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7일부터 13일까지 중국 강남 절강성 항저우 등을 방문했다. 오랫만에 보는 서호는 아름다웠고 소홍주의 맛도 좋았다. 처음 가본 황산, 기암괴석과 소나무, 세계적인 관광지라는 말이 결코 허명은 아니었다. 바쁘게 보고 온 중국에 관한 단상과 느낌을 적는다.
절강성 항저우
"안개낀 버들숲 그림같은 다리 저잣거리 보석들로 넘쳐나고 마름따는 노래 밤새 들려오네"
중국 강남 절강(浙江)성 북으로 신안강(新安江)과 남으로 난계(蘭溪)가 건덕현 동남쪽에서 만나 동북쪽으로 동로현에 이르면 동강(桐江)이 되고 부양현에서는 부춘강(富春江)이 되고 옛 전당(錢塘)현 지역에 이르러서는 전당강이 된다. 전당강은 안휘성 황산에서 발원하여 동으로 절강성으로 흐르는데 그 끝자락에 자리잡은 도시가 절강성 항저우(杭州). 절강은 바로 전당강을 가리키는데 옛날에는 점수(漸水) 또는 지강(之江)이라고 하였고 굴곡이 많아 절강이라 하였다.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를 보면 진 시황과 나중에 초패왕이 된 항적(항우, 우는 자)이 조우한 곳이 이 절강이다. 진시황은 회계산(會稽山)을 유람하여 절강을 건너는데 항적(항우, 우는 자)이 계부(季父)항량과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항적이 말하기를 "저 사람의 자리를 내가 대신할 수 있으니라"고 하니 항량이 그 입을 막으며 "경망스러운 말을 하지 말아라. 삼족이 멸하게 된다"고 하였다. 항적은 과연 24세에 군대를 일으켰다.
항저우는 오월동주(吳越同舟),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로 유명한 오나라와 월나라가 각축한 땅이요 수나라 양제가 건설한 경항(京杭)대운하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남송 때는 도읍지로 남조문화가 화려하게 꽃핀 곳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항저우보다도 서호(西湖)가 더 잘 알려져 있으니 국가급 명승지로 우리나라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기 때문일 게다.
중국과 수교전 가보기 힘들었던 서호에 대해 고등학교 고전국어 시간에 배웠다. 송나라 초기에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삼았다는 풍류시인 임포(林逋 967~1028)가 서호의 고산에 은거해 살았기 때문이다. 항저우에서 태어난 임포는평생 벼슬을 아니하고 서호의 고산에 은거해 난초를 심고 학을 기르며 살아간 송나라 초기의 걸출한 산림시인. 그가 쓴 '산장의 매화'라는 시에서는 세상에 대한 욕심없이 살아가는 시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온갖 꽃들이 시든 후에/ 홀로 아름답게 피어/ 조그만 정원의 운치를/ 홀로 독차지하는구나/ 맑은 물가에/ 성긴 그림자 비꼈는데/ 은은한 향기 감돌아/ 달도 노을진다// 흰 겨울새 내려오려고/ 먼저 두리번거리는데/흰 나비가 알았더라면/ 넋이 나갔으리라/ 다행히 조용히 읊조리며 / 서로 친해지리니/ 반드시 금술잔에 장단 맞추며 / 노래부를 것은 없다.(기세춘ㆍ신영복 편역 '중국역대시가선집').
서호는 전당강이 동해로 흘러들어가기 전 옅은 해안이 호수로 변한 것인데 서호는 예전에는 '무림수' '금우호', '전당호' '서자호'라 하였고 항저우 서쪽에 있는 호수라 하여 보통 서호라고 부른다. 무슨 인연이 있었던지 서호에 네 번이나 갔다. 지난 6월에 서호에 간 것은 5년만이었다. 6월 중순이면 우리의 장마철에 해당하는 '매우(梅雨, 매실이 익는 계절에 내리는 비, '황(黃)매우'라고도 한다)'계절이라 출발 전 걱정을 많이 했다. 남방의 습하고 무더운 날씨, 온 몸이 끈적끈적하여 견디기 힘든 그 더위를 어떻게 이겨내나 싶었다. 하지만 우리가 도착한 날부터 비도 오지 않고 덥지도 않아 한 시름 놓았다.
7일 서호에 도착한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붉은 해가 서산으로 길게 넘어가면서 서호는 온통 붉은 물이 되었다. 서호10경 중 하나가 '뇌봉석조(雷峰夕照)'인데 서호 인근에 있는 뇌봉탑은 저녁노을이 질 때 금빛 찬란한 탑의 그림자가 공중에 새겨져 '뇌봉석조'라는 이름을 얻었다. 해질 무렵 이 뇌봉탑에 올라가 서호를 바라보면 한 눈에 들어오는 서호낙조가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서호는 수역 면적이 6.38㎢에 달하고 호수 깊이는 평균 2.27m이고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나머지 한 면은 도시에 접해 있다. 서호를 중심으로 서호풍경명승구는 중국국가급풍경명승구로 그 가운데 '서호10경', '서호 신10경'과 같은 곳이 뛰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서호 10경이란 청나라 강희제가 정했다고 하는데 소동파가 준설했다는 소제의 봄 경치를 가리키는 '소제춘효', 백거이가 만들었다는 백제의 끝에 있는 단교의 잔설을 꼽는 '단교잔설', 서호에서 여름철 연꽃을 감상하는 '곡원풍하' , 물고기와 모란꽃을 감상하는 '화항관어', 가을밤 서호에서 배를 타고 달 구경하는 '평호추월' 그리고 이른 아침 새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유랑문앵, 서호의 가장 큰 섬에서 등불을 켜고 달을 보는 삼담인월, 쌍봉삽운, 남병만종, 뇌봉석조 등을 말한다. 우리로 말하면 관광단지인데 거대한 건물이나 놀이기구 없이 자연 그대로를 최대한 이용하여 자연도 보호하고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한 점이 돋보였다. 무엇보다 서호에는 볼거리가 끊이지 않고 이야기거리가 이어진다. 나중에 '서호 신10경'을 만들었는데 운서죽경, 만롱계우, 호포몽천, 용정문차, 오산천풍, 완돈환벽, 황용토취, 옥황비운, 보석류하가 그것이다.
[NIKON ] NIKON COOLPIX S7 (1/113)s iso50 F2.8
풍경과 역사적인 사실과 유적 등을 서로 연관지어 10경을 뽑고 그것도 모자라 다시 10경을 뽑고 이야기를 만들어냄으로써 끊임없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노력이 서호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들었을 것이다. 항저우를 처음 방문하여 '서호10경'이라는 말을 듣고 그것을 모두 보고 싶었고 다 보지 못한 곳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다시 와서 나머지 10경을 더 보고 싶었다. 관광정책이란 이런 마음이 생기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절강성 소흥(紹興)에서 만든다는 명주 소흥주를 서너 잔 마시고 서호의 밤을 보러 나섰다. 서호에 나와 거닐거나 산책을 하는 시민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관광책자에는 "맑게 갠 날 호수는 비오는 날 호수보다 못하고 비오는 날 호수는 밤의 호수보다 못하다. 서호의 야경은 사람의 눈과 마음을 기쁘게 하고 도취하게 한다"고 했다. 공안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어 안심하고 호수를 둘러보았다. 밤이 깊어감에 따라 쌀쌀한 기운이 몸을 감싸 퍽 상쾌하였다. 화려한 조명장치를 한 뇌봉탑은 새로운 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는데 서호의 야경을 굽어보기에 좋은 장소이다.
이튿날 새벽 5시에 서호로 갔다. 동틀 무렵 안개가 낀 서호를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어 놀랐다. 옅은 연무가 수면 위로 곱게 피어나는 서호 주변으로 많은 시민들이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였다. 조금만 여유 있는 공간이면 수십 명씩 떼를 지어 음악에 맞춰 기공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칼을 들고 자세를 잡은 사람, 전통 복장을 하고 태극권인 듯한 기공을 날렵하게 하는 할머니. 대부분 나이가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었고 젊은이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이가 들수록 운동을 열심히 하여 건강을 유지하려는 중국인들.
항저우에서는 아침 단련이 성행한데 매일 아침 서호 주변에서는 태극권, 태극검, 쿵후 등을 단련하는 사람들이 독특한 도시의 풍경을 만들어 간다. '우리도 운동을 생활화하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슬며시 운동을 따라 해보았다.
호수 가까이 들어가니 물위로 다리가 놓여 많은 사람들이 그 위로 다녔다. 시민들이 호수와 친근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였으니 항저우 시민들이 서호를 사랑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잡는 물고기는 그 맛이 뛰어나 가격도 비싸다고 한다. 바람 한 점 없어 잔잔하다 못해 고요하기까지 한 호수에 배가 한 척 미끄져간다. 이곳에 운항하는 배는 모두 배터리를 이용한다고 한다. 경유를 쓸 경우 일어나 호수의 오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란다. 봄날의 호수, 절로 행복해진다. 823~824년 항저우자사를 지낸 백거이는 봄날 이 호수에서 봄놀이를 하였나 보다. '전당호 봄놀이'라는 시에서 그 흥을 엿볼 수 있다.
"고산사 복쪽은 가정의 서쪽/ 수면은 잔잔하고 구름은 발 아래 낮고/ 여기저기 꾀꼬리는 남쪽 가지에 모여들고/뉘 집 제비인지 봄 진흙을 물고 간다//어지러운 꽃들은 점점 울긋불긋 눈부시고/파릇하던 풀은 벌써 말발굽을 덮는구나/몇번이고 보아도 동쪽 호수가 제일 좋아라/ 푸른 수양버들 그늘속의 백사장 둑길/(중국역대시가선집).
항저우자사로 있을 때 백거이는 서호를 소통시키고 제방을 쌓아 민중들의 생업에 큰 편익을 주었다고 한다. 소주를 떠날 때는 그를 좋아하는 백성들이 10만이나 어린아이처럼 울었다고 한다. 지금은 백거이 같은 이가 몇이나 있을 것인가.
그도 항주를 무척 사랑하고 그리워하였다. '그리운 강남'에서는 이렇게 읊었다.
/강남은 아름다워라/ 그 경치 예로부터 들어 아노니/ 해가 뜨면 불꽃보다 더 붉은 강물/ 봄이 오면 쪽빛보다 더 푸른 강물/ 오! 어찌 강남을 잊으랴// 강남땅 그리워라/ 그중에도 제일 먼저 생각나는 항저우/달빛 어린 산사에서 도토리 줍고/ 정자에 누워 베갯머리의 조수를 보네/ 오! 어느 날에 다시 가볼까/ / 강남땅 그리워라/ 그 다음으로 생각나는 오궁/ 오나라 술 한잔에 댓잎 싱그럽고/ 쌍쌍이 오나라 계집들과 춤추며 연꽃에 취하네/ 오!언제 다시 만나볼까/(중국역대시가선집).
전에 두 번이나 배를 타고 서호를 구경했지만 이렇게 밤늦게, 새벽 일찍 서호에 나가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낮에 배를 타고 서호을 둘러보는 것도 좋거니와 한적하게 밤에 나와 호수를 돌아보거나 아니면 새벽 일찍 나와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연무를 보는 것도 운치가 적지 않으리라.
서호 주변은 휴지조각 하나 없이 항상 깨끗하다. 공안이 사방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청소하는 사람들이 부지런히 청소를 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들은 바에 따르면 버려진 쓰레기를 몇 시간 이내에 치우지 않으면 청소원들은 직장을 잃게 된다고 한다. 그러니 눈에 불을 쓰고 청소를 하는가 보다.
공식 일정에 따라 항저우 번화가를 둘러보았다. 항저우는 활기로 가득하다. 만나는 항저우 사람들마다 자신감이 넘치는 듯하다. 중국 경제가 급성장한 덕분일게다.
유영(柳永, 987(?)~1053(?))은 일찍이 '항저우의 절경'이라는 시를 통해 항저우의 번창을 노래했다.
항저우는 동남의 요충지라/삼오가 다 모이는/ 예로부터 번화한 곳/ 안개 낀 버들숲에 그림같은 다리/ 바람에 나부끼는 술집 깃발과 비취 장막/ 즐비한 가옥들이 십만 호라네/ 구름 위에 솟은 나무들은 모래언덕에 줄지어 서 있고/ 성난 파도는 눈보라를 뿜어대는 곳/ 성을 감도는 긴 강물은 천년의 해자로다/저잣거리에는 진귀한 보석들이 즐비하고/ 집집마다 비단을 가득 쌓아두고/ 호사를 겨룬다//수많은 호수와 아름다운 첩첩 산 / 가을이면 계수나무 열매가 떨어지고/ 맑은 피리소리와/ 밤새 들려오는 마름 따는 노래 속에/ 낚시꾼과 연밥 따는 아가씨들 웃음소리 들려온다/ 펄럭이는 대장기 아래서/ 퉁소소리 북소리 들으며 산천을 바라본다/ 훗날 이 풍경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봉황지에 돌아가 칭찬을 받으리라(기세춘ㆍ신영복 편역 '중국역대시가선집4').
항저우에서 두 번째 맞는 밤.
지난 3월부터 이곳 항저우에 와 있는 최한선 남도대 교수와 만났다. 머나먼 이국 땅에서 벗을 만나는 기쁨이란 훨씬 크다. 유명한 칭타오맥주로 그 기쁨을 나누었다.
■ 항저우
8000년 역사 고도…중국내 치안 가장 안전
중국 절강성 성도로 경항운하의 최남단 항구이며 상해와 151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장강삼각주의 남쪽 중심도시다. 아열대 계절성기후지역으로 사계절이 분명하고 따뜻하고 습하다. 평균 기온이 16.2도, 평균강수량이 150㎜, 연평균 강우일이 155일이다.
항저우는 중국 8대 고도의 하나다. 항저우는 역사가 8000년이나 되었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우항'으로 불리다가 여항, 전당, 임안 등으로 바뀌었다. 진 시황 25년(기원전 222년)에 전당현을 설치했고 수나라는 '전당'을 '항저우'로 이름을 바꾸었다(서기 580년). 오호십국 시기에는 오월국이 항저우에 도읍을 두었으며 1129년 거란에 쫓긴 송나라가 도읍을 항저우로 옮기면서 '항저우'를 다시 '임안부'로 바꾸었다. 이때부터 항저우는 150년간 남송의 수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는데 1271년 중국에 건너온 마르코 폴로는 항저우의 번화한 거리, 호경기를 구가하는 경제 발전 등에 감탄을 하여 항저우에 관한 이야기를 '동방견문록'에 많은 지면을 할애해 썼다.
'항저우시'로 이름을 다시 바꾼 것은 1927년이고 1949년 5월 항저우시인민정부가 수립되고 항저우가 절강성의 성도로 되면서 정치, 경제, 문화, 관광의 중심지로 부상하였다. 항저우시는 총면적이 1만6596제곱킬로미터로 전체 인구가 651만 명(2005년 기준)이고 대다수가 한족이다.
항저우는 중국내에서도 경제발전이 빠른 곳으로 14년간 지역내총생산(GDP)이 두 자릿수 성장을 하고 있으며 경제 총량이 전국 성도 가운데 2위를 차지하고 있다. 국제적인 관광지로 중국에서 치안이 제일 좋은 도시다. 하지만 항저우시내에는 운전석에 칸막이를 한 택시가 가끔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