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스톱을 잘 치지 못한다.
광이 라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고 열끝짜리, 다섯끝짜리,그리고 껍데기-일명 '피' 라는 것이 있어서 적당한 룰을 따라 3점을 내면 이기는 것,
열두 달에 맞는 각각의 화투가 있어서 각 달에 광을 포함 4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새가 그려져 있는 화투 세장을 모으면 '고도리'라고 해서 5점을 주기도 한다는 것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고스톱이다.
난 분명 고스톱의 -타짜가 아닌- 초짜이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겨우 짝 맞추기가 가능한 정도라는 것이다.
타짜는 다른 사람의 패가 무엇인지 바닥에 깔려 있는 것들이 무엇이고 남아 있는 것들도 무엇인지 알지만 초짜는 그런 것과 전혀 관계 없이 그냥 내 손에 들고 있는 화투만을 가지고 짝 맞춰 가기에 연연해 한다.
가끔 운이 좋게 손 안에 광 다섯개를 모두 쥐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꼭 그 판을 이길 수 있지는 않다.
광에도 그 족보가 있기 때문인데...비 광 같은 것은 그 혼자로는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기도 하고, 또 광으로 점수를 내기 보다는 가끔은 그것들을 이용해서 다른 룰을 공략 해야 하기도 하는데, 대부분의 초짜들은 다섯개의 광이 손 안에 들어온 순간 이성을 잃고 패를 버리지도 못하고 그저 광을 먹겠다는 일념하게 게임에 임하기 때문에 그 좋은 패를 들고도 가까스로 3점을 내고서 끝내고야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겠다.
<돌이킬 수 없는 >이란 영화를 보고 왔다.
연기파 배우 김태우와 비덩(?)이정진이 투톱이고 강인기, 김창숙, 최정우, 오광록...등 맛깔스런 조연들이 최소한 자신의 값어치는 한 영화.
어느 자그마한 시골 마을에 아동 성범죄 전과를 가진 아들(이정진)이 있는 한 가족이 이사를 왔다.
그런데 공교롭게 그들이 이사 온 직 후에 혼자서 애지중지 딸 하나를 키우며 사는 남자(김태우)의 아이가 실종 됬다.
성범죄 전과자의 신상은 실종된 아이의 아빠에 의해 온 동네 사람들에게 공개가 되고, 갑작스럽게 모든 마을 사람들의 두뇌는 아이의 실종과 성범죄자를 연결 짓는 쪽으로 편중하게 되어 버린다.
아무런 정황도 없는 시점이지만 이미 성범죄 전과자는 모두에게 범인으로 낙인 찍혀졌고,
그 이후에 상황을 목격한 사람들의 말에 대해서도 그들의 시선은 올바를 수가 없다.
특히나 딸의 죽음으로 이성을 잃어버린 아버지로서는 하나부터 열까지가 모두 그 전과자와 연관이 된 듯 할 뿐이다.
결국 모든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아, 실종된 아이의 아버지가 성범죄 전과자를 살해 하고 만다. 그러나 그건 끝이 아니다.
(그 다음은 스포일러 같아서 반전이 있음만을 얘기한다.)
대략의 줄거리에서 알 수 있듯이 ..
김태우는 자신의 전부인 딸을 잃은 슬픔으로 인해 이성을 잃고 편협적인 사고 속으로 빠져들어 결국은 살인이라는 파국으로 치닫고 마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의 연기는 역시나 연기파 배우라는 칭호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딱 맞는 옷을 입은 듯 했다.
돌맹이 하나로 전과자를 죽이겠다고 달려들어 물속으로 쳐 박는 장면은 거의 몰입도가 100%에 가까운 듯 광기 어려 있다.
아동 성 범죄 전과자 역을 맡은 이정진은 어찌보면 <마더>의 원빈 역할과 겹치는 듯 한 느낌이 드는 면도 있지만, 목 바로 아래까지 단추를 꽉 채우고, 단정하다 못해 답답해 보일 정도의 티셔츠를 입고, 살짝 입을 벌려 멍 하면서도 아픔을 간직한 듯이 말하는 그의 대사들은 이정진만의 색깔을 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 두사람의 교량 역할을 해야만 하는 형사 역할의 정인기, 이정진을 유일하게 믿어 주는 엄마 역할의 김창숙, 주민 변호사 역할의 최정우, 증인 누드화 교수 역할의 오광록 등의 조연들도 자신의 캐릭터들에 맞추어 맛깔스런 연기를 해 주었기에 간간히 터지는 웃음이나 나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허탈한 탄성을 영화 중간중간에 객석에서 들을 수가 있다.
또 하나 이 영화의 매력은 화면 가득한 초록의 향이다.
배경이 어느 고즈넉한 시골 마을이다 보니 한적한 시골 길이라던가, 낚시를 즐길 수 있는 강가라던가,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길이 온통 초록이다.
게다가 이정진의 자전거 포가 있는 장소가 무척이나 매력적이다.(혹여 아직 그 곳이 존재하고 있다면 한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많은 아쉬움을 남게 한다.
마치 오광을 손에 들고도 삼점 이상은 내지 못하는 초짜 고스톱꾼 같은...
하나하나의 캐릭터에 생명력이 없다.
(겉 핥기 식으로) 배우들의 연기력에 힘입어 캐릭터들이 완성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작가와 감독만이라도 알고 있는 그들의 살아온 배경이 있나 싶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모습이 형성 되기 전까지 그들의 살아온 내면이 있어야 그 캐릭터의 깊이가 보여질 수 있는 법인데...이건 갑자기 어디선가 밑도 끝도 없이 시골에서 화원을 하는 홀애비가 나타나고 또 어딘가에서 성범죄 전과자가 짜짠하고 나타나서 아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건이 일어났을 뿐인것 같다.
형사를 포함한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왜 ? 어째서? 그들이 그렇게 행동을 해야만 했는지, 그것에 대해서 감독은 절대 관객 입장에서 설명해 주지 않았다.
아니..솔직한 느낌은 감독도 모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지 사랑하는 나의 아이를 잃는다고 해서 모두가 상대를 죽이지는 않는다.
또 전과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다들 자신을 숨겨가며 살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마을에 전과자가 이사를 왔다고 해서 모든 주민들이 이 마을 사람들처럼 그들을 추방하자고 한다면 그들은 어디서 살아남을 수 있겠나.
캐릭터들이 현재의 행동을 하기까지 그 동안의 삶의 궤적이 있어야 하는데...불행히도 <돌이킬 수 없는>에 나오는 인물들은 다만 그 영화 속 , 그 사건 속에 존재하는 것이 다 인듯 깊이가 없이 가벼워 보인다.
훌륭한 배우들과 좋은 시놉이라는 광을 손에 쥐고도 캐릭터의 패를 읽거나 영화판의 흐름을 꾀뚫지 못해서 기본 삼점 밖에 나지 못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하지만 모르지...운칠기삼이라는데....운 좋으면 그 이상이 날 수도...
첫댓글 개봉도 되기전에 스토리전개와 평을 다들어서...실제 영화보고 나면 제대로 감흥을 받을런지...
그러게...내가 원래 이런짓 잘 안하는데....안철호에게 어떻게든 힘이 되주고 싶어서 이런짓을 했네...용서하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