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가 국경을 넘어 빛나다◁
明나라 사신 董越(동월:1431~1502)은 성종 때 조선에 와서 견문(見聞)을 기록한 ‘朝鮮賦조선부’를 남겼다. 다음 글은 여기에 나타난 미나리 대목이다.
“왕도와 개성 사람들 집의 작은 못에는 다 미나리를 심는다(王都及開城人家 小池皆植芹)”
그의 눈에는 집집마다 미나리를 연못에 키우는 모습이 매우 신기했던 모양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왜 이렇게 미나리를 많이 키웠을까? 성종 때는 배추가 아직 널리 보급되기 전이라 무가 나오는 가을철이면 무김치를 봄에는 미나리 김치를 많이 먹었다. 세종 때에 제사에 관한 기록에서
첫째 줄에는 부추 김치가 앞에 있고, 혜해(醯醢)·무우 김치·사슴 고기젓이 그 다음이요, 둘째 줄에는 미나리 김치가 앞에 있다(第一行 韮菹在前 醓醢菁菹鹿醢次之 第二行 芹菹在前) -세종14년(1432•7•29)
여기에서 알 수 있듯 미나리 김치는 두 번째로 진열할 만큼 비중이 컸다. 당시 미나리 김치가 얼마나 대중적이었는지 알 수 있는 사료다. 이렇게 흔한 미나리기에 이것을 바치는 ‘헌근(獻芹)’은 조촐하고 볼품없는 것을 선물한다는 것으로, 자신이 바치는 정성어린 선물이나 신실(信實)한 마음을 낮추어 말하는 겸양의 뜻이다.
미나리를 많이 키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미나리의 상징성 때문이다. 조선시대 유생(儒生)을 교육하던 성균관을 ‘芹宮(근궁)’이라 했다. 바로 ‘미나리 밭’이다. ‘미나리를 캔다’는 ‘채근(采芹)’은 그 유생들이 공부하는 과정을 이르는데, 즉 훌륭한 인재를 발굴하여 키워낸다는 뜻이다. 이는 『詩經』(魯頌)의 “즐거운 반수에서 잠깐 미나리를 뜯도다(思樂泮水 薄采其芹)”에서 유래했다. ‘泮水’는 중국 周(주)나라 인재 양성 교육기관인 ‘泮宮’옆으로 흐르는 개천인데, ‘인재를 널리 발굴한다’ 는 뜻이다. 이처럼 집에서 키우는 미나리는 나라의 동량(棟梁)을 바라는 자식의 화신(化身)이었다.
미나리는 봄철 입맛을 돋우는 채소로 으뜸이다. “아무리 맛있는 남원 미나리라도 여름 것은 먹을 것이 못 된다” 라는 말이 그렇다. 미나리는 물을 뜻하는 옛말 ‘미’와 나물을 뜻하는 ‘나리’가 합쳐진 말로 이름 자체가 ‘물에서 나는 나물’이다. 특히 비타민B군이 풍부해 춘곤증 예방에 좋다. 막 씻은 미나리 한 줄기를 씹으면 사각사각 경쾌하게 끊긴다. 특유의 화사하고 상쾌한 향기가 코끝을 진동한다. 미나리는 술 안주로 제격이었다.
水芹椒葉味相宜
更向花前倒酒卮
“미나리와 산초는 맛이 서로 어울려/다시 꽃잎을 향해 술잔 기울이네” -四留齋 李廷馣(사류재 이정암:1541~1600) ‘미나리(芹菜)’
芹菜靑調作乳黃
新篘少麴湛盈觴
“미나리 푸성귀로 안주거리 삼았는데/새로 거른 맑은 술이 잔에 넘치누나” -丁若鏞(정약용) ‘봄날잡시(春日雜詩)’
옛 기록에는 미나리가 황달에 특효가 있다고 했다.
“달병(황달)으로 괴로운 것이 지금 몇 일째인가/작은 병풍에 베개를 높이하고 깊은 장막에 숨어/밤새도록 부은 다리 쉬게 해도 잠을 이룰 수 없네/온종일 배가 고파도 미음만 먹고/사람들이 삶은 인진을 복용하면 괜찮다 하는데/스님은 미나리 효험이 더욱 기이하다 말하네”
疸病淫淫今幾時
短屛高枕掩深帷
通宵脚倦無眠睡
盡日腸飢啜粥糜
人說茵蔯煮可服
僧言芹菜效尤奇 -蘇世讓(소세양:1486~1562)
미나리를 먹는 방법은 다양하다. 뿌리까지 먹기도 하고 특히 삼겹살과 궁합은 환상적이다.
“어머니는 다듬고 난 미나리 뿌리를 버리지 않고 예쁜 항아리에 물을 받아 담가두셨지. 그게 다시 잎이 올라와 겨울의 방 안을 연두색으로 생기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끊어서 먹기도 했다" /호원숙(박완서 딸) ‘어머니의 부엌’에서
“미나리는 대개 매운탕에 넣거나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숙회로 즐긴다. 하지만 미나리는 생으로도 먹는다. 쌈 채소로 삼겹살과 궁합을 자랑한다. 쪽 찐 머리 비슷하게 된 미나리에 삼겹살 한 점을 얹어 쌈장에 찍어먹으면 아삭한 미나리와 쫄깃하고 고소한 삼겹살이 서로 제 짝을 만난 듯 했다. 미나리는 기름진 음식과 잘 맞는다. 미나리가 엉길 정도로만 반죽에 버무려 기름에 지글지글 지져 낸 ‘미나리전’은 바삭하면서도 느끼하지 않는다. ‘미나리 길쌈’은 삼겹살 먹을 때처럼 돌돌 만 미나리를 조미 김에 싸서 먹는다. 미나리 식감을 최대치로 살려주는 탁월한 조합이다” /김성윤
지금 미나리는 제철을 맞은 것과 함께 영화 ‘미나리(Minari)’ 흥행으로 주가가 상승중이다. 지난 제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데 이어 4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이 영화는 1980년대 아메리카 드림을 향해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 가족 정착기를 그렸다. 미국 남부 아칸소주(州) 시골 마을에서 농장을 운영한 아버지와 직장에 다니는 어머니를 대신해 그를 돌봐준 외할머니는 한국에서 가져온 미나리 씨앗을 그곳에 심었다.
정이삭 감독은 “미나리가 다른 채소보다 잘 자라는 모습이 기억에 강렬히 남았다” 고 했다. 영화 말미에 외할머니 순자(윤여정)는 중풍으로 쓰러진다. 가족은 그 터에 악귀가 서렸기 때문이라고 여겨 순자가 미나리를 심은 냇물의 물줄기를 끌어들인다면 큰 농장이 될 것으로 믿는다. 식구들이 냇가 미나리를 찾아가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난다.
영화는 미나리가 단순한 채소가 아닌 가정의 구세주임을 말해준다. 포기하지 않고 버텼더니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이국땅에 정착하기 위해 벌이는 사투(死鬪)에서 미나리는 바로 한민족을 나타내는 상징물, 즉 뛰어난 적응력과 끈질긴 생명력이다. 오래 전 집집마다 키웠던 미나리가 세월을 훌쩍 넘어 이국땅에서 결실을 거둔 쾌거가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