 일으킬 큰 인물이라 천인을 호령하는 대장군이 될 상이요 수백의 처자를 거느릴 번성한 집안의 어른이 될 사람이라 했다. 성(맏이)에 대해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는 중이 마땅 찬은 동생이 자기 관상도 좀 봐 달라 졸랐으나 중이 삐식이 웃으며 관상은 봐 주질 않고 합장만 하고 길을 떠났다. 동생이 중을 투덜거리자 성(맏이)이 동생을 한쪽으로 불러 엄히 이르기를 오늘 밤 중이 왔다 갔다는 말을 절대 입 밖에 내지 말라고 했다. 중은 사나흘 못 미쳐 다시 옹구장이의 집을 찾았는데 중이 내려놓은 짐 속에는 누르스름한 가루가 잔뜩 들어 있었다.
“시님, 이거 시 머시-다요?”
“군영으로 들일 그릇에 이 약가루 푸른 물을 발라 두시구려. 사는 게 고뇌이니 열반이 곧 해탈이 아닐 련지….”
닷새 후면 모산성 성터로 그릇을 드릴 판이다. 이제 모산성은 아막성이 될 것이다. 아막성은 백제 식 이름이 아닌가. 우리 조상은 백제도 신라도 이었다가 큰 낭패를 보고 후손들이 멸문지화를 당했지만 자신만은 자신의 자식만은 같은 세대를 살 수 없다고 다짐했다. 과연 모산에 독이 묻은 그릇이 들어간 이후 병사들이 죽어 나가기 시작 하더니 성 전체가 텅 비게 되었고 사치와 연치(연재)를 넘은 후백제 군은 운봉 땅을 거저 얻었다. 이제 운봉 땅은 백제의 것이 되었고 신라 땅은 함양 저쪽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고남에 있는 모산성은 이제 아막산성이 되었고 운봉은 국경지대가 아닌 전방지역이 되어 평화가 찾아왔다. 평화, 그리고 고원분지 넓은 지역에 깃든 풍년, 풍년 속에 비친 가문의 서광, 한낱 옹기장이였던 사내가 후백제의 장수가 되어 칼을 찬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사람 고기를 먹지 않아도 되며 먹을 것을 위해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되었다.
“성, 나는 이 짓이 싫소. 이 짓은 우리가 예전에 사람 죽이던 일 보다 더 흉악 헌 일이요. 예전에 우리는 머글 라고 사람을 주기지만 지금에 우리는 빼슬 라고 안 주기…”
배가 고파 사람을 죽일 때 보다 살기위해 사람을 죽이는 것이 더 힘들다는 동생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화살이 등에 밖이더니 가슴을 뚫고 나와 버렸다. 폐에 구멍이 뚫려 피를 통한 성(맏이)의 동생이 푹 쓰러지고 신라와 백제군은 맞붙었다. 목을 자르고 배를 찔러 창자가 튀어 나오고 싹둑 베어진 다리를 덜렁거리며 들고 다니는 놈 눈깔에 화살을 꽂고 엄마를 부르는 놈이 뒤엉켜 아수라장이 된 전쟁터에 갖은 군복을 입은 병사 하나가 성(맏이)의 동생을 붙들며 소리쳤다.
“머허는교? 이러다 둘 다 죽습니데이. 언능 저 짝으로 가입 시다.”
다른 사람이 죽었을 때에는 그 자리에서 뼈를 발라 고기만 똘똘 말아 등에 지었는데 동생이 죽고 보니 송장을 등에 지고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화살을 피해 진지로 드는 자신을 보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동생의 말이 맴돌았다.
‘성, 나는 이 짓이 싫소. 이 짓은 우리가 예전에 사람 죽이던 일 보다 더 흉악 헌 일이요. 예전에 우리는 머글 라고 사람을 주기지만 지금에 우리는 빼슬 라고 안 주기…’
죽음이 넘나드는 전쟁터에서 동생의 시신을 업고 함께 뛰었던 사람은 반씨 였다. 반씨…, 어디서 왔느냐고 묻자 자신은 운봉 사람이라고 했고 운봉에도 반 씨가 있느냐고 묻자 옛날에는 석씨 였는데 세상이 바뀌어서 반 씨로 성씨를 바꾸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한 고향 사람이라고 속내까지 내 보이며 서글서글 웃는 총각이 석씨라…, 그러고 보니 큼지막한 코에 부리부리한 눈매가 석씨 사람이다. 저것들이 성씨를 바꿔 한 패가 되어 있었다.
-> 계속
첫댓글 열심히 보고 갑니다, 빠진 부분은 저기서 볼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