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 봉래산
봉래산은 영도섬의 한가운데 우뚝 솟은 산으로 높이는 365m로 낮은 편에 속하지만 이 산에 오르면 부산이 천혜의 항구도시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한다. 영도다리를 중심으로 왼쪽은 자갈치시장과 공동어시장을 보듬은 남항이 있고, 오른쪽은 수출역군으로 상징되는 갠트리크레인이 일렬로 정렬된 북항의 컨테이너부두가 한 눈에 조망된다. 부산의 상징인 오륙도와 이기대는 물론이고 저 멀리 가덕도와 거제도까지 확인된다. 그리고 날씨가 맑은 날이면 대마도를 볼 수 있다.
봉래산은 크게 3개의 봉우리로 구분하는데, 제일 높은 정상은 할아버지를 뜻하는 조봉(祖峯)이라 불리고 그 옆으로 자봉(子峯), 손봉(孫峯)이 이어진다.
원래 봉래산이란 동쪽바다 한 가운데 있어서 신선이 살고 불로초와 불사약이 있다는 상상속의 영산이다.
봉황이 날아드는 산이라는 의미로 영도의 중심에 위치하는데, 산 전체는 원추형이며 산록의 사면은 가파른 편이다. 특히 남쪽 사면은 급경사로 바다에 거의 내리박듯 수직으로 돌입한다. 산기슭에는 기계적 풍화작용에 의해 쪼개진 바위가 점점이 흩어져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일본은 봉래산의 기세를 꺾어놓기 위해 '목이 마른 산'이란 의미의 고갈산(沽渴山)으로 격하해 불렀다. 심지어 '공갈산'이란 웃지못할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다행히 최근 우리 산 이름 되찾기 운동으로 인해 봉래산이란 원래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반적인 산행코스는 신선동 새마을금고 신선본점→대흥사→신선아파트→다보사→신선2동 체육시설→관음사→산제당→산불감시초소→산신제터→능선(헬기장)→KBS․MBC방송국송신소→봉래산 조봉→산불감시초소(안부사거리)→자봉→손봉→임도→삼거리갈림길→목장원→7․5광장→절영해안산책로→중리산 산책로→전망대 정자→감지해변 순으로 쉬엄쉬엄 걸어도 약 3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웰빙산행지이다.
산행의 시작은 영선교차로 버스정류장에 내려서부터 시작되며, 도로를 따라 직진한다. SK텔레콤 매장을 지나 150m쯤 가면 강남의원이 있는 사거리가 나온다. 우측으로 간다. '사랑채' 식당과 남도여중을 잇따라 지나면 정면에 영도구 공영주차장이 있다. 이 길이 소위 산복도로인데, 오른쪽으로 30m 거리에 새마을금고 신선본점이 있다. 그 왼쪽으로 오르면 정면에 봉래산 대흥사에 도착되며, 이곳까지 오면 들머리는 찾은 셈이다. 버스정류장에서 약15분 거리이다.
대흥사 오른쪽 돌담길을 따라 걷다 만나는 길을 가로질러 신선아파트 옆으로 오른다. 촘촘한 계단을 절반 이상 오르다 우측으로 20m쯤 발걸음을 옮기면 다보사이다. 이를 지나면 이내 신선2동 체육시설이 있다. 하지만 산으로 가는 길이 철조망으로 막혀 있다. 따라서 바로 아래 오른쪽 쪽문을 통해 산으로 진입한다. 두 번의 갈림길이 나오는데, 한 번은 오른쪽. 또 한 번은 왼쪽으로 간다. 화장실을 지나면 관음사와 산제당(山祭堂)이다. 영도의 수호신을 모시는 당집인 산제당은 산신할배당, 산신할미당, 장군당으로 구성돼 있다. 영도의 안녕을 비는 당제는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날과 음력 9월15일 두 차례 열린다.
산제당을 나오면 산불감시초소가 있으며, 바로 앞에는 '봉래산 정상 0.79㎞, 체육공원 0.33㎞'라고 적힌 이정표가 서 있다. 이곳에서 본격 산행이 시작된다. 5분쯤 오르면 제법 너른 너덜지대가 펼쳐진다. 그 위에는 조그만 공덕탑이 오롯이 서 있다. 5분 뒤 산신제터에 도착되며, 담벼락도 제법 튼튼하게 만든 내부에는 과거 샘터의 흔적이 남아있다. 다시 5분 뒤 주능선에 도착되며, 이곳에는 헬기장과 체육공원이 자라잡고 있어 무등산의 토끼등이나 금정산 북문광장을 연상시킬 정도로 구민들의 휴식장소로 이용됨을 살펴볼 수 있다.
이후 진행방향은 우측 시멘트 길인데, 도로변의 산죽을 따라 KT중계소와 KBS 및 MBC 송신소를 잇따라 지난다. 다소 무료할 즈음 왼쪽 오륙도 이기대가 모습을 드러내 위안을 삼는다. 이내 갈림길인데, 왼쪽은 조봉과 자봉 사이 안부 가는 길이다. 여기서 오른쪽 조봉을 향해 오른다. 불규칙하게 박혀 있는 돌들을 계단삼아 5분이면 봉래산 정상인 조봉(祖峰/395m)에 닿는다. 조그만 정상석 옆에 할미바위가 눈에 띈다. 나이 드신 분들은 예의 합장으로 기도를 올린다. 60대 한 할머니는 "할미바위는 용심이 많아 돈깨나 벌어 영도를 뜨면 반드시 망하도록 한을 품는다"며 "젊은이도 어서 예를 표하라"고 권한다.
조망은 환상적이다. 남항과 북항으로 대표되는 부산항 전체가 한폭의 그림처럼 눈에 들어오고, 부산시가지 또한 한 눈에 펼쳐진다. 부산을 한 눈에 보고 싶다면 봉래산에 오르길 적극 권한다. 부산의 산을 살펴보면 우선 도심의 황령산, 금련산, 그 뒤로 장산이 보인다. 장산 왼쪽에는 달음산, 거문산이, 오른쪽에는 구곡산이, 황령산 뒤로 철마산 대운산이 보인다. 거문산 왼쪽으로 천성산, 금정산 고당봉,, 계명봉, 금정봉, 백양산, 엄광산, 구덕산, 시약산, 승학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다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공동어시장 뒤로 천마산, 송도 암남공원, 몰운대, 가덕도 연대봉, 거제도도 확인된다. 가덕도 우측으론 김해와 창원쪽의 팔판산, 화산, 불모산, 천자봉, 상점령, 장유봉도 보인다.
하산은 이정표 기준으로 손봉, 목장원 방향으로 직진한다. 워낙 전망이 빼어나 하나하나 음미하며 천천히 걷자. 10여분이면 초소가 위치한 안부사거리에 이르며, 계속 직진하여 6분 정도 오르면 자봉(子峰)인데, 봉우리는 평평하고 풀만 무성하다. 이곳에는 이정표는 없고 대신 '산불조심'이라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우측 암남공원 가덕도쪽이 시원하게 열려있다.
여기서 10여분쯤 더 가면 봉래산의 끝자락인 손봉(孫峰)에 도착된다. 산신제터인 돌무더기가 평평하게 쌓여있다. 동삼동쪽 발아래는 트랙이 보이는 부산체고를 비롯한 4-5개의 학교가 옹기종기 모여있다.
하산길은 가파른 내리막인데, 길이 쏟아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5분이면 임도에 도착된다. 내려온 길을 뒤돌아보면 위에서 보던 경치 못지않게 좋다. 임도에선 오른쪽은 목장원, 왼쪽은 고신대 방향인데 임도를 타고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바로 나오는 삼거리에서 왼쪽길로 내려간다. 5분이면 목장원 주차장에 도착된다. 목장원 전망대에서 휴식을 취한 후 도로로 내려오면 7․5광장인데, 이곳은 영도구청에서 봉화대와 전망대를 설치하여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꾸며놓았다. 여기서 산책로를 따라 해안으로 내리서면 전망대가 나오는데, 이곳이 절영해안산책로이다. 이 산책로를 따라 좌측의 중리해변으로 간다. 해녀들이 물질해 잡은 해산물을 파는 이곳 해녀들의 대부분이 제주 출신이라고 한다. 그들이 주고받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경상도 아지매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중리 해녀촌을 가로지르면 다시 산길이 열려있다. 중리산이다. 입구엔 장승이 서 있다. 7․5광장에서 대략 20여분이 소요된다.
중리산은 군부대가 주둔해 있어 정상 부근은 출입금지구역이다. 송림길을 따라 5분쯤 걸으면 임도와 만나는데, 오른쪽으로 간다. 이 임도는 산허리를 돌아 태종대 인근 감지해변으로 이어진다. 지도상으로 감지해변산책로다. 전망대 정자에선 잠시 생도(주전자섬)와 점점이 떠있는 선박들의 모습을 감상해보자. 그림같이 아름답다. 이어 감지해변 야생화단지를 지나면 태종대 유람선 선착장이 있는 감지해변에 닿는다. 중리산 입구에서 35분 걸린다.
♣♣♣ 참고자료 ♣♣♣
영도의 원래 이름은 절영도(絶影島)였다. 절영도란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천리마가 빨리 달리면 그림자가 못 따라 올 정도라 하여 끊을 절(絶), 그림자 영(影)을 붙여 절영도라 불려졌다. 영도의 육지와 인접한 섬으로써 말을 방목하기에 적당한 지리적 조건을 갖고 있어 예로부터 나라에서 경영하는 국마장(國馬場)이 있었으며 명마들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삼국사기열전」김유신의 조항을 보면 신라 33대 선덕왕이 삼국통일을 이룬 김유신의 공을 되새겨 김유신의 적손(嫡孫) 김윤중에게 절영도 명마 한 필을 하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사」와 「동국여지승람」에서도 후백제의 왕인 견훤이 절영도 명마 한 필을 고려 태조인 왕견에게 선물한 일을 기록하고 있다.
일제시대에도 영도를 「마키노시마(牧島)」라고 했는데, 일본말로 말 먹이는 목장의 섬이란 뜻이다.
영도는 신석기시대의 동삼동패총, 영선동패총 등으로 보아 부산지방에서 가장 먼저 사람이 살기 시작했던 곳이라 추정된다. 패총이란 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개껍질이 쌓여 생긴 것인데, 그 속에는 여러 가지 사람들이 쓰던 유물이 썩지 않고 잘 남아 있어 그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이와 같이 영도는 선사시대부터 여러 가지 생활여건이 당시로서는 사람이 살기에 가장 알맞은 곳이었음을 살펴 볼 수 있다.
♠ 교통편(시내버스 영선로터리나 새마을금고 하차)
영선로터리에 정차하는 시내버스; 501, 7, 11, 6-1, 70, 9-1, 71, 9, 6
들머리 입구(새마을금고 신선본점)에 정차하는 버스 ; 82, 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