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책> 강의(박찬석, 전경북대 총장)를 이번(2023.03.14)에는 진주의 옛 지수초등학교인 K-기업가정신센터에서 하기로 했다. 강의에 앞서 오전에 지수 승산마을 일대를 돌아보았다. 지수면 승산마을은 600년의 전통을 지닌 마을이다. 승산마을은 방어산을 배경으로 남강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지형에 자리하고 있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이곳 지수초등학교는 1980년대 한국 100대 재벌 중에 30여 명을 배출한 한국 기업가의 성지로 일컬어진다.
남명(南冥) 조식(曹植; 1501-1572) 선생은 당시에 퇴계 이황이 경상좌도를 영도하는 대표인물이라면 경남우도(경상남도)를 영도하는 학자였다. 그는 평생 벼슬자리에 나가는 것을 고사한 단아한 선비였다. 조식의 사상은 경의(敬義), 즉 거경집의(居敬執義)로 집약된다. 퇴계를 비롯해 성리학의 정통학파에서는 ‘성경’(誠敬)을 중시했으나, 남명 조식은 경(敬)과 더불어 실천적인 의리인 의(義)에 방점을 두었다. 나는 경북 선산이 고향이다. <택리지>에 조선 인재 반은 영남에서 나고 영남 인재 절반은 선산에서 난다고 했다. 그러나 안동 쪽에서는 그 절반이 안동 쪽이라고도 한다. 어느 쪽이든 별로 설득력이 없다.
어쨌거나 같은 영남학파이면서 이황을 정점으로 경북의 학풍과 조식을 정점으로 한 경남 쪽 학풍이 서로대비가 된다. 좀 단순화하면 경북 쪽은 사변적 이(理)의 학풍이 주류라면, 상대적으로 조식의 경남 쪽은 같은 영남학파지만 실천적 의리를 중시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남명 조식 선생의 경의(敬義)사상이 지수초등에서 삼성 이병철 회장과 LG 구인회 회장과 GS 허만정 회장 같은 걸출한 인물을 배출한 것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하는 데에 관심이 쏠린다. 그런 연장에서 경북에는 걸출한 정치가와 학자가 많이 배출된 곳이라면, 경남 쪽은 걸출한 경세가와 재벌을 길러낸 곳이라는 생각에 미치게 된다. 따지고 보면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지만.
그러나 지금 영남은 그냥 지방에 있는 하나의 ‘지역’일 뿐이고 서울중심에 밀려 지방소멸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지방대학 소멸위기가 심각하다. 경제적으로 우리나라가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지만 정신적 측면에서는 아직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서부경남의 중심지인 진주 지수부자마을을 돌아보고 우리나라 ‘재벌문화’의 빛과 그림자를 다시 반추해 보게 된다. 과연 우리는 선진국으로 손색이 없는가?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